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호] 주제기획 2_민주적 헌정질서와 진보의 정치적 의미

1. 머리말

김대중정부가 임기를 마감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양 김씨가 한편으로는 한국의 민주화운동의 한 축이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걸림돌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지금의 시점은 마땅히 우리 민주주의 역사의 한 장을 영예롭게 접고 새로운 도약을 기대하는 때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눈앞의 현실은 그와 반대로 새 시대에 대한 희망보다는 환멸이, 미래에 대한 진취적 전망보다는 상실감이 훨씬 팽배해 있는 듯하다.

우리 현대사의 동력이었던 민주주의를 위한 노력은 권력에 대한 대중의 심판이라는 정치형식은 확고하게 구축하였으나, 그 이상 나아가지 못한 채 힘이 달리고 있다. 어쩌면 우리 민주주의의 역사가 ‘민주적 인간’을 탄생시키자마자 동시에 불행하게도 더욱 강력한 ‘경제적 인간’도 해방되어, 이권다툼의 요란한 대열이 평화와 인권의 행진을 추월해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 우리 사회가 겨우 이 정도밖에 진보하지 못하고 민주주의의 수준이 답보상태를 거듭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대중정부의 실패가 수구기득권세력의 득세로 이어지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물론 외재적 한계가 크겠지만, 진보진영 혹은 민주화세력 자체의 한계에 대한 성찰도 빠질 수 없을 것이다. 힘의 논리에 의한 강박관념으로 여전히 파당적 당파성을 관건으로 삼지는 않았는가? 특정의 사회경제적 목표에 대한 독선적 믿음으로 과도한 배타성을 키운 것은 아닌가? 그리고 그 사이에 민주주의의 규범적 원리들에 대한 충실성은 약화된 것이 아닌가?

필자가 볼 때, 그 동안 우리 민주화세력은 권력에 대한 저항과 억압에 대한 투쟁에는 능하였지만 사회체제를 민주적 규범질서로 구성해야 한다는 요청에 대해서는 소홀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억압과 차별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상태에 몰두하여, 그 해방의 질서와 형식 또한 중대한 과제라는 점을 충분히 음미할 겨를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글은 그런 관점에서 민주적 헌정질서의 규범적 의미를 되새겨보고, 현재의 시점에서 민주적 헌정질서의 수호가 사회진보의 필수이며 최소한이라는 사실을 떠올려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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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욱 / 영남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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