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의 계절입니다. 산이며 바다가 사람들로 들끓는 때이지요. 서구의 ‘바캉스 철’입니다. 바캉스(vacance)란 휴가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이 말은 본래 텅 비어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서구에서는 여름 휴가철이면 많은 사람들이 산으로 바다로 오랫동안 놀러가서 도시가 텅 비게 됩니다. 그래서 텅 비었다는 말이 휴가를 뜻하게 된 것이지요. 이처럼 휴가란 일상에서 벗어나서 자연 속에서 몸과 마음을 쉬는 시간을 가리킵니다.
여가는 휴가보다 훨씬 일상적인 것입니다. 휴가는 특별한 여가의 시간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적어도 일년에 한 번 정도는 비교적 오랫동안 푹 쉬어야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생각에서 휴가라는 것이 고안되었습니다. 그러나 매일의 고단한 일상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하루에 몇 시간씩,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씩 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여가(레저, leisure)입니다. 우리는 보통 이것을 일상에서 벗어난 놀이나 취미활동과 비슷한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사실 레저는 19세기 후반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말로서 ‘자유시간’을 뜻합니다. 이 시간에 우리는 아무것도 안 할 수도 있고, 뭔가 특별한 것을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시간은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노동시간, 생활시간, 문화시간이 그것입니다. 노동시간은 삶을 이어가는 데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는 시간이고, 생활시간은 수면과 식사 등 일상활동을 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며, 자유시간은 어떤 제약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을 뜻합니다. 오늘날 표준적인 시간구성은 세 부분에 각각 8시간씩을 할당한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한국은 여전히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평등은 경제적 차원을 넘어서 시간의 차원으로 확장됩니다. 한번뿐인 인생이지만, 누구는 즐겁게 오래 살고, 누구는 괴롭게 짧게 삽니다.
박정희식 성장주의는 ‘분배보다 성장’을 강조했을 뿐만 아니라 ‘여가 없는 노동’을 강요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한국은 아직도 박정희식 성장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 되었어도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평균적인 개발도상국보다 각박하고 고통스런 삶을 살고 있습니다. 경제력과 삶의 질 사이에 엄청난 괴리가 있는 것입니다. 이 괴리야말로 오늘날 한국 사회의 문제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분배 있는 성장’, 그리고 ‘여가 있는 노동’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것이 정상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방식은 OECD 기준이 아니라 개발도상국 기준으로 보더라도 비정상적입니다.
여가는 발전을 위한 장애물이 아니라 그 전제조건이자 필수적 투자입니다. 여가를 발전의 장애물로 여기는 것은 극히 잘못된 것입니다. 자유시간은 휴식뿐만 아니라 충전과 발전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자유시간은 사회성원의 발전을 촉진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사회 발전을 촉진합니다. 모든 사회성원이 충분한 자유시간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바로 ‘선진사회’입니다. 모두들 즐겁고 보람찬 휴가를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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