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노동문제에서 당분간 비정규 입법과 노사관계선진화 입법에 버금가는 이슈가 없을 만큼 큰 비중을 차지했던 이 법안들이 허탈하게도 국회에서 처리됐다. 이참에 지금 한국 노동운동이 얻은 것이 무엇인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각 제도들의 평가나 제도들을 둘러싸고 투쟁한 지난 과실(過失)을 따져 보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노동을 규정하는 체제적인 룰이 정립되는 현재에서 노동운동의 위치가 어디쯤인지는 짚어 보자는 것이다.
필자는 한국의 노동운동이 기로에 섰다는 것을 느낀다. 이번 입법 과정과 결과가 집약하는 바가 한국의 노동운동이 노동정치의 헤게모니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러나 ‘노동운동의 위기론’조차 시들해질 만큼 위기감 혹은 즉각적인 대응을 찾아볼 수 없다. 이 글의 목적은 현재 노동정치에서 한국의 노동조합운동이 보이는 모습을 문제제기하는 것이자, 노동운동 밖에 서 있는 제3자가 느끼는 답답함의 토로이다. 따라서 노동운동에 대한 이론적, 역사적, 조직적 분석보다는 주관적인 평가에 치우친 글이란 점을 전제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적 헤게모니 상실한 노동운동
목적도 위협도 없는 ‘파업정치’
현재 한국의 노동정치에서 노동운동의 헤게모니는 없다. 노동정치에서 노동운동이 헤게모니를 가질 수 있는 몇 가지 자원들을 분석해 보면 이는 자명하다.
첫째는 권력정치적 자원이다. 노동조합을 근간으로 조직된 정당이 원내 의석을 확보하고 있는지, 일관된 책임성과 전략을 갖고 있는지의 문제다. 그런 면에서 민주노동당이 비록 소수지만 원내 의석을 갖고 있는 현 상황은 노동정치에서 유리한 지형을 확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그 정당의 책임성과 전략의 부재일 것이다.
두 번째는 조직적 자원이다. 그러나 한국의 노동운동이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노동조합 조직률을 갖고 있으며, 기업별 조직구조와 교섭구조가 중심인 상황에서 이 같은 자원을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세 번째는 지적, 도덕적 자원이다. 과거 한국의 노동운동은 민주화운동과 크게 다른 말이 아니었다. 독재정권 시절 노동조합을 설립하기 위한 투쟁은 저항과 대결의 양상을 가질 수밖에 없었으며 사회 변혁적 운동의 성격을 띠었다. 그러나 경제적 조합주의와 정치적 최대강령주의를 오락가락하는 현재 노동운동의 모습에서는 사회변혁운동의 주체로서의 지적, 도덕적 우월성을 발견하기 어려우며, 리더십을 확인할 수 없다.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볼 때도 노동운동은 대기업 중심의 거대 이익집단 이상의 이미지를 주지 못하고 있다.
네 번째는 사회 연대적 자원이다. 이점에서 한국의 노동운동은 과거에 비해 고립의 정도가 더 심해지고 있다. 명목상 사회개혁운동을 지향한다고 했지만 뚜렷한 성과도 시민사회와의 소통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일례로 지역적 수준에서 노동운동이 지역시민사회와 얼마나 소통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이상과 같은 헤게모니 자원의 측면에서 볼 때 한국의 노동운동은 노동정치에서 중심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자원들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거나 점차 잃어가고 있다. 특히 민주노총이 노동정치의 중심에서 밀려나고 있는 상황은 너무도 확연하다. 상대적으로 요사이 한국노총과 이용득 위원장의 행보가 화제다. 비정규입법부터 노사정위원회법, 노사관계 선진화입법, 노사발전재단의 설립까지 안 되는 일이 없을 정도로 각종 노동현안에서 한국노총의 이니셔티브가 두드러진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노동정치의 헤게모니가 한국노총으로 넘어갔다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외형적 성과가 어떻든 한국노총의 현 지위는 ‘반사이익의 정치’에 따라 주어진 것일 뿐 새로운 헤게모니 패러다임의 등장으로 볼 수 없다. 민주노총이 스스로의 입지를 좁히면 좁힐수록 정부와 사용자의 파트너로서 한국노총의 주가가 상승하는 것이며, 노정관계를 완전히 잃을 수 없는 정부의 입장에서 그 요구를 무시할 수 없는 구조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한국노총은 오랜 기간 자생력을 갖고 성장해 온 조직이 아니며, 체질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구조적인 변화 없이 일시적 착시는 가져올지 몰라도 새로운 헤게모니는 형성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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