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판중심주의란 ‘형사재판에 있어서 모든 증거자료를 공판에 집중시켜 공판정에서 형성된 심증만을 토대로 사안의 실체를 파악하여 심판하는 원칙’을 말한다. 한마디로 ‘서류’에 의해 심판하지 않고, 법정에서 법관(배심원)이 직접 듣고 물어보면서 실체적 진실을 찾아내는 재판 원칙이다.
공판중심주의는 배심제·참심제에서는 필수불가결한 원칙이지만 이 제도를 채택하지 않는 경우에도 법원의 공정한 심판을 위하여 필요한 원칙으로 여겨지고 있다. 공판중심주의가 구현되기 위해서는 먼저 일반국민에게 심판의 방청이 허용되어야 한다(공개주의). 또한 판결은 법률에 다른 규정이 없으면 구두변론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구두변론주의). 공판 밖에서 작성된 조서가 법관의 심증형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고, 원칙적으로 모든 증거는 법관(배심원)이 직접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직접주의). 또한 공판기일은 될 수 있는 대로 집중적으로 계속 열리도록 하여 법관(배심원)의 심증이 희미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계속심리주의, 집중심리주의). 또한 검사가 공소를 제기할 때, 공소장 외에 다른 서류나 물건을 첨부·인용하지 못하게 함으로써(공소장 일본[一本]주의), 사건에 관해 법관(배심원)의 예단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개추위의 형사소송법 개정안
그런데 위에서 늘어놓은 대부분의 원칙은 놀랍게도 우리 형사사법제도에서 이미 보장되어 있다. 문제는 유명무실해져 있다는 것이다. 이에 최근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가 “공판중심주의를 강화하고 실질화 하겠다”며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핵심 내용은 검사가 작성하는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배제하고 그 동안 공판에서 무제한적으로 허용되었던 검사의 피고인 신문권을 제한하는 것이다.
검사는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해야 하는 ‘대립당사자’라고 할 수 있다. 공정한 게임(재판)을 위해서 검사와 피고인은 동등한 무기를 가져야 한다. 그런데,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게 되면 처음부터 불공정한 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는 나라는 일본과 한국뿐이다). 같은 이유로 공판정에서 검사가 피고인을 추궁하기 위해 피고인 신문권을 행사하는 것도 ‘무기평등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사개추위가 공판중심주의의 강화를 위해 ‘검사가 작성하는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부인하고, 검사의 피고인 신문권을 제한하자’는 것은 이와 같은 모순을 해결하고자 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사개추위의 형소법 개정안은 검찰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국민들로부터 긍정적 반응을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판중심주의가 뭔지 자세히는 몰라도 현행 형사사법절차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해 있기 때문이다. 우리 형사사법체제가 일제시대의 그것을 답습하면서, ‘사법서비스’와는 거리가 먼 ‘권력’으로서 군림해왔다. 그 중심에 검찰이 있었다. 검찰은 형사재판에서의 ‘대립 당사자’가 아니라,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국민은 검찰의 권력이 제한되는 것을 원하고 있다. 요즘 제기되고 있는 공직자비리수사처의 신설 논의, 검경의 수사권 논쟁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 놓여 있다. 공판중심주의의 강화의 뒷면에는 검찰의 권한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기 위한 시도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개추위의 형소법 개정안에 의해 공판중심주의가 확실하게 실현되고 피고인의 인권이 보호될 것인가. 그 대답은 매우 회의적이다. 공판중심주의의 성공을 위한 제도적 정비 없이, 검사가 작성하는 피의자 신문조서의 효력과 검사의 피고인 신문권을 제한한다고 하여 공판중심주의가 저절로 실현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공판중심주의의 성공을 위한 조건
공판중심주의의 성공을 위해 중요한 것은 검찰보다는 법원의 역할이다. 그동안 법원은 형사소송법의 규정을 어겨가면서까지 조서재판에 전적으로 의존했고, 특히 정치적 사건이나 국가보안법 사건 등에 있어서 검찰의 공소장을 확인해주는 역할에 만족해왔다. 법원이 이 같은 행태를 반성하지 않고 있는 것이 매우 아쉬운 일이다. 검사 작성 피의자신문조서를 제한하고 검사의 피고인 신문권을 제한하면 법원의 권한은 더 막강해진다. 또 다른 고민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법원이 공판중심주의에 대한 충분한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공판중심주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우선 형사 법관과 공판 관여 검사가 대폭 증원되어야 한다. 직접주의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공판절차에서 모든 증거자료가 제출되고 증거조사가 철저히 이루어져야 한다. 계속심리, 집중심리가 필수적이다. 현재의 인력구조로는 어림없는 일이다.
또한 공판중심주의는 공판 과정에서의 철저한 증거조사와 이에 따른 복잡한 절차로 인해 재판의 장기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불구속재판의 원칙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오히려 구속재판이 만연한 현실에서 재판의 장기화는 또 다른 인권침해의 여지를 제공할 수 있다.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한 국선변호제도의 대폭 확충과 내실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것 없이 공판중심주의는 사실 공허한 것이다. 모든 형사사건의 국선변호인제를 포함하여 국선변호제도의 대변혁이 필요하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공판중심주의는 사개추위의 또 다른 개혁안, 즉 로스쿨제, 배심·참심제와 더불어 우리 사법제도의 근본적인 재편을 가져올 사안임에 틀림없다. 그 중대한 개혁작업이 기득권 지키기에 발목이 묶이거나 인기영합 정책에 머물지 않고, 국민들에게 ‘양질의 사법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폭제가 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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