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역사적 맹목성
해방의 그날로부터 60년이 흘렀지만 1945년 8월과 1948년 8월 사이의 기간은 해방과 건국이라는 병치(竝置)보다 해방과 분단이라는 병치로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그것은 이중의 의미에서 그러하다. 우선 해방 직후 자주독립국가 수립을 향해 분출했던 격정과 역동이 결국은 분단으로 귀결함으로써 완전한 통일독립국가 수립을 이루지 못한 사정에 대한 반성과 회한이 한편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그러하고, 다른 한편으로 분단으로 인한 사고와 인식의 분절이 이후 이 시기 인식에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운다는 의미에서 또한 그러하다. 해방 직후사 연구가 당시 사정에 대한 검토와 그 시기에 대한 우리네 인식의 역사를 함께 돌아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인간의 수명이 길게 연장된 터라 환갑을 돌잔치에 비유하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어쨌든 한 사람의 일생에서 육십이라는 나이는 지난 인생을 돌아보며 자신의 과거를 정리할 때에 들어섰음을 의미하고, 동양사회에서 육십갑자의 한 바퀴 순환은 과거를 정리하고 새로운 설계 위에서 미래를 맞이한다는 특별한 의미가 실려 있다. 하지만 세계사적으로 보면 한반도분단을 강요했던 냉전의 종말이 선언된 지도 이미 십수 년이 지났고, 얄타체제에서 WTO체제로 옮겨온 지도 오래되었지만 한반도는 여전히 분단상태로 남아 있다.
광복 60주년, 그때로부터 두 세대를 건너뛰었고, 해방둥이는 환갑을 맞았으며, 또 세기가 바뀌었지만 한국사회는 분단과 그로부터 초래된 역사인식의 분단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자유롭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강정구 교수의 발언을 둘러싼 논란에서 보듯이 맹목적이기조차 하다. 한국사회가 그 시기를 기억하는 방식은 ‘색깔논쟁’ 대 ‘학문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을 통해서다. 한국사회는 미 극동군사령관 맥아더(Douglas MacArthur)와 주한미군사령관 하지(John R. Hodge)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맥아더동상을 철거하거나 수호해야 할 의지와 근거와 힘은 차고 넘칠 정도로 가지고 있다. 한국인들은 역사에 발목 잡힌 사회에 살고 있거나, 과잉정치화된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지독하게 빈핍한 역사적 상상력과 역사적 맹목성 속에서 이 시대를 살고 있다.
해방 직후 시기는 분단과 통일의 상관성을 해명할 수 있는 원형(原型)의 시기이다. 해방의 그날에 해방을 분단의 시초로 이해한 한국인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일제의 패망은 곧 조선의 독립이라는 인식이 해방의 감격을 지배했다. 김구가 일제패망 소식을 접했을 때 기쁨을 토로하기보다 먼저 우려를 나타냈다고 하지만 그것은 해방에 주동적으로 참여하지 못한 독립운동 지도자로서 건국도정의 험난한 앞날을 염려한 것이었지 분단에 대한 우려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해방은 곧 독립이 아니었고 한국인의 독립국가건설은 외국군대의 점령이라는 특이한 상황에서 시작되었으며, 미·소 양국의 분할점령은 분단으로 귀결되었다. 해방과 건국에 대한 탐구는 분단의 형성과정과 성격을 이해하고, 그 해소를 위한 전망을 마련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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