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1 2001-10-10   1864

의료저축계정도입 필요성과 예상효과

의료저축계정(Medical Savings Accounts)은 개인의 일생을 통하여 소요되는 의료비를 충당할 목적으로 개인별로 별도의 자유저축계정에 정기적으로 적립한 다음, 의료비지출이 필요할 때 인출하여 사용하는 제도로서 民營재원조달방안의 하나이다. 사회보험이 국민전체를 위한 의료보장이라는 사회적 책임을 토대로 정부의 규제를 받는 제도라면, MSA는 시장원리를 기초로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의료비조달방안이다. MSA는 1980년대 전반 싱가폴에서 시작된 이래로 남아연방공화국 등에서 실시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미국, 말레이시아, 중국 등지로 확산되는 움직임을 보여 주고 있다.

본고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MSA를 둘러싸고 일고 있는 주요쟁점을 검토함으로써 정책논의의 활성화에 기여할 목적으로 집필되었다. 먼저 MSA는 무엇이며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는가. 본고에서는 싱가폴의 MSA를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MSA는 싱가폴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었고 체계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가 참고한다면 가장 유용한 교훈을 도출할 수 있는 나라라고 평가되기 때문이다. 싱가폴의 MSA는 (1) 일상적인 의료서비스 이용을 도와주는 개인저축계정인 Medisave(1984년 도입), (2) 만성질환 혹은 중증질환(catastrophic illness)에 걸렸을 때 소요되는 의료비를 지원할 목적으로 Medisave에서 보험료가 자동 불입되는 중증의료보험제도인 Medishield(1990년 도입), 그리고 (3) 저소득층의 의료이용을 돕기 위한 Medifund(1994년 도입)의 3부분으로 구성된다.

싱가폴정부는 MSA를 도입하면서 보건의료부문의 주요목적을 '첫째 적극적으로 예방의료를 보급하고 건전한 생활양식을 권장함으로써 국민들을 건강하고 생산적이게끔 고취한다. 둘째 의료비용의 비용효과성을 높여 나간다' 는 데 두고 특히 의료수요가 급속히 증대되는 老齡期에 대비하여 재원조달문제 해결에 주력한다는 기본전략을 수립한 바 있다. 요컨대 정부, 개인 및 보험의 연대원리에 기초한 싱가폴의 국민건강증진전략은 '의료서비스를 값싼 구매품으로 생각하고 이를 거의 무제한적으로 이용하는 소비자·의료제공자의 도덕적 해이를 회피하자는 데' 주된 의도가 있다고 하겠다.

의료저축계정이 갖는 위험분산효과

MSA는 개인의 일생에 걸친 위험분산(inter-temporal risk pooling)제도로써 모든 가입자를 대상으로 위험을 분산(cross-sectional risk pooling)시키는 사회보험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사회보험은 醫保가 없는 경우에 비하여 제3자가 급여를 제공하기 때문에 이용자 지불가격이 인하되는 효과가 있다. 따라서 그 결과 발생하는 의료서비스의 과다제공이나 이용경향 등 도덕적 해이에 따른 의료비의 증가가능성 때문에 비판을 받으나 소득재분배기능을 발휘한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MSA는 도덕적 해이가 全無하지만 소득재분배 기능도 없다. 또한 사회보험에서는 일본의 경우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노인인구의 증가와 함께 세대간 소득재분배 문제가 심각할 수 있으나 MSA는 이를 방지할 수 있다. 또한 MSA는 사회보험과는 달리 경기변동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국에 있어서 MSA를 도입할 필요가 있는가? 필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주요한 근거를 들어 보충적인 재원조달기구로서 MSA가 도입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첫째 한국의 건강보험제도가 효율과 형평을 증진하면서 장기적으로 발전하자면 보험재정기반의 확충이 요구된다. 노령인구의 증가, 만성성인병의 빈발, 의료수요의 다양화 및 고급화경향 등으로 국민의료비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으나 사회보험재정만으로는 급여체계의 개선은 물론 그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장기요양, 나아가서 고령자들을 위한 간호와 개호서비스 수요증대 등 에 대응하여 효과적인 재원마련이 어렵기 때문이다.

재정위기의 대안으로서의 MSA

재원조달기구로써 사회보험제도가 재정위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사실은 공적보험으로서 건강보험의 역할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건강보험을 보충할 수 있는 새로운 재원조달기구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혹자는 장기간에 걸쳐 보험료의 대폭적인 인상이나 항구적으로 국고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할지 모르나 전자는 국민적 조세저항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며 후자는 사회적 편익보다는 비용을 더 많이 발생시킬 것이기 때문에 폭넓은 지지를 받기 어렵다. 더욱이 도처에서 수돗물이 줄줄 새어 나가고 있는 형상에 비유될 수 있는 의료서비스 공급자의 유도수요와 수요자의 도덕적 해이현상을 감안하건 데 현재의 의료비를 아껴 쓰는 것은 물론 추가적으로 조성해야 할 의료비를 가장 비용 효과적으로 조달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당위성에 비추어 가장 경제적인 재원조달기구로서 MSA의 도입이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 한국건강보험제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본인부담율이 세계에서 제일 높다는 점이다. 따라서 어떤 학자는 한국제도는 거대한 의료비할인제도에 불과하다고 혹평한다. 현재 국민들은 본인부담분을 어떻게 조달하고 있는가. 돈의 출처는 다양할지 모르겠으나 결국 환자나 그 가족의 호주머니에서 지불되어야만 한다는 점에서 이미 의료이용자들은 전체의료비의 약1/2에 상당하는 부분을 개인저축으로 충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MSA의 도입으로 본인부담에 대한 재원조달을 체계화, 조직화하여 사전에 대비하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물론 혹자는 급여체계를 개선하여 본인부담을 대폭 경감시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분명 올바른 정책방향이나 보험재정이 파탄이 난 현재상황과 앞으로 상당 기간동안 보험재정이 불안정할 것으로 전망되는 미래상황으로 미루어 보아 단기간에 급여의 질적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셋째 저소득층의 의료이용을 효과적으로 지원해 주기 위해서도 MSA의 도입이 요청된다. 싱가폴정부는 MSA 중 마지막 부분인 Medifund를 도입하면서 '돈이 없다는 이유로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나와서는 아니 된다'는 정책의지를 천명한 바 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의료보호제도가 있다고는 하나 겨우 국민의 약 1%가 조금 넘는 저소득층이 오명(stigma)을 대가로 혜택을 받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저소득층 일반은 의료기관의 문턱이 높고 본인부담이 과중하여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제대로 이용할 수 없는 실정이어서 심각한 형평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혹자는 가진 자로부터 세금을 더 많이 거두어 이를 지역의보에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등 소득재분배효과를 제고하면 형평문제를 상당한 정도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소득층의료기금조성으로 소득재분배 기여해야

그러나 선진국의 실증연구들이 분명히 제시하고 있는 바와 같이 공적의료보험제도를 통하여 성취할 수 있는 형평증진의 정도에는 한계가 있다. 뿐만 아니라 인위적으로 소득재분배효과를 증대시키려고 노력할 경우, 효율을 크게 저하시키는 역효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소득재분배는 조세정책과 복지정책을 통하여 보다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목표이다. 그러므로 바람직한 대안으로서 의료보호의 건강보험 편입과 MSA의 일환으로 저소득층의료기금을 조성하는 방안이 전향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필요한 재원은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의 단계적 감축 그리고 죄세(담배, 술에 부과하는 소비세 등)의 징수를 통하여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기금을 사용하여 ① 저소득층에 대하여 보험료를 감면하는 등 소득비례보험료부과의 원칙을 강화하고 ② 무거운 본인부담을 완화시켜줄 목적으로 독일식 社會조항(저소득층에게 전면적 또는 부분적으로 본인부담을 면제해 주는)이나 현실성 있는 過重부담조항(현재의 본인부담보상금과 유사하나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을 적용하는 등 차등본인부담제도를 실시하며 ③ 극빈자는 국공립병원에서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지속가능한 건강보험으로 가는 길

넷째 지속가능한 건강보험제도의 구축을 위해서도 MSA의 도입이 필요하다. 작금의 국내외 경제환경이 불투명할 뿐만 아니라 향후 경제성장률은 점차 낮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건강보험이 앞으로 재정안정을 이룩하고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경제사정에 상응하는 재원조달방안의 강구가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그러므로 국고보조의 대폭적인 증액이나 상대적으로 사용자에게 무거운 세금이나 보험료를 부담하게 하는 방안은 현재와 장래의 경제사정으로 미루어 보아 매우 어려운 실천과제라고 평가된다. 불안정한 경제상황에 직면하여 특히 중소기업이나 영세기업들은 보험료부담의 가중에 대해서 크게 염려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와 관련하여 사회보험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독일이나 프랑스의 경우 원칙적으로 醫保재정에 대한 국고보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MSA를 도입할 경우 예상되는 주된 효과는 무엇인가. 사회 전체적인 관점에서 판단하건 데 비록 상대적으로 사회보험의 停滯가능성이라는 부정적인 효과도 있을 수 있겠지만, 도덕적 해이감소와 비용의식증대 등에 힘입어 다음과 같은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예견된다. MSA가 도입될 경우 첫째 의료이용자와 공급자 모두 책임있는 행동을 보여줄 것이므로 비용 효과적 의료이용 및 제공관행이 정착될 것이다. 둘째 장기요양을 위한 재원조성이 가능할 것이며 본인부담의료비를 효과적으로 조달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저소득층의료기금을 설치하고 공공의료를 확충하여 1차의료를 강화해 나갈 경우 저소득층의 의료이용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크게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넷째 고령인구의 증가에 따른 세대간 소득재분배문제를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실정에 맞는 제도수정 필요

그러나 우리나라와 싱가폴의 의료환경은 상당히 다르므로 한국실정에 맞게 적절한 수정과 정책적 보완노력이 요구된다. 더욱이 현재의 여건에 비추어 단기간에 재원조달방식을 급격하게 바꾸는 방안은 현실성이 적다고 보여진다. 다만 현재의 전국민의료보험이 당면하고 있는 한계를 인식하고 문제점을 시정해 나가는 방향으로 제도를 보완하면서 동시에 연구와 시범사업을 거쳐 사회보험을 보충하는 한국형 MSA를 도입하는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와 관련하여 사회보험급여체계의 단계적 확충과 MSA의 점진적 도입을 병행·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요컨대 公的의료보험 급여수준의 단계적 향상, 소비자 선택의 증대와 경쟁원리의 창달 등을 통하여 소비자 후생을 증가시켜 나가자면 독점적 지위로 인하여 효율이 떨어지고 있는 사회보험에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는 민간재원조달기구의 역할이 중요하다. 결국 비용 효과적인 방법으로 보험재정기반을 확충해나가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의료서비스는 公的醫保에서 카버하고 본인부담분과 重症의료서비스에 대해서는 MSA가 보충적 역할을 담당하도록 하는 二元체제의 구축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람직하다. 이로써 건강보험의 내용충실과 국민들의 의료니드를 비용 효과적으로 충족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권순원/덕성여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월간 <복지동향> 2001년 10월호(제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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