‘신용불량자 문제 해결 방향’ 토론회
심각한 사회문제를 낳고 있는 신용불량자 문제의 올바른 해결책을 논의하는 토론회가 참여연대 주최로 국가인권위 강당에서 12일 오전 열렸다. 토론회에서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프로그램을 강조한 반면,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개인채무재조정으로 인한 신용시장 일반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를 강조했다.

“정작 시급한 채무조정이 필요한 80만 과중채무자는 방치”
토론회 발제는 이헌욱 변호사(참여연대 작은권리 찾기 운동본부 실행위원장)가 맡아 정부의 채무조정 프로그램의 실적과 배드뱅크(Bad Bank)를 비롯한 신용불량자 대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현재 신용불량자 구제 대책은 사적채무조정제도로서 각 금융기관별 채무조정 협의와 금융기관 협약에 의해 운영되는 신용회복지원위원회의 개인워크아웃제도, 산업은행과 LG투자증권 등이 공동운영하는 공동채권추심 프로그램 등이 있다. 공적인 채무조정제도로는 법원의 재판을 통한 개인파산제도가 있다.
이헌욱 변호사는 개인워크아웃제도와 관련하여, “80만에 달하는 과중채무자의 경우 이자의 일부 탕감 등의 방식으로는 신용회복지원위원회의 채무조정안을 수용하더라도 3-4년 후에는 채무상태가 더욱 악화돼 기업워크아웃제도처럼 결국 비용과 시간만 낭비하는 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이 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을 표시했다.
개인워크아웃제도는 채권금융기관 사이에 체결된 협약에서 정해진 채무조정의 기준에 맞는 채무자만을 선정하게 돼 시급하게 조정이 필요한 과중채무자들은 이 제도를 이용할 수 없다는 것도 지적됐다. 또한 대부분 과중채무자들이 100%가 넘는 고율의 사채시장에서 빚을 얻어 쓴 경우가 대부분인데, 개인워크아웃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사채업자나 금융기관에 채무를 진 채무자들 역시 이 제도를 이용할 수 없다는 한계도 문제로 제시됐다.
정부가 지난 8월 25일 마련한 종합 신용불량자 대책 역시 과중채무자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이 변호사는 “법원에 개인파산 신청을 하는 수가 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1년에 2000여 건을 넘지 못하고 있다”면서 “80만의 과중채무자들은 아직 직장과 사업을 유지하면서 채권추심에 버티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직장과 사업을 포기해야 하는 개인파산 신청을 이용하기 어렵다”며 이 제도의 한계를 지적했다.
“배드뱅크, 문제 있다”
최근 새로운 정책으로 제시된 배드뱅크(Bad Bank)에 대해서도 몇가지 문제점이 지적됐다. 정부가 제시한 배드뱅크 제도의 핵심은 채권기관이 공동 출자한 배드뱅크에 채무자가 원리금 3%를 선지불하고 나서 나머지 채무에 대해서는 8년 동안 분할상환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이 변호사는 배드뱅크가 신불자 채무조정 프로그램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결국 부실금융기관 구조조정으로 귀결될 가능성, 신용불량자 등재제도는 그대로 둔 채 경제활동 지표에 부담을 주는 400만 신불자의 수치조정 목적으로 운영될 가능성, 기타 채무조정 프로그램과의 차별성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점, 소득과 채무의 계층적 분석 대신 획일적인 프로그램으로 실효성이 의문시되는 점 등을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400만 신불자 중에는 채무상환이 불가능한 채무자도 다수여서 결국 배드뱅크 운영과정에서 손실 처리되는 채권도 상당량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결국 부실카드회사 등 제2금융권 구조조정 수단으로 활용되면, 그 손실과 비용을 다시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으로 나가지 않을 지 의문이 든다”고 의구심을 표시했다.
이 변호사는 또한 “신불자의 소득 대비 채무의 규모를 계층적으로 분석해 각 계층별 실정에 맞는 종합적인 채무조정 프로그램이 마련되지 못하고, 40만∼100만명 등 대규모 신불자를 대상으로 한 획일적인 프로그램이 제시될 경우 일부 계층에서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고 과중채무자는 방치되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변호사는 이상과 같은 문제제기에 이어 대안을 제시했다.
먼저 신불자의 소득 대비 채무 규모와 채무의 성격에 맞는 다양한 채무조정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구체적으로 19조원에 육박하는 사채 채무가 포함된 대책, 다중과다채무자의 회생방법 마련, 선 민사조정신청 후 개인파산신청제도 도입, 구직활동과의 채무조정 프로그램의 연계 등이 제시됐다.
이런 모든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채무자 개인의 상태에 맞게 상담해 줄 수 있는 종합채무자상담기구 설립, 신용불량자 등재의 공적 관리와 분명한 폐지 로드맵 제시, 대부업체에 대한 감독기능 강화 등도 중요한 정책대안으로 제시됐다.
“신용불량자 제도 폐지는 도덕적 해이 재현”
이상의 발제에 대해 마지막 토론자로 나선 재경부 추경호 은행제도과장은 개인신불자에 대한 공적인 지원이 ‘도덕적 해이’로 이어질 가능성을 경계했다.
추 과장은 “신용불량자 등재제도를 당장 폐지하면 신불자 사이에 ‘얼마 안 있으면 폐지될 텐데–‘하는 심리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서, 정부는 지금이 신불자 등재제도 폐지를 논할 시기는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배드뱅크 운영에 있어 원금탕감 문제에 대해서도 추 과장은 “길가는 사람 누구에게 물어봐도 신불자의 채무 원금을 깎아주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며 반대를 분명히 했다.
추 과장은 “배드뱅크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사례가 없고 굉장히 복잡하다”면서 “확실한 것은 이 프로그램의 아이디어는 수용했지만 내부 운영에 대한 정책결정과 설계는 채권기관이 자체 해결하며 정부는 일체 관여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날 토론회 사회는 박영선 참여연대 사무처장이 맡았다.
토론자로 참석한 박종현 국회도서관 금융담당 연구관은 “신불자 문제는 그 원인과 해결과정에 사회적 책임이 있으며, 미국의 경우 일반인에게 알려진 것과 달리 개인파산제도와 회생제도가 어느 나라보다 잘 정비돼 우리나라처럼 채무자에게 가혹하지는 않다”면서, “우리의 신불자 대책에 모델로 적용할 수 있다”는 요지로 발언했다.
석승억 신용사회구현시민연대 대표는 “신불자의 소득이 없이는 어떤 프로그램도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으며, 그 구체적 대안으로 노동은행을 설립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 밖에 윤용기 은행연합회 상무이사는 “신불자에 대한 지나친 지원 프로그램이 신용사회의 기반을 붕괴시킬 수 있다”는 취지로,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신불자 문제는 기본적으로 사적인 계약의 문제로 정부관여가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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