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5분, 서울 서초동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폭탄이 터졌거나, 비행기가 들이받은 것이 아니었다. 삼풍백화점은 외부의 공격이 아니라 순전히 내부의 부패 때문에 무너졌다. 502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되었다. 937명이 다쳤고, 6명이 실종되었다. 사망자의 신원조차 완전히 확인할 수 없었다. 위령비는 생뚱맞게도 사고 현장이 아닌, 서울 양재동 시민의 숲에 세워졌다.
그때 나는 대학원 담당 행정조교로 일하고 있었다. 지도교수 연구실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다른 교수님이 오셔서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대!”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참으로 믿기 어려운 소식이었다. 어떻게 삼풍백화점이 무너질 수 있다는 말인가!
502명 사망, 937명 부상, 6명 실종의 아비규환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마치 시루떡처럼 무너져 쌓인 콘크리트 더미 밑에 잘린 발목들이 널려 있었다. 건물이 무너져 내리면서 발목 위의 몸을 짓눌러 뭉개버렸기 때문이었다. 때는 한여름이었다. 시체를 발굴하고 생존자를 찾고 현장을 검증하던 사람들은 시체 썩는 냄새가 코에서 떠나지 않아 밥도 먹을 수 없었다. 이 때문에 급성당뇨병에 걸린 사람도 있었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붕괴 현장이 바로 지옥이었다. 삼풍백화점의 이준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과 그들의 뇌물을 받고 부실을 눈감아준 공무원들이 지옥을 빚어낸 장본인들이었다.
그로부터 어느덧 10년의 세월이 지났다.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이미 잊혀진 옛일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사고는 결코 잊혀져서는 안 될 것이다. 무엇보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윤 추구에 눈먼 자본가와 탐욕스런 공무원 때문에 원통하기 짝이 없는 죽음을 맞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사고는 부패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넓고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그 결과 사회가 얼마나 취약해졌는가를 잘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역사의 잘못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제든 역사로부터 복수를 당하게 될 것이다.
삼풍백화점은 1989년 12월 1일 문을 열었다. 그러나 건물 준공일은 1990년 7월 27일이었다. 준공검사를 받기 훨씬 전에 영업을 시작했던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또 있다. 삼풍백화점은 본래 지상 4층의 일반상가로 허가받았다. 그런데 처음의 허가와 달리 건축과정에서 지상 5층의 백화점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삼풍백화점은 비리의 산물이었다. 백화점 경영진은 관련 공무원들에게 끊임없이 뇌물을 주었고, 공무원들은 뇌물의 대가로 부실을 허가해 주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의 뒤에는 부패와 부실의 먹이사슬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삼풍백화점의 위치 또한 대단히 상징적이다. 강남터미널에서 교대로 이어지는 넓은 길을 사이에 두고 한쪽에 삼풍백화점이, 건너편에 서울법원이 자리잡고 있었다. 서슬 퍼런 서울법원의 바로 옆에서 탐욕의 노예가 된 천민 자본가가 온갖 불법을 저질러서 엉터리 백화점을 짓고 또 개조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다. 그런데도 처벌을 받기는커녕 삼풍백화점은 부유층과 권력자의 사랑을 받는 대한민국 최고의 ‘명품 백화점’으로 자리를 잡았다.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삼풍백화점은 ‘명품 백화점’이 아니라 ‘비리 백화점’이었다. 그런데도 대한민국 사법부는 그것이 제풀에 무너져 내릴 때까지 아무 것도 몰랐으며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의 물리적 원인은 설계와 다른 시공, 구조계산을 무시한 개축이었다. 건축학적으로 삼풍백화점은 특이한 건물이었다. 대들보가 없는 무량공법으로 지어졌다. 그런 만큼 기둥과 콘크리트 타설에서 정밀도를 높여야 했고, 구조나 하중을 바꾸는 일을 매우 신중하게 했어야 했다. 그러나 백화점 경영진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사실상 제멋대로 5층을 증축했고, 제멋대로 옥상의 냉각탑을 옮겼다. 그 결과 5층의 구조가 심각하게 변형되었고, 이 때문에 여러 불길한 징후들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런 징후들을 오랫동안 무시한 결과 참혹한 붕괴를 맞게 되었던 것이다. 겉모습만 화려하게 꾸민 최초의 ‘명품 백화점’이 들춰보니 최악의 ‘부실 백화점’이었다.
부실건축은 부패사회의 산물
붕괴는 한순간에 이루어진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것은 개장 때부터 진행된 것이었다. 물이 새거나 벽에 금이 가거나 건물이 흔들리는 현상이 개장 때부터 나타났지만 경영진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우지도 않았던 것이다. 건물이 무너지던 날의 상황은 더 심각했다. 5층의 여러 가게에서 심하게 금이 가고 기우는 현상이 나타나서 영업을 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정오 무렵부터 일부 직원들은 건물이 무너질 것 같다는 말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오후 2시 쯤 중역회의가 열려 이한상 사장이 이준 회장에게 5층의 문제를 보고했다. 1시간 뒤 구조기술사 이학수 씨가 도착해 안전진단을 실시했다. 오후 4시 쯤 열린 대책회의에서 이 씨는 붕괴위험은 없으며 응급조치를 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보고했다. 그로부터 채 두 시간이 지나지 않아 백화점은 무너지고 말았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의 물리적 원인은 명확하다. 그러나 이런 물리적 원인이 결국 사회적 산물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부실건축은 부패사회의 산물이다. 법대로 건축을 했다면, 붕괴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삼풍백화점 경영진은 법대로 건축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 수단은 바로 뇌물과 연줄이었다. 이준 회장은 보안사 준위 출신으로 1960년대 중앙정보부에서 김종필의 부하로 일했다. 이 전력을 이용해서 그는 삼풍백화점 터를 손에 넣고 도시계획을 바꿔서 백화점을 지을 수 있었다. 또한 이 과정에서 그는 관련 공무원과 정치인에게 막대한 뇌물을 뿌렸다. 이런 점에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군부독재의 산물이었다. 민주화는 단순히 권력을 민주화하는 것이 아니라 독재권력이 만들어 놓은 사회의 부패와 부실을 바로잡는 것이어야 한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끝났다고 말할 수 있는가? 피해자들의 원한은 제대로 풀리지 않았고, 가해자들에게는 솜방망이 처벌만이 내렸으며, 참혹한 붕괴의 원인은 여전히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다. 삼풍백화점이 있던 자리에 위령비를 세워달라는 요구도 묵살되었다. 대신 그곳에는 값비싸고 호화스러운 초고층 아파트가 들어섰다. 이 새로운 초고층 아파트는 망각의 기념비처럼 보인다.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이다. 이 당연한 사실이 제대로 지켜지도록 하려면 건축주의 책임을 크게 강화해야 한다. 또한 건축가의 책임과 구조사의 책임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이런 것들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한국이 여전히 군사적 성장주의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가 진정 ‘선진 한국’을 이루고자 한다면,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망각과 과거라는 닫힌 상자 속에 묻어 두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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