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도 사회보장예산 확정에 따른 노동·시민사회단체의 입장
예산 뒷받침 없는 ‘복지국가’는 허울 뿐이다.
국회는 26일 2001년도 정부예산안에 대해 2조5천559억원 삭감, 1조8천505억에 대한 증액을 통하여 100조2천246억원 규모로 최종 확정하면서 사회복지분야에서는 496억원 삭감, 1008억원을 증액하여 명목적으로는 이 부분에 512억을 추가 배정하였다.
그러나 그동안 상기 노동·시민사회단체가 국회청원 등을 통하여 우리 사회가 진정 국민의 삶이 보장되고 특히 서민의 생계와 생활이 인간다운 수준을 확보하는 선진 복지사회로 가기 위해 33개사업 10조 5천억원의 배정이 2001년 예산에 반드시 실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에 비하면 매우 미흡한 수준이라는 점에서 국회에 걸었던 기대가 결국 무너졌음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이러한 실망감을 넘어 경악과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막판 계수조정과정에서 각종 선심성 지역 예산을 끼워넣는 가운데 내년 사회보장예산 중 가장 핵심적이라 할 수 있는 기초생활보장급여를 위한 예산이 희생되어 443억원이나 삭감되었다는 사실이며, 이는 결국 국회의 예산심의가 얼마나 졸속이며 무원칙한 지, 그리고 나아가 반(反)복지적인 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최종적으로 증액된 사업중에는 실업예산과 기초생활보장 자활공공근로, 시설 종사자 2교대 근무, 여성장애인 성폭력상담소 설치사업과 같이 우리가 주장한 33개 핵심사업에 해당되는 것도 포함되어 있으며 이에 뒤늦게 소액이나마 예산의 추가배정이 이루어진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00만명이 넘는 대량실업자시대가 재현되는 것으로 예견되는 2001년의 심각한 국면을 생각할 때 실업대책으로서 500억원, 자활공공근로에 100억원 정도만을 추가배정한 것은 사실 너무나 안이한 발상에 기인한 것이며 도대체 국회가 국민의 직접적인 생계에 대한 위협과 절망감을 걱정하고 있는 지 최소한의 양식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현재 지급되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급여가 실질적인 최저생계를 유지하는 데에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과, 아직도 우리의 사회안전망 수준은 턱없이 부실하여 향후 경기악화와 장기실업으로 인해 한계 계층인 저소득층이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한 시점에서 오히려 내년에는 수급자 수가 감소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기초생활보장급여 예산을 삭감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실 이러한 결과는 2001년 예산안의 입안과 국회 심의 과정에서 이미 예정되어진 것이었다. 그동안 정부의 예산편성부처나 일부 정치인들 사이에서 여전히 사회보장예산은 소비적이고 비효율적이며 재정건전화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이 부문의 예산증대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 입장들이 개진되어졌고, 결국 이러한 기조 하에 현실적 필요에 턱없이 모자라는 정부 예산안이 상정되어 졌으며 국회 예결특위의 예산 심의 과정에서도 이러한 기조는 여전히 인정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현 시점에서 현정부와 국회에 준엄히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한계상황에 있는 노숙자에 대한 지원과 저소득층이 노동을 통해 자립할 수 있는 자활을 지원하고, 명목뿐인 장애인 수당을 현실화하며,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는 저소득층의 아동에 대하여 보육료를 지원하고 학대아동에게 긴급한 도움을 주도록 공식적인 대응체계를 수립하며, 성폭력과 가정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여성들을 보호하며, 열악한 처우에 있는 파견직 근로자와 비정규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보호장치를 강구하는 한편, 기본적인 공공의료체계를 구성하여 국민의 건강권을 확립하는 등 국민의 기본적인 생존권 확립과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이들 사업들이 과연 그렇게도 국가경제를 좀먹고 국민의 생산성을 떨어뜨리며 밑빠진 독에 물 붓기식의 소모성·낭비성예산이란 말인가?
우리 시민·사회·노동단체는 이에 대한 정부와 정치권의 올바른 인식을 지속적으로 촉구할 것이며, 또한 이것이 예산의 적절한 책정으로 구현되도록 끊임없이 견제와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또 한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미 지난 18일 한나라당이 ‘2001년 예산안 주요 문제예산’이라는 문건을 통해 기초생활보장예산에 대해 “추경하지 않는다는 전제 확립”을 주장한 것이나, 현재 국회에 상정되어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되어있는 “재정건전화를위한특별조치법률”에서 재정적자 및 국가채무 축소라는 기조 하에 향후 추경편성과 세계잉여금 사용에 대한 엄격한 제한을 두자는 발상이 매우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국가채무를 축소하고 경기불안요인을 없애고자 하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국민들의 생존권과 최소한의 복지를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할 권한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따라서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비롯한 국민생활 안정, 사회안전망을 위한 예산은 필요하다면 이 법률에 구속됨이 없이 적정 편성되도록 하여야 하며, 새해 벽두에 재개될 임시국회에서의 법안 심의 과정에서 이 점은 반드시 고려되어야 함을 분명히 밝힌다.
근본적으로 생각할 때, 단기적인 재정적자의 축소만을 고려할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하여 어느 분야에 예산을 우선 배정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다. 따라서 실직자들을 비롯한 빈곤층이 재정적자와 국가채무의 주범이기는커녕 최대의 희생자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더 이상 이들을 위한 예산편성에 인색해서는 안되며 추경편성 및 세계잉여금 사용에서도 마땅히 우선 순위에 올려야 한다. 그럴 때에야 우리 사회 내에 소득의 공정한 분배구조를 확립하고, 형평과 사회적 연대감이 증진된 진정한 복지국가로 나갈 수 있는 교두보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여 내년의 예산 운용과 차기 예산 편성과정에서 진정으로 국민의 복지를 구현하고 우리 사회를 서구선진국가들이 확립한 ‘복지국가’체제로 구축하기 위한 길을 진지하게 찾아 나가야 함을 다시 한번 촉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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