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위생검역조치
위생검역조치는 동식물의 해충 또는 질병, 식품·음료·사료의 첨가제, 독소, 질병원인체 등의 위험으로부터 인간과 동식물의 생명 또는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시행되는 조치를 말한다. 따라서 식품첨가물, 오염물질(잔류농약, 중금속, 기타오염물질), 병원성 미생물, 독소 등 동·식물 검역에 대한 과학적 내용뿐만 아니라 WTO SPS/TBT 협정 등 국제통상법에 대한 법률지식이 필요한 고도의 전문적인 영역이다. 그러나 WTO SPS 협정은 전통적으로 내치의 영역으로 여겼던 분야에까지 그 규범력이 확대되었으며, 설립 초기부터 주권침해, 안전기준의 하향평준 및 WTO의 무역자유화와 생명과 건강보호 가치 간의 충돌과 같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위생검역조치는 식품안전에 대한 위험성을 어느 수준까지 허용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각국의 보호수준 설정에 따라 국가별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사회적 합의에 의해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대한 보호수준을 높게 설정한 경우, 낮은 단계의 위험 가능성도 허용되지 않는다. 반면 보호 수준을 낮게 설정하면, 높은 정도의 위험 가능성도 허용된다.
2. 위생검역조치와 FTA
미국식 FTA는 초국적 농식품 독점기업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WTO SPS 협정보다 더 수준이 낮은 식품안전기준을 요구하고 있다. NAFTA의 사례를 통해 투자자-국가 소송제도가 국민의 건강과 식탁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투자자-국가 제소제도가 FTA협정에서 처음 도입된 것이 NAFTA이고, 첫 번째로 적용된 사건이 악명 높은 메탈클래드 사건이다. 멕시코의 포토시 주의 과달카사르 시 페드레라 계곡에 유독성 폐기물 보관시설에 대한 토지와 건설허가권을 매입한 미국의 메탈클래드 사는 이윤추구에 눈이 먼 자본주의의 극단적인 면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과달카사르 시가 1995년 12월, 지역주민의 건강과 생태보호를 위해 매립장 가동신청을 거부하자, 이 조치가 NAFTA에서 규정한 수용조치에 해당된다면 멕시코 정부를 상대로 최소 4312만 달러의 보상을 요구하는 제소를 했다. 기업의 경제적 이익을 우선시 하는 NAFTA 중재인단은 2000년 9월, 멕시코 정부가 매탈클래드 사에게 1668만 달러의 보상금을 지급하라고 명했다.
투자자-국가 제소제도는 환경, 건강, 공공이익 등에 대한 고려를 전혀 하지 않고, 기업의 이익만을 보장해주는 괴물 같은 제도이다. 위생검역조치와 관련해서도 국가가 자국민의 생명이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과학적 근거가 명확한 정당한 조치를 취할 경우에도 기업의 투자에 손실을 끼쳤다면 제소를 당할 수 있다. 심지어 투자자-국가 제소제도라는 괴물은 국제기준이나 법규를 위반하지 않아도 제소가 가능하다. 그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자.
1) 광우병 예방을 위한 수입금지 조치도 제소 대상
2003년 5월, 미국 정부는 캐나다의 광우병 발생을 이유로 캐나다산 생우의 수입 금지령을 내렸다.
그런데 캐나다 목장주연합(Canadian Cattlemen’s Association)은 2005년 3월 16일, 이러한 위생검역 조치가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했다며 미국 정부를 국제 중재에 회부했다. UNCITRAL에 제소된 이 사건은 아직 그 판결내용이나 절차가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광우병 발생국인 미국과 캐나다는 NAFTA 협정에 의해 30개월 미만의 뼈를 발라낸 살코기뿐만 아니라 30개월 이상의 뼈가 포함된 고기와 내장까지 자유롭게 교역을 허용하고 있다. 또한 생우의 수입과 수출도 자유로운 상태다. 이것은 명백하게 초국적 농식품 독점기업의 이익을 위해 국민의 건강과 식탁안전을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캐나다우육수출협회에 따르면 캐나다에서 광우병이 터지기 직전인 2003년 1월부터 5월까지 대미 생우 수출물량은 총 50만5000두였고, 2005년 7월 재개된 이후 올 6월까지 총 107만 680두가 미국으로 넘어갔다. 캐나다 목장주연합은 2003년 5월~2005년 7월 동안에 캐나다의 광우병 발생으로 대미 생우 수출을 금지한 미국 정부의 조치가 과학적 근거와 국제기준을 위반한 것이 아니었지만 투자자-국가 제소를 제기했다.
이와 같은 사례를 광우병 위험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싼 한국에 적용시킬 경우, 끔찍한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한국 정부는 지난 10월 30일 인천공항을 통해 처음으로 반입된 캔사스 주 아칸사스(Arkansas)시티에 위치한 ‘크릭스톤 팜스(Creekstone Farms, Est No 27)’의 미국산 쇠고기 9톤을 검역·검사하는 과정에서 뼛조각이 검출되어 전량 반송·폐기처분을 내렸다. 또한 11월 23일 두 번째로 한국에 반입된 네브라스카 주에 위치한 프리미엄 프로테인 프로덕트(Premium Protein Products, LLC, 작업장 승인번호 24742)사의 냉장 쇠고기 3.2톤에서도 꽃등심살 2박스에서 뼛조각 3개가 발견돼 전량 폐기 또는 반송조치 됐다.
그러나 만일 한미FTA가 체결된 상황이라면 우리 정부의 이와 같은 조치는 투자자-국가 제소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마이크 조한스 미 농무부장관은 29일 워싱턴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조그만 연골 조각이 발견된 것은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데도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거부했다”며 불만을 터트렸다. 아울러 그는 “이런 상황에서는 한국과 교역을 할 수 없다” 며 한국의 쇠고기 통관 중단 조치를 강하게 비난했다. 아울러 미 농무장관은 “(한국 정부 당국자들이) 우리가 동의하지 않은 기준을 적용했다. 그건 그들이 일방적으로 고안해낸 것” 이라며 수입위생조건을 위반한 미국 기업이 아니라 수입금지물질을 찾아낸 한국 정부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한미FTA 협정이 체결된 이후라면, 미국 정부는 우선 한미FTA 협정에 따라 ‘사소한 뼛조각 발견’이 과학적으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위생검역(SPS) 위원회 또는 한미 동물검역전문가협의회에서 이 문제를 다루자고 요구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정부가 미국 정부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WTO에 제소를 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크릭스톤 팜스사나 프리미엄 프로테인 프러덕트사 같은 민간기업은 투자자-국가 소송제도에 따라 자신들의 투자 이익에 손실을 가져왔다며 국제 민간법정에 우리 정부를 제소할 것이다.
정부는 한미FTA 1차 협상에서 위생검역(SPS) 조치와 관련된 분쟁은 WTO상의 분쟁절차에 따르기로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위생검역조치가 과학적 근거와 조화 및 투명성을 확보했는가에 대한 분쟁으로 한정된 경우에만 사실이다. 만일 초국적 농식품 독점기업이 위생검역 조치로 인한 자신들의 투자에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고 판단하면 한국 정부를 국제 민간법정에 제소할 수 있음을 NAFTA의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한미FTA가 체결되면 우리 정부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취하는 위생검역조치마저도 투자자-국가 제소 대상이 되어 우리 국민의 생명과 건강, 그리고 식탁안전을 심각하게 해칠 우려가 있다. 이러한 상황은 명백하게 우리의 주권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국내의 식품안전 보호수준을 현격하게 저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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