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24년 12월 2024-11-28   11891

[활동가의 책장] 채식주의자

한강│창비

한 번 트인 시야는 감길 줄 모른다. 하나의 관점을 갖는 일은 돌이킬 수 없는 양날의 검 위에 올라서는 일이다. 나에게는 에코페미니즘으로 세상을 읽어가는 일이 그렇다. 얼마 전 온 세상을 들썩이게 했던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에코페미니즘의 시선에서 읽히는 경험 역시 제법 강렬했다.

주인공 ‘영혜’는 어쩌면 처음부터 끝까지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발단은 불현듯 자신을 찾아오기 시작한 악몽이다. 갖가지 이미지들이 중첩되는 가운데 선명한 것은 맹수의 눈을 한 자신이었다. 검붉은 죽음의 장면들을 밤마다 헤매다, 어느새 행위의 근간이 되는 자신의 신체성은 혐오의 대상이 되어있다.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가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단 한 가지 실낱같은 희망이 있다면 “둥근 가슴”이다. 그 하나만은 폭력의 칼자루가 되지 않으리라 그녀는 믿는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대척되는 ‘여성성’이 비로소 긍정되는 그 순간, 숨겨짐으로써 가장 객체였던 것이 가장 바깥면의 자리를 취해 기존의 질서를 부수고 새로운 주체성을 획득한다.

영혜는 그렇게 ‘주체적인 몸’이 된다. 오랫동안 영혜를 억압한 가부장적 위치성이 인간동물로서 그녀 자신의 위치성과 교차되는 그 때에 주체적인 몸이 향하는 곳은 오로지 식물의 신체성을 획득하는 것뿐이다.

흔히 말하는 ‘식물인간’이 숨이 붙어있을 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을 의미하듯 식물이 이 세계에서 가지는 계급은 분명하다. 명백하게 생명이지만 삶이라기보다 ‘환경’에 가깝다. 살아있는 존재로서 관념을 획득하기에 실패한다. 하지만, 실상 식물은 어떤 생명보다도 치열하게 자신의 몫을 단단히 지키고서 적극적으로 땅을 일구어가는 존재들이다. 외려 인간과 달리 타자들에게 어떠한 해조차 끼치지 않고 생장하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영혜는 누구보다 또렷한 정신으로 바로 그 지향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다.

듣던 대로 파격적인 소설이다. 분명하게도 폭력적이지만 동시에 그 안에 상징들이 휘몰아쳐 끝내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논쟁적인 텍스트일지언정 그 논쟁을 꽃피우는 것이 바로 문학적 상상력의 힘이라 믿는다. 손끝에 닿는 시선에 힘껏 천착해보는 것만큼이나 환희로운 일이 또 있을까.


르다(강우정) 여성환경연대 활동가, 참여연대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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