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0 2000-08-10   1949

국민건강보험의 과제: 보장성 강화

우여곡절 끝에 지난 7월부터 국민건강보험이 출발하게 되었다. 재정통합은 미루어진 '반쪽' 통합이긴 하지만 새로운 건강보험 체계의 출발이 갖는 의미는 적지 않다. 건강보험의 출범은 무엇보다 의료보장, 건강보장의 기본 틀이 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즉, 건강보험의 출범은 치료적 서비스 제공을 위주로 하는 '의료보험'에서 건강증진, 질병예방, 재활을 모두 포괄하는 '건강보험'으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건강보험은 다만 좁은 의미에서 의료서비스 이용의 보장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보장 전체를 포괄하는 틀로 작동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건강보험의 출범이 긍정적 변화나 발전을 저절로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현실에서도 당장 달라진 것을 찾기는 어렵다. 새로운 발전을 위한 제도적 틀을 갖추었다 뿐이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국가의 적정한 재정적 부담(국고지원), 적정급여에 따르는 보험가입자의 '적정부담' 문제, 보장성 강화 등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과제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글에서는 그 동안 크게 다루어지지 않았던 보장성 강화에 초점을 맞추어 건강보험의 과제를 점검해 보려고 한다.

의료보험의 보장성

주지하듯이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의료보장은 "저급여-저부담"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는 단기간 내에 전국민의료보험체계를 달성하려고 한 데서 생긴 불가피한 부작용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보험 가입자인 국민의 입장에서는 의료보장의 의미를 찾을 수 없게 하는 심각한 문제점이 아닐 수 없다.

부분적인 급여 확대는 의료보험 체계에서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급여범위는 여전히 좁은 것이 현실이다. 필수적인 보건의료 서비스의 상당 부분이 비보험 혹은 비급여의 형태로 제공되고 있고, 이로 인해 사실상의 국민부담은 '의료보장'의 의의 자체를 훼손할 정도인 것이다.

예를 들어 1999년의 한 연구에 따르면, 의료보험 환자들의 평균 본인부담은 전체 진료비의 52%, 외래진료의 경우 70%, 입원진료의 경우 47%에 달하여 현행 의료보험이 의료보장의 취지를 충분히 달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가계를 파탄을 초래할 수 있는 고액 본인부담에 대한 예방장치도 만들어져 있지 않다.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의 "의료보험 고액수혜자 분석"에 의하면 1998년도 공교 대상자 중 연간진료비 500만원 이상 고액진료비 발생자는 21,153명(0.4%)으로, 총진료비의 15.8%인 1조 3천억원에 이른다. 특히 이들 해당자 중에는 노인인구가 많은데, 노령층에서 중증질환자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어서 향후 노인 인구가 많아짐에 따라 고액진료비 발생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나, 현재 본인부담금보상금의 경우 월 100만원(99년 9월까지는 50만원)을 초과한 경우에 초과금액의 50%만을 지급하고 있고, 그나마 이는 법정 본인부담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실제 고액진료비를 부담하는 가계 지출의 보전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결과 실제 보상이 이루어진 액수는 98년 38억8천여만원, 99년 60억 5천여만원으로 사실상 의미가 없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국민들의 의료보험의 보장성에 대해 불만이 큰 것은 당연한 결과라 할 것이다. 예컨대 1999년에 이루어진 한 조사에 따르면, 일반인 응답자의 44.5%가 "보험적용 범위가 너무 작다"고 응답하였고, 73.8%가 본인부담금이 과중하다고 응답하였다.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를 위한 원칙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건강보험의 출범은 건강보장의 기본 틀이 달라지는 것을 의미하고, 궁극적으로는 건강증진, 질병예방, 재활을 모두 포괄하는 명실상부한 '건강'보험으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건강보험이 이러한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우선 급여의 확대가 최우선과제가 되어야 한다. 건강보험이 '보험'으로서 보장성을 가지고, 의료비 부담으로 인한 국민들의 가계 파탄을 막아 주는 사회적 안전망으로 역할을 하려면 보험급여의 대폭 확대가 불가피한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여러 가지 제한이 있지만, 건강보험에서는 원칙적으로 보험급여의 제한을 완전히 없애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선진 외국에서와 같이 급여범위를 결정하는 방식을 비용-효과 등의 측면에서 보험급여에서 제외하여야 할 근거가 확실한 항목을 목록에서 빼는 방식(negative list)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렇게 할 경우 MRI, 초음파 등 의학적으로 필요한 모든 항목이 급여범위에 포함될 것이다.

또 하나의 과제가 과도한 본인부담으로부터 보호 개인과 가계를 보호하는 것이다. 현재 입원의 경우 사실상 50%에 가까운 본인부담을 최소한의 법정 본인부담 수준으로 줄여, 실제적인 본인부담이 20% 이하가 되도록 해야 건강보험으로서의 역할을 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본인부담의 가장 중요한 구성은 병실차액, 식대, 지정진료료, 임의비급여 등이다. 따라서 실제적인 본인부담을 줄이려면 각각의 요소에 본인부담분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특히 장기적으로는 특진제도(선택진료 제도)를 폐지하고, 임의비급여를 급여화 하여야 이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아울러 진료비 총액에 대한 본인 상한선제를 도입해야 한다. 본인부담을 조정한 이후에도 연간 일정액 이상(예: 200-300만원)의 본인부담액이 생길 경우, 상한선 이상의 진료비는 전액 건강보험이 부담하도록 추진하여야 할 것이다.

보장성 강화를 위한 정책 내용

○ 급여범위의 확대

의학적·보건과학적 타당성이 있는 항목은 모두 급여에 포함되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급여확대를 위해서는 재정의 확충이 전제되어야 하므로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의학적·보건과학적 측면에서의 우선순위 결정의 기준은 이미 다른 나라(네덜란드, 뉴질랜드, 미국의 오레곤 주 등)에서 제시된 것이 있으므로 쉽게, 우리 사정에 비교적 쉽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에서 전문가나 일반인들이 급여확대의 우선순위가 높은 것으로 꼽는 항목들은 당연히 최우선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 이루어진 전문가 의견조사의 결과 급여확대의 우선순위는 ① 예방접종 ② 초음파 ③ 가정간호 ④ 회수나 기간이 제한되어 있는 약제 및 재료 ⑤ 65세이상 노인의치(틀니 포함)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또, 일반인의 경우 ① MRI ② 초음파 ③ 예방접종 ④ 병실차액료 ⑤ 한방 첩약 등의 순서였다.

전문가의 의견과 일반인이 선정한 상위 5개 보험급여 확대 대상 급여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예방접종과 초음파는 일치하지만, 나머지는 다소 차이를 보인다.

일부 연구에서 추계된 결과에 의하면 건강보험이 부담하여야 할 재원의 대략적인 규모는 다음 표와 같다. 그러나 이러한 추계는 구체적인 급여의 내용과 적용방식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이므로, 개별 수치는 어디까지나 참고치에 불과하다.

○ 본인부담금 상한제의 도입

지나친 본인부담을 막는 제도적 장치는 국제적으로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대만은 1997년 현재 입원의 경우 1회 본인부담액이 전년도 평균소득의 6%를 초과할 수 없고, 본인부담금은 급성 30일 이내, 만성 180일 이내에서 15,000대만달러(51만원)를 초과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일본도 1997년 현재 입원의 경우 같은 달, 같은 의료기관에서 본인부담금이 63,600엔(저소득자는 35,400엔)이 초과하거나 같은 월, 같은 세대에서 30,000엔(저소득자는 21,000엔)이 복수로 발생되는 경우 초과 비용을 보험자로부터 지급받을 수 있다.

본인부담 상한제에서는 상한액 설정 방법이 문제가 된다. 상한액 설정은 개별 건(episode) 단위로 하는 방법과 개인 혹은 가구별 총액 단위로 하는 방법이 있다. 건 단위로 하는 경우에는 행정적으로 처리가 간단하다는 장점이 있는 대신, 만성질환자에게 불리하다. 반면 개인 혹은 가구단위로 할 경우에는 일정기간 동안의 총 부담액을 모두 반영할 수 있으므로 제도 시행의 취지에 부합한다는 장점이 있으나, 행정적으로 매우 복잡해진다는 단점이 있다. 특히 가구(세대) 단위로 하는 경우에는 관리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제도 시행의 취지를 살린다는 측면에서는 후자가 바람직하다.

또 경제적인 능력에 따라 상한액에 차등을 두는 방식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 역시 경제적인 부담능력의 판단을 보험료 수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한계 때문에 형평성 문제를 완전히 해소하기 어렵고, 관리가 쉽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상한액 이상에 대한 보상은 일정한 기간 동안(예: 1년) 발생한 진료비 총액을 증빙하게 하는 방법이 가장 현실적이다. 보험가입자의 편의를 위하여 대형 의료기관에는 건강보험공단에서 직원을 파견하여 업무를 현장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물론, 한 번의 의료이용으로 상한선을 넘는 경우에는 기간에 관계없이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사후 정산하는 방식으로 보험가입자의 부담을 최소화하여야 한다.

문제는 본인부담금 상한제는 본인부담금 제도 자체의 개선이 전제되어야 제도 시행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제도는 비급여를 포함한 실질적인 총진료비에 대한 본인부담금에 적용되어야 실효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험급여가 확대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본인부담금 상한제의 관리와 운영이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는 총진료비에 대한 파악은 보험급여에 대한 지급청구 외에 비급여 서비스 내역에 대한 파악이 이루어져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격적인 제도 시행을 위해서는 보험급여의 획기적 확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보장성 강화를 위한 재원

급여확대와 본인부담 상한 등 보장성 강화를 위해서는 건강보험의 재정확충이 필수적이다. 여기에서 이러한 내용을 상세하게 기술할 것은 아니나, 다양한 접근이 종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은 틀림없다.

우선 여러 차례 지적되어 온 것과 같이 지역가입자에 대한 국고지원 확대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과거 정부가 약속을 했다거나 혹은 어떤 정당이 공약으로 제시했다는 차원을 떠나 사회보험의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과 관련된 문제이다. 민간보험이 아닌 한, 사회보험에 대한 국가의 책임과 부담은 당연한 것이다.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그것이 구체화 된 것이 사회보험의 관리운영비와 자영자에 대한 국고지원인 것이다.

보험가입자의 적정 부담을 통한 재정확충도 중요하다. 현재의 "저급여-저수가-저부담" 체계가 "적정급여-적정수가-적정부담"체계로 전환하여야 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현재 건강보험의 급여가 낮은 수준인 것도 사실이지만, 이 것이 낮은 부담과 연관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구조가 계속되는 한, 건강보험조차 일종의 "진료비 할인제도"를 뛰어넘기 어렵다. 물론 여기에는 전제가 따른다. 당연히 보험재정 운영의 투명성과 효율성이 보장되어야 보험가입자가 '적정 부담'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도 불필요한 급여비 지출을 억제하는 것이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이다. 급여수준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진료비지불제도와 의료공급체계의 한계 때문에 발생하는 불필요한 급여비의 지출이 상당한 수준일 것으로 추정된다. 소위 '절약형' 진료비지불제도의 시행과 의료공급체계의 정비(주치의 등록제, 수가차등제 등), 지역사회 보건사업의 강화 등의 정책을 시행함으로써, 불필요한 급여비 지출을 억제하고 이를 필요한 급여를 확충하는 재원으로 전환하여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김용익 외. 건강보험 재정설계 연구.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2000년 2월

김창엽 외. 의료보험 환자가 병원진료시 부담하는 본인부담 크기. 보건행정학회지 1999;9(4):1-14

김창엽 /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 교수

월간 <복지동향> 2000년 08월호(제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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