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개혁한계의 구조
1) 개혁주체의 문제
① 자민련과의 연합정권
대통령선거에서의 승리에 자민련과의 연합이 결정적이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자민련과의 공동정권으로 우리사회의 개혁을제대로 이룩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주:논자에 따라서는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공동정부가 개혁과 수구의 동거체제라는 것은 “논리적 한계”일 뿐이고 “집권초기의 상황에서 자민련이 대통령의 개혁방향에 제동을 걸기 어렵다”고 지적하기도 한다.(정기영, 위의 글, p.326) 그러나 총리와 각부장관, 정부산하기관장등으로 일정한 몫의 자민련 추천자가 현실적으로 배치되고 있고 이들의 성향으로 보아 개혁추진이 쉽지 않으리라는 것은 당연히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아직 두 정당의 개혁.수구의 충돌이일어날만큼 제대로 개혁이 추진되지 않았던 측면도 지적할 수 있다.). 3공화국과 유신시대의 적자로 일컬어지는 김종필총리 이하 이른바 ‘근대화세력’은 실상 오늘의 한국경제와 한국사회를 왜곡시킨 원죄를 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부패와 비리로 얼룩진 사람들이며(주:자민련의 주요당직자들의많은 경우 부패혐의로 처벌받은 전과를 지니고 있다. 과거 3공화국과 유신정권에 참여한 사람들 외에 새롭게 자민련에 결합한 인사들의 경우에도 자신들의 비리혐의와 불의한 과거를 은폐하고 정치적 피난처를 자민련에 구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노년의 세대이다.
이들이 새로운 시대의 개혁의기수로 등장한 사실은 국민들에게 희화적인 모습으로까지 비쳐진다. 개혁의 대상을 개혁의 주체로 품고 있는 것은 자가당착이며(주:김영삼정부하에서도 같은 상황이 연출되었다. “실질적으로는 그 (군부)세력을 주요기반의하나로 삼고 있었기 때문에 모순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런 모순 때문에 문민정부는 개혁을 지향했지만, 그것은 필연적으로 자기 개혁을 요구했고,그것 때문에 항상적으로 불안정했다.” (주:정근식, “정권교체, 민주주의그리고 ‘광주'”, 당대비평, 1998년 여름호, pp.128- 129) 현실적으로 개혁의 난제와 험로를 말해주고 있다(주:김영삼정부의 3당합당과는 달리 김대중정부의 자민련 연합은 민주화세력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도덕적 우위를 지니고 있으며 패권적 지역주의 보다는 저항적 지역주의에 기반해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김영삼정권과는 단절성을 지닌다고 주장하는견해도 있다.(정근식, 위의 글, p.130) 그러나 그 차이가 개혁과정에서 얼마나 큰 차이를 드러낼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현실에 있어서는 자민련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고 그 관계를 당장 단절하는 것도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무리한 방법으로 자민련과 결별하는 것도 현명하지 못하다. 과거 김영삼정부가 김종필세력을 내쳤다가보수권의 단결을 초래함으로써 강력한 정적을 만들고 개혁의 걸림돌로 기능하게 된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선례이다. 이것은 김대중 정부가 짊어지고있는 가장 중대한 딜레머라고 할 수 있다. 운명적이며 태생적인 한계일 수밖에 없다. 다만 향후 내각제로의 전환을 둘러싸고 공동정권의 지각변동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또는 그 이전이라도 정계개편의 과정에서 야당의 일부가 분열되어 국민회의로 대거 편입됨으로써 국민회의가 강화되거나 분열된 제3의 개혁정당이 국민회의와 연합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그 이전단계라도 자민련과의 무조건 연합과 지분보장은 회피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일정한 원칙이 관철되어야 하며 그러한 원칙의 견지를 통하여 자민련을 개혁과 민주의 광장으로 견인해야 하는 것이다. 예컨대, 인사청문회실시와 국회표결절차에 의해 총리인준의 거부, 비리인사의선별은 국민회의가 책임질 수 없는 국민여론에 의한 여과장치임에도 불구하고 반대로 국회표결거부, 인사청문회도입거부로 인하여 국정의 혼란, 민주질서의파괴를 자초하였다. 아마도 이러한 좋지 못한 선례로 말미암아 앞으로 국민회의는 그 등에 올라탄 자민련의 존재가 점점 거북스러워 질 것이며 그로 인한 개혁의 정체는 점점 더 상황의 악화를 가져올 것이다.
② 대통령의존과 개혁중심의 부재
국민회의 역시 일산불란한 개혁의 견인차가 되고 있지 못하다. 그 안에는 선거전후에 걸쳐 여러 갈래, 여러 색갈의 인사들이 영입되어 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울 뿐만아니라 이들은 대체로 보수일변도인 인사들이어서 개혁적이라기보다는 반개혁적인 인사로 분류될 수 있을 지경이다. 개혁의 심장부 역할을 하여야 할 청와대 역시 과연 그런 역할에 적당한 인물들이 배치되어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비서실장을 비롯한 대다수 수석비서들은 참신한 개혁보다는 구시대적 인물들이거나 무색의 기술관료. 정치인출신들이다. 심지어 눈에 띌 정도의 보수세력의 진출은 김대통령의 좌익콤플렉스에 기인한다는 주장이 있을 정도이다.(주:손혁재, “인사정책: 지역편중 시비보다 개혁.참신성 따져야”, WIN, 1998년 6월호, p. 311) 온건자유주의개혁론자에 불과한 김태동교수마저 보수언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자리를 옮겼을 정도이다(주김태동교수는 경실련 계간지 경제정의 1994년 겨울호에 실렸던 “21세기의 오적” 때문에 큰 곤욕을 치렀다. 김지하시인의’오적’을 본따 부패관료,재벌 등을 신랄하게 비판한 이 시로 말미암아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되자 조선일보등은 그의 경제철학과 사상을문제삼기 시작했다. 김교수는 “자유경제논리에 충실히 따르겠다”는 해명식인터뷰까지 하였으나 조선일보는 계속 그의 행보를 문제삼았고 드디어 정책기획수석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조선일보는 “청와대 인사의 정상화”라는 제목의 사설까지 써 ‘확인사살’까지 하였다.(1998.5.19자 조선일보 사설 참조)).
문제는 강력한 개혁드라이브를 추진할 중심세력이 없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자신의 의지만으로 정부와 여당, 청와대에 산재한 개혁인자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함으로써 개혁의 동력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오히려 개혁인자들은 점차 고립되고 있으며 이들의 목소리는 그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게될 것이다. 최근 김대통령 스스로 언명하고 있는 인위적 정계개편이나 마구잡이식 사람빼내오기가 여소야대구조를 변화시킬 수는 있을 지언정 잡다한 사람들만의 결집으로 내부분열의 요소만 강화하고 개혁주체세력의 확대는 되지 않는 대신 야당의 단결만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주:양동주, “진보세력 육성해야 개혁 성공한다”, 말지 1998년 6월호, p.67). 개혁의 난조는오히려 야당의 강화를 가져오게 마련이다. 지리멸렬이던 야당은 정부여당의 혼선에 편승하여 전열을 가다듬었고 이제 더욱 강화된 모습으로 정부여당을 압박해 올 것임이 틀림없다. 따라서 정계개편이든 뭐든 간에 개혁주체세력의 결집과 강화라는 원칙아래서 추진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김대중정부는 주변의 시선을 과감히 뿌리치고 개혁적 인사들을 등용하여 개혁의 주체세력으로 삼는 정공법을 취하지 않으면 오히려 반개혁적 보수세력의 포로가 되고 마침내 개혁은 실종하고 말것이다(주:김영삼정부하에서개혁성이 있다고 판단된 김정남 교육문화수석비서관, 한완상통일부총리에대한 보수언론의 집중공격은 이들의 사퇴와 더불어 개혁정치의 실종으로이어졌다. 위에서 본 김태동교수의 전례는 지극히 유사한 행로를 밟아가고있다.).
또하나의 문제는 정부.여당.청와대 그 모든 중심축이 모두 김대중대통령 1인에 지나치게 의존적이라는 사실이다. 심지어 ‘DJ혼자 뛰는 정권’이니 ‘1인무(무)정권’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국정전반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출중한 카리스마 때문에 주변에서 감히 자기 의견을 개진하기를 꺼린다는 것이다(주:오일만, “국민의 정부 망치는 여권내 6대 적들”, 신동아1998년 6월호, p.93). 김대통령을 제외하고는 중간조정자가 없어 정책의혼선이 잇따르고 있다(주:1998.3.26자 동아일보 기사). 김대중대통령의 개혁성과 통제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개혁중심이 형성되지 않으면 안된다.
2) 개혁전략의 문제
① 대증요법과 근원치료
김대중정부는 정치보복금지를 약속하면서도 동시에 경제청문회의 개최등을 통한 경제실정의 책임추궁을 다짐한 바 있다. 동시에 새정부는 이른바 ‘환란책임’으로 당시의 강경식부총리, 김인호 청와대 경제수석을 구속한 바 있다. 이것은 경제위기의 다면성과 구조성을 간과하고 소수의 경제관료를 구속함으로써 이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국민들을 위무하는 안이한조치일 수 있다.(주:김영삼정부의 초기개혁과정에서 가장 활발하게 벌어졌던 사정작업으로 많은 부패인사가 구속되거나 공직사태의 고초를 겪어야했다. 이 과정을 바라보던 국민들은 카타르시스를 경험하였지만 그것은 점차 정치보복과 정적제거를 위한 ‘표적수사’로 비쳐지기 시작하였던 점을교훈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실제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지만 강경식씨등몇사람의 처벌은 자칫 국민의 폭발적인 불만을 달래는데 악용되고 한편으로는 진정한 개혁필요성을 잠재우는 효과를 나타낼지 모른다.) 또한 김대중 정부는 현재의 경제위기를 수출확대와 외자유치를 통해 해결하고 이를 위해 재벌과 노동개혁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의 경제위기는 과거 개발독재의 논리, 성장제일주의가 낳은 필연적 결과라는 점에서 그 극복 역시 보다 근본적인 경제체질과 체제의 변혁으로 이어지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주:정근식, 위의 글, p.132). 지금과같은 불투명한 회계와 장부(주:다음과 같은 IMF의 의견을 보면 얼마나 한국기업과 경제정책의 투명성이 문제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 최근몇주간 한국의 금융통계 자료의 불명확성은 현재의 여러문제들에 대한 외국시장의 우려를 가중시켰다. 투명성을 높이고 시장 참여자로 하여금 경제상황의 정확한 평가를 하게 만들려면 주요 경제데이터의 공개와 보급이 향상되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외환보유고에 대한 데이터를 보고하는데있어 많은 투명성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 한국당국이 발표하는 수많은통계들의 보고도 마찬가지로 향상되어야 한다. 부실여신, 자본상태, 주주구성, 자회사에 관한 것을 퐇마한 금육기관들에 대한 종합적인데이터는 이IMF프로그램에 다라 정기적으로 발표되어야 한다. (IMF협상단이 이사회에제출한 한국경제보고서 제37항, 매일경제신문사국제부, IMF 한국이 바뀐다, 1998, pp.296-297) ),독단경영으로는 외국의 투자자들이 한국으로 눈을 돌릴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명한 회계장부의 작성, 효율적 감사제도, 소수주주권의 강화 등에 획기적 진전이 없다. 뿐만아니라 그러한 경제개혁은 필연적으로그와 맞닿아있는 정치.사회적 개혁없이 홀로 이루어질 수 없다. 예컨대,외자유치를 위해서는 한국경제의 안정과 정상화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김대중정부의 개혁은 단편적이고 단기적 측면에 그치고 있고 본질적, 전면적이지 못하다. 외환보유액을 높이고 외자유치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한국경제의 근본적인 회복이 불가능하다. 오히려 김대중정부의 IMF극복방안이 투기성 국제금융자본의 활동과 이익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식으로진행되고 있어 당장의 자본수혈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한국경제를 국제투기자본에 종속시키는 대가를 치르게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깊다. 외국자본의 유치와 동시에 이를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하고국제금융자본의존율의 조정에 신경을 쓰야 한다는 주장이다(주:김민웅,”신자유주의정책의 모순: 김대중정부의 진로에 대한 비판”, 당대비평,1998년 여름호, p.80-83 참조.). 대증적인 요법은 일시적 진통제 복용의효과를 낼 뿐이다(주:지난 1기노사정위원회의 합의 결과만 해도 그렇다. 1기 노사정 대타협의 핵심은 재벌개혁과 노동시장개혁의 교환이었고, 더 구체적으로는 정리해고와 노동자의 정치참여자유의 교환이었다. 그러나 정치적참여 못지 않게 경영참가, 경영투명성이 중요한데 이에 대한 아무런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일방적인 정리해고라는 구체적인 고통을 감내하기는어려운 일이었다. 따라서 진정으로 노사정의 대타협을 이룩하고 노동세력의 안정, 노동의 생산성 향상을 기하려 한다면 종래의 불합리한 노사관계를 혁파하고 정경유착의 근절, 노동자의 경영참가등 완전히 새로운 개혁청사진이 제시되지 않으면 안된다.(정근식, 위의 글, pp.132-133 참조) ).
잠깐동안의 회복기미를 가져올지는 몰라도 근본적인 체질강화와 생산성.경쟁력향상과는 거리가 멀다.
② 개혁신중론과 철저개혁론
김영삼정부이든 김대중정부이든간에 과감하고 철저한 개혁이 이루어지는 동안은 전국민적인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그 개혁이 지지부진해 질때는 그 지지는 하락했다. 김대중정부가 안고 있는 지역편중, 소수정부, 여소야대 등의 정치적 부담과 한계는 바로 이러한 과감하고 철저한 개혁에의해 돌파될 수 있다.
벌집을 건드린 것처럼 다방면의 개혁을 시늉만 내고 지속적이고 근원적인 개혁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물론 문제다. 지금의 개혁주체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대를 맞아 어정쩡한 개혁의 단초를 열었다가 나중에 꼬리를감추어서는 안된다. 개혁의 주체적 조건과 객관적 상황에 조응한 치밀한개혁설계와 신중한 추진이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정부의 개혁은 지나치게 신중하고 소심하다(주:이것은 김대중 대통령의 개인적 성격과 결부되어 있다. 어떤 필자는 “김대중대통령은 탁월한 현실주의적 정치가이면서도 정교하고 정책결정은 숙고하는 편에 속한다. 따라서 오류의 가능성이 낮은 반면 실기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특히 과감한 정치적 드라이브가 요구되는 초기 개혁과정이 좌고우면과 숙고로 인해 최적의 시기를 넘기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있다”고 지적하고 있다.(정대화, 위의 글, p.319 참조)). 너무 앞뒤를 재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김대중정부의 개혁프로그램이 과연 있는지에 대해서조차 회의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주:정기영, “소수당 공동정부의 한계, 시민단체 적극참여 필요”, 월간 WIN, 1998년 6월호, p.321).
위에서 본 것처럼 어느 분야의 개혁 하나 제대로 투철한 것이 없다. 더구나 정부출범 초기에 신속히 끝내야 하는 개혁이 지지부진해 진다면 성공하기 어렵다. 지속적인 개혁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하여 필요한 개혁주체의개혁, 즉 검찰.감사원.언론.국세청 등에 대한 개혁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영역에서의 개혁은 사정기관, 민원기관으로서 개혁의 가시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을 뿐만아니라 장차 다른 영역을 개혁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초기 단계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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