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2 2012-01-16   1607

[동서남북] 장애인차별금지법제26조, 의사소통 조력인 배치를 법정에 요청하다

서재경│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

지적장애여성이 00경찰서에 있다는 제보를 받고
2011년 4월,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있던 날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에 언론사 기자의 제보가 들어왔다. 00경찰서에 지적장애여성이 방화로 구속되었는데, 아무래도 진술과정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다음 날 아침, 00경찰서로 그녀를 만나러 갔다. 그 여성은 지적장애와 정신장애, 지체장애를 가진 중복장애여성이었고, 20여 년 동안 거리에서 구걸을 하며 노숙생활을 하고 지내왔고, 담당경찰은 그녀가 이미 종로구 00마트에 불을 낸 혐의뿐만 아니라, 다른 방화 3건에 대해서도 본인이 했다고 인정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가족에게는 연락이 되었는지, ▲가족이 함께 배치되어 있는 상황에서 진술이 이뤄졌는지, ▲또한 그녀가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조서가 작성되었는지를 담당경찰에게 물어보았다. 담당경찰은 의사소통이 충분하고, 대화가 다 되는데, 가족이 없이도 조사가 가능하다는 참으로 간결하고 명쾌하게 대답했다.

즉, 경찰은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신뢰관계에 있는 동석자 배치>를 제공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고민이 없었다. 경찰측이 말한 <대화가 다 되는데>의 기준은 간단한 일상적인 대화일 뿐, ‘조력이나 진술, 혐의, 변호사, 검사’ 등의 단어가 어떤 의미와 뜻을 가지는지를 이해하기 어려운 지적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신뢰관계에 있는 동석자배치>없이 조사가 여전히 진행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권침해는 여전히 방치되어 있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즉각 수사검사에게 공문을 발송하고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김00씨가 검찰로 송치되었음을 확인한 후, 즉각 수사검사에게 <검사 과정에서의 신뢰관계에 있는 동석자배치>하에 조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공문을 통해 요청하였다. 

그리고 즉각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김00의 사건을 지원하기로 결정하였다. 지원을 결정하게 된 근거는 ▲비록 김00씨가 피의자신분으로 형사재판을 받게 되었지만, ▲그녀가 20여 년 넘게 거리에서 구걸을 통한 노숙생활을 하면서 지내는 동안 사회로부터 받은 멸시와 모욕, 수치심 ▲그리고 가정에서 보호와 관심을 받으며 성장하지 못한 채, 어린 시절 가출을 하게 되면서 가정에서 훈련받아야 하는 가치관, 도덕적 규범 등에 대한 훈련의 부재 등의 측면에서 볼 때, ▲김00씨의 지금 현재의 상황이 개인적 책임으로 판단하기는 무척 어렵다는 점과 함께 ▲무엇보다 지적장애와 정신장애를 가진 중복장애여성이 재판과정에서의 권리를 옹호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 사건을 지원하게 되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제26조, 의사소통 조력인 배치를 법정에 요청하다 
공익변호사그룹공감 차혜령변호사가 변호를 기꺼이 맡아주었다. 장추련과 공감은  1차 공판에서 재판부에게 <의사소통 조력인 배치>를 요청하였고, 재판부는 그것이 법의 어떤 근거에 적용되는가를 물어보았다. 차혜령변호사는 장애인차별금지법제26조항에는 <장애인이 형사사법절차에서 조력을 받기를 신청할 경우 정당한 사유없이 이를 거부하여서는 아니 되며, 그에 필요한 조치를 마련하여야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음을 알렸고, 재판부측은 <의사소통 조력인을 어떻게 배치해야 되는가>를 물어왔다.

재판부측이 의사소통 조력인을 제공하는 안과, 이 사건을 처음 개입하여 계속 지원하고 있는 신뢰관계에 있는 활동가를 제공하는 안이 있음을 제안했고, 재판부는 김00를 처음부터 지원한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활동가를 의사소통 조력인으로 배치하여, 재판을 진행하였다.

의사소통 조력인을 요청한 가장 큰 이유는 김00씨의 경우, ▲진술고지권 거부가 어떤 의미인지를 이해하기 어려운 점, ▲재판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권리가 있다는 점, ▲재판과정에서 검사와 재판장이 묻는 어려운 질문에 대하여 그녀에게 쉬운 말로 설명하여 그녀가 그 내용을 이해해야 하는 권리가 있다는 점, ▲즉, 그녀가 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될 일들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그 모든 상황에 대한 알 권리와 정보접근의 권리, 의사소통에서의 서비스 등의 정당한 편의는 인간으로서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지적장애여성, 법정판결이 갖는 의미는
2011년 4월에 시작된 재판은 7차공판을 거쳐, 2011년 11월 18일 1심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는 검찰 진술에서 받아낸 방화혐의 중 한 건의 방화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수사기관에서의 자백진술은 <진술거부권의 실질적 고지 없이 이루어진 것으로서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결했다. 즉 사법경찰관 작성의 각 피의자신문조서 및 검사 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의 경우, 헌법이 보장하는 <진술거부권>에 대한 고지를 하지 않을 때에 수집된 증거는 증거능력이 부인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또한 재판부는 가족과 사회가 그녀에 대한 관심을 기울였다면, 그녀가 분노조절훈련이 되지 않아 분노를 불로 내는 극단적 방법을 표출하지 않았을 거라는 점 등은 범행을 전적으로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이유로 <양형요소를 참작>함을 밝혔다.
이번 판결이 갖는 의미는 ▲첫째, 재판부는 피고인의 수사기관에서의 자백진술은 진술거부권의 실질적 고지 없이 이루어진 것으로서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결했다는 점이며 ▲둘째, 가족과 사회가 그녀에 대한 관심을 기울였다면, 그녀가 분노조절훈련이 되지 않아 분노를 불로 내는 극단적 방법을 표출하지 않았을 거라는 점을 들어서, 그녀의 행위가 개인적 책임만이 아니라는 점을 재판부가 인정하였다는 점이다.

 

다시 시작될 2라운드
그런데, 이번 판결에 대하여 담당 검사는 항소를 제기했다. 담당 검사는 재판부가 한 건의 방화혐의에 대한 무죄판결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장추련과 공익변호사그룹공감 역시 1심에서 재판부가 내린 <분노조절훈련에 대한 치료보호감호>처분에 대하여 항소를 제기하려고 하였고, 이러한 상황에서 검사측이 항소를 제기하여 이제 곧 시작될 2라운드에서는 <지적장애여성의 분노조절훈련을 하는 것이 과연 치료보호감호가 대안이 될 수 있는가>를 함께 2심에서 다툴 예정이다.
이번 재판이 갖는 가장 큰 의미는 장애인의 사법절차에서 인권침해적 요소를 시정하고 예방할 수 있는 권리가 담긴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실효성을 세상 밖으로 이끌어냈다는 점이다. 이러한 힘찬 발걸음은 싹을 돋고, 싹을 키우고, 인권의 나무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월간 <복지동향> 2012년 01월호(제1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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