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빈곤정책 2007-07-13   1173

[4기 시민운동 현장체험①] 절망의 상대빈곤 사회, 희망을 찾자

복지학교 1강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최저생계비’ 강의를 듣고

7~8년 전 쯤 고등학생일 때 잠깐이었지만 사회복지 전공의 꿈을 가졌던 적이 있다. 그렇게 착한 아이는 아니었지만 중학시절 불교 학생회 활동과 한 스님과의 만남은 나로 하여금 ‘이타심’을 가지는 것이 삶의 중요한 가치라는 생각을 내면화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비록 대학생활이 그렇게 되지는 않았지만, 그 가치관은 날 ‘시민사회’와 ‘운동’에 대한 고민으로 이끌어 왔다. 이런 과정 속에서 참여연대와 인연을 맺게 되었고 ‘복지학교’에 참가하게 되었다.

첫 일정은 7월 5일 목요일 복지학교 오리엔테이션과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최저생계비에 대한 강의였다. 이번 복지학교의 주된 주제는 ‘최저생계비’에 대한 것이었고 그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했던 것이다. 복지학교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강의가 시작되기 전에 잠깐의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화장실에 잠깐 갔다 왔는데 강의를 해주실 남기철 교수님이 벌써 두 참가자와 함께 ‘복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허둥지둥 자리에 앉아 필기도구를 챙겼다. 내심 열정에서 밀리지 않을 거라고 자신하고 있었는데 다른 참가자들 역시 열정에 넘쳐 있었던 것이다. 남기철 교수님 역시 땀을 뻘뻘 흘리시면서 참가자들에게 열정적으로 하나라도 더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시는 모습에서 ‘복지학교’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듯 보였다. 그렇게 강의는 시작되었다.

▲ 강의를 듣고 있는 복지학교 참가자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복지는 권리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1999년 9월 법이 제정되고 2000년 10월부터 시행되었다. 생활보장제도는 빈곤의 책임을 기본적으로 개인과 가족의 것으로 보고 국가의 개입은 시혜적으로 보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더불어 1997년 IMF 이후 빈곤문제가 확산됨에 따라 최종적 안정망의 확충, 생산적 복지의 이념을 표방하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는 시혜적 보호에서 국민의 권리, 국가의 의무로 성격이 변화했다는 측면에서 법 정신의 현대성을 구현했다고 볼 수 있다. 수급자 선정과정과 급여방식 등의 부분에서 내용의 과학성이 이전보다는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공공부조제도의 획기적인 역사적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가난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을 가려낼 필요가 있다. 그 기준이 되는 것이 바로 ‘최저생계비’이다. 이 또한 신청자에 한해서이다. 신청자에 한하기 때문에 한글을 못 배우신 할머니ㆍ할아버지분들이나 주민등록증이 없으신 분들, 제도의 존재를 모르시는 분들이 혜택을 못 받는 경우가 많이 있다고 한다. 또 한 가지 기준은 부양자의 유무이다. 우리나라는 ‘가족부양’이라는 가치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러하다. 이 과정에서 책정되는 소득인정액은 소득평가액과 재산의 소득환산액을 합산한 것이다. 여기서 재산의 소득환산액 부분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예를 들면, 장애인 가족의 경우 자가용이 필수가 된다. 자가용의 경우 100% 소득으로 환산되는데 이 때문에 생활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대상자로 선정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최저생계비 중에서도 생활비인 생계급여가 가장 중요하게 되는데 생계급여는 최저생계비에서 소득인정액을 뺀 차액을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현금급여기준에서 소득인정액과 주거급여를 뺀 것이다. 현금급여기준이란 소득이 전혀 없는 가구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현금급여액으로 가구별 최저생계비에서 의료비ㆍ교육비ㆍ타법 지원액을 전부 뺀 것이다. 이것이 뜻하는 것은 실제로 받는 돈은 정말 얼마 안 된다는 것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무익하다?, 도덕적 해이가 아닌 제도의 결함 때문

국민기초보장제도의 도입은 분명 긍정적인 것이었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이 이 제도가 우리나라의 빈곤경감을 가져오는 효과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로 여러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광범위한 사각지대’이다. 엄격한 부양의무자 기준 등에 따름으로 인해 수급율이 30%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기초보장제도가 포괄하지 못하는 광범위한 빈곤층의 존재는 제도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는 ‘탈빈곤과 자활지원의 실패’와 ‘급여방식의 문제’이다. 보수진영에서는 이를 두고 제도의 무익성이나 국가적 낭비 등을 주장하지만 사실 제도상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통합급여체계, 차상위계층에 대한 지원의 부재 등이 그것이다. 수급자로 선정되면 생계급여, 주거급여, 의료급여, 교육급여, 해산급여, 장제급여, 자활급여 등 7종의 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되는데 급여종류별로 개별적인 기준과 욕구에 의해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대상자로 일단 선정되면 모든 급여가 주어지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모든 급여가 주어지지 않는 소위 “all or nothing”방식으로 주어지게 된다. 이것을 통합급여하고 한다. 문제는 이 체계 하에서는 수급자가 최저생계비 이상의 소득인정액이 발생하는 순간에 모든 급여 수급자격을 잃게 된다는 점이다. 때문에 개별급여나 부분급여 등의 개선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또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수급자의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에 미달하는 만큼의 급여를 제공하는 보충급여 체계를 기존으로 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빈곤선 이하에서 갑자기 최저생계비를 크게 상회하는 정도로의 소득이 아니라면 약간의 소득을 더 올리기 위한 노력은 별 의미가 없는 것으로 여겨지게 된다. 보수진영은 ‘도덕적 해이’와 ‘제도의 무익성’을 주장하지만 실제에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대다수는 능력이 취약한 고령층이나 장애인 등이라는 점에서 무리한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제도의 폐지가 아니라 제도의 개선과 인센티브 제공을 통한 자활촉진이 필요한 것이다.

셋째는 ‘제도의 무익성’ 문제이다. 주로 보수진영의 문제제기로 앞의 문제들로 인해 제도 자체가 반시장적이고 국가재정을 낭비하는 무익한 제도로서 규모도 너무 방대하다는 것이다. 유럽과 비교를 많이 하는데 비교를 하기 힘든 측면이 존재한다. 유럽의 경우, 사회민주주의적 전통이 강해서 사회보험이나 수당 등의 일차적 사회보장체계가 발달해 있기 때문에 빈곤층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적고 공공부조는 최소한의 보완적인 안정망 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보장체계가 충분성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공공부조제도에 가해지는 비중이 어쩔 수 없이 크다는 점에서 비교를 할 수 없는 것이다.

벌어지기만 하는 소득 격차, 상대적 방식으로 최저생계비 계측해야

우리나라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최저생계비=수급자 선정기준선=공공부조 급여 기준선”이라는 등식을 가지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특이한 현상으로, 이로 인해 최저생계비의 결정은 정부의 입장에서는 ‘공공부조 예산’의 기본적 규모를 결정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최저생계비가 어떤 수준으로 결정되는가 하는 점은 급여 대상자의 선정과 급여 수준에서 핵심적인 관건이 된다.

첫 번째 쟁점은 절대빈곤 방식을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상대빈곤 방식을 도입할 것인가이다. 절대빈곤 방식은 소위 ‘마켓바스켓’방식으로 장바구니에 생필품을 채우고 최저가격을 산출하는 방식이다. 이에 비해 상대방식은 중위소득자를 기준으로 소득수준의 몇% 기준을 잡고 그 이하이면 대상자로 선정하는 방식이다. 중위소득이란 순위를 매기고 가장 중간에 있는 사람의 소득 정도를 측정하는 것이다. 현재 절대방식의 계측과 물가인상률 반영방식이 ‘상대적 수준저하’를 불러오고 있다는 점에서 상대빈곤 방식의 도입이 요구되고 있다. 비계측년도에 물가상승률에 따라 3% 정도씩 상향조정하게 되는데 실제로는 훨씬 높고 삶의 방식이 달라짐에 따라 누락되는 금액이 생기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예를 들면 정보통신(핸드폰, 컴퓨터)은 현대생활의 필수 서비스가 되었는데 책정기준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점점 더 생활은 어려워지게 된다.

최저생계비는 ‘용돈’이 아니라 ‘생계비’

최저생계비를 비판하는 사람들 중 1인당 43만 정도(2007 기준)면 충분히 한 달을 살 수 있느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집, 옷 식량, 아는 사람이 전혀 없이 혼자 덩그러니 있을 때의 금액이란다. 집 있고 옷 입고 있는 상태에서의 ‘용돈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것이 있을 때에는 그 부분에 대한 금액을 다 빼버리고 실제적으로는 별로 돌아오는 금액이 없게 되는 것이다.

둘째는 가구특성별 최저생계비의 논란이다. 대도시나 중도시나 시골의 생계비의 차이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원화되어 있는 상태이다. 뿐만 아니라 장애인 가족 등 가구원의 특성 또한 전혀 고려되고 있지 않다.

▲ 강의를 듣고있는 김연수씨(오른편)

절망의 상대빈곤 사회, 희망을 찾자

뭐니 뭐니 해도 교수님의 강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이 한 마디였다. “1960년대가 희망의 절대빈곤 사회였다면 현재는 절망의 상대빈곤 사회다.”라는 것이다. 경제 성장에 따라 예전에 비해 평균적인 삶의 질은 올라갔다. 하지만 예전에는 교육과 노력 여부에 따라 사회계층이동이 가능했다면 현재는 먹고는 살지만 현재의 처지에서 훨씬 더 벗어나기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사회복지’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 새삼스럽게 깊이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사회의 변혁을 고민한다면서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해본다. 마르크스는 사회를 변증법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그런 연결고리를 연구ㆍ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ㆍ최저생계비 등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은, 어떤 사상 즉 거시 담론에만 매몰 되어 미시적인 측면에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지 않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 보게 만들어 주었다. 앞으로도 2주 정도 진행 될 복지학교는 내가 그 연결고리를 파악하고 실천에 나설 수 있게 하는데 결정적인 자양분 역할을 하게 될 것 같다. 기대가 넘친다.

참여연대는 지난 7월 2일부터 오는 7월 23일까지 약 한 달간 ‘참여연대와 함께하는 시민운동 현장체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복지학교 ‘거침없이 희망UP! 최저생계비를 말하다’ 참가자들은 최저생계비를 주제로 총 11회에 걸쳐 강연과 토론, 체험, 직접행동을 하게 됩니다. 지난 7월 5일에는 첫 번째 순서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최저생계비비’라는 주제로 남기철 교수(동덕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부위원장)의 강연이 있었습니다. 이 글은 현장체험에 참가한 김연수 씨가 이 날 프로그램을 마치고 느낀 점을 정리한 후기입니다. 이 프로그램의 후기는 인터넷참여연대를 통해 연재 중입니다.

김연수(인턴, 복지학교 참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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