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적인 정책 없이 표를 의식한 대상별 주거 정책만 제시
무주택 세입자 보호, 주거 취약계층 복지 등 주거권 강화 정책 실종
대한민국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책임있는 비전과 정책 제시 필요
지난 11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21대 대통령 선거 후보 등록을 완료하고, 어제부터 공식 선거 운동이 시작됐다. 내란과 탄핵, 헌정질서 파괴라는 초유의 사태 이후 치러지는 이번 대선 역시 정책과 논쟁이 실종된 가운데 주요 후보들이 10대 공약을 발표했다. 공교롭게도 이번 대선일은 6·3 무주택자의 날이지만, 후보들의 주거·부동산 공약에서는 무주택 세입자를 위한 정책을 찾기 어렵다. 아직 모든 공약이 공개된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주거·부동산 공약이 부실하고, 특히 주거 취약계층을 위한 주거복지 정책이 빠진 점은 매우 실망스럽다.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만 세입자, 공급, 대출, 주거복지 등 종합적인 공약을 제시했다. 대선 후보들은 남은 기간 동안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책임 있는 미래 비전과 정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종합적인 주거·부동산 공약이 제시되지 않은 것은 심각한 문제다. 집값 안정과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서는 단편적인 정책만으로는 부족하다. 윤석열 정부는 집값과 전월세 불안으로 촉발된 국민들의 분노 속에 출범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주택자 감세, 부동산·투기·개발 규제 완화에 집중해 왔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국민의 힘, 개혁신당 대통령 후보들은 윤석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의지가 부족해 보인다. 청년, 신혼부부, 다주택자, 재건축·재개발 조합원 등 특정 유권자층을 겨냥한 표심 위주의 공약만 난무하다. 대통령 후보들에게 대한민국의 주거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공약은 공공임대주택의 품질 개선, 공공임대주택의 비율 확대를 제시한 측면에서 긍정적이지만, 종합적인 주거 정책 비전이 부족하고 지하실, 옥상, 고시원 등 열악한 주거 환경에 놓인 주거 취약계층 대책이 빠져있다. 여성·청년·직장인·어르신 등 대상별 정책을 제시했으나, 수요에 맞지 않거나 내용이 부실하고 구체적이지 않다. 예를 들어 공공임대주택 수요가 높은 청년에게 공공분양주택을 공급한다는 공약은 계층별 특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노인에 대한 지역사회 돌봄 체계 구축의 핵심에 주택이 있어야 하는데, 고령자 친화 주택을 공급한다는 기존 정책의 반복 이외는 집수리 등 저소득 고령자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정책이 부재하다. 과도한 주택 담보대출 및 전세 대출에 대한 규제, 임차인의 권리를 향상시키는 주택 임대차 제도의 개선 없이, 이 후보가 제시하는 전세보증제도 개선 같은 수단만으로는 전세사기 걱정없는 사회를 만들 수 없고, 월세 세액공제만으로 무주택 서민의 월세 부담을 완화할 수도 없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는 집수리 등 주거 정책이 중요하지만, 건물 중심의 기존 그린리모델링 정책을 언급하는 데 그쳤다. 또한 서울 노후 도심 재개발·재건축 용적률 상향과 분담금 완화 공약은 집값 상승과 투기를 자극할 수 있어 우려된다.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는 땅값만 올려 경제성 있는 개발이 어려워지고, 주택 실수요자의 부담을 키울 수 있으며, 주거비가 저렴한 지역의 주택 세입자와 가난한 주택 소유자들을 쫓아내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청년·신혼부부를 대상으로 하는 정책만 제시했으며, 전반적으로 민간주택 공급 활성화를 위한 개발·세제·대출 규제 완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윤석열 정부의 잘못된 부동산 정책을 계승하는 정책이다. 부동산 세제 감면, 재건축부담금 폐지, 기초지자체에 재건축·재개발 권한 이양 등은 부동산 투기와 난개발을 초래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 유명무실해진 재건축부담금과 대폭 줄어든 종합부동산세 등 부동산 세제는 현행보다 강화해야 한다. 김 후보는 청년, 신혼부부, 육아 부부의 집 걱정 해결을 위한 주택공급을 확대한다고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빠져 있고, 대출 규제 완화에 치중해 박근혜 정부의 ‘빚내서 집사라’는 정책을 반복하는 모양새다. 김 후보의 공약에는 무주택 세입자의 주거복지 향상을 위한 내용이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정책으로는 주거 불평등, 자산 불평등만 확대될 소지가 크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는 10대 공약에 주거·부동산 정책을 포함하지도 않았다. 그만큼 시민의 주거 문제에 대한 후보의 관심은 뒷전이라고 볼 수 있다. 이준석 후보는 며칠 전 생애주기 맞춤형 주택세금 감면제도 도입,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 임대등록제도 활성화, 대출 확대 등 일부 주거 공약은 발표했다. 그러나 이들 공약은 유주택자, 임대사업자, 주택 구입을 위한 정책에 집중되어 있으며, 국민의 약 40%인 세입자를 위한 주거비 부담 경감 대책, 주거복지 정책은 거의 없다. 이는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게다가 가계부채 관리를 위한 핵심 방법 중 하나인 원리금 균등상환 정책에 역행하는 ‘잠시멈춤대출’ 공약을 제시한 점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는 서민들의 주거 안정을 위한 임대차 제도, 전세사기 피해 구제·예방 대책, 공공재건축, 녹색공공임대주택 200만 호 공급 등 비교적 종합적이고 구체적인 주거 정책을 제시했다. 계속 거주권 보장, 임대료 인상률 제한, 임대주택 등록 의무화는 세입자 보호를 위해 꼭 필요한 공약이다. 특히 대선 후보 중 유일하게 부동산 투기 규제 방안과 서유럽 선진국들이 채택하고 있는 것과 유사한 최저주거기준 미달 주택의 임대 금지 공약까지 포함했다.
주거권네트워크 등 주거시민단체는 지난 4월 30일, 후보들에게 대선 주거정책 요구안을 제안한 바 있다. 주거권네트워크 등은 전세사기 피해자 구제, 임대차법 개정, 공공주택 공급 확대, 차별 없는 주거복지, 부동산 세제 및 개발이익 환수 강화, 투기 규제와 공공성 확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건설분야 탄소 감축, 수도권 집중 해소 등의 정책을 채택한 대선 공약을 제시할 것을 거듭 촉구한다. 앞으로 주거시민단체들은 시민들과 함께 대통령 후보들의 주거 문제에 관한 공약을 검증해 주권자로서 대선 후보들을 심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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