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24년 09월 2024-09-02   5555

[회원 100인 숙의토론] 삶에 민주주의를 잇다

김건우 정책팀장

2024. 6. 30. 지지향 숙의토론에 참여한 회원들

“촛불집회는 민주주의의 제도들이 무기력하고, 작동하지 않고, 그 중심적 메커니즘으로서의 정당이 제 기능을 못할 정도로 허약할 때 그 자리를 대신한 일종의 구원투수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 – 최장집

광우병 쇠고기 촛불집회가 최고조로 치닫던 2008년 6월, 시국토론회 <촛불 집회와 한국 민주주의>의 개회사 중 일부다. 언뜻 보면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로서 운동의 의미를 긍정하는 듯하다. 하지만 ‘선발투수’가 아닌 ‘구원투수’라는 역할에서 볼 수 있듯 운동에 제한적이면서 예외적인 의미만을 부여하고 있다. 실제로 당시 최장집 교수의 발언은 여러 매체에 인용·보도되면서 토론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보통 제도정치(대표민주주의)는 운동과 대립하거나 경쟁하는 개념1으로 이해된다. 진보적 시민운동을 자임하는 참여연대는 이러한 이항대립적 논쟁의 중심에 놓이기도 했으나, 실제로는 양자 모두를 긍정한다. 참여연대는 운동적·대중동원적 성격을 갖는 참여민주주의를 지향하는데, 참여민주주의가 대표민주주의의 취약한 대표성을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숙의, 시민과 시민을 잇는 접착제

그러나 우리가 목도해온 것은 대립이나 보완을 넘어서는 실패의 모습이다. 2016년 촛불광장으로 나타난 시민의 열망은 개혁과제 실현으로 귀결되지 않았고 정치 내 당파적 이해관계의 복잡성만을 드러냈다. 시급한 과제들이 찬성과 반대 사이에서 화해할 수 없이 평행을 달린다. 수많은 ‘합의’ 기구들은 극단의 의견 사이에서 중간값을 기계적으로 결정할 뿐이다. 공동선이 아닌 자신들의 선호와 이해만을 위해 경쟁한다는 것은 정치의 심각한 위기를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숙의성의 회복이기도 하다. 쪼개져 적대하는 사회 내 숙의성은 시민과 시민을 잇는 접착제가 될 것이다.

이런 가운데 참여연대는 창립 30주년을 맞아 ‘회원 100인 숙의토론’을 6월 29일부터 30일까지 양일간 개최했다. 서로 다른 의견들이 무수히 만나 흩어지고 다시 합쳐지길 반복하는 합의형 숙의토론을 진행한 것이다. 이번 숙의토론은 여러 의미를 갖는데, 우선 참여연대의 향후 지속가능성 방안을 회원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실용적인 의미가 있다. 평소 회원들 스스로가 지닌 생각과 의견을 꺼내놓고 실행가능한 목록들을 만드는 것이다. 두번째는 공론장 회복의 성찰적 의미다. 진영갈등, 흑백민주주의, 적대주의, 확증편향과 합의불가능한 갈등 등 온갖 불행한 단어들로 표현되는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는 상황에 숙의토론을 개최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메시지가 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민주주의의 훈련장으로서의 기능이다. 이번 숙의토론은 참여연대를 구성하는 기초인 회원들이 직위의 제한 없이 참여한다는 사실, ‘모든 사람의 의견을 동등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숙의의 원칙을 통해 정치적 평등을 경험한다는 사실, 숙의의 결과가 ‘권고적 효력’에 그칠 수 있다는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30주년선언문과 비전보고서 등에 반영하여 회원들에게 보고하도록 규정한 사실 등이 그러한 기능을 담보한다.

물론 숙의는 ‘깊이 생각하여 충분히 의논’熟議한다고 무조건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의제의 설정 과정과 질서 잡힌 숙의 체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참여연대는 내부 운영위원과 상근자, 외부 전문가(ORP연구소) 등 약 10명으로 구성된 ‘숙의토론운영위원회’를 구성했다. 이들은 회원들이 모여 토론하기에 적합한 의제를 발굴하는 것부터 이를 위한 과정 전체를 설계했다. 또한, 숙의에 참여하는 인원을 무작위로 섭외할지, 회원구성에 비례하여 섭외할지, 성별·연령·지역별 균등성을 어느정도 보장할지 등을 논했다. 사전 자료를 최대한 효과적인 시점에 배포하고, 사전·사후 설문을 배치하여 숙의 참여 전후 변화된 생각을 확인함과 동시에 자발적 참여자들의 책임성을 확인하거나 동기를 부여하기도 했다. 이 모든 과정은 여러 요인에 의한 왜곡을 최대한 막기 위함이자 효과적인 숙의를 이뤄내기 위한 전략적인 배치로서 고려되었다.
참여연대는 그동안 민주주의의 근간으로서 선호집합적인 투표행위를 넘어 시민의 참여를 강조해왔다. 이번엔 한 발짝 더 나아가 기존의 행위적 차원의 참여를 숙의를 통해 질적으로 확장한 것이다.

물론 숙의 일반의 실재적 유효성에 대해 지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지난 정부의 경우, 숙의형 공론조사나 숙의를 통한 사회적 합의를 주요한 정책 결정 과정에 다수 활용했고, 이번 정부도 연금개혁과 선거제도 개편을 위해 공론화를 추진하기도 했다. 중요한 정책 결정 과정에 시민들이 참여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 있어 보이지만 그것이 무엇을 남겼는지, 과제를 실제로 잘 해결했는지, 합리적이고 절충적인 답안을 잘 형성해냈는지, 시민사회 내 숙의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는지 등 많은 의문이 있고 마냥 긍정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비판 탓에 숙의민주주의는 지속적으로 여러 형태와 용어로 시민사회와 정치학계에 오르내리지만 제도화된 형태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는 못하다. 숙의민주주의적 문제의식하에 지난 2016년 촛불 당시 시민의회를 구성하려는 시도도 있었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민주주의, 투표를 넘어 대화로

참여연대는 숙의 제도를 잘 안착시킬 수 있을까? 이번 숙의토론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배경에는 30주년을 맞이하는 참여연대의 조직 안팎에 대한 고민이 놓여있다. 첫째는 공론장의 회복이다. SNS와 같은 개인화된 정치참여수단이 늘어났지만, 장시간 인내하면서 서로의 다름을 확인하고 좁혀나가며 설득하고 설득되는 경험은 사라지고 있다. 양극화된 정서들에 의해 정치적 입장이 다르면 밥도 먹지 않는 사회라고 한다. 참여연대는 다름이 공존할 수 있는 사회를 고민하고 있다. 둘째는 참여연대 의사결정과 소통구조에 회원의 참여를 강화하는 방향에 대한 반영이다. 기존의 회원모니터단 제도를 포함해 기존의 회의·토론·논의 구조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지난한 보고 중심의 회의를 지양하고 실효적인 논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회의 체계를 혁신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는 멤버십 강화인데, 정당이나 여타 조직과 다르게 권리당원이나 정회원 등의 제도가 없는 참여연대로서는 회원들의 교육이나 조직적 관심의 제고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어쩌면 부수 효과일지 모르지만, 이번 숙의토론 중에 습득하고 교환하는 정보들이 참여자들에게는 조직에 대한 애정과 관심, 이해로 이어졌음을 확인하기도 했다.

이러한 고민들 하에 치러진 이번 회원 100인 숙의토론이 참여연대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길 기대한다. 나아가 참여연대는 더 많은 시민들이 공적인 논쟁에 참여할 수 있길 기대하고 그러한 기회가 우리 사회에 더 늘어날 수 있길 기대한다. 그러한 공통의 경험을 통해 서로가 서로의 생각과 통찰력을 긍정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우리가 속한 정치공동체의 연대와 소속감이 강화될 수 있길 바란다. 윌 킴리카Will Kymlicka는 민주주의론의 중심을 ‘투표 중심vote-centric’에서 ‘대화 중심talk-centric’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가 바라는 민주주의의 실현 가능성이 투표를 넘어서서 더 많은 참여에 닿아있었던 만큼, 이제는 대화를 통해 참여에 깊이가 더해질 수 있길 희망한다.


❤️ 참여연대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80% 이상 동의를 받은 항목)

  • 시대 변화를 반영한 의제를 발굴하는 것이 필요하다.
  • 회원 참여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 청년회원 확대를 위하여 청년들이 관심있는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 현 시대가 요구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 활동가 임금을 인상하고 근무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
  • 선도적으로 사회적 의제를 설정하고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 회원이 참여연대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 신규회원 확보를 통한 재정 안정이 필요하다.
  • 참여연대와 함께 할 시민 양성을 위해, 시민교육 등 시민참여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 회원확보를 위한 다양한 홍보가 필요하다.
  • 자발적인 후원동기를 유인하는 다양한 모금전략이 필요하다.
  • 다양한 매체를 통한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
  • 시민들이 공감하는 생활 밀착형 의제를 발굴하는 것이 필요하다.
  • 소수자・소외계층・차별 의제를 더욱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 청년회원 30% 달성을 위해 청년세대 이슈를 발굴하는 것이 필요하다.
  • 회원들의 유대감 제고를 위한 모임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 소액회비 제도를 활성화하여 회원수를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
  • 의제의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 참여연대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80% 이하 동의를 받은 항목)

  • 참여연대 (모든) 활동주체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 의제를 실행하는 방식을 다양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 미디어홍보팀의 기능을 확장하여 뉴미디어와 레거시 언론 등 대언론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 참여연대 회원이 회비를 증액하는 것이 필요하다.
  • 참여연대의 선명하고 고유한 의제를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 상근활동가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
  • 재정적 안정을 위해 회비 외 수입원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 회원과 시민이 만날 수 있는 다양한 모임이 필요하다.
  • 권력감시 활동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 회원탈퇴를 방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 세대를 초월한 참신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회원 100인 숙의토론의 결과는 참여연대 30주년 선언문 성안위원회와 30주년 위원회에 보고되었습니다. 80%를 기준으로 항목을 정리했지만, 그 기준점이 가결 혹은 부결의 의미는 아닙니다.

숙의토론 더 많은 사진 보러가기
숙의토론 자료집 바로가기


  1. 일방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운동을 긍정하는 측에서는 제도정치가 갖는 한계에 주목한다. 요컨대 엘리트주의에 기반한 소수에 의한 지배를 큰 한계로 보고 대표기능의 취약성, 주권자가 투표행위 외 의사결정에서 배제되는 본말전도를 비판한다. 반면에 제도정치를 긍정하는 측에서는 운동의 불안정성을 지적하거나 운동이 다원화된 사회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고려하는 데 적절하지 못하다는 입장이다. 나아가 운동이 이끄는 민주주의는 중우정치와 같이 다수여론에 의해 정책적 결정이 좌지우지되거나 포퓰리즘에 취약할 수 있다. ↩︎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