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윤석열을 8:0 만장일치로 파면했습니다. 그러나 윤석열은 여전히 구속되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습니다. 내란의 주요 임무 종사자들에 대한 형사재판도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입니다. 참여연대는 매주 1회, 주요 내란 피고들의 공판 진행 상황을 종합해 내란 범죄에 대한 형사재판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요약해 짚어보는 ‘주간 내란재판 리포트’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제1호 : 베일 속의 윤석열 첫 재판, 시작된 실타래 풀기
제2호 :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두 사람
제3호 : 거짓말 하는 건 세 명 중 두 명인가, 한 명인가
군사법원 재판 개요
민간인 신분 대상으로 한 윤석열, 김용현, 조지호 등의 재판 외에, 당일 계엄군의 출동에 관여한 현역 군인 피고들의 재판은 군사법원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박안수 계엄사령관(육군참모총장), 곽종근 전 육군특수전사령관(이상 2025고1),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이상 2024고46),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2025고2) 등 5명이 구속기소되었고, 정성욱 100여단 2사업단장 · 이상현 육군 특수전사령부 제1공수특전여단장 · 김현태 707특수임무단장 · 김대우 방첩사령부 방첩수사단장 · 박헌수 국방부 조사본부장 · 고동희 정보사령부 계획처장 · 김봉규 정보사령부 중앙신문단장 등 7명이 2차로 불구속기소되었습니다. 이 중 곽종근은 혐의를 인정하고 중요한 증언을 하여 보석으로 석방된 상태이며, 불구속 기소된 7명은 6월 5일에 첫 공판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 박안수 육군참모총장(계엄사령관), 곽종근(전 육군특수전사령관)에 대한 재판 (2025고1) : 박안수는 포고령 발령, 계엄사령부 구성, 국회 주변 경력 증원과 국회 출입 차단 요구, 육군특수전사령부(특전사) 헬기의 국회 비행을 승인한 혐의를 받고 있으며, 곽종근은 특전사 병력을 국회에 투입해 비상계엄 해제요구안 의결을 방해하고, 선관위 과천청사·선거연수원·관악청사 등의 기관 봉쇄를 시도했습니다.
-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이진우(전 수도방위사령관)에 대한 재판 (2024고46) : 여인형은 우원식, 이재명, 한동훈 등 주요정치인들을 체포·이송할 조편성을 지시하고, 방첩사령부 병력을 선관위 과천청사로 보내 전산실 내 서버 반출을 시도했으며, 이진우는 수방사 병력을 출동시켜 국회를 봉쇄하고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요구안 의결 방해를 시도했습니다.
-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대판(2025고2)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과천청사 인근에서 대기하던 정보사령부 부대원에게 선관위를 점거하고, 직원을 체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내란 혐의 부인한 뻔뻔한 군 수뇌부, 곽종근만 유일하게 혐의 인정
구속 기소된 박안수 사령관 등 군 수뇌부 5명에 대한 3개의 재판은 각각 3월 21일, 26일, 28일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첫 공판이 진행됐습니다. 이들은 포고령 발령을 비롯해 군 병력을 국회와 선관위 등에 투입, 봉쇄하고 비상계엄 해제요구안 의결 방해, 정치인 체포, 선관위 직원 체포 등을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이들 중 곽종근을 제외한 4인은 모두 ‘(계엄 전모를)몰랐다, ‘명령을 따랐을 뿐이다’라며 내란 혐의를 전면 부인했습니다.
박안수는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명령 위반시 항명죄로 다스린다고 강요했기에 강요로 한 행위는 벌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국회 현안질의 당시에는 국회에 군이 투입되는지도 몰랐다고 주장했습니다. 여인형도 계엄을 사전에 인식하지 못했다고 변명했습니다. 이진우는 “병력을 출동시키라는 명령이 위법한지를 판단할 능력이 없었다”고 주장하고, 자신은 국회에 출동한 병력에 소총을 차에 두고 내리라고 지시했는데 훈장을 받아야지 왜 구속됐는지 납득할 수 없다고며 적반하장식 논리를 펼쳤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새빨간 거짓임이 재판을 통해 드러나고 있습니다. 4월 24일(목)에 열린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재식 합참전비태세 검열차장은 “실제 계엄이라고 하더라도 총을 들고 가지 않는다”며, 전시 계엄이라도 질서 유지 목적이면 무장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확인했습니다. 또한 내란 당시 특전사를 태운 헬기 긴급비행 승인을 세 차례나 거절한 수도방위사령부 김문상 작전차장이 결국 헬기 서울 상공을 승인한 이유는 계엄사령관이었던 박안수 전 총장의 지시때문이었다는 것도 드러났습니다.
12.3 비상계엄 두 달 전부터 병력 배치 구체적 논의한 군 수뇌부
4월 30일(수)에 진행된 문상호, 여인형, 이진우에 대한 4차 공판에서도 이진우는 여전히 자신이 “피고인이 아니라 피해자”라며, “같이 밥 먹어도 모의가 되고, 전화 한 통만 해도 모의가 되고, 말 한마디 해도 모의가 된다”며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또다시 부인하였어요. 그러나 증인으로 출석한 곽종근은 대통령이 주재한 6차례 모임에서 정치권 등 시국 관련 이야기가 있었고, 6월 이후 만남부터는 비상계엄과 연계됐다고 진술했습니다. 계엄 ‘징후’가 그때부터 이미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10월 1일에는 윤석열로부터 ‘비상대권’, ‘특별한 방법’, ‘반국가세력’ 등의 용어를 들었으며, 여인형, 이진우 등 수뇌부들이 참석한 11월 9일 국방부 장관 공관 모임에서 ‘선관위는 방첩사’, ‘국회는 수방사’ 등 병력 배치 계획이 구체화됐다고 진술했습니다. 계엄이 해제된 직후 12월 4일 오전 5시 30분에는 여인형으로부터 ‘계엄을 TV뉴스로 처음 알았다고 하자’, ‘보안폰 통화목록을 삭제하라’는 요구를 받았다는 사실도 밝혔습니다. 피고인들은 진작부터 계엄을 알고 있었고, 함께 계획을 세우고 지휘했으며, 계엄 실패 후 증거인멸과 재판을 대비한 말 맞추기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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