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학교 일반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석사
많은 사람들이 한해를 마무리 짓고, 새해를 맞이할 즈음이면 지나온 한해를 돌아보기 마련이다. 연초에 했던 결심이야 다이어리를 뒤적여야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나고, 실천하지 못한 다짐들로 실소를 머금거나 그나마 지켜진 몇 가지의 실천들에 위안을 삼기도 한다. 2009년 한해는 나에게 많은 시작과 끝이 있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실업자가 되었고, 이런 저런 핑계로 미루어 오던 논문을 마무리 지은 일은 개인적으로 가장 큰 매듭에 해당한다. 시작에 해당하는 일은 사회적 가족운동을 지향하는 일촌공동체를 지인의 소개로 알고, 지역복지실천 모델화팀과의 인연을 시작한 일이다.
대학후배를 통해 들었던 일촌공동체는 건강한 지역공동체를 방문하고 배우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지역에서 공동체 정신을 실천해가고 있는 단체였다. 당시 주변사람들과 사회복지에 대한 관점과 정치적 견해를 함께 나눌 사람이 없어 외로워하고 있던 나에게 후배의 참여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욕구, 욕망’의 소용돌이로 표현되는 자본주의의 뿌리는 내 주변 지인들에게도 깊이 박혀 있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 후배에게 나도 함께 할 수 있다면 기회를 달라 몇 번을 부탁해 후끈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던 6월경, 일촌공동체 학습여행일정 중 하나인 ‘원주의료생협’ 방문에 동행할 수 있었다. 추후 모델화팀 작업을 위해 한번 더 방문을 하고, 담당 지역복지실천 사례로 원주의료생협을 담당하면서 알게된 사실이지만, 원주는 참여민주주의의 뿌리가 깊어 그 바탕이 좋은 지역에 해당하는 곳이다. 그렇다 보니 약 두 시간 정도의 최혁진 이사와 실무진들의 경험담은 머리와 가슴을 깨우기에 충분했다. 한참을 몰입해 있던 나에게 일촌공동체 최홍순 사무처장이 ‘이러한 좋은 지역복지실천 사례들을 인터뷰하고, 질적연구 방법론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모델화 작업을 하는 팀이 있다. 함께할 대학원생이 필요한데 함께 해 보겠느냐?’ 라는 제안을 받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건데, 쉬이 수락할 수 있었던 건 그 소탈한 방식의 함께 하자는 설득의 힘이기도 했고, 당시의 나의 상황에서 그 제안이 필요한 영양제가 될 수 있겠단 끌림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사회복지학은 다른 학문들보다 이론과 현장의 감의 균형을 잘 이루어야 하는 학문에 해당한다. 사람과 사회에 대한 가치관을 가지고, 이롭게 하고자 하는 학문이니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대학원 공부라는 것이 이론에 매몰되기가 쉽고, 현장에서 전쟁을 치루는 사람들은 학교에서 배웠던 이론에 대한 깊이를 가져가기가 어려운 현실이다. 그저 단순히 좋은 일을 하는 사회복지사가 아니라 사회의 조직을 사람들에게 이롭게 하고, 지역의 공동체 토양을 변화시켜 보고자 노력했으나 직접적인 서비스 제공에 급급하다 지쳐버렸던 경험을 나 또한 가지고 있다. 그렇게 일촌과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지역복지실천 모델화팀의 작업은 내가 참여하기 한참 전인 2009년 2월경부터 시작되었다. 전국에서 모델화할 수 있을 만큼의 역량을 가지고 있는 지역복지실천 공동체와 단체를 선택하고, 일정을 잡는 기획회의를 통해 3월부터 매월 한군데 정도의 인터뷰 일정을 진행해 왔다. 경기도 시흥의 작은자리지역자활센터(2009년 3월 25일), 전라북도 진안의 마을만들기(2009년 4월 24∼25일), 경기도 부천의 춘의복지관(2009년 6월 12일), 강원도 원주의료생협(2009년 7월 21일), 부산 반송지역의 희망세상(2009년 8월 21∼22일), 서울 광진의 광진주민연대(2009년 9월 25일), 그리고 제주도 제주올레(2009년 11월 27∼29일)를 마지막으로 총 일곱 개의 단체와 기관을 일년 동안 방문하였다. 개인적으로 강원도 원주의료생협의 인터뷰를 진행하였던 7월 21일 일정부터 참여할 수 있었다. 전국을 한달에 한군데씩 돌아다니는 일정에 주변사람들이 “너무 호사스러운 출장 아니냐” 라는 질투어린 질타에 답을 하자면, 호사스럽진 않았어도 적어도 행복한 일정이었음은 분명하다. 이제는 한분 한분이 나에겐 정신적 지주로 자리매김하는 가족이 된 우수명 교수(한신대), 송건 관장(도봉지역자활센터), 한상진 부장(방아골복지관), 이재홍 부장(광주시 노인종합복지회관), 김선식 소장(안산 통합서비스네트워크 센터), 이화진 센터장(마포 시소와그네), 그리고 안살림을 도맡아 장을 만들어 주신 최홍순 처장(일촌공동체 사무처장)까지 총 일곱 분들은 너무도 배울게 많은 좋은 스승이었고, 가는 곳마다 가슴울림을 만들어 주던 지역의 활동들은 지붕없는 학교였으니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한 장소 한 장소의 숨소리 하나하나까지 다 나눌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지면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들의 경험을 간단히 정리해 나누자면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모든 기관들에서 지향하는 가치와 활동의 중심에는 지역주민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작은자리지역자활센터의 복음자리신협, 한마음협동조합은 지역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매개체였으며, 센터의 주요 결정에서도 작은 목소리, 의견을 담고자 하는 노력을 실천하고 있었다. 진안에서는 어떻게 하면 지역주민이 땅과 지역사회에 정체성을 뿌리 내리게 할 것인가가 최대의 관심사였다. ‘마을공동체를 살려야 한다-춘의복지관-’. ‘주민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희망세상-’. ‘원동력은 사람에 있다-광진주민연대-’, ‘아낌없이 나누기 위해 부지런히 일하고 겸손하며 사양하는 삶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또한 인간과 자연 사이에 기본이 되는 삶의 모습이다-원주의료생협-’ 각 공동체들은 저마다 표현하는 방법은 조금 달랐어도, 그 중심에는 주민이 주체가 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원칙이 있었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했던 실천 방식은 ‘얼굴이 보이는 관계를 만드는 일’이었다. ‘얼굴이 보이는 관계’라는 말은 원주의료생협 최혁진 이사의 말을 빌린 것이지만, 가장 잘 표현한 말이라 생각한다. 모든 조직의 활동가들은 가가호호 방문을 하여 주민들과 지향하는 가치와 문제의식을 나누고 알리는, 오래 걸리고 힘들지만 가장 직접적인 실천을 처음부터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었다. 우리들도 쉽게 경험하는 일이다. 아는 사람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한다는 것, 이에 더해 밥이라도 한끼 하면 아주 좋지 않은 감정다툼을 하기 전까지는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부탁을 쉽게 거절하지 못한다. 더욱이 마을 사람들과 그러한 관계를 갖게 되면 싫어도 계속 봐야 하는 사람이니 오죽하겠는가? 더군다나 그런 사람이 내가 사는 마을을 위해 함께 옳은 일을 하자는데 어찌 참여를 거절하겠는가? 물론 개개인의 관점과 적극성의 정도에 따라 차이는 발생하겠지만, 내 아이가 성장하고 내 가족과 내가 생활하는 마을의 일이니 적어도 반대급부는 줄일 수 있었던 것이다.
둘째, 지역주민이 함께 고민할 꺼리, 모일 수 있는 장을 만드는 일이다.
지역의 공동체가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혹은 가장 빨리 사그러드는 방법은 마을의 문제를 공유하는 일이다. 마을의 문제에는 개인의 이권이 개입되기 때문에 모임을 만들기가 가장 쉽다. 대신 그 문제가 해결되거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실패를 경험했을 때에는 와해되기도 쉽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인간의 선한 욕망을 드러낼 수 있는 문제를 공유하고, 장을 만들어 함께 할 수 있는 매개체를 공유해야 한다. 이를 각 지역복지실천 현장에서는 협동조합과 마을공동체 등의 다양한 형태로 활용하고 있었다. 최혁진 이사는 ‘협동조합은 하나의 강을 건너는 배와 같다.’고 표현한다. 즉 주객이 전도되어 그 배를 만들고 치장하기 위해 노력을 소진하기 보다는 그 배를 통해 신자유주의의 사회에서 주민들이 꿈을 꿀 수 있는 사회로 건너가는 것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서는 마을의 활동가들은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대안과 목표를 선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주민 동아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장을 열어주거나 아동, 노인 등 사회적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한 지역주민의 활동이 스스로의 욕구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실천 가능한 목표를 주민들과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실천하는 활동이 되는 것이 중요했다.
셋째,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에 대한 명확한 관점을 가지고 실천했다는 점에 있다. 인터뷰에 참여한 활동가들은 경쟁에서 살아남는 자와 그들의 사회만 남는 현실에 대한 고민, 내안에 나와 지역에 대한 존재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내 아이가 기억할 수 있는 고향으로 만들고자 했고, 우리 동네, 지역을 어떻게 가꿀 것인가 라는 질문부터 시작을 했다. 즉 얼마나 건강하고 명확한 관점으로 지역을 바라보고 지역에 대한 그림을 주민과 함께 그릴 수 있는가가 중요했다. 이와 함께 그들은 실천을 했다. 행동을 했다. 주저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왜 그들에게도 없었겠는가? 거절당하고 실패하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에 대한 두려움이 왜 없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년 동안 방문을 했던 지역의 공동체들은 알고 느끼는 만큼 실천을 했기 때문에 오늘의 그들이 있었던 것이다.
얼마 전 일 년의 사업을 간단히 정리하고 보고하는 자리에서 많은 지역의 사회복지사와 활동가들의 욕구가 강하고, 고민의 수준이 높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만큼 갈급하고 있으며 지역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 ‘지역복지’안에 있음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복지실천 모델화 팀의 연구과정이 그들에게 모범답안이 될 수 있을 만큼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통감할 수 있었다. 지역복지실천 모델화 팀의 작업은 장기적으로 3년정도의 밀도 있는 작업을 통해 그 숙제를 해결할 예정이다. 분명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고, 그렇게 하고자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노력할 것이다.
논문을 끝낸 나로서는 새로운 한해에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2009년의 행복한 일정에 대한 가르침을 현장에서 실천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와 함께 두서없는 글을 마무리 지으면서 지역복지를 하고 싶지만 주저하고 있는 나의 동료, 후배, 선임, 지역주민들에게 조심스럽게 권하고자 한다. 당신의 망설임과 고민은 충분히 훌륭했으니 어떤 형태여도 좋으니 함께 나가서 이웃에게 말을 걸자고, 계량화라는 족쇄에 발이 묶여 있는 것을 알지만 일주일에 한 시간만이라도 지역주민과 진심으로 소통을 하자고 이야기 하고 싶다. 아마도 내가 보고 들은 것이 틀리지 않았다면 그 다음은 우리의 현명한 지역주민이 천천히 답을 줄 것이다.
전북 진안을 방문하여 진안군 마을만들기의 책임자인 구자인 박사와 인터뷰
월간 <복지동향> 2010년 02월호(제1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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