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연구소 학술행사 2008-04-28   6864

[좌담] 18대 총선평가와 진보의 새길 찾기


참여사회연구소(소장 이병천)는 지난 14일 ’18대 총선평가와 진보의 새길 찾기’라는 주제로 좌담을 진행했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의 사회로 김민영 참여연대 사무처장,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 장석준 진보신당 정책팀장, 정상호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연구교수가 좌담자로 참석하였다.  

 
  구갑우 : 18대 총선은 여러 가지로 한국정치사에 기념비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일단 투표율에서 46%로 역대 최저투표율을 기록했습니다. 또 한나라당, 자유선진당, 친박연대, 거기다 친박 무소속연대까지 하면 사실상 보수정당이 약진한 선거로 기록될 것 같습니다. 따라서 대통령선거 이후에 이야기됐던 진보의 위기라는 것들이 오히려 이번 총선을 계기로 해서 대단히 폭발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18대 총선에 대한 간략한 평가 진행하면서 논점을 형성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정상호 선생님께서 먼저 말문을 열어주시죠.
 
  예견된 패배, 충격적 투표율, 수도권 정당지도의 변화
 
  정상호 : 이번 총선에 대해 많이 놀라워하시는 것 같은데, 대선 이후로 4개월 만의 총선인데 예상했던 것 아닌가요. 놀라움에는 과장이 섞여 있었던 것 같아요. 예견된 패배인데 왜 우리가 심각하게 느끼는가하면 저는 200 대 100이라는 수치보다 내용에 있어서 충격적인 것 같아요. 가장 충격적인 것은 투표율입니다. 제가 자료를 찾아보니까 미국에서도 46%라는 투표율은 굉장히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87년 민주화 이후 88년 4·26 총선 투표율이 80%였는데 불과 20년 만에 딱 반 토막이 될 정도로 하락하는 것은 아시아권에서도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일본정치를 연구하는 분들한테 여쭤봤더니 일본도 대개 55%~65% 정도까지는 계속 유지되고 있다고 합니다.
 
  구갑우 : 평가를 한다면 놀랍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정상호 : 아주 단기간 동안에 유권자들이 대규모로 기권, 혹은 부동층으로 돌아섰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이번 선거에 세 가지 특징이 있는 것 같습니다. 먼저 가장 큰 틀에서는 이번 총선이 정확하게 지난 대선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퇴임 이후에 자연인 노무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수용이 되고 용서가 되지만, 민주정부 10년 동안에 대해서는 업적을 중심으로 평가를 했다고 생각을 합니다.
 
  세부적으로는 세 가지 특성이 나타나는데요, 이념 수준에서는 일본에서 나타났던 패권적 보수와 같은 헤게모니 보수가 나타난 것입니다. 203석 대 96석이라는 결과처럼 보수정당이 민주당을 포함한 진보개혁세력을 7 대 3 정도로 압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정당사와 선거사를 보면, 대선에서 승리한 정당과 총선에서 승리한 정당이 엇갈리는 유권자들의 견제심리가 나타났었습니다. 압도적 여당을 견제해야 된다는 심리들이 선거사에서 나타났던 반복적 패턴이었는데 이 패턴이 이번 선거에서 처음으로 극명하게 깨졌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념적 수준에서 분열된 진보인데 2002년 대선결과를 보면 20·30대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회창 후보보다 2배 정도로 앞섰습니다. 하지만 이번 18대 총선에서는 유추하건대 20~30대가 대규모로 기권층으로 돌아서지 않았나 싶습니다. 적어도 20~30대에서 진보계층을 지지했었던 열망과 강력한 응집력들이 완전히 해체되는 민주화 이후 최초의 선거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수도권에서의 정당지도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서울·경기·인천이 합쳐서 111석입니다. 그런데 한나라당이 79석을 차지했습니다. 이것은 수도권 전체 의석의 71.2%를 차지한 것입니다. 이는 한나라당의 전체 의석수 중에서도 절반이 넘는 51.6%입니다. 지금까지 민주화 이후에 수도권은 어떻게 보면 호남과 더불어서 진보개혁진영의 정치적 기반이었었는데, 이것의 해체현상이 이번 18대 총선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이 결과에 대한 분석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민주개혁 진영들은 계급이나 계층적 접근을 정면으로 내세우지 못하고 오히려 지역연합이나 세대연합을 내세웠었죠. 즉 호남+수도권+@, 대표적인 것이 충청도나 386과 같은 특정 세대를 겨냥한 전략이었죠. 그런데 수도권이 깨지면서 더 이상 이러한 전략들이 유효할지에 대해서 근본적인 의문이 생기는 것입니다. 수도권에서의 야당적 성향들, 혹은 개혁적 성향들이 이번 선거에서 해체됐다는 것이고, 동시에 지역적 수준에서는 영남과 호남의 완고한 지역주의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조금 도발적인 문제제기일 수 있겠지만 인구학적으로나 제도학적으로 지금의 제도를 놓고서 앞으로도 이런 결과가 재현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낙관적인 기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말씀드리면 언론에서도 과장한 것들 중에 하나가 이번 선거에 이슈가 없었다, 혹은 정책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2004년 총선에서의 탄핵 이슈가 오히려 예외적인 것이지, 민주대 반민주 이런 거시적인 담론 외에 정책적 수준에서 우리가 이슈 투표를 한 적이 별로 없어요. 이번에 나왔던 것들이 견제론과 안정론, 경부대운하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한나라당의 뉴타운, 특목고, 수도권 규제완화와 같은 성장과 집중 논리들이 오히려 분배와 균형의 논리들을 압도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구갑우 : 직접 선거에서 뛰신 장석준 선생님이 말씀을 해 주시지요. 진보신당의 원내진출이 좌절된 선거인데 진보신당 내부의 평가도 좋고, 그 다음에 개인적으로 이번 총선을 보는 평가도 좋습니다. 말씀해 주시지요.
 
 

장석준 : 다들 같은 생각이시겠지만 저는 이번 총선만 떼어놓고 보면 안 된다고 봅니다. 아까도 대선의 연장선으로서의 총선이라는 지적도 나왔는데 좀 더 길게 보면 2006년 지방선거부터 시작된 대선, 총선 3박자로 찍고 들어간 일종에 작은 수동혁명과정이었다고 봅니다. 왜 ‘작은’이라는 수식어를 썼냐 하면 이것의 역사적 효과가 얼마나 클지는 아직 예상을 못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쨌든 수동혁명과정이었고, 이 과정에서 핵심은 개발 자본주의적 구조와 신자유주의 사이에 성공적인 접합이 이루어졌다는데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것의 핵심적인 상징이 뉴타운과 특목고라고 봅니다. 교육과 주거라는 것은 개발자본주의 시대부터도 한국의 자본주의에서 중산층이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거나 혹은 중산층으로 상승하기 위한 주요한 두 가지 경로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적인 경험과 신자유주의가 조장하는 투기경쟁 사이에 아주 성공적인 접합을, 이명박을 정점으로 한 새로운 보수주의 블록이 성공시켰다라고 판단합니다. 그런데 어디까지나 수동혁명인 것이 방금도 지적하셨지만 절반 이상의 유권자가 기권한 상황에서 달성된 헤게모니라는 것입니다. 아직까지는 극히 불안정하고 많은 균열을 갖고 있다는 두 가지 측면을 같이 봐야 될 것 같습니다.
 
  투표율 높았다면, 진보에 더 불리했을 것
 
  김민영 : 낮은 투표율은 민주주의와 대의정치의 위기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아요. 이것을 적극적인 의사표출로 봐야 되는 것인지 고민스러운데 이것을 역으로 뒤집으면 20~30% 정도의 아주 잘 결집된 정치세력들이 사회 전체를 주도해 나갈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진 것이고, 아마도 이런 체제가 고착화된다면 사회적 통합의 붕괴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조금 다른 차원에서 이번에 낮은 투표율 때문에 그나마 수도권의 민주당 후보들이 살아남은 것 아닌가 싶습니다. 20대의 19%가 투표를 했고 그 중에 절반이 한나라당을 지지했다는 것이지요. 그 20대들이 특별히 진보세력이나 개혁세력에 표를 던져야 할 이유가 없었고, 또한 소위 안정을 희구하는 중간층의 경우에도 투표장에 나왔다면 그 투표의 패턴대로 투표할 가능성이 높아서, 그나마 20여 석을 얻은 이 수도권에서 아예 다 망하는 상황도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안병진 : 김민영 처장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낮은 투표율이라는 것을 진보나 개혁진영들이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을 마치 자신들을 지지하는 진보적 자원이 투표장에 나오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굉장히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젊은이들의 투표율이 높아졌을 경우 진보에게 더 불리했을 것이라는 지적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구갑우 : 먼저 낮은 투표율에 대한 해석이 조금씩 다르네요. 한편으로 보면 진보가 유권자들을 불러낼 능력이 없는 거잖아요. 일단 능력이 없다는 측면이 있는데, 더 나아가 안병진 선생님과 김민영 처장님 이야기로는 그 사람들이 투표를 했으면 더 보수적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장석준 선생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장석준 : 반론이라기보다는 약간 강조점 차이인 것 같은데 제가 절반 이상의 기권을 이야기하면서 그게 이명박 정부가 중심이 된 수동혁명과정이 창출해낸 헤게모니가 불안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식으로 말씀드렸는데, 그게 이명박 정부의 헤게모니에 대항하는 저항 헤게모니의 존재를 뜻한다는 의미에서 지배 헤게모니의 균열을 의미한다기보다는 정치 엘리트 전반의 불신 속에서 이명박 정부가 구축한 헤게모니 역시도 불안정하다, 그런 의미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기권의 의미를 오히려 좀 더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단순히 진보의 위기나 민주주의의 위기, 대의민주주의 위기 차원을 떠나서 정치 자체의 위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치적 행위를 통해서 뭔가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에 대한 불신, 혹은 비관, 냉소가 특히 젊은 세대들을 중심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특정세력에 대한 불신과 불만표출 행위로서 기권하는 것보다 훨씬 더 미래가 비관적인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새로운 보수 헤게모니 역시 불안하다 것도 그러한 취지에서 말씀드렸습니다.
 
  김민영 : 정치와 선거를 통해 뭔가를 해결해 보자라고 하는 경험을 갖고 있지 않은 세대들이 출연한 것이지요. 그 이전 세대들은 적어도 선거라고 하는 것을 통해서 뭔가 바꿔 보고자 했던 실천들을 집합적으로 한 것이지요. 하지만 20대나 30대 초반까지 혹은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을 선택했던 사람들 중에서도 ‘투표를 해 보니 달라진 것이 없다’는 ‘오히려 더 나빠졌더라’라고 하는 이 경험들이 정치를 통해, 선거를 통해 뭔가 바꿔 보고자 하는 욕망이 안 생기게 만드는 것이겠지요. 46%의 투표율은 그렇게 이해하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낮은 투표율 외에 이번 총선에 대해 좀 더 말씀을 드리자면, 안정과 견제라는 구도는 언론과 정치권이 만들어 낸 표면적인 의제이긴 하나 국민들에게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핵심은 대선 때부터 이어져왔던 경제 살리기가 선거 전반의 핵심적인 의제였다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뒤집으면 경제를 망쳐 놓은 민주세력 혼내주기라고 하는 지난 대선의 구도가 이번 총선에서도 그대로 이어진 것 아니냐 생각하고, 미시적으로 역시 부동산, 교육이라고 하는 측면입니다. 뉴타운이니 특목고니 수도권 규제완화 심리니 이런 것들이 본격적으로 한나라당이 들고 나온 아젠다입니다. 그런데 민주당이 이것을 뒤쫓아 가는 것은 그다지 썩 도움 되지 않는 ‘아류 한나라당’으로 선거를 치르겠다는 참 바보스러운 선택이었겠지요. 이미 집권세력도 아니고 그것을 추진할 만한 힘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닌, 지자체의 다수를 한나라당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말입니다.
 
  대중적 보수주의 시대가 도래한 것인가?
 
안병진.bmp  안병진 : 정상호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보수의 헤게모니라는 측면이 전체의 성격으로 봤을 때 이번에 두드러지게 보여진 것 같습니다. 제가 작년 초에 창작과비평에 레짐체인지(regime change)가 온다, 커다란 체제변환이 온다는 이야기를 했었지요. 제가 이야기했던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성립되고 이번 총선을 통해서 체제전환이 거의 완벽하게 확인된 것이지요. 그리고 그 체제전환에는 아이러니한 측면이 있지요.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노무현 정부가 체제전환에 아주 중요한 디딤돌을 놓았다는 것입니다. 소위 말하는 신자유주의적인 기반들을 노무현 정부가 닦았고, 그 속에서 사회적 기반들이 무너지고 이에 따른 절망과 분노는 보수 포퓰리즘에 대한 열광적 지지로 나타났습니다. 제가 그 당시 “홍준표 의원에 주목하자” 이런 이야기할 때 사람들이 그게 얼마나 중요한 이야기인지를 이해들을 잘 못 하시더라고요. 이번에 여실히 확인됐듯이 한나라당을 찍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조금의 죄책감이나 칙칙함과 같은 것들을 잘 느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투표를 통해 자신이 어느 정도 변화를 추동한가고 생각하지요. 뭔가 일을 해 내고, 실행해내는 것에 대한 욕구, 그것은 어떻게 보면 진보적 욕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돈을 통해서 실현하고 싶은 것이 보수적 포퓰리즘의 현상인데, 그런 욕망이 이번에 정제되지 않은 상태로 여실히 나타난 것, 대중적 보수의 가능성 같은 것이 이번 총선에서 보여진 것 같습니다.
 
  대중적 보수가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대중적 보수주의가 최소한 작동하는 원리는 있는 것 같아요. 성장주의입니다. 그 성장주의에는 천민자본주의적 성격과 미국식 신자유주의가 잔혹하게 결합되어 있지 않습니까? 이런 성장주의에 대한 열광, 그 다음에 안정에 대한 희구, 불안을 회피하고 싶은 불안의 정치학이지요. 결론적으로 정리하면 좀 더 연구해 봐야겠지만 일단 대중적 보수주의 시대가 도래 했다는 생각이 들고, 그 지배의 작동 메커니즘을 규명해 내야합니다. 그리고 진보개혁세력은 그에 걸맞은 10년의 장기적 전략구도는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됩니다.
 
  김민영 : 저는 수도권의 선거결과를 단순히 서울지역주의, 수도권지역주의로 보는 것 말고 새로운 형태의 투표행태가 나타난 것으로 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즉 자기의 이해관계에 근거한 투표라고 하는 것이 지난 대선에 이어서 본격화되는 것 아닌가라는 그 측면을 봐야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지역에 특목고 들여와야 되고 뉴타운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 적극적으로 동의한 새로운 유형의 투표행위들이 만들어진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한 부분에 투표하는 것이지요. 이는 일종의 후견주의와 같은 것은 과거의 지역주의 투표와는 다른 것 같습니다.
 
  구갑우 : 정상호 선생님도 이견이 있을 것 같은데요
                                                                                                                              정상호.bmp 정상호 : 저희들이 ‘작은 수동혁명’,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 레짐 변동(shift) 같이 크고 중요한 개념들을 사용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고민해 봐야 될 것 같습니다. 정치학적으로 선거를 볼 때 자주 나오는 것이 이번 선거가 유권자ㆍ제도ㆍ이념 수준에 있어서 큰 폭의 근본적 변화가 발생한 중대 선거(critical election)였느냐 하는 점입니다. 우리가 이런 거시구조적 개념을 쓸 때는 이명박 정부의 등장이 신보수주의의 구조적 정착화를 가져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을 중심으로 보수정치세력이 갖고 있는 제도, 이념, 수단 이런 총체들이 한국사회에서 지금까지 지탱해 왔던 것들을 정말 물갈이 할 정도로의 큰 폭의 변화를 내재한 구조적 경향성이라는 확증이 있어야 되는데 이것들에 대해서 좀 더 근거가 분명해야 될 것 같습니다. 대처가 등장하고 레이건이 등장했던 것은 일차적으로 노동당이나 민주당의 무능에 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 보수 세력의 체계화된 이데올로기와 정책이념, 네트워크라는 물적 토대에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한국사회에서는 그러한 조건들에 대한 설명이 다소 빈약하거나 생략된 것 같습니다. 5년 뒤 정권이 바뀐다고 가정하면 이 수동혁명은 너무 지나치게 짧은 것이지요. 레짐 체인지라는 것을 우리가 지나치게 주목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는 것이지요.
 
  김민영 : 현상적인 판단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난번 대선에서 이명박을 선택한 유권자들의 심리는 뭐냐고 할 때 이것은 차악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이명박은 한나라당 후보가 아니라 무소속으로 나왔어도 당선되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거든요. 시대가 이명박을 요구했던 것이지요. 이렇게 보면 지난 10년간 민주화 세력에 국정운영을 맡겼더니 삶이 전혀 나아진 것이 없다는 판단과 하지만 이명박은 뭔가 실현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경제 살리기를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강력한 신뢰가 대중들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보수냐, 진보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경제 살리기를 실천해 내겠다는 이명박의 구호가 이 시대를 정확하게 관통하는 슬로건이었다는 것이고, 이를 대체할 만한 다른 세력이 우리 사회에 있느냐 하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정상호 : 김 처장님 말씀에 동의하는데 그것이 단기적 국면의 현상이 아닌지 판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마치 2002년 노무현이 시대정신으로 보였던 것처럼 지금 이명박 현상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현상으로 독해하는 것이 정확한 것이냐는 것들이지요. 왜냐하면 그러기 위해서는 이명박 정부가 갖고 있는 능력, 이들이 적어도 10년 동안 단임제 대통령제 아래서 이명박 없는 한나라당 정권 10~15년을 이어갈 정도의 정식화된 이데올로기들이 집합적으로 존재하느냐는 것입니다.
 
  양극화 시대, 대중은 왜 계급배반 투표를 하는가?
 
  구갑우 : 일단 정 선생님 말씀하신 것은 일리가 있는데 현재 이명박 정부가 보여 주는 것은 대단히 준비 안 된 여러 가지 정책들이지요. 따라서 보수 헤게모니의 상당 기간 지속을 판단하기에 이르다는 정상호 선생님 반론은 일단 이해가 됩니다.
 
  좀 더 본질적으로 흔히 한국사회에서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표현들을 그동안 진보진영은 계속 써 왔습니다. 그런데 그 속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냐 하면 대중들은 계급투표를 할 것이다, 양극화를 정말로 해결하려는 의지와 정책을 가진 집단에게 투표를 할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가설에 입각해서 그런 이야기들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 대중들은 계급투표를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의 계급적 지위에 반하는 일종의 계급배반 투표를 했습니다. 그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단순히 경제 살리기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들이 자신들의 계급적 정체성보다는 다른 정체성을 찾아나간 이유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이 이야기를 해야 나중에 진보정당 이야기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장석준 : 양극화 담론이 알게 모르게 과거 고전 맑스주의에서 나타났던 경제주의적 담론 비슷한 착오를 빚어내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양극화라는 현실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이면에는 굉장히 복잡하고 모순적인 운동들이 진행되고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양극화의 한쪽 극으로 분류되는 집단 내에서도 상당히 다른 전략을 사용하는 계층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선거과정에서는 분명하게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가령 뉴타운과 같은 것을 통해서 중산층의 지위를 유지하려고 하는 계층이 분명히 있는 것이고, 또 한 측면에서는 그런 상황 속에서 전혀 자신들의 집단적인 이해를 전략적으로 만들지 못하는 계층도 분명히 존재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들에 대한 분석이나 섬세한 접근이 이른바 진보세력에게 가장 부족했습니다. 또 한 측면에서 보자면 현재 성장담론에는 굉장히 모순적인 합의가 있다고 봅니다. 가령 정규직은 자신의 정규직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비정규직은 이명박이 됐을 때 자신에게 정규직 일자리를 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인해서 20 비정규직과 40대 정규직이 의도하지 않은 이명박 합의에 도달하는 그런 측면이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개별적인 의도와 드러나고 있는 결과, 그리고 그 의도 내에서도 여러 가지 개별적인 집단들 사이의 다양성과 서로 간에 빚는 모순, 이런 부분들을 같이 봐야 양극화 담론이 조장하는 기계적인 우리의 정치적인 상상력을 이완시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안병진 : 갑자기 설명하려니까 막연한데 이런 것 아닌가요. 강준만 교수님이 ‘사적 열정과 공적 냉소’라고 아주 흥미롭게 잘 표현하셨던데 아직 공적인 메커니즘이 아직 구축되지 않는 한국에서는 국가로부터 서민들이 보호받으면서 연대의식을 가져온 정치적 경험이 많지 않잖아요. 다 사적으로 해결을 해 나가는, 그러면서 나도 이명박이 될 수 있다는 사고가 지배적으로 작용하는 것 아닙니까? 제가 오늘날 시대를 대중적 보수주의 시대라고 조금 위험하게 주장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설문조사 등에서는 원론적으로 성장과 분배의 균형적 발전을 이야기하지만 자신의 무의식이 드러나는 투표행위, 자신의 본심이 드러나는 징후들 속에서는 굉장히 거친 성장주의를 선택하거든요. 노회찬 후보와 홍정욱 후보, 누가 당선이 되어야 될 것인가에 있어서 많은 시민들이 선택하는 기준 중에 하나는 자신이 쪽팔리지 않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이런 것이지요. 흔히 사람들의 관계를 경제적인 이해관계로만 사람들이 파악하기 쉬운데 ‘심리적 임금’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홍정욱 후보가 내 지역에 국회의원이 되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돈 50만원 더 버는 듯한 심리적 효과가 있거든요. 스스로 쿨해지는 거예요. 우리 지역이 쿨해지는 것이지요. 그런 것들이 현재로서는 조금 더 지배적인 상황이고, 반면에 그 담론을 극복하려면 진보신당이든 민주당의 후보가 실제적 정치적 경험을 통해서 뭔가 성과를 이룬 것들이 있어야 되거든요. 제가 자꾸 홍준표 의원을 이야기하면서 민주노동당 사람들에게 곤혹스럽게 질문을 했던 이유가 홍준표 하면 반값 아파트, 병역회피를 위한 이중국적 문제 해결, 뭐 이런 것들이 있지만 진보정당의 의원들은 뭐가 있었는데요. 물론 우리들은 알지요. 하지만 보통 시민들의 차원에서는 ‘자기들이 뭐 했는데…’ 이런 것이 있는 것이지요. 미국의 예를 들면, 보수로부터도 존경받았던 폴 웰스턴이라는 진보적 상원의원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퇴역군인들을 위해서 연금을 마련해 주려고 치열하게 투쟁합니다. 퇴역군인들이 처음에는 ‘저 똘아이 좌파’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웰스턴을 보고 ‘저 사람은 우리의 퇴역군인의 대변자’라고 생각을 하지요. 그런 성과 없이 나를 지지해 달라, 그것은 굉장히 귀족적인 태도지요.
 
  보수의 욕망의 정치와 진보의 계몽의 정치
                                                                                                                           구갑우.bmp
  구갑우 : 방금 이 문제는 상당히 중요한데 양극화에 대한 섬세한 정치학적 분석도 없었다는 것을 넘어서서 최근에 인문학자들의 지적이기도 하고 안병진 선생님도 지적하셨는데, 대중의 무의식적 욕망이 보수를 찍게 만들고 있다, 오히려 계급투표를 하게 되면 스스로 쪽팔려진다, 나는 계급 상승을 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데 계급투표는 내 스스로의 계급적 처지를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투표 안 하겠다는 식의 분석들을 많이 하지요. 사실상 진보정당을 누가 지지하는가도 분석해봐야 되겠습니다마는 중산층, 지식인들이 진보정당을 지지하고, 그렇지 않은 양극화의 극단에 있는 세력들이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이런 현상에 대해서 어떻게 다시 설명할 수 있을지, 단순히 욕망이라는 문제로 하면 끝나는 것인지 고민입니다.
 
  김민영 : 그 부분도 좀 더 고민해 봐야 되겠는데 이번 대선부터 쭉 이어지는 선거의 기본적인 프레임은 우리 경제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 유형으로 자기 삶에 연관지어 생각해 보면 집 가진 사람은 세금을 너무 많이 때려서 어렵고, 집 없는 사람은 집 값 너무 올라서 어려운 것이고, 공교육이 부실해서 어렵다, 사교육비 폭등하니까 어렵다, 청년들은 취업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제 지난 대선부터 총선까지 이어진 기본적인 얼개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이명박은 내가 집권하면 경제를 살리겠다, 어떻게 살리는지 모르겠지만 뭘 하든 간에 하겠다는 강력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데, 반대편은 어떻게 하겠다는 이야기가 없었어요. 진보세력이든 개혁세력이든 경제가 어렵다는 국민들에게 왜 자기들을 찍어야 하는지에 대한 마땅한 이야기가 없는 것이지요. 싸움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나마 노회찬, 심상정, 권영길, 강기갑 의원이 굉장히 선전한 것이지요. 이것을 계급투표나 진보정치 성과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지요.
 
  구갑우 : 그것은 역시 인물론으로 봐야겠지요.
 
  장석준 : 그 부분에서 저도 안병진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에 적극적으로 동의합니다. 진보세력에게 굉장히 익숙한 두 가지에 정치 행태가 있는데 하나는 계몽의 정치이고, 하나는 선전선동의 정치라고 생각합니다. 사민주의적인 입장을 따르는 분들은 복지국가가 더 바람직하고 좋은 삶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계몽하려고 했었고, 그리고 보다 좌파적인 입장에 있는 분들은 80년대부터 익숙한 선전선동의 정치였고, 둘 다 결국은 대중을 대상화 한 정치였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안 선생님 말씀하신 것처럼 이명박, 홍준표 이런 사람들이 뭔가 실적을 만들고 그 실적을 통해서 대중들을 설득하려고 하는 모습이 대중들한테 먹히는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이게 우려스러운 이유는 계속해서 실적을 낼 수 있는 사람은 계속 가진 자들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정몽준 당선자 같은 경우는 당선되자마자 수천억 기부해서 장학재단 만든다고 했는데 사실 이 장학재단이 실제 작동되는 순간 대학등록금에 대한 진보세력의 모든 담론은 무력화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이런 부분이 제가 말씀드렸던 진보개혁세력이 이번 총선결과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정치의 새로운 형식 내지는 정치 문화의 복원과 같은 부분들을 가장 핵심적으로 고민해야 되는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구갑우 : 그래도 장석준 선생님은 대중비판으로까지는 안 나가시네요 사실은 대중비판을 해야된다는 목소리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고, 대중의 욕망이라고 해서 그것들이 항상 정당하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다시금 어떻게 보면 인문학적 계몽의 정치 같은 것들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대중이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면 대중을 비판해야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그런데 거기까지는 안 가시네요.
 
  진보정치, 대중의 욕망을 진보적으로 발전시켜야
                                                                                                                               장석준.bmp  장석준 : 제가 너무 말을 많이 드린 것 같긴 한데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면 이번 선거에서 제가 생각하기에 진보신당이 거둔 몇 안 되는 성과 중에 하나는 덕양갑 선거에서 심상정 후보가 내걸었던 ‘자율형 공립학교 공약’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분명히 학부모들의 욕망에 접합하려고 했던 공약입니다. 자율성이라는 학부모들의 욕망을 계몽적으로 비하하거나 잘못되었다 가르치려고 하기보다는 그것은 그것대로 인정하면서도 공립학교라는 제도와 접합을 시키고 다른 배출구를 만들려고 했던 이러한 사례는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왜 그 전에는 그렇게 못 했냐? 사실 자율형 공립학교만 하더라도 이게 우리나라 교육운동에서 쌓인 여러 가지 원칙들에 위배되는 성격이 상당히 있거든요. 오히려 우리 내부의 틀에 갇혀서 이제까지는 대중의 욕망과 접합하고 대화하려는 노력을 우리 스스로 오히려 못 했던 것이 더 크지 않느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안병진 : 이번 선거 때 저는 두 가지가 참 기분 좋더라고요. 하나가 심상정 의원의 공약을 보면서 내부적으로 비판을 받았을지 모르겠는데 저는 참 놀랬어요.
 
  저는 한국에서 진보는 보수의 것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보수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 속에 담겨져 있는 시민들의 욕망이라는 것을 잘 이해하고 그것을 우리 것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항상 이야기하거든요. 미국에서 클린턴 정부시절 노동부장관이었던 로버트 라이시 같은 사람들은 이것을 정말 잘 합니다. 예를 들어서 “세금 깎아주자” 보수들이 이야기하면 진보에서는 “아니요. 세금 증가시켜야 되는데요” 합니다. 하지만 라이시 전 장관은 “저기요. 깎아줍시다” 누구를 위해서, “중산층에게 깎아줍시다” 이런 식으로 보수 담론을 정면 돌파합니다. 그 측면에서 이번 선거기간에 심상정 의원이 보여줬던 모습은, 그것은 제가 너무 편견을 가졌는지 모르겠지만 이전에 봤던 진보의 칙칙함, 근본주의와 다른 발전된 모습이여서 정말 보기 좋았습니다. 이것을 집중적으로 발전시켜야 됩니다.
 
  또 하나 제가 언론 기획보도 관계로 노회찬 의원 인터뷰하러 갔을 때 일부러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진보적 영화인들은 대중이 원하는 감동적이고 재미있는 영화를 만드는데 그런데 왜 우리 진보 정치운동은 늘 칙칙한 것밖에 못 하느냐, 그 차이는 어디에 있느냐?” 그랬더니 노 의원이 웃으시면서 “안 그래도 박중훈 씨가 잠시 선거캠프에 들렀는데 진보신당 당원들이 깜짝 놀라더라. 그 잠깐의 과정이었지만 박중훈 씨가 시민들을 대하는 과정이 굉장히 프로페셔널하다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많이 배우더라” 라고 답하시더라구요. 박중훈 씨가 영화하듯이 봉준호 감독이 영화 만들듯이 우리도 정책 만들고 진보정치 할 수 있거든요. 그것과 지금까지 진부했던 활동방식은 엄청나게 다릅니다. 그것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개발하셔야 됩니다.
 
  정상호 : 대중의 욕망을 질타할 것이냐, 부응하는 정치를 할 것이냐 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농부가 밭을 탓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성장을 통한 분배모형이라는 박정희 모델은 어쨌든 대중들이 체감하였던 역사적 경험이었습니다. 그런데 분배를 통한 성장의 모형, 혹은 분배와 성장의 선순환 모형들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시적인 역사적 경험과 실체가 없는 것들이지요. 그런 것을 볼 때 노무현·김대중 정부 10년은 굉장히 질타 받아도 마땅하지요. 일반민주주의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조합을 통해서 친분배연합, 친복지연합을 만들어 줬어야 하는데 그것을 못 한 결과가 지금 이런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문국현 후보의 당선과 자율형 공립학교가 지역유권자들한테 얼마나 설득력 있게 다가갔는지 몰라도 저는 그런 노력들이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그것이 대중정치의 기본이라고 봅니다. 어차피 대중의 욕망들은 거세할 수 없어요. 결국 조정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대중의 욕망이 공익이라는 공공성 속에서 조화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치의 영역입니다. 그런데 자율형 공립학교 같은 정책이 진보신당의 교육 분야의 대표 공약이 아니라 개별 의원의 지역 선거 공약으로 나온 것은 분명히 진보신당에 있어 문제지요. 그 다음에 사람중심 진짜경제를 내세운 문국현이 당선 될 수 있었던 것은 10년 동안 사회경제 아젠다가 부족한 진보진영한테 이런 새로운 길이 있다는 것들에 대해서 질타하는 것 아니에요? 이런 성공적 사례는 대중들의 욕망을 이기적이라고 질타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민주화 20년, 진보는 왜 위기에 빠졌는가?
 
  구갑우 : 관련해서 질문을 던지면 도대체 진보위기의 실체가 무엇일까, 진보는 무엇을 잘못했기 때문에 위기에 빠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진단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정상호 선생님부터 말씀해 주시지요.
 
  정상호 : 저는 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진보위기의 실체적 내용은 대중들의 가계부 구성을 보면 보일 것 같아요. 대중들이 제일 힘들어하는 문제에 대해서 대안을 제공해 주고 그것을 정식화하지 못함으로써 다 무임 승차자(free rider)로 만들게 된 것이지요. 욕망이라는 것들을 자꾸 손가락질하면 안 되는 이유가 뭐냐 하면, 아까 자율형 공립학교 이야기가 나왔지만 교육문제가 이렇게 심각해질 때까지 답을 얻는 과정의 시간차가 얼마나 큽니까? 그 다음에 견제론 이상을 뛰어넘는 사회경제적 담론들, 특히 좋은 성장이 가능하다는 사람중심 진짜경제와 같은 이런 제품들이 이제야 나온단 말이지요. 저는 대중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고양시킬 수 있는 사회경제정책의 내용들, 그것도 한국사회에서 실용가능한, 적용가능한 종합적 정책패키지들이 아직 부재하다는 것이 위기의 본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구갑우 : 저는 두 가지에 주목을 하고 싶은데 하나는 방금 이야기한 대안들이 민주화 초기에 왜 못 나왔을까요? 민주화 초기에 왜 진보진영의 정책대안이 만들어지지 못했는가라는 문제가 하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말로 지금부터 노력하면 현재 보수에서 제시하고 있는 정책대안과 구별 정립될 수 있는 정책대안을 진보진영은 마련할 수 있을까, 어떻게 보면 대단히 근본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하는데 거기에 대한 의견은 어떠신지 듣고 싶습니다.
                                                                                                                             김민영.bmp
  김민영 : 제가 고백을 하면 저는 9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민주정부가 들어서고 그에 따른 과거의 부정적 요소들을 지워나가는 것이 우리 사회변화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기본적으로 소위 민주화 세력 전반이 갖고 있었던 사회변화에 대한 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반부패운동을 했던 것이고, 인권의 문제나 노동권익의 문제를 이야기했지 사회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는 절박함은 느끼지 못 했던 것 같습니다. IMF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IMF 이후에도 그런 논의가 본격적으로 전개되지 못한 것이 있지요. 시차가 굉장히 크지요. 그런데 이것은 누구의 책임이라고 하기에는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당시 민주화에 따른 구시대적 잔재 요소들을 청산해 나가는데 모든 열정을 쏟은 것이지요. 이게 잘 되면 자연스럽게 세상이 변하는 것이라는 생각들, 이게 20년이 흐르는 과정들을 관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구갑우 : 참여연대 운동에 대한 평가도 향후 우리가 새로운 진보를 재구성하는데 있어서 상당히 유의미한 작업이 되어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사실 90년대 한국 사회운동은 참여연대운동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까요.
 
  김민영 : 과도한 평가이신 것 같습니다. 그저 일각을 담당했다고 봐야 되겠지요. 그런데 태생 자체가 예컨대 특권 해체라든지 권력 부패에 대한 문제제기, 이런 것들을 주된 문제의식으로 갖고 있었기 때문에, 시대가 요구한 그런 역할에 충실했던 것이 참여연대 운동의 10년이었지요. 그 이후 4~5년의 과정들은 상황의 변화에 대한 착목과 우리 스스로 변화해야 한다는 자기 혁신의 과정들을 밟기를 위해 무던히 노력한 시간이라고 봐야 되겠지요.
 
  구갑우 : 다른 분들 평가는 어떻습니까? 90년대 진보정치나 진보운동에 대한 평가도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한데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무능한 것 아니었나요? 어떻게 보면 정말로 진보적인 정책대안을 내걸고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선거에서의 참패 같은 현상들은 안 나타났을 것인데 왜 진보적 사회세력과 정치세력들은 그렇지 못했을까요? 현장에 계셨던 장석준 선생님 어떠신지…
 
  장석준 : 가장 근본적인 차원에서는 토착화에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토착화에 실패했다는 이야기는 아직까지도 진보는 결국 한국사회에서 외래적인 것이라는 것이 냉정한 판단인 것 같습니다. 진보가 어떻게 생활인들의 자기 규제적인 이념으로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겠는데 90년대 진보세력은 이것을 못 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외국의 경우 한 세기에 거쳐서 이루어지는 과정을 한국사회가 10년 정도에 걸쳐 압축적으로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외국에서 도입한 어떠한 이론도 작동하기 힘든, 그러한 사회 조건 자체의 어려움이 한편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생활인에게 접근하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가 필요했는데, 진보는 계속해서 한국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실제 주체를 교과서에 나오는 사람으로 접근하는 오류를 범했던 것 같습니다. 이는 마치 스웨덴 사람 혹은 한 세기 전의 러시아 사람이 접근한 교리 내지는 공식을 갖고서 계속 접근을 했던 것과 같은 것이지요. 그 과정에서 상당한 오인들도 생겼는데, 대표적인 오인이 가령 전투적인 기업별 노동조합의 운동을 무슨 혁명적인 투쟁으로 스스로 착각한다거나 이러한 과정들이 계속해서 누적되면서 지금의 상황에 도달한 것이 아닌가, 제 나름대로는 근본적인 반성을 해 봅니다.
 
  안병진 : 제 이야기가 상투적인지 모르겠는데 비슷한 생각입니다.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소위 개혁세력들 같은 경우나 혹은 좀 더 진보적인 진영 모두 기본적으로 계몽주의적 생각이 굉장히 강합니다. 민심을 치열하게 확인하는데 대한 일차적인 노력이 거의 전무합니다. 예를 들어서 이런 것이지요. 탄핵 정국이 끝나고 나서 탄핵 정국에서 민심이 무엇을 말했는가에 대해서 열린우리당의 그 누구도 고민하는 사람들이 없더라고요. 단지 결론은 이런 식이었습니다. ‘탄핵에서 우리가 승리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4대 개혁 아젠다를 관철시킨다’ 여기에는 엄청난 논리적 비약이 있습니다. 탄핵국면에서 던져졌던 민의가 무엇인가에 대한 해석은 굉장히 많은 논의가 필요한 것인데 그것을 해석할 생각이 없어요.
 
  장석준 : 선생님한테는 죄송한 이야기지만 자유주의 개혁세력은 그래도 돈이 좀 있고 좀 더 현실정치에 밀접한 사람들이니까 이 문제가 덜 심각하게 나타날지 모르겠는데 어쩌면 지금 진보진영 같은 경우는 메인스트림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잘 안 나타나는 문제가 있습니다. 메인스트림 진영이 되면 극악할 정도로 나타날 거예요. 어쩌면 지금은 코리아연방제 같은 문제 때문에 진보진영의 진짜 문제가 드러나려면 아직 멀었다고 봅니다. 그런 측면들을 도대체 어떻게 극복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반면에 예를 들어서 제가 좋아하는 모 시민단체가 있습니다. 제가 어떤 도움을 드렸기 때문에 오늘 저한테 작은 선물을 했더라고요. 작은 선물을 했는데 작은 선물하는 것부터가 달라요. 제가 평소에 딸과의 관계를 굉장히 중시하는데, 딸한테 좋은 책을 선물하더라고요. 그리고 비타민C. 그 단체는 사소한 선물을 하나 하더라도 상대의 마음 속 깊숙이 치열하게 프로페셔널하게 파악하고 그 사람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려고 합니다. 그래서 항상 그 단체를 방문하면 기분이 좋아요. 저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뭔가 자기가 존중받는 것을 원합니다. 그것은 21세기의 기본이고, 많은 기업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데 왜 통합민주당이나 진보정당은 왜 그것을 못 할까, 그것을 못 하는 것에는 기본적으로 항상 자기 머릿속에 있는 아젠다와 안테나가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김민영 : 다른 차원으로 시민운동도 90년대 이후 대중의 생활조건들이 급속하게 변했다라고 하는데 착목하지 못했습니다. ‘뭐가 어떻게 변했는데’라고 하는 부분들은 사장된 채 개혁을 지지하는 시민들, 그리고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시민들과 호흡하는 정도로 한 것입니다. 그것은 대중의 생활에서는 아주 극히 일부분이지요. 보통사람들이 갖고 있는 주거, 교육, 의료의 질을 더 좋게 하려고 하는 욕망들은 어떻게 변이되고 있는가에 대해서 제대로 보지 못하고 운동한다는 것은 과거 우리 운동을 돌아보면 운동의 A, B, C 기본을 빠뜨려 놓고 지난 10년간 참 열심히도 운동을 했구나 이런 생각들을 안 할 수가 없어요.
 
  진보 재구성의 길, 구체적 정책생산인가 진보 뿌리의 새로운 구축인가
 
  구갑우 : 본격적으로 진보를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도식적으로 이야기하면 두 가지가 있을 것 같아요. 하나는 이념과 정책대안의 문제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개방과 성장 같이 보수가 점유하고 있는 담론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가 있는 것 같고, 또 하나 문제는 주체의 (재)구성과 주체 구성의 형태는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이념과 정책대안부터 이야기 해 보도록 하지요.
 
  정상호 : 왜 우리는 늦었을까, 왜 우리는 못 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자신 없고,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아직 가능성과 잠재력은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민주주의 일반이 굉장히 원만하게 이행됐기 때문에 사회경제적 문제로 이제 온 것 같아요. 양극화라는 사회적 과제가 최우선 의제로 올라선 것이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제일 빠르고, 대중들도 이 문제를 폭넓게 인지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다시 말해 양극화 담론, 신자유주의와 같은 사회적 담론들이 민주주의만큼이나 많이 일반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긴 호흡을 가지고 보면, 이런 문제들이 현실에서 문제가 되기 때문에 그만큼 의제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커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런 부분들에 대한 전망은 긍정적으로 갖자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 다음으로 이념과 정책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저는 아주 정교하게 잘 구성된 이념부터 만드는 방식이 아니라 ‘정책이 정치를 규정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거대담론과 이념의 체계를 완성시키는 과거와 같은 방식이 아니라 한국적 맥락에서 핵심적인 민생영역들에 대해서 아주 실현 가능한, 진보적 방향으로 설계를 새로 하자는 것입니다. 그 핵심은 진보개혁이든 민주개혁이든 정책구성을 놓고 선의의 경쟁을 하더라도 사회협약방식을 통해 대안의 조직화를 공동의 방식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합의할 수 있는 수준에서 사회경제 영역별 진보의 단일 패키지 정책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을 둘러싼 선의의 경쟁은 정당 차원에서는 분리되어도 좋다, 그러나 정책 수준에서는 연대와 연합의 방식을 통해서 해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구갑우 : 장석준 선생님 한마디 하시지요.
 
  장석준 : 저는 정책과 관련된 노력을 하지 말아야 된다거나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닌데, 특정한 정책융합 이런 것에서 대안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한계가 있지 않겠느냐, 이런저런 정치 구성요소들을 조합해서 대안을 제출하면 사람들이 들을 것이냐는 것입니다. 지금 문제는 사람들이 들을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어떤 싱크탱크에서 기발한 정책 아이디어를 내도 사람들이 들으려고 하지 않는 상황이 오히려 지금 상황의 본질인 것 같습니다.
 
  저는 그것보다는 강조점을 두어야 될 것이 일종의 화두타파방식으로 가야 된다, 우리 측에서 가장 안 풀리는 문제, 우리의 가장 약점이 되는 부분들을 타파하고 가는 것이 진보 재구성의 가장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만들려고 하는 세상, 우리가 바람직하다고 이야기하는 삶의 세포를 우리가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약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존재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세포는 엄연히 존재하거든요. 결국 기업이 그 세포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진보세력은 전혀 그런 것이 없습니다. 보편적인 기준을 따른다면 노동조합 같은 것이 그러한 세포가 되어야 할 텐데 한국의 기업별 노동조합은 그런 역할을 전혀 못 한다, 오히려 반대의 바람직하지 못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비판까지 받고 있습니다. 그나마 중앙 상층 단위에서는 90년대 성장한 시민사회운동단체가 존재하지만 지역에 내려가면 전혀 그러한 뿌리가 부재한 상황, 바로 이게 우리의 가장 약한 지점이고 우리의 화두고 여기를 타파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되지 않나, 오히려 커다란 거대담론이나 대안들은 그 과정에서 분명해지지 않겠느냐 그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보신당 내부에서 항상 강조하는 것이 물론 창당한지 얼마 안됐지만 그동안 국회 진출의 수단으로만 이야기했던 진보적 지역정치의 문제, 주민들을 직접 만나서 서로 말이 통하는 언어를 만들고 대화하고, 조직하는 세포 같은 것들을 만들어 나가는 노력이 당분간은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합니다.
 
  정상호 : 그런 점에서 저와 부딪히는데 그게 분리된 작업이 아닙니다. 노조와 지역사회를 꾸리고 거기에서 토대를 박고 정착하기 위해서도 정책대안의 조직화는 필수적 요소입니다. 사람들은 그냥 모이지 않습니다. 당신들이 건설하려는 나눔의 세상, 공동체 다 좋고 그림이 그려지는데 그것이 어떻게 실현될 것이냐에 대해서 대중들은 확신하지 못하는 것들이지요. 우리가 굉장히 오랫동안 갖고 있었던 반성장, 반개방, 반생산력주의 같은 담론들, 이러한 담론들을 우리 것의 좋은 것으로 구성해야지요. 현실을 보면, 중요한 민생영역에 대한 전문가들 별로 없어요. 또 이런 각론으로 들어가면 우리들의 담론은 굉장히 분산되어 있어요. 진보의 대표담론이라고 하는 것들을 찾아내기 위해서 우리들끼리 먼저 싸우고 합의하지 않으면 보수의 담론에 맞서 대중을 설득할 수가 없어요.
 
  구갑우 : 보수의 담론들이 잘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만, 대신에 대단히 심플하지요.
 
  정상호 : 저는 장 선생님 말씀하시는 것과 제가 이야기하는 것이 분리된 두 개의 작업이 아닌 것 같아요. 일상적으로 만나는 민원창구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노조를 만나고, 지역에 들어가서 우리의 담론과 정책을 놓고서 설득하려면 자기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것들을 갖추어야 된다, 그것이 없으면 특히 제도 정치판의 정당 수준에서는 대안없는 반대나 견제론을 넘어서기 어려운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안병진 : 저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정치라는 것을 자꾸 이상한데서 찾으려고 하는데 정치라는 것이 그렇게 별다른 것이 아닙니다. 80년대 진보운동이 했던 방식들을 생각해 보면 구체적 실천 속에서 이론은 벼려내는 거거든요. 예를 들어 태안이라는 공간과 사건 속에 모든 것이 다 담겨져 있는 것이지요. 실제 지역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도움을 주고 그 속에서 형성된 연대감으로 풀뿌리 지역조직을 만들어나가는 이런 종합적 예술의 과정인데 이 종합적 예술의 과정에 정치세력들이 치열하게 착목을 안 하더라고요. 칼 맑스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선거라는 것은 정치세력의 힘의 관계를 확인하는 겁니다. 태안문제에 집중하다가 우연히 나중에 선거기간이 왔단 말이에요. 그러면 연대감이 형성됐던 사람들이 전화 안 해도 구름같이 모여들어서 선거운동을 해서 당선되는 것이 진보운동의 활동방식인데, 지금 태안에 대해서 제가 과문한지 모르겠는데 각각의 정치세력들이나 NGO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연구해서 이것을 모범사례로 만들어내려고 노력했는지 궁금합니다. 그런 면에서 강기갑 의원이 이번에 존경스러운 것 중에 하나가 철저한 실천의 과정을 보고서 태안 주민들이 감동해서 도와주러 지역에 오고 그랬다면서요. 그것이 진보정치거든요.
 
  진보정당의 분화, 어떻게 보아야하나
 
  구갑우 : 시간관계로 주체 구성의 문제를 논의하는 단계로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선거를 통해서 어쨌든 주체의 분화, 분열현상이 나타났지요. 종북주의 논쟁도 있었구요. 진보의 분화 문제와 진보의 주체 구성의 문제에 대해서 말씀들 해 주시지요. 진보신당이 가고자 하는 길 그리고 민주노동당에 대한 평가와 전망까지 함께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안병진 : 물론 타이밍은 문제가 되겠지만 결국 분화되어야지요. 다른 측면에서 이야기하면 지금 진보신당이 이렇게 유리한 상황이 있을까 그런 생각도 해 봐요. 노회찬 후보와 심상정 후보가 그렇게 한나라당과 서울에서 경합을 벌일 수 있는 이런 상황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그것은 어떻게 이야기하면 그만큼 현재 중도적 자유주의진영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여실히 드러내 주는 것이지요. 또한 그 속에서 엄청난 공간이 생긴 것이죠. 관건은 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당장 의원 하나 없지만 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노원에서 사람들이 노회찬 후보를 주목한 것은 진보신당으로서 노회찬을 본 것이 아니거든요. 야권세력, 개혁파의 대표자로서 노회찬을 본 것이지요. 국민후보로서 노회찬을 본 것이지 노동후보가 아니었거든요. 이 엄청난 열린공간을 활용해야 됩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진보신당은 특권 계급과 대항하는 국민의 대표주자로서 모든 정치활동을 맞춰야 됩니다. 소수 진보정당의 활동이 아니라 말이죠. 그런 활동으로 노원에서, 덕양에서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내야합니다.
 
  김민영 : 저는 대선 이후에 진보정당의 분화라고 하는 것이 가장 뼈아픈 이유는 이전 4년 동안에 민주노동당의 정치활동에 대해서 제대로 평가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가장 큰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부분에 대한 평가를 해야 하는 시점에 왜 난데없는 종북주의 논쟁을 하냐는 것이지요. 왜 10석이나 되는 의석과 한때 20%까지 올라간 지지율이 왜 반의 반 토막이 되었는지, 이 과정들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냉정하고 아주 엄밀하게 했어야 하는데 이 과정 없이 또 청산해 버린 거거든요.
 
  그리고 분화의 과정도 이게 국민을 향한 정치가 아니라, 내부정치를 한 거잖아요. 예를 들면 이명박과 박근혜가 싸우면 이것은 국민적 관심사입니다. 쟤들이 쪼개질까, 다시 붙을까라고 하는 것에 온 국민이 관심 있게 봅니다. 그런 것처럼 민주노동당 내부에 두개의 강력한 정파들이 있으면 이들 간의 싸움이라고 하는 것이 국민적 정치가 되어야지요. 하지만 이들이 왜 싸우는데, 무슨 명분이지, 어떻게 된 거야라고 하는 스토리가 없는 것입니다. 국민들이 관심이 없지요. 관심 없는 분화라고 하는 것은 이미 정치적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하나 있고, 그 이후에 진보신당이나 민주노동당이 보여 준 태도 역시 마찬가지겠지요. 상호간에 싸움하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민을 향한 정치를 양쪽 다 본격화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현실에서 뭔가 변화를 발생시킬 에너지가 중소기업에 있고, 영세 상인에 있고, 비정규직에 있고, 청년들한테 있다면 이들과의 끊임없는 호흡을 통해서 정치활동을 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저는 이왕 경쟁을 할 것이면 서로 신경 쓰지 말고 각자 국민적 정치로 승부를 보는 것이 맞겠다, 이 이야기는 꼭 하고 싶습니다.
 
  정상호 : 진보신당 관련되어서는 그런 생각이 있어요. 지난 4년간 심상정, 노회찬 의원이 대중 정치인으로 성공한 요인 중에 하나는 민주노동당 내에서의 대중정치를 구사할 수 있는 그런 콘텐츠를 갖고 있는 정치인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반 토론회뿐만 아니라 의원입법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통해서 지식인들뿐만 아니라 무관심한 것 같지만 대중들도 눈 여겨 본 거예요. 하지만 첫 번째는 의회라는 그 좋은 공간을 장기간 활용하지 못하면서 장외의 원외정당만으로 버텨 낼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저는 궁극적으로는 선의의 경쟁을 거쳐 다시 합쳐야 된다고 봅니다. 두 번째는 앞에 장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조직의 취약성 문제입니다. 조직적 지지기반이 없는 진보적 대중정당의 역사적 선례들이 있나, 그것이 노동조합이든 지역이든 민주노동당이 갖고 있는 역사적 경험과 노동조합의 인프라와 비견될 수 있는 조직적 지지기반이 없는 정당의 성공가능성에 대해서 낙관하는 근거는 도대체 뭘까, 그런 점에서 볼 때 불안스러워요.
 
  노회찬, 심상정 두 분이 앞으로 5년 동안 정당의 형태로서 하실 일들을 어떻게 찾아낼까, 이게 불안하고 진보정당 자체가 앞으로도 굉장히 험난할 것 같아요. 특히 17대 민주노동당 의원 열명은 각각의 직능적, 지역적 대표성을 갖고 있었는데 18대 민노당 의원들의 의정활동들이 과거만큼 그렇게 빛을 발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진보정당 자체가 불안한 상황입니다.
 
  81명의 통합민주당 역시 세대교체에서 실패한 결과가 이번 총선에서 나타난 거예요. 더군다나 18대 민주당 당선자 81명의 면면들을 보면 기능적 전문가들뿐입니다. 민주노동당은 역량이 약화되고, 민주당은 훨씬 중도 보수화 될 가능성이 굉장히 큰 국면이라서 그런 점에서 볼 때 정당정치 측면에서는 대단한 위기라고 생각됩니다. 보수세력이 권력투쟁과 관련해서는 분화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정책적 수준에서는 자유선진당, 친박연대, 한나라당의 응집력이 그 어느 때보다 강고합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의회정치는 유례없는 위기적 국면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거리의 정치나 아니면 운동의 정치가 부활될 수 있는 소지도 굉장히 커졌다라고 보여집니다.
 
  김민영 : 강경보수, 중도보수에다가 민주당이 온건보수 정당하면 보수 3분이 되겠지요.
 
  정상호 : 그것을 나머지 정당이 막아내기에는 의회라는 공간에서는 도무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열린 진보 연대의 길, 진보의 허브를 만들자
 
  김민영 :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진보의 분열상황이라고 하는 것은 참 안타깝다는 생각을 먼저 합니다. 지금 상황은 오히려 유사 신자유주의 개혁세력, 아류 보수세력들과 진보세력이 어떻게 분화될 것인가, 어떻게 다른 세계인가를 부각시키는 것에 주력해야 될 때이겠지요.
 
  한나라당만 우뚝 서 있고 나머지 세력들의 색채나 주장들이 분명하게 등장하고 있지 않은 이 상황은 어떻게 보면 진보세력에게 굉장히 호기지요. 이 상황을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지 못 하는 것이 안타깝고, 저는 그게 민주당이든 민노당이든 진보신당이든 간에 이 상황에 일단 대당되는 담론을 만들어 가는 사람, 그런 능력을 갖춘 세력들이 향후에 일종의 주도권을 가져갈 것이라고 보거든요. 예를 들어 중소기업을 살려야 하고, 사람에 대한 투자라든지 교육과 복지에 대한 투자가 우리사회의 미래라고 하는 이런 주장을 하는 일정한 군들이 형성되면 이게 미래사회를 책임질 수 있는 진보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상호 선생님 말씀하셨던 대다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삶의 불안이라고 할 수 있는 일자리, 주거, 교육, 노후 이런 부분들에 대한 정치적 입장들을 갖고 계속 대중과 호흡하는 정치활동을 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이런 정치과정 속에서 새로운 진보의 사회적 지도력, 혹은 추락한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 정치적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들을 밟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만 더 말씀드리면 저는 지금 대단한 인물이 나와서 진보세력 전반을 정리해 나갈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본다면 지금 서로 차이를 강조하면서 분화되기 보다는 우리가 갖고 있는 공동의 자산을 확인하고 공동의 이슈나 방향들을 합의해 나가는 것이 관건이라고 봅니다. 진보의 허브를 구성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것을 어떤 세력 중심으로 보기보다는 우리시대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를 합의하는 실천적 과정으로 보았으면 합니다.
 
  구갑우 : 진보의 허브를 구성하는 문제네요. 관련해서는 주체적 측면에서 정당을 재구성하는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그랬을 때 대단히 교과서적인 질문이지만 진보적 대중정당이라는 것들이 가능할까요. 김민영 처장께서 이야기하시는 진보의 허브라는 것은 반드시 진보적 대중정당의 모습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여전히 진보적 대중정당에 대한 희망들이 있을 것이고 그 일을 계속 하실 텐데 실제로 실현가능한가라는 문제가 있겠네요. 이것은 대중정당이 21세기에 가능할까라는 문제와도 연관이 되어 있고요. 사실은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진보신당은 전형적인 지식인 정당에 가까운 모습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또 하나 우리가 이번 선거에서 정말 황당하게 본 것이 가장 봉건적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포스터모던한 정당으로 친박연대라는 것을 봤습니다. 그것은 21세기 한국정치에 있어서 정당이라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에 대한 고민들을 여러 가지로 하게끔 했던 현상들이었습니다. 일단 장석준 선생님 이야기를 들어보지요.
 
  장석준 : 제가 민주노동당에서 활동했을 때 한국사회에서 진보적 대중정당에 대해 생각했던 것과 지금 진보신당을 새로 시작하면서 생각하는 것은 전혀 다른 맥락이라고 봅니다. 민주노동당은 어쨌든 민주노총, 전농이라는 80년대 말 이후에 대중투쟁의 산물인 대중조직에 기반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해체를 주도한 사람들의 결정적인 문제의식은 이게 진지가 아니라 고립된 요새라는 판단을 했던 것이고, 여기 계속 있었다가는 군량미만 떨어져서 굶어죽게 생겼다, 이런 판단을 했던 것이죠. 그렇다고 해서 들판으로 돌아가면 생명이 보장된 것이냐, 그것도 아니지요.
 
  들판에 나가는 순간 적군에게 공격받아서 죽기가 더 쉬워지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더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겠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당이기 때문에 이 당은 필연적으로 상당 기간 일종에 실험정당이 될 수밖에 없다고 우리 스스로는 생각합니다.
 
  진보의 재구성이라는 것 자체도 성공이 보장되지 못한 실험인 것이고, 아까 민주노총이 하지 못했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균열을 다시 잇는 그러한 노동운동을 하겠다는 것이라든지, 아니면 그동안 전혀 부재했던 지역에서의 진보적인 정치의 토대를 만들겠다든지 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성공할 가능성이 적은 실험이기 때문에 당분간은 그런 역할을 하는 정당이 되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과거 민주노동당보다도 제도정치과정과의 연관성이 좀더 느슨할 수밖에 없는, 그런 실험정당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치실험이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 것은 그동안 이른바 범진보 개혁세력이 실패한 주요한 원인이 제도정치과정 내에서의 단기적인 성과에 지나치게 집착해서 그것 중심으로 스스로를 계속 재편하고 궤도를 만들어 왔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점에서는 오히려 과도하게 느껴질 정도로 단기적인 정치성과 내지는 원내에서의 정치과정 이런 것들과 거리를 두면서 새로운 실험들을 해 나가고, 모델생산 경쟁을 해야 될 필요가 있지 않느냐, 당분간은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원외 중심정치가 아니라 상황에 기반한 원외 중심정치를 해야 되지 않느냐, 제가 좀더 강조한다면 지금은 정치혁명이나 혹은 사회혁명의 시대가 아니라 지금은 문화혁명의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당분간은 문화혁명의 시간이 경과한 다음에야 새로운 정치혁명 내지는 사회혁명의 시간이 도래할 것이기 때문에 정치 자체도 문화혁명의 시각에서 바라봐야 될 때가 아니냐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안병진 : 저는 요즘 김민영 처장이 말씀하신 것처럼 허브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합니다. 진보신당이든, 민노당이든 아니면 민주당이든 혹은 무당파든 마치 미국의 <무브온>(MoneOn, http//www.moveon.org)처럼 다 한 공간에서 중요 이슈를 가지고 함께 토론하고, 논쟁하고, 공동실천하고, 교육하는 모습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안에서는 노선이 정확히 일치할 필요는 없거든요. 그저 이런 <무브온>과 같은 장을 만들고 그 속에서 심상정, 노회찬과 같은 스타를 자꾸 만들어내고 발굴해 내고, 각각의 풀뿌리 차원에서 어떤 지역은 진보신당 후보를 찍을 수도 있고 어떤 지역은 민주당을 찍을 수도 있고 말이죠.
 
  구갑우 : 네트워크지요. 진보적 네트워크의 네트워크. 하지만 이러한 진보의 허브나 네트워크가 과거와 같이 단일중심을 형성하는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 발상은 정책정당, 대중정당 두 가지 이미지로부터 탈출한다거나 탈색된다는 의미도 있을 것 같습니다.
 
  김민영 : 저는 왕도가 보이지 않는 조건에서는 다양한 실천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게 민노당의 실험이든 진보신당의 실험이든, 아니면 다른 정치운동의 형태이든 간에 각종의 실험들이 만들어지고 적어도 이것이 상호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일정한 지향성을 갖고 있다면 같이 가는 것이지요. 적절한 정치적 계기들에 의해서 다시 뭉칠 수도 있고 다시 분화될 수도 있는 이런 여러 가지 가능성들을 열어놓아야 되는 것 아니냐 하는 생각입니다.
 
  장석준 : 저는 아까 진보신당 이야기가 나와서 그 부분에 참여적 주체로서 발언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정당운동을 바라볼 때도 조금 더 책임 있게 바라봐 주셨으면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진보정당에 있어서 노동계급 중심성 문제가 이야기 되는데, 문제는 민주노동당 만들 때까지 노동계급 중심성 이야기했던 것과 지금 상황에서 노동계급 중심성 이야기하는 것은 전혀 달라져야 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지금 상황이야말로 노동계급이 과연 하나의 정치적, 사회적 행위자로서 통일될 수 있을 것이냐는 것 자체에 대한 회의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시점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중산층의 일부로 포섭된 상층 노동자들과 계약직과 최저임금 언저리의 임금을 전전하는 그 노동자들이 같은 계급일 수 있는지, 그들을 같은 계급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프로그램을 갖고 있는지, 이를 위해 당은 무엇을 할 것인지 이러한 것을 갖고 노동계급 중심성을 이야기할 때 건강한 논쟁도 되고 결과적으로 건강한 창당과정도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때문에 지금의 노동조합운동이 아닌 다른 노동운동의 비전을 작은 실천을 통해서라도 보여주는 과정에서 이야기를 해야 노동운동이 진보정당운동의 주요한 축으로서 계속해서 이야기되고 작동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게 생각합니다.
 
  진보의 재구성, 진보정치와 시민사회운동의 관계는?
 
  구갑우 : 주체의 재구성과 관련해서 한가지 더 여쭤 보고 싶은데 90년대를 거치면서 한국시민단체가 대단히 급성장을 했고 사실상 준정당의 역할들을 수행해 왔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 중립성을 추구하면서 정치에 개입하는 것은 사실 극도로 자제해 왔다고 할까요, 실제로는 정치적인 활동을 하면서 정치에 개입 하는 것을 자제해 왔습니다. 진보 재구성 이야기가 나오면서 진보신당에서 적녹청 연대를 이야기하실 때 그 청이 의미하는 바가 아마 90년대 이후의 시민운동을 지칭하는 것 같은데, 정치와 운동의 분리문제는 어떻게든 이제는 의제로 올려놓고 이야기를 해야 될 시점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민영 처장께서 진보의 재구성과 관련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이야기를 해주시죠.
 
  김민영 : 초기의 정치적 중립성이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생존논리였습니다. 척박한 운동의 토양에서 대중적인 지지나 관심을 받기 위해서 어쨌든 우리는 정치와 일정한 거리를 두겠다는 것이 대중적 지지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들이 끊임없이 조직 내외에서 제기되었고 당연히 고민되는 지점이지요. 그런데 두 가지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들어와서 힘을 보태라는 것인데 그러면 정치와 운동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그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협력의 방안들을 만들자는 것인데, 실제 여러 형태로 협력하고 있습니다. 안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래도 첫 번째 이야기들을 하는 것은 지나치게 정당과 사회운동을 제로섬으로 보는 조금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저는 적어도 척박한, 앞으로 더 척박해진 이 상황에서 참여연대가 버텨주는 것이 전체 진보운동에 도움이 되면 도움이 됐지 부정적 요소는 아닐 것이다, 소극적으로 본다면 이런 생각을 합니다. 두 번째는 시민단체 자체는 권력을 둘러싼 현실 정치를 하기 위해 모인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예를 들어 정당화하자, 본격적인 후보를 내는데 우리가 일조하자, 이렇게 될 경우에는 조직의 근본취지에 어긋나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좋은 진보정치를 위해서 참여연대가 일정하게 거리 두기가 아니라 본격적으로 발언도 하고, 선거 국면에서 정책적 연대도 하고 이런 방식의 정치활동을 해야 할 시기는 온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국면에서도 특정정당과 1대1 방식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대신에 예를 들어 교육에 대한 공적투자를 확대하자를 선거기간에 핵심적 아젠다로 만들고 여기에 동의하는 정치연합들을 형성할 때 우리도 하나의 주체로 들어갈 수 있는 것 아니냐 이런 생각을 합니다. 더 중요하게 이제는 2010년 지방선거를 어떻게 맞이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본격적인 논의를 지금부터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교육이나 복지를 기반으로 한 지방선거연합 같은 것들을 시간을 두고 형성해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되면 아마도 참여연대나 혹은 참여연대와 함께 하는 시민운동세력들도 지방선거에 본격적으로 참여하는 이런 실험들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진보적 모델의 생산과 실험, 2010 프로젝트를 준비해야
 
  구갑우 : 시간관계상 오늘 좌담을 정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돌아가시면서 어떻게 할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한 말씀씩 언급해 주시죠.
 
  정상호 : 제 지론도 정당과 시민사회세력이 거리 두기가 아니라 관계 맺기가 되어야 된다, 조건에 따라서 정책협약이나 정치적 연대가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시작은 내후년 지방선거에 대비한 2010프로젝트라는 것입니다. 지역정치를 바꾸는 것에서 지금 정당들만으로는 힘든 것 같아요. 필요하면 2인 선거구에서 3인이나 5인 중대선거구로 가자는 선거법 개정요구도 하셔야 하고, 아니면 처음부터 정당공천제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를 하시든지, 2010년 프로젝트를 위한 전략은 지금부터 착수를 해야 합니다. 지역 민주화 없이 좋은 정당은 힘든 것 같아요. 정당과 관련해서 말씀드릴 것은 최장집 교수로 상징되는 대중조직 정당 모델과 정진민 교수로 상징되는 선거전문가 정당 모델 사이의 이분법 논쟁을 벗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두 정당 모델은 가치판단을 하고 취사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민주노동당 같은 경우에는 제도적 정착을 위해서 대중조직 정당모델의 발전에 보다 심혈을 기울일 필요가 있어요. 하지만 나머지 정당들이 기간당원제, 지구당 이런 식으로 갈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자기들의 지역적 기반과 정당의 성격에 맞는 것들을 선택해서 그것으로 가든지, 아니면 일종의 혼합 시스템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적어도 공직자 선출에 있어서는 당원 이외에 지지자들을 포함시키되 정당의 핵심적인 정책에 대해서는 배타적으로 당원한테 권리를 주는 절충적 방식으로 한국형 정당모델을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왔던 정당모델에 대한 논쟁들도 우리가 한국적 맥락에 맞게 재구성하는 것이 진보의 재구성에 있어서 필요한 정당 모델을 만드는 방식일 수 있겠다, 그래서 획일적으로 어느 것이 더 좋다는 것에 너무 과도하게 집착해서 나머지 정당모델들에 대해서는 비민주적인 것으로 폄하하는 것은 조금 바뀔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장석준 : 말씀하신 내용과 거의 비슷한 내용일 것 같은데 너무 조급해 하지 말고, 너무 단기적인 전망에 강박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80년대 초반 학생 운동가들이 현장에 투신하던 그런 국면처럼 언제 성과가 나올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뭔가 가장 힘들지만 운동을 가장 발전시킬 토대가 될 영역으로 의식적으로 진출해야 될 시기가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저는 지역에서 모델을 만들어야 된다는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을 합니다. 정권을 다시 잡거나 혹은 새로 잡거나 하는 것은 늦어도 좋지만 이러한 모델을 만들거나 모델을 만들려는 노력을 통해 대중과 새롭게 대화할 수 있는 뭔가 꺼리를 만드는 것은 조급하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김민영 : 선거를 전후로 해서 온라인에서 대학생들에게 소위 386이라고 자기들을 밝힌 사람들이 엄청난 폭언을 했어요. 투표도 하지 않은 20대는 더 당해봐야 싸다는 것인데, 저는 그것 보면서 씁쓸했습니다. 어떤 분 표현대로 하면, 지난 20년간 완장 찬 민주화세력에 대해 ‘이제 국민들이 질렸다’ 이런 것들의 양상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구갑우 : 이번 선거에서 운동권 출신들의 대거 낙선과도 관계가 있지요?
 
  김민영 : 그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집권 민주화운동 세력이 현실의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는 바에 대해서 관심이 없으면서 과거에 가지고 있었던 자신들의 생각이나 기준에 따라서 모든 것을 재단하려고 하는 모습들이 아주 무례하고 폭력적인 모습으로 비춰졌던 것입니다. 진짜 질린다, 이제 그만 해라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진보의 재구성이라고 하는 것이 단기간의 작은 노력 가지고는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따라서 과거의 운동논리에 기반한 철학이나 정치노선, 운동방식, 혹은 문화 같은 것을 어떻게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형태의 진보운동이나 진보정치로 바꿀 것이냐 하는 문제는 정말 환골탈태하듯이 혁신하는 과정들을 밟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낡은 진보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들이 노동운동에서, 시민운동에서, 진보정치운동에서 그리고 학자나 전문가들 속에서, 그리고 지역의 주민운동 속에서 만들어질 때, 그렇게 혁신된 혹은 혁신하고자 노력하는 세력들이 일정하게 네트워크 될 때 아마 진보의 새로운 대안세력들이 등장하는 것 아니겠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만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진보세력이 국가운영을 담당할 세력으로 자임하겠다면 국가 운영의 능력을 갖춘 진보 엘리트들을 어떻게 집단적으로 육성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진보적인 역량을 갖춘 대중적 지도자들을 만들기 위한 공동의 노력에 누구도 예외는 아닌 것 같습니다.
 
  구갑우 : 마치시지요. 오늘 논의가 신보수 시대 진보의 진보를 위한 작은 자양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장시간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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