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24년 09월 2024-09-02   5653

[이슈] ‘참여연대’, 그 찬란한 이름의 무게

이승원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선임 연구원, 시시한 연구소 공동소장

‘참여연대’는 한국 정치, 사회운동, 민주주의의 흐름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는 단체입니다. 이 단체가 저 같은 무명의 생계형 연구자에게 지난 30여 년의 활동을 평가하고 향후 10년의 길을 모색하는 자리에 실릴 ‘30주년 이후 참여연대의 몫, 기대하는 바, 주문하고 싶은 역할’과 같은 중요한 주제의 원고를 요청했습니다. 이에 저는 하겠다는 말도, 그렇다고 하지 못하겠다는 말도 쉽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 30년간 한국 민주주의의 파수꾼으로서 힘든 길을 자처하고 걸어온 참여연대이기에, 그 무게감에 제가 감히 어떤 말을 보탤 수 있을까 주저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저 같은 사람의 이야기도 보태질 때 참여연대가 그 이름에 걸맞는 위상을 좀 더 힘있게 지켜나갈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참여연대’라는 이름에 관한 이야기

제가 이 글에서 보태고자 하는 건 바로 ‘참여연대’라는 이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름보다 해온 일과 참여한 사람들의 면면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가만 보면, ‘이름’이란 건 어쩌면 모든 걸 규정하는 가장 강력한 상징이자 의미의 고리가 아닐까 합니다.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이백리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암초 같은 섬이 있습니다. 이를 누군가는 ‘독도’로 부르고, 누군가는 ‘다케시마’로 부릅니다. 두 이름은 문자상으로는 그낭 ‘외로운 섬’과 ‘대나무 섬’ 정도의 차이만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 이름은 한낱 작은 암초에 붙은 이름이 아니라, 동아시아 평화와 관련된 아주 중요한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동해인가, 일본해인가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어떤 이름은 ‘낙인’이 되기도 하고, 어떤 이름은 역사적 전환을 촉발하는 중요한 정치적 주체의 이름이 되기도 합니다.

갓 태어난 아기 이름을 어떻게 지을 것인지 고민하는 부모의 마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어떤 이는 자기 이름을 대신해 호를 쓰기도 하고, 부모 성을 같이 쓰거나, 아예 성을 쓰지 않거나, 전혀 다르게 개명하는 것, 그리고 어떤 정치 결사체가 자기 무리에게 어떤 이름을 붙일 것인지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스스로 자기 존재에 이름을 붙이는 건 일종의 ‘선언’과 같습니다. 선언이란 스스로 어떤 정체성이고 어떤 가치를 지향한다는 것을 밝힘과 동시에 타인에게 자신을 어떻게 인정하라는 요청 혹은 주장이기도 합니다. 즉 이름을 붙인다는 건 스스로 이 사회에서 어떤 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갈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참여연대’는 누구의 이름일까?

참여연대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참여연대는 ‘참여연대-세상을 바꾸는 시민의 힘’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1994년 9월 10일 창립선언문에는 ‘참여민주사회와 인권을 위한 시민연대(약칭 참여연대)’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후 1999년 정관 변경을 통해 ‘참여연대’는 약칭이 아니라, 동 단체를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되었습니다.

참여연대 로고는 세 사람이 어깨동무한 모양으로 시민의 참여와 연대를 의미한다.

영문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참여연대는 주로 ‘PSPD’라는 영문 약자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People’s Solidarity for Participatory Democracy’, 즉 시민연대와 참여민주주의를 뜻하는 영문 표기의 약자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홈페이지 주소가 www.peoplepower21.org라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시민권력’을 말합니다.

사실 people은 ‘시민’보다는 ‘대중’이나 ‘인민’으로 번역됩니다. 물론 맥락상 ‘사람들’이나 복수형 peoples로는 민족을 뜻할 때도 있습니다. 시민은 citizen으로 주로 번역됩니다. people은 대중보다는 인민으로 해석되는 것이 더 정확할 수 있습니다. 그냥 사람들의 무리보다는 어떤 집합적 정체성을 가진 무리에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대중은 오히려 mass와 masses, 그리고 군중은 crowd라는 표현을 씁니다.

제가 이렇게 people이라는 단어에 집착하는 이유는 ‘people power’가 그냥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힘이 생긴다는 차원을 넘어서, 특정한 집단적 정체성을 중심으로 정치적 실천을 추구하는 ‘인민권력’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people’s solidarity for participatory democracy도 바로 투표권 수준의 참정권을 넘어선 ‘인민주권’에 기반한 참여민주주의를 위한 연대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참여연대’라는 이름의 무게는 실로 엄청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세상을 바꾸는 시민’, 즉 인민의 이름입니다.

‘참여연대’의 이름 풀이

‘참여’는 단지 납세자나 유권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구성하는(헌법이 영어로 ‘구성’을 뜻하는 ‘Constitution’인 것을 참조하면) 주권자의 권리 행사를 의미할 것입니다. 그래서 30년 전 참여연대는 창립 선언문에서 ‘모두가 힘을 합쳐 새로운 시대, 참여와 인권의 시대를 만들어 갑시다’를 호소했고, 10년 전 창립 20주년을 맞이했을 때는 ‘모두가 주권자로 참여하는 민주사회, 모두가 존엄한 인권의 공동체를 향해 나아갑시다’라고 포효했습니다. 그리고 참여연대는 이 약속을 지키고, 선언을 실현하기 위해 모든 노고와 희생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에 저는 곁에 있던 한 사람으로서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저는 참여연대가 이제 진정한 ‘주권자’로서의 참여, 진정한 감시자이자 조정자의 힘으로서의 ‘인민권력’을 실현해 나가기 위해, ‘국민소환’, ‘국민발의’, ‘국민투표’라는 주권의 실질적인 힘을 제도화해 나가는 데 힘을 싣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기존 대의제 기반 정당-의회 정치와 대통령 중심 행정부 체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대의제 정치가 모든 정치를 대표하는 과부화에 걸려 결국 엘리트 관료제와 양당 중심 과두제에 빠진 상황을 타개하여 대의제 정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국민소환, 국민발의, 국민투표라는 인민권력의 제도적 기능을 활성화하는 것입니다. 향후 10년을 준비하는 참여연대가 이름에 걸맞게 이에 대해 좀 더 숙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연대’ 역시 참 좋은 말입니다. 보통 우정, 환대, 사랑 등 정서적 단어와 함께 쓰이기도 합니다. 자본주의 혹은 신자유주의라는 물질 만능 시대. 자본주의적 이윤과 정량적으로 계산 가능한 ‘효율성’이 인간관계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단어는 어쩌면 너무도 추상적이고 때로는 결국 서로에게 상처만 줄 뿐 공허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연대도 어떤 시위 현장이나 집회에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참여하여 힘을 보탤 때 쓰이기도 합니다. 함께 책임져 나간다는 의미도 강합니다.

연대라는 단어는 구체적으로는 ‘연대보증’을 의미하는 프랑스 법률 용어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 프랑스법에서 연대solidarité는 고대 로마법의 전문 용어인 ‘공동체의 책임(공통의 의무, 보증)’의 법적 의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프랑스 계몽주의자 디드로와 달랑베르는 《백과전서Encyclopédie》에서 연대를 “여러 채무자가 그들이 빌렸거나 빚진 액수를 되돌려줄 각오가 되어 있음을 인정하는 어떤 의무의 성질”이라고 설명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연대는 생각보다 더 강렬한 유대 관계로 보입니다.

즉, 연대는 공동체에서 각각의 개인이 서로 다른 위치와 상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하나의 육체처럼 서로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공동으로 대처하는 생활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즉 연대는 정량적 손익계산이 아니라, 매우 정서적이면서도 삶을 지탱하게 하는 정신적 힘을 끌어 올리고, 구체적인 나눔과 협력을 가능하게 합니다.

우리가 ‘인민권력’을 만들어 내고, ‘주권자’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것은 바로 이 연대를 통한 집합적 정체성을 함께 만들 때 가능할 것입니다. 사적 소유권이 다른 모든 정치사회권을 압도하는 배타적 특권으로 남용되고 있는 이 삭막한 사회에서 연대는 우리 모두의 자유와 평등의 공통 세계를 넓혀갈 중요한 관계이자 실천이 될 것입니다.

연대는 서로가 공감하고, 무엇인가를 공유하고, 또 함께 필요한 공적 자원과 서비스를 생산해 나갈 때, 수평적으로 서로를 통해 자신의 존재 의미를 더 존엄하게 느끼고, 그만큼 타인과의 관계 자체를 존엄하게 만드는 가치이자 실천일 것입니다. 그래서 ‘연대’는 단지 정서적인 수준만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뭔가를 함께 생산하고, 또 상호 보증을 통해 새로운 금융 질서를 만드는 생명을 유지하는 공통 작업일 것입니다.

참여연대, 변화 두려워 말아야

여기서 잠깐. people의 어원은 라틴어 populus (포퓰루스)에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고대 로마 정치체의 구성원을 뜻했다고 합니다. 바로 people이 그냥 무리가 아니라, 집단적 정체성으로 묶인 사람들에 더 가깝게 해석되는 이유일 것입니다. populus와 달리, plebs(플레브스)는 포퓰루스에 배제된 하층계급 평민을 뜻한다고 합니다.

참여연대가 주창하는 ‘참여’와 ‘연대’는 이미 포퓰루스였던 사람들의 권리 행사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연대를 통해 배제되는 이 없는 새로운 지식과 상식, 윤리, 언어의 공통 세계를 만드는 행위여야 합니다.

‘참여연대’라는 이름의 찬란함, 그리고 그 찬란함만큼 힘겨운 이름의 무게. 어쩌면 참여연대의 앞으로 10년은 지금보다 더 찬란해지면서도, 더 무거워지는 무게를 견뎌야 할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 힘든 여정에서 참여연대는 더 많은, 더 새로운, 그리고 어쩌면 더 낯선 플레브스를 만나서 함께 울고 웃을지 모릅니다. 저는 어쩌면 이 과정에서 ‘참여연대’라는 이름이 어떤 다른 이름으로 바뀔 수도 있고, 조직 형태가 환골탈태 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저는 이것을 참여연대가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플레브스’가 ‘포퓰루스’라는 새로운 이름과 위상을 찾는 것, 잃어버린 주권을 되찾는 것이 힘들지만 당연한 듯 말입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지난 30년을 악착같이 버티며 자신의 일을 해온 ‘세상을 바꾸는 시민의 힘/참여연대/PSPD/People Power’의 모든 구성원에게 다시 한번 감사와 축하의 마음을 전하며, 이름을 불러 봅니다.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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