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한겨레 공동기획] 재벌 앞 작아지는 검찰 ③안팎 압력에 움츠리는 검사들
10년 경력의 특수수사통인 ㄱ 부장검사는 평검사 시절의 황당한 경험을 잊지 못하고 있다. 당시 서울지검 특수부 ‘초보’ 검사였던 그는 한 재벌 총수가 10여개 계열사를 경영하면서 불법을 저지른 단서를 잡았다. 그는 직속 상관인 부장검사에게 보고한 뒤 은밀하게 내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는 이 사건에 전념할 수 없었다. 내사를 시작하자마자 곧바로 다른 수사에 차출됐다. 얼마 안 가서는 부서까지 옮겨야 했다. 그 바람에 재벌 총수에 대한 내사는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허탈해하는 그에게 부장검사는 이렇게 말했다. “너무 어리지만 않았어도, 한 번 불러서 ‘붙어보라’고 하고 싶었다. 그러나 당신이 깨질까 봐 그렇게 못하겠더라.”

그때만 해도 부장검사의 이 말을 위로로 받아들이고 고맙게 생각했다. 그러나 한참 뒤에 부장검사의 말이 ‘위로’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가 뒤에 우연히 만난 문제의 재벌 관계자가 당시 자신이 진행했던 내사 사실을 알고 있었다. “부장님이 순수한 마음에서 그런 말씀을 하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내사 정보가 샌 것을 알고서는 좀 황당했다.”
내사 정보 유출·수사 도중 담당 검사 교체도
검찰출신 선배변호사 “시간 낭비마라” 회유
ㄱ 검사의 사례는 수사의 칼날이 재벌 사건만 만나면 무뎌지는 이유를 잘 설명해주는 많은 사례 중의 하나이다. 수사 도중 담당 검사가 바뀌거나 사건이 다른 부서로 넘어가는 것은 검찰 수뇌부가 ‘재벌의 변호인’ 노릇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내사 정보가 유출되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내사는 범죄의 구체적 단서를 잡기 위해 은밀하게 진행하는 것으로, 일종의 기밀사항이다. 담당 검사는 직속 상관인 부장 검사 외에는 아무한테도 내사 사실을 보고하지 않는다. 담당 검사가 아니라면, 당연히 부장이나 그 ‘윗선’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수사 검사가 바뀐 최근의 예는 지난해 서울중앙지검이 수사한 에버랜드 전환사채발행 사건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삼성 계열사인 에버랜드 임원들의 배임 혐의를 밝혀내 기소한 뒤, 이건희 회장 등에 대한 수사를 추가로 진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지검장이 새로 부임한 뒤 담당 부서가 특수부에서 금융조사부로 바뀌었다. 검찰은 “전문적인 지식을 요구하는 수사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댔다. 하지만 “통제하기 껄끄러운 부장검사를 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뒷말이 나돌았다.
앞서 수사팀은 매우 힘겨운 과정을 통해 에버랜드 임원 2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수사팀에서 우여곡절 끝에 기소 의견을 대검에 올리자, 당시 검찰 수뇌부는 이례적으로 대검의 과장 1명을 팀장으로 임명해 기소가 타당한지를 재검토하도록 지시했다. 그러자 수사팀이 이 대검 과장에게 “우리가 1년여 동안 수사한 결론을 단 며칠 동안 검토해 뒤집는다면 우리 수사가 잘못됐다는 뜻이므로 사표를 내겠다”고 압박했고, 결국 대검 검토팀도 총장에게 수사팀과 같은 의견을 올렸다는 것이다.
검찰 수뇌부의 ‘보신주의’만이 재벌 수사의 발목을 잡는 것은 아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부장 검사는 “분식회계나 전환사채 저가발행 등 기업범죄를 적발하려면 상당한 전문지식이 있어야 하는데, 불행하게도 이런 실력을 지닌 검사들이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런 단점을 극복하려면 금융감독위원회나 회계법인 등의 협조가 꼭 필요하지만, 이들한테서 원만한 협조를 기대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재벌 사건과 관련해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하려고 해도 이들이 재벌의 눈 밖에 나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큰 도움을 받지 못한다”며 “수사에 매우 중요한 참고인인데도 소환하기가 어려운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렇게 어려운 난관을 뚫고 어렵게 재벌사건에 뛰어든 검사는 마지막으로 재벌들의 전방위 로비 공세를 만나야 한다. 재벌들은 수사 검사 및 지휘선상에 있는 간부들과 학연, 지연으로 얽힌 인사들을 로비스트로 동원한다. 웬만한 로비에는 꿈쩍도 않는 ‘강골’ 검사들도 막 옷을 벗은 검찰 고위간부가 ‘로비스트’로 나서면 얘기가 달라진다. 오랜 수사 경험과 해박한 법률지식을 겸비한 이들이 ‘그게 아니다’고 하면서 집요하게 설득하면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한 부장 검사는 “경험이 적은 평검사 시절 대선배인 변호인들한테 ‘그게 아니다. 시간 낭비하지 마라’는 말을 듣고 ‘내가 정말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고 털어놨다.
최근 재벌들이 앞다퉈 명망있는 검찰 고위간부 출신들을 영입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재벌들은 “단기적으로 기업 경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법적 분쟁에 대처하고, 장기적으로는 기업문화를 법률적 관점에서 재조직하기 위한 조처”라고 설명하지만, 법조계에서는 “검찰 고위직 출신 인사들을 ‘로비스트’로 활용하려는 의도”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최근 한 재벌 기업의 임원으로 영입된 검찰 출신 인사는 “변호사 수입을 능가하는 고액 연봉을 주고 영입한 만큼 나한테 부정적 의미의 로비스트 구실도 기대하고 있지 않겠냐”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궂은 일도 해야 하기 때문에 영입 제안을 받고 많은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
이래저래 재벌사건 수사는 검사들에게는 다른 어떤 사건들보다 외롭고 힘든 싸움이다. 그러나 국민은 검찰이 정치권력에 이어 재벌과도 당당히 맞서는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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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 방패 마련하나 검사 출신 전관 잇단 기업행, 공안검사 영입해 통상소송? 최근 현대자동차 그룹은 김재기(56·사시16회) 전 수원지검장을 사장급 법무실장으로 영입했다. 현대차는 “글로벌 기업으로서 각종 통상 관련 소송에 대비하기 위해 법무기능을 강화하려는 조처”라고 영입 배경을 밝혔다. 하지만 검찰 내부에서조차 이런 설명에 고개를 내저었다. 김 전 검사장은 검찰에서 통상분야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공안검사’로 이름을 날렸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현대차의 의도가 다른 데 있다고 보고 있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재벌 총수에 대한 수사를 염두에 둔 포석이 아니냐는 것이다. 분식회계 고발 사건과 대생인수 로비 의혹 수사로 곤욕을 치렀던 한화그룹도 최근 채정석(49) 전 서울남부지검 부장검사를 법무실장(부사장급)으로 영입했다. 한화 쪽은 “증권집단소송법과 제조물책임법 등 기업 관련 법률이 까다로워지고 있어 미리 대비하는 차원”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채 검사의 경력은 이와 거리가 멀다. 한화는 10여명의 변호사를 더 영입해 일반 로펌 못지 않은 법무팀을 꾸릴 생각이다. 앞서 두산그룹도 2월 전략기획본부 안에 법무실을 신설하고 법무실장(전무급)에 임성기(44) 전 창원지검 부장검사를 선임했다. 시제이(CJ)도 대선자금 수사에 참여했던 정준길(39) 전 울산지검 검사를 경영전략팀 상무로 영입했다. 삼성이 최근 판·검사들을 대거 영입해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알려지면서 너도 나도 현직 판·검사를 잡으려고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한 검사들의 반응은 둘로 나뉜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간부는 “일하는 태도가 진지하고 열정적이니까 대기업에서 인기가 좋다”며 “법률가로서 중요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 중견검사는 “검찰에서 얻은 수사 노하우를 재벌에 파는 꼴”이라며 “검찰에 부정적인 이미지만 남길 것”이라고 비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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