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의료보장 정책 후퇴에 대한 입장
1. 건강보험 재정 악화 논의가 올 초부터 계속되면서 보건복지부는 5월과 10월 두 차례의 재정안정화대책을 내놓았고, 그 대책 중 일부를 현실화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이미 예견된 바와 같이 재정안정화대책은 국민의 부담을 늘이는 것으로 일관되어 왔고, 그 결과 오늘에는 건강보험 정책 전반에 대한 깊은 불신과 우려를 낳게 한다.
2. 현재 보건복지부는 지역과 직장의 건강보험료 인상안을 공단 산하 재정운영위원회에서 심의·의결하려 하나, 현재와 같이 일방적으로 국민의 부담만을 가중시키는 정부 대책 하에서 건강보험료의 인상 논의를 출발할 수는 없다. 건강보험료의 인상 논의는 잘못된 정부 정책에서 기인한 재정적자를 메꾸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의료보장의 확대를 전제로 하여야 한다. 따라서 최근 발표된 일련의 의료보장 축소, 본인부담 증대와 관련된 정책의 수정 혹은 폐기가 없다면 보험료의 부담 주체인 국민들은 보험료 인상에 동의할 수 없을 것이다.
3. 우선 지난 19일 발표 및 확정한 두 가지 정책은 즉각 폐기되어야 한다.
① 급여범위 확대 무기한 연기, 국민과의 약속을 어긴 것
보건복지부는 요양급여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령안을 발표하고, 이를 통해 99년 10월 당시 수가인상을 전제로 약속한 초음파, MRI 등의 보험급여를 무기한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초음파, MRI 등은 일반적으로 질병의 치료에 활용되나 의료비 부담이 너무 커 급여항목으로 처리되어야 함이 누누히 지적되었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보험재정에 부담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약속을 뒤집고 비급여 항목에 묶어두겠다는 것은 건강보험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근거를 망각한 판단이 아니라 할 수 없다. 초음파나 MRI 등이 질병의 치료에 보편적으로 이용될 뿐 아니라, 비급여 항목에 묶여 심평원의 심사에서 제외되어 오히려 그 사용이 남용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재정에 다소 부담이 된다고 하더라도 급여 범위 안으로 넣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임에 분명하다.
② 급여일수 제한, 필요한 사람에게 오히려 혜택 줄어들 것
365일 급여일수 제한 방침 또한 여러 질환을 동시에 앓아 의료비 지출이 많은 가구의 경우 오히려 급여를 제한받아 실질적으로 질병이라는 위험에 대처하는 사회보험으로서 기능할 수 없게 하는 조치에 다름 아니다. 만성질환의 경우 급여일수를 추가 또는 연장하겠다고 하나 현재 개정령안에 명시된 9개의 만성질환 이외에는 추가대상의 범위나 상한금액 등이 모두 보건복지부 장관의 고시로 위임되어 있어 급여제한의 규모와 범위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건강보험의 보장범위를 이와 같이 제한할 경우 건강보험이 단순한 의료비 할인제도라는 오명을 벗을 길은 찾기 어렵게 될 것이다. 국민들은 급여일수나 금액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진료비가 일정액이 넘을 경우 가계의 파탄을 막기 위해 고액 진료비에 대해서는 오히려 보장성을 강화하여야 한다고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판단과 정책실현 방향은 완전히 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더구나 법률 수준도 아닌 보건복지부 장관의 모든 판단으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건강보험의 보장범위가 부침을 거듭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요양급여의 범위 등은 보건복지부령이 아닌 대통령령 혹은 법률 수준에서 규정되어야 마땅한 일이며, 관련 법규의 정비가 필요하다.
3. 급여범위를 보건복지부 장관 임의로 정해서는 안된다
19일 보건복지부는 일반의약품 비급여 전환에 대해 확정고시를 하면서 이미 지난 11월 여드름치료제, 변비약 등 일반의약품의 비급여전환에 더해 2002년 1월과 4월 두차례에 걸쳐 1,300여개 품목의 일반의약품을 비급여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비급여의 범위는 “업무 또는 일상 생활에 지장이 없는 질환”으로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급여범위의 질환을 치료하는 데에 필요한 약품은 그것이 전문의약품인지 일반의약품인지와 무관하게 급여범위에 포함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통제, 소화제, 외용 안과제와 피부질환용제 등을 비급여대상으로 한다는 것은 법률에 규정된 급여와 비급여 항목 결정의 위임범위를 넘어서 보건복지부장관이 임의로 비급여 범위를 설정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일반의약품의 비급여처리는 당연히 국민의 약제비에 대한 본인부담을 가중시키게 될 것이고, 건강보험의 재정을 안정화한다면서 결국 국민들의 주머니를 축내는 조삼모사(朝三暮四)식 사고일 뿐이다.
4. 의료보호환자, 병원에 가려면 도시락을 싸라?
보건복지부는 최근 의료급여법시행규칙개정령안을 발표했다. 그 내용은 급여일수를 365일로 제한한다는 것과 1종의 경우에도 입원환자의 경우 식대를 본인부담해야 하고 급여일수 제한을 받는다는 것이다. 복지부는 그 이유를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에서 식비를 보조하므로 이중지원이기 때문이라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의료보호 환자도 비급여 부분에 대한 지원은 전혀 없어 진료비 중 50% 이상을 본인이 부담하고 있는 점을 고려한다면 식대를 본인부담한다고 하여 의료보호 환자의 도덕적 해이가 막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재도 높은 본인부담으로 인해 의료이용의 장벽을 더욱 높이는 결과를 초래할 것은 분명한 일이다. 또한 현재 의료보호 대상자의 생계급여에 포함된 식비 하루 1,100원으로는 입원환자의 식대가 보전될 리 만무한 일이다.
의료급여 지출의 낭비는 공급측면의 도덕적 해이를 줄이고, 지출구조를 건전화하는 데에서 막아져야만 하고 본인부담의 인상이 아니라 의료급여 지출의 총액계약제나 포괄수가제의 전면도입, 급여비용에 대한 심사의 강화 등이 깊이 모색되어야 한다. 더구나 의료급여와 관련된 시행의 구체방안에 대해 의료급여심의위원회를 거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절차를 무시하고 시행규칙안을 우선 예고하고, 뒤늦게 위원회를 구성, 논의를 하겠다는 것은 대상자의 요구나 현실보다는 재정의 규모를 줄이고 보자는 태도로 밖에 볼 수 없다
5. 정부는 국민의 부담을 늘이는 것 이외의 재정안정화대책이 무엇이고, 어느 정도의 절감효과가 나타나고 있는지를 분명히 밝혀야만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국민들이 보험료 인상에 동의하지 않을 뿐 아니라, 결국에는 일련의 의료보장정책의 후퇴에 대한 국민적 심판을 받게 될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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