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1-02-22   2107

[제95호 쓴소리] 공개적 논의절차를 거쳐 자금세탁방지법을 제정해야 합니다.

대통령님

아시다시피, 돈세탁방지법은 지난 부패방지 대책의 가장 중요한 축으로 제안되어온 핵심개혁과제입니다. 돈의 흐름이 투명한 나라, 뒷돈이 없는 나라를 만들자는 제안은 해묵은 이야기지만 아직 속 시원하게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아시다시피 금융실명제도 이를 막는 제도적 대안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돈세탁 자체를 불법화하고 이러한 불법 자금의 추적이 가능하도록 하자는 돈세탁 방지법이 제안되었고 시민운동단체들은 지난 수년간 입법운동을 전개해 온 것입니다. 그러나 이 법은 번번이 경제위축을 이유로 제정되지 못해왔고 그 결과 돈세탁에 관한 한 OECD국가 중 둘째가라면 서러운 불투명 국가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정부는 돈세탁방지법을 발의하였습니다. 약칭 범죄수익규제법안, 금융정보보고법안이 그것입니다. 현재 ?특정금융거래정보의보고및이용등에관한법률안?의 경우 재경위의 의결을 거쳐 법사위에 계류중이고 「특정범죄수익은닉의규제및처벌에관한법률안」의 경우 법사위의 법안 심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법안을 의결한 재경위의 경우, 법안의 심의와 의결과정에서 국회법에 명시된 공청회도 개최하지 않았을 뿐더러 소위원회의 공개원칙을 규정한 국회법 정신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비공개진행을 강행하여 관련 시민단체의 빈축을 산 바 있습니다. 시민단체 모니터단이 소위공개와 공청회 개최를 요구했지만 여야간사, 위원장 모두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이렇게 비공개로 처리하면서 법안의 내용 역시 크게 후퇴시키고 말았습니다. ?특정금융거래정보의보고및이용등에관한법률안?의 경우 금융정보분석원이 수집한 혐의거래를 관련 법집행기관이 제공받는 절차가 지나치게 까다롭게 되어 있을뿐더러 그나마 제공받는 정보의 범위가 축소되었습니다. 금융정보분석원이 수집한 정보를 청구할 수 있는 주체를 검찰총장으로, 그 내용 역시 혐의거래의 원거래 자료가 아닌 금융정보분석원이 가공한 2차자료로 한정함으로써 돈세탁방지행위의 규제의 실효성을 현저히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대통령님, 도대체 누구의 눈이 두렵기에 이를 비공개로 진행한다는 말입니까? 또한 도대체 이 법안으로 인해 국민들중 얼마나 불편해지기에 그나마 미흡한 정부안을 개악하였단 말입니까? 정부의 여야간의 정치적 야합을 통해 법안의 핵심적인 내용을 변질시킬 의도가 아니라면 상임위원회의 심의, 의결과정을 방청을 원하는 시민과 사회단체의 참관을 가로막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국회의 심의, 의결 과정은 시민사회의 다양한 의견의 제한없는 참여와 토론을 전제할때만 정당성이 확보되는 것이라는 것은 평소에 의회민주주의를 중시하는 대통령님이 더 잘 알고 계시리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대통령님,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제출한 이 두 법안 자체에 있습니다. 이 두 법안은 애초에 돈세탁방지의 본 목적을 수행하기에는 결정적인 하자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범죄수익은닉의규제및처벌등에관한법률?은 특정범죄로 인해 얻은 수익을 몰수해 범죄를 조장하는 요인을 발본색원하겠다는 취지입니다. 따라서 ‘특정범죄’를 어떻게 규정하는가 하는 것이 이 법안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국민의 개혁의 요구가 집중되고 있으며 실제로도 부패와 비리의 온상으로 지탄받고 있는 정치인의 불법적인 정치자금 수수에 대한 규제가 본 법안에서 빠져있습니다.

재경부와 정치권은 정치자금에 대해 기존 정치자금법으로도 불법적 정치자금을 처벌할 수 있고, 정치자금 전반을 대상 범죄에 포함시킬 경우 금융질서 문란이 야기될 수 있으며, 선진국에서도 정치자금은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는 논리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자금세탁은 마약 관련 범죄보다는 불법적인 정치자금의 세탁이 주종을 이르고 있습니다. 자금세탁행위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처벌의도는 외국처럼 마약류 등의 범죄와 관련된 거래수익을 차단하려는 측면보다도 불법적으로 조성된 정치자금원을 색출하고 이에 가담한 자를 처벌하여야 한다는 목적 때문입니다.

물론 「정치자금에관한법률」이 있지만 정치인의 자금 조성과 운용을 투명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장치로선 대단히 미흡합니다. 부정부패 일소를 위해 「자금세탁방지법」을 만든다면서 불법적인 정치자금이 많은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이미 투명한 정치자금수수관행이 정착되어 있는 일부 선진국의 예를 들어 정치자금만을 법의 적용대상에서 배제한다는 것은 적절한 비교의 방법이 아닙니다.

재경부와 법무부가 정치자금을 제외시킨 이유로 이를 포함하는 것이 반사회적 중대범죄의 확산을 방지한다는 자금세탁방지제도의 입법 목적에 맞지 않음을 꼽고 있는데, 정치자금에 대한 세탁행위를 처벌하는 것이야말로 자금세탁방지제도의 취지에 가장 부합됨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권력형 부정부패사건에서 불법적 정치자금의 수수가 관련돼 있으며 자금세탁에 의해 그 추적이 난항을 겪었던 과거의 경험을 고려할 때 정치자금을 법 적용대상에서 제외시킨다면 법률 제정의 의미 자체가 없습니다. 특정범죄의 범주에 정치자금에관한법률 제30조의 죄(불법적인 정치자금에 관한 벌칙조항)는 반드시 포함되어야 합니다.

나아가 형법상(5억원이하)의 사기죄와 횡령죄, 배임죄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데, 이는 음성적 정치자금의 원천이 되는 기업의 비자금이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해 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기업 비자금 형성과정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횡령 등으로 인하여 취득한 재산을 제외할 합리적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정금융거래정보의보고및이용등에관한법률?은 금융거래를 통한 자금세탁행위를 규제해 범죄를 예방하고 금융거래 질서를 확립하겠다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그러나 정부안은 전혀 이러한 목적에 부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고액현금거래의무신고제도’를 도입하여야 합니다. 이 제도가 도입되어야만 혐의거래보고제도가 보완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이 제도는 미국 외에는 시행되고 있지 않으며 그 미국에서조차도 점차 사문화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의도적인 사실 왜곡입니다.

미국에서 거액거래보고제도는 폐기된 것이 아니며 정부당국은 이를 아직도 유용하게 이용하고 있습니다. 은행측에서는 매년 불만을 제기하고는 있지만 정부측은 거액거래보고제도가 실제로 많은 범죄자들에게 예방효과가 있으며 거액거래보고자료가 나중에 혐의거래에 대한 수사에 매우 유용한 증거자료가 된다는 이유 등으로 전혀 폐지할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최근에는 거액거래보고자료를 컴퓨터에 입력시켜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자동으로 혐의거래를 포착하려는 시도만이 기술적인 한계에 부딪혀 폐기되었을 따름입니다.

거액거래보고제도가 정책적으로 폐기된 듯한 인상을 주는 재경부 자료는 이런 면에서 왜곡되어 있습니다. 미국의 은행들은 거액거래보고(currency transaction report)와 혐의행위보고(suspicious activity report) 두가지 모두 이행하여야 하고 이것이 다른 나라에 비해 보다 강도높고 효과적인 돈세탁방지정책을 밀고나갈 수 있는 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대통령님, 여야 국회의원들은 돈세탁 방지를 철저히 하면 경제가 위축된다는 변명을 하고 있습니다. 대통령님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3년전 경제위기가 왔을 때, 경제가 투명하지 않아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걸 막자고 돈세탁방지법을 만드는데 이제는 부패를 철저히 막으면 경제위기가 온다고 주장하다니, 이런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겠습니까?

돈세탁방지법은 부패방지법과 마찬가지로 철저하게 제대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태호(참여연대 시민감시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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