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13년 03월 2013-03-08   2462

[특집] 인간의 조건 – 김 대리 격문

인간의조건

김 대리 격문

 

강태식 작가

 

일러스트 황진주

 

서광 산업의 간부 일동은 보아라.

 

먼저 이 과장에게 묻겠다. 당신은 왜 청국장을 그토록 좋아하는가? 물론 청국장은 몸에 좋은 전통 음식이다. 하지만 당신은 점심시간만 되면 매일 청국장만 먹는다. 조상님 중에 청국장 못 드시고 돌아가신 분이라도 있단 말인가. 아니면 청국장에게 영혼이라도 팔았단 말인가.

 

“오늘은 청국장 먹으러 가지.”

‘오늘은’이라는 건 그날 하루를 말한다. 어제도 먹고, 그제도 먹은 청국장 앞에 ‘오늘은’이라는 말을 붙이면 안 되는 것이다. 뭐, 좋다. 개인의 취향이라는 것도 있으니까. 하지만 왜 옥희 씨와 나 김 대리까지 당신이 좋아하는 청국장을 먹어야 하는 것인가. 당신이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나 김 대리가 한번은 용기를 내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과장님, 오늘은 짜장면 먹지 말입니다.”

그날은 아침부터 짜장면이 먹고 싶었다. 짜장면을 먹는 꿈도 꿨다. 몸이 짜장면을 부르고 있었다. 그래서 용기를 냈다. 청국장 집으로 우리를 끌고 가는 당신에게, 청국장 못 드시고 돌아가신 조상님의 후손인 당신에게, 청국장에게 영혼을 판 용서받지 못할 당신에게 건의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이 과장 당신은 평생 잊지 못할 냉정한 말을, 가슴에 상처가 되는 말을 하지 않았나.

 

“짜장면은 안 돼. 청국장 먹어!”

왜 당신은 나 김 대리의 개성과 존엄성을, 짜장면을 먹고 싶다는 그 작은 소망을, 단 하루만이라도 청국장에게서 도망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을 인정해 주지 않는 건가. 당신도 홍익인간에 대해서 배운 적이 있을 것이다. 주관식 시험 문제에 홍익인간이라는 네 글자를 자신 있게 쓰면서 좋아한 적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왜 우리 국조 단군왕검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 정신을 실생활에 적용하지 않는 것인가. 혹시 도덕 시간에 선생님 말씀 안 듣고 잔 것인가? 아니면 당신 이 과장은 우리 국조인 단군왕검을 무시하며 그 분의 고귀한 건국이념인 홍익인간 정신 같은 건 개에게나 줘버린 한민족의 이단아란 말인가?

 

아무튼 당신은 홍익인간 정신에 반하는 인물이다. 내가 짜장면을 먹자고 건의하던 날, 당신의 머릿속에 홍익인간 정신의 ‘홍’자라도 있었다면 당신은 짜장면을 먹으러 갔어야 했다. 아니, 최소한 돈가스나 냉면 정도의 메뉴로 한 발짝 물러서는 성의라도 보였어야 했다. 그날 나는 청국장을 앞에 두고 보이지 않는 눈물을 흘렸다. 그건 청국장 냄새 때문도, 점심 때마다 매일 만나는 매운 어묵 볶음 때문도 아니었다. 한 입 가득 청국장을 맛있게 먹고 있는 당신, 식당에 들어가면 늘,

“이모, 여기 청국장 세 개!”

이렇게 외치는 당신 때문이었다. 당신은 나의 인권을, 나의 정체성을 청국장이라는 무기로 무참하게 짓밟았다. 그런 압제의 그늘 속에서 신음하는 사람은 나뿐이 아니다. 옥희 씨가 한번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청국장 때문에 회사 그만두고 싶어요.”

 

당신은 당신이 좋아하는 청국장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지, 눈물을 흘리게 하고,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요즘은 당신에게 짜장면을 먹이는 꿈을 꾼다. 토할 때까지, 울면서 사정할 때까지, 나는 꿈에서 당신에게 짜장면을 먹인다. 언젠가는 실행하고 말리라 각오도 하고 있다. 사필귀정이라는 말이 있다. 악행을 저질러 온 당신에게도 응징의 그날이 찾아올 것이다. 반성하는 마음으로 그날을 기다려라, 이 과장!

 

 

다음은 박 부장 당신 차례다. 당신에게는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남의 것과 자기 것을 확실하게 구별할 줄 아는 인간이 되시길. 당신이 유능한 커리어 우먼이라는 건 안다. 일을 위해서 결혼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당신의 애절한 지난날도 들었다. 하지만 남의 것과 자기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당신은, 좀 아니라고 본다. 만지고 싶으면 자기 가슴을 만지시라. 왜 볼륨감도 없고, 재미도 없는 나 김 대리의 가슴을 만지는 것인가. 당신의 손이 내 엉덩이를 때리고 지나갈 때마다, 이 김 대리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고 찢어지는지 당신 박 부장은 아는가. 

 

“남자가 이런 장난도 못 받아줘?”

당신에게는 장난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장난이 아니다.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 것이다. 내 가슴이다. 내 엉덩이다. 그리고 내 가슴과 내 엉덩이는 나 김 대리의 인권이다. 당신 박 부장은 나 김 대리의 가슴과 엉덩이를 만지면서 한 사람의 소중한 인권을 장난삼아 유린하고 있는 것이다. 왜 남자가 여자를 만지면 성희롱이 되고, 여자가 남자를 만지면 장난이 되냔 말이다. 치욕과 수치심은 여자만의 것이 아니다. 남자도 치욕과 수치심을 느낀다. 당신 박 부장은 똑똑히 알아야 한다. 여자의 신체에만 인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남자의 신체에도 인권이 있다. 당신이 무슨 권리로 이 몸의 인권을 짓밟는 것인가.

 

한번은 당신을 신고할까도 생각했다. 당신은 기억하는가, 당신이 내 오른쪽 엉덩이를 찰싹 때리고 지나간 그날을? 바로 화장실로 달려갔다. 칸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눈물을 흘렸다. 그때는 정말 당신을 신고할 생각이었다. 그만큼 울분에 찼고, 당신에게 맞은 내 오른쪽 엉덩이는 수치심에 떨고 있었다. 하지만 나 김 대리는 당신을 신고할 수 없었다. 당신이 부장이기 때문에, 그런 당신을 신고하면 회사에서 잘릴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나는 당신의 악행을 징벌하지 못했다. 

 

나 김 대리도 인간이다. 최소한 남의 몸을 만질 거면 사전에 허락이라도 받고 만지는 것이 예의일 것이다. 물론 나 김 대리는 지금뿐 아니라, 앞으로도 영원히 당신의 손길을 허락할 생각이 없지만 말이다.

 

 

일러스트 황진주

 

마지막으로 오 이사는 들어라. 당신은 품앗이와 징용의 뜻을 모르는 것 같다. 품앗이는 쌍방의 자유의사에 의해 서로 돕는 것이고, 징용은 국가가 국민에게 부과하는 강제 노동이다. 당신의 집안일에 강제적으로 동원되어 일방적인 노동을 하는 것은 품앗이가 아니다. 그것은 징용이다.

 

“다음 주에 우리 집에서 김장을 담그거든. 품앗이 좀 해줘.”

당신이 이사할 때도 나 김 대리는 강제로 동원되어 짐을 나르고 물건을 정리했다. 당신은 왜 주말 농장 같은 걸 해 가지고 나 김 대리의 주말을 지옥으로 만드는 것인가. 곡괭이질을 하면서 생긴 물집의 자국이 아직도 이 손바닥에 처연히 남아있다. 잡초를 뽑으면서 검게 그을린 옥희 씨의 피부는 누가 보상할 것인가. 당신은 나 김 대리와 서광 산업에 입사한 죄밖에 없는 옥희 씨를 강제 노동에 동원하면서 가족애를 강조한다. 

“우리가 남이야?”

 

분명히 말해둔다. 우리는 남이다. 설령 우리가 가족이라 해도 노동을 착취하는 인간은 가족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 당신 역시 나 김 대리의 노동을 착취하는 것으로 한 사람의 자유의지와 인권을 무참히 짓밟고 있는 것이다.

집안일은 조용히, 가족끼리 해결하길 바란다. 이 회사에 나 김 대리는 일을 하기 위해 입사했다. 하지만 이제는 당신의 머슴으로 전락해 버린 나를 발견한다. 나는 당신의 노비가 아니다. 1차 서류 전형을 통과해 2차 면접까지 합격한 서광 산업의 김 대리다.

 

당신 집에서는 다음 주에 김장을 담근다. 김장을 위해서 당신은 나 김 대리를 또 한 번 강제 노동에 동원했다. 물론 다음 주가 되면 나 김 대리는 굵은 소금을 사들고 당신 집에 찾아갈 것이다. 하지만 권력의 단맛에 취한 자여! 화무백일홍이요, 권불십년이라고 했다. 언젠가는 권력의 단맛이 쓴맛으로 변해 당신의 혀를 괴롭힐 것이다. 칼로 흥한 자는 칼로 망한다는 말도 있다. 오 이사, 당신의 악행을 하늘이 내려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이 글은 허구임을 알려드립니다.

 

 

강태식 2012년 한겨레문학상으로 등단했다. 장편소설 『굿바이 동물원』을 썼다.

 

 

월간 참여사회 2013. 3월호 [특집] 인간의 조건
김 대리 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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