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복지국가 2025-09-02   10942

[청년복지학교 후기⑤] 빈곤을 알아가다

2025 여름 참여연대 청년복지학교 참가자 박준형

빈곤(貧困)

1. 가난하여 살기가 어려움.
2. 내용(內容) 따위가 충실(充實)하지 못하거나 모자라서 텅 빔.

빈곤이라는 단어는 뉴스나 기사에서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 익숙해진 빈곤의 개념은 주로 OECD 주요 국가와의 비교, 빈곤율, 수급률 등 수치에 의해 인식된다. 그러나 우리는 수치를 넘어선 진정한 빈곤의 의미를 알고 있는가? 2019년 개봉한 영화 기생충은 우리 사회의 민낯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그들의 삶을 조명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어느덧 청년복지학교 3일차, 김윤민 교수님의 빈곤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고자 한다.

2025년 8월 27일, 참여연대 느티나무홀, 2025 여름 참여연대 청년복지학교 3일차 (사진=참여연대)

구별

오늘날 빈곤으로 인해 겪는 차별은 더욱 치밀하고 고도화되고 있다. 서울시 성북구 길음동 A아파트에는 임대아파트와 분양아파트 사이에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다. 주변 행인, 심지어 자신의 어린 자녀가 볼 수 있는 단지 내에 저런 철조망을 설치하면서까지 분양아파트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주장하고자 하는 ‘구별’에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외에도 강남구 모 아파트는 임대동과 분양동 사이에 건물과 도로를 설치하여 아예 외곽으로 밀어내기까지 했다. 김윤민교수님께서는 이를 ‘시선 폭력’ 혹은 ‘2차 가해’라고 지적하시는 말씀을 들으며 차별이 이렇게 일상생활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 참담했다.

사각지대

2014년 2월, 내가 고등학교 입학을 막 앞둔 시절, 아무생각 없이 살던 나에게도 ‘송파 세모녀사건’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전국에 복지사각지대 해소, 복지사각지대 발굴 대책이라는 과제는 2014년부터 1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항상 언급되는 핵심과제로 남아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복지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원 세모녀 사건’, ‘방배동 모자 비극’ 등등 반복, 반복, 또 반복이다. 무한히 반복되는 이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호명(呼名)의 강력함

빈곤을 떠올렸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민·동정, 부정수급자, 실패자 혹은 낙오자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빈곤에 대한 주류 담론이다. 담론이란 한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인식이며, 주로 뉴스나 SNS, 커뮤니티 등을 통해 형성된다. 당장 유튜브에 ‘빈곤’ 키워드를 검색했을 때 썸네일에 나오시는 출연진 분들은 모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수급자의 삶에는 관심 없고, 부정수급자의 행실을 비난하며 처벌에만 관심있는 사람들, 안타까운 사건을 겪은 피해자의 배경 중 빈곤 상황을 유독 강조하는 언론 등을 보게 되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담론에 빠져들게 된다. 나 또한 최면에 걸려 빈곤에 대해 무엇이 떠오르냐는 교수님의 질문에 주저없이 “실패자”라고 생각했던 스스로를 반성한다. 빈곤의 지배 담론으로 인해 잊혀진 이들의 존엄성, 인권, 생존권이 더욱 부각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널리 알려야 한다.

2025년 8월 27일, 참여연대 느티나무홀, 2025 여름 참여연대 청년복지학교 3일차 (사진=참여연대)

성장의 양면성

성장은 크게 양적 성장, 경제 성장, 질적 성장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간 우리나라의 놀라운 성장은 양적 성장과 경제 성장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에 오른 현재, 우리나라는 안락, 풍요, 사치, 영양, 오락 등을 누리게 되었으나 그 이면에는 불평등 심화, 사회불안정 가중, 기후위기 심화 등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질적 성장 즉, 복지와 삶에 초점을 맞춘 성장이다. 양적 성장은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경제 성장에 대한 믿음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질적 성장을 주도적으로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아기가 태어나서 자랄 때까지는 주로 키, 몸무게 위주의 성장을 한다. 신체적 성장이 끝날 때쯤엔 자아 탐색, 지식의 확장, 문화생활 등 질적 성장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를 생애주기에 비유해보면 청소년기 즈음에 해당하는 것 같다. 이제는 내면을 성숙시키며 진정한 성인으로 거듭나야 할 때다.

“우리가 바라는 풍요를 위해 치러야 할 대가가 감당 가능한 수준을 넘어섰다. 우리를 지탱하는 신화가 우리를 파멸에 빠뜨리는 중이다.” – Jackson,T.(2021)

부와 가난

프로테스탄트 윤리에서 수용된 성취 이데올로기에서 가난은 멸시되고 부의 성취는 축하받을 일로 칭송받는다. 산업혁명이 일어난 뒤 자본주의를 맞이하며 인간의 모든 가치를 노동으로 치부하고, ‘부=성공, 가난=실패’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로 인해 부를 차지하지 못한 인생은 잘못되고 실패한 인생이라는 인식 속에 불평등과 갈등은 점점 심해진다. 상위 10%의 인구가 하위 90%의 인구보다 부지런해서 부를 축적했다는 것에 동의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IMF를 겪으며 빈곤에는 예외가 없고, 빈곤이 개인의 나태함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실하고 열심히 일하는 자에게 복이 온다.”는 성공신화는 자산소득이 근로소득을 넘어선 사회에서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근로 빈곤층’에게 열심히 일을 하지 않아서 가난을 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마치며

기초연금,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국민의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제도이다. 사회복지공부를 하며 드는 생각은 국가가 국민의 최적의 생활을 보장하면 안되는 것인지, 앞서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것이 헌법 제10조에 명시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것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헌법에서의 정의한 인간다운 생활이란 최저생계비에 죽지 않을 정도로 사는 삶이라는 것인가. 그 누구도 최저의 생활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최저생활이 아닌 최적의 생활이다. ‘최저’가 기준이 아닌 ‘최고’를 기준으로 고민하고 하향하는 식의 정책 형성 기조가 형성되어야 한다. 참여연대 청년복지학교에 임하기 전의 나는 취업, 결혼 등 지극히 스스로의 미래에 대한 걱정만을 하고 살아 왔다. 그러나 김윤민 교수님의 수업을 들으며 우리 모두가 빈곤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잘못 설계된 사회구조를 바꾸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이런 세상을 바꾸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이 있을지 고민해본다. 가만히 앉아 있을 것인가? 참여연대와 함께 불합리에 맞서 싸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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