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식민지시대에 조선경제가 발전했다는 것은 각종 통계를 보면 명백히 드러난다. 자본·노동·토지 등의 생산요소의 투입량이 늘어났고, 일본으로부터 많은 선진기술이 도입되었으며, 철도·도로·항만·통신 등의 사회기반시설도 크게 확충되었다. 나아가 근대교육이 확대되고 기술자나 숙련노동자의 수도 증가하였다. 시장경제와 금융업 및 유통업도 근대화되고 발전되었으며, 각종 사법제도나 행정제도에서도 상당한 진보가 있었다. 이러한 모든 변화의 결과는 산업생산의 상당히 큰 증가로 나타났다.
산업생산의 큰 폭의 증가는 수탈론의 입지를 매우 어렵게 만들어버린다. 조선 내에서 생산과 소비가 크게 증가하였는데 어떻게 그것을 수탈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는 의문에 대해 수탈론은 설득력 있는 대답을 내어놓기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 수탈론에서 거론되는 대표적인 수탈대상은 토지, 노동력, 식량, 금 등일 것이다. 그러나 수탈론이 오랫동안 주도적 지위를 차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이 소유하는 토지의 규모조차 제대로 밝히지 못하였다. 더구나 일본인이 소유하는 토지는 거의 대부분 대가를 지불하고 구입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수탈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식량수탈이란 무엇인가? 일본에 반출된 식량의 상당 부분은 일본인지주가 수출한 것이다. 과연 일제가 일본인지주를 수탈했을까? 노동력수탈은 또 무엇인가? 열악한 노동환경 하에서 저임금으로 장시간노동에 혹사당한 것이 거론된다. 식민지시대의 조선인노동자의 처지가 비참한 것이었음은 명백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식민지상태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공업화의 초기단계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세계사적 증거가 있기 때문이다. 금 수탈은 무엇인가? 무역수지의 적자가 장기간 지속되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 아닌가? 이런 식으로 생각해본다면, 수탈론에서 주장하는 수탈이라는 것의 실체가 과연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 수탈론은 민족감정에 의존하면서 세를 얻었지만, 실제로는 무엇이 어떻게 수탈된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경제사분야에서 실증적 연구가 축적되어가면서 종래의 수탈론은 점차 그 입지가 좁아지고 그 대신 이른바 ‘식민지근대화론’이나 ‘성장사론’ 같은 것이 점차 득세하고 있다. 차명수는 일제시대 조선경제가 연평균 4%대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 성장률은 전반적으로 성장률이 저조하였던 세계경제 전체와 비교해본다면 이례적으로 높은 비율이다. 또 국민경제계산을 토대로 식민지조선에서 근대적 경제성장(modern economic growth)이 이루어졌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성장사론의 주장이 그것이다. 나아가 식민지시대에 이러한 고도성장의 경험과 그 유산은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을 통해 해방 후 한국경제의 고도성장에도 큰 역할을 하게 된다는 주장도 발견된다. 이런 견해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의 주장이야말로 객관적인 것이고, 수탈론은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에 집착하는 주관적인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식민지근대화론’ 혹은 ‘성장사론’ 역시 탈민족주의라는 또 다른 이데올로기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있는 것 같다. 이들 논의에서는 민족이라는 개념은 부차적이거나 종속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들의 주관심사는 조선이라는 지역에서 이루어진 생산과 소비의 증가, 소득의 증가, 사회적 분업의 발달이나 산업구조의 고도화, 시장경제의 발달 등이고 조선인과 조선인경제에 대한 분석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경제가 발전하면 조선인경제도 그 영향을 받아 약간의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상당히 발전하게 될 것이라는 암묵적 가정이 깔려 있다. 그러나 이 조선경제에 극심한 민족차별이 존재하고 있다면 이런 가정은 성립되기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에, 지역으로서의 조선경제에 대한 연구에서 조선인경제에 대한 어떤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더구나 이민족의 지배를 받는 식민지시대를 연구하면서 민족이라는 개념을 빼내어버린다면 도대체 식민지시대에서 무엇을 연구할 수 있을 것인가? 민족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식민지시대를 분석한다고 해서 그것이 이데올로기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무시하거나 빼버려야 한다는 발상이야말로 이데올로기적인 것이 아닐까?
1960년대 박정희 대통령 이래 이루어진 한국의 경제발전 성과를 저평가하려는 주장 역시 지나치게 이데올로기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해방 후의 한국사회의 여러 변화를 살펴봄에 있어서 이 시기의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경제성장을 논외로 하고는 어떤 설명도 불가능할 것이다. 60년대 이래의 고도성장은 다른 여러 요인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다른 부정적인 여러 요인을 능가하는 긍정적인 변화였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시대의 한국경제의 고도성장을 높이 평가한다는 것이, 이 시기에 자행된 독재나 인권유린 같은 것이 정당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동시에 이 시기의 민주화투쟁이나 노동운동이 무의미했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한 민주화운동 없이 민주화가 저절로 이루어지고, 그런 인권운동 없이 인권이 저절로 향상되었을 것으로 생각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상은 하루아침에 달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역사의 또 다른 가르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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