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개혁 2009-04-27   3601

[09/04/07] 나의 세번의 국민참여재판



또다. 이번이 세 번째 배심재판 방청이다. 그런데 세 번 다 강간치상을 다투는 건이었다. 게다가 점점 사건의 강도는 심해져갔다. 지난번에는 칼이 등장하더니 이번엔 감금을 했단다.


대체 왜 이렇게 성범죄가 많은 걸까? 혹시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는 사건 중에 특히 더 그런 경향이 있는 걸까? 단지 내가 본 재판들만 그런 것이었을까?



서울남부지법 대법정(406호) 모습


국민참여재판은 법관들만으로 구성된 재판부에 일반 국민이 참여하여 범죄의 유무죄를 결정하고, 형량을 논의하는 일종의 배심제다. 소위 ‘법조 삼륜’이라 불리는 판사, 검사, 변호사들의 영역으로만 인식했던 재판 과정,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사법적 판단에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감정’을 가진 시민들의 참여를 보장한 것이다.

참여재판을 규정하고 있는 ‘국민의형사재판참여에관한법률(안)’은 재판의 대상범죄를 주로 “사람의 생명에 대한 범죄와 강간으로 인하여 사람이 다치거나 사망한 범죄, 수뢰액 1억원 이상으로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적용되는 뇌물 범죄” 등, 즉 법정형이 3년 이상인 중죄 사건으로 하고 있다.


대상사건 중 성범죄가 50%?

그런데 바로 이 부분에서 흥미로운 점을 하나 발견했다. (나만?) 이처럼 중죄에 국한되어 있는 참여재판의 대상사건에서 성범죄의 발생비율이 극히 높다는 점이다. 제도 시행 이후 일정기간 일정 지역에서(2008년 7월 31일까지, 12개 지방법원 관할 *자료: 형사정책연구원) 참여재판의 대상이 되는 범죄 중 성범죄가 차지하는 비율이 절반을 넘었다. 애초에 제도 설계 자체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뜻일까?


그런데 또 하나, 재밌는 게 있다. (이번에도 나만?) 실제로 최소한 1심이 진행된 재판의 경우, 이 비율이 상당히 달라진다. 참여재판은 피고인의 신청에 의해서만 가능하고 거기다 법원의 배제결정이 있으면 다시 불가능해진다. 즉 재판을 받는 당사자가 배심제가 자신에게 유리할 것 같은 경우에 한해 신청을 하는 데다, 법원에서 한 번 더 이 사건이 배심제에 ‘알맞은 사건’인지 심사하는 것이다.


피고인이 신청하지 않거나 법원에서 배제결정을 하는 사건은 대상범죄라고 하더라도 참여재판을 하지 않는다. 또 있다. 신청을 하고 나서 피고인이 마음이 바뀌는 경우, 철회가 가능하다.


신청하지 않거나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마음이 바뀌거나

이런 저런 이유로, 실제 참여재판이 진행되어 1심 이상의 선고가 내려진 사건은 얼마 안 된다. 위에서 말한 기간(지역)의 대상 사건이 820건이었다면, 같은 기간 최소한 참여재판에 의해 1심 판결이 선고된 사건은 31건에 불과하다.


바로 이 서른한 건, 그중에서 다시 성범죄가 차지하는 비율을 보자. 딱 4건, 비율로 하자면 높여 잡아도 8%이다. 왜일까? 간단하다. 신청하지 않거나, 신청해도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마음이 바뀌기 때문이다. 대신 이 서른한 건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살인’ 사건이 된다. 35%로 단연 높다. 대상건수 중 9%에 불과한 범죄였지만 말이다.


참여재판은 돈이 든다. 배심원도 뽑아야 하고 돈도 줘야 한다. 검사들도 일이 많다. 파워포인트도 만들어야 되고 설명도 자세히 해줘야 한다. 그래서 지난해 제도를 첫 시행하면서 사건이 폭주하지 않을까 우려하며 연간 백 건 정도를 예상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재판까지 진행된 것은 7~80건 정도에 그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대상사건을 한정할 필요가 있었냐는 지적도 있다.

누군가에겐 되돌리기 힘든 인생의 순간

그렇다. 우연이었다. 내가 강간치상을 세 번이면 세 번 다 본 것은. 우연치곤 끔찍한 경험이었다. 세 번째 재판 때는 검사의 모두진술을 듣다 뛰쳐나왔다. 만약 내가 배심원이었다면 쏟아지는 눈물 때문에 꽤나 곤혹스러웠을 것 같다. 변호인이 날카로운 눈을 갖고 있었다면 배심원 선정절차에서 이미 나를 ‘불공정한 판단을 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기피했을지도 모르겠다.


모르겠다. 앞으로 계속 재판을 방청하다 보면 다른 사건들도 보게 될 것이다. 어쩌면 더 끔찍한 경험이 될 것이다. 이런 끔찍한 일을 직업으로 삼아 다뤄야 하는 법조 삼륜에 경의를 표할 따름이다. 나 같으면 배심원에 선정되어 하루를 보낸다는 것도 엄청난 압박감이 들 것 같은데. 누군가의 인생이 되돌리기 힘든 순간을 지난다는 것, 그 결정을 내 손으로(입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이진영 (사법감시센터 간사)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