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기존의 생활보호법 보다 크게 개선된 점이 있다면 빈민의 생계보장이 시혜성 급여가 아니라 국가의 의무이며, 국가가 이 의무를 게을리 할 때에는 국민이 적극적으로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명시한데 있다. 이러한 공적부조 의미의 새로운 개념 정립은 빈민의 "사회적 기본권으로서의 생존권"의 법적 보장으로서 공공부조정책의 전환을 의미하는 획기적인 것이다. 그러나 지난 10월1일부터 시행된 새 법에 기초한 공적부조제도는 너무나 파행적으로 실시되고 있어서 법의 기본 정신의 실현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이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개선책을 모색하면 아래와 같다.
빈민의 생존권 보장의지가 없다.
빈민의 "생존권"은 다른 권리보다 우선적으로 보장해 주어야 할 권리로서, 법에 명시되어 있는 "빈민의 최저생계 수준의 사회적 보장"의 실현을 위한 비용은 다른 어느 용처보다도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비용이다. 따라서 생존권의 보장을 위하여 필요한 예산이 얼마인지를 먼저 산정 한 후, 예산이 확보되어야 한다. 그리고 예산이 모자라면 재원을 더 확보해야지 예산이 적다고 적게 지출할 수 있는 성질의 급여가 아니다. 그러나 정부는 법의 기본 정신을 무시하고 기존의 예산틀 안에서 작년 예산과 다른 용처를 고려하여 예산을 편성하였다. 그러다가 보니 올해 예산은 전체 최저생계비 이하 빈민의 최저생계비와 실제 소득의 차액을 메꾸어 주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2조2천6백억원에 불과하다. 이러한 처사는 정부가 법을 개정하였으나 법의 기본 정신에 충실하게 시행할 의지를 가지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예산이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에 제도의 파행적 운영은 불가피했으며 향후에도 예산편성에 대한 기본 입장이 바뀌지 않는 한 제대로 된 공적부조제도는 기대할 수 없다.
수급권자들을 탈락시켰다.
예산이 적다 보니 정부는 재산기준과 부양의무자기준을 생활보호법보다 더 까다롭게 적용하고, 여태까지 없었던 주거면적, 토지면적, 승용차보유기준 등을 추가시키고, 등재된 주민등록지에 거주하지 않는 사람들을 모두 탈락시키는 방법으로 많은 최저생계비 이하의 가구들을 탈락시켰다. 본인이 작년에 추정한 바로는 최저생계비 이하의 빈민은 천만명 정도였으나 정부에서는 5백만명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정부의 주장 대로라고 하더라도 현재 보장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1백4십9만명으로서 전체 빈민의 29.8%에 불과하다. 정부는 "기존의 생활보호제도로서는 요보호자를 다 보호하지 못하여 새 제도를 시행한다"고 해놓고는 오히려 수급권자의 숫자를 5만명이나 줄였기 때문에 적격자임에도 탈락되었다는 민원이 도처에서 제기되고 있다. 더구나 문제가 심각한 것은 주민등록지 거주 등의 7가지 선정기준들간에 형평이 맞지 않기 때문에,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사람들이 오히려 선정된 사람들보다 생활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서 형평성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최저생계비까지의 생활수준이 보장되지 않고 있다.
정부에서는 자영업자의 소득포착율이 낮아서 노점상, 일용직 등의 소득을 잘 파악하지 못하는 점을 이용하여 가혹하게 추정소득을 매겨서 탈락시키거나 급여를 깎고 있는데, 첫 급여가 지급되자 천안의 장애인과 서울의 만성질환자가 급여가 21만원에서 6만원으로 줄어들었고 취로사업도 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투신자살을 하였다. 또한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여 연명하며 쪽방 월세로 한 달에 15만원을 지출하는 남궁00씨(83세, 영등포2동)에게는 8만5천원이 지급되었다고 한다. 무슨 계산을 어떻게 하여 월세만 15만원 지출되는 가구가 8만5천원으로 한 달을 살 수 있다는 말인가? 올 겨울에도 남궁씨는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고 살라는 모양인데 이것이 법에 명시되어 있는 '인간답게 살 권리'의 실현인가? 정부에서는 4인 가구의 경우에 93만원까지의 소득을 보장해준다고 해 놓고는 이상한 계산법으로 급여수준을 낮추어 소득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 71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대구의 신00(96세)씨는 "나는 아이가 없어서 교육비를 받은 적이 없고, 아파도 병원 갈 돈이 없어서 평생에 한 번도 병원에 간 적이 없는데 어떻게 의료비와 교육비를 현물로 주었다고 급여에서 15만원이나 뺐느냐?"고 물었다. 상황이 이러하여 도처에서 급여에 대한 불만이 끓어오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부에서는 급여재조정은 3개월 동안은 못 한다고 버티고 있다.
인권을 훼손시키고 있다.
소득을 잘 파악하지 못한다는 핑계로 수사하듯이 심문하며 소득을 캐묻고 "왜 사지가 멀쩡한 젊은 사람이 일할 생각은 않느냐?"고 무안을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재산과 부양의무자 조사과정에서 사생활을 낱낱이 들추어내고, 친척들간의 부채는 무조건 거짓말이라며 설령 공증이 되어 있어도 인정하지 않고, 지난 4월 이후의 재산이전 또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차명계좌로 남에게 명의를 빌려 준 사람들이나 도명계좌로 이름을 도둑맞은 사람들까지 본인의 진술은 인정하지 않고 수급권자로서는 도저히 입증할 수 없는 입증자료를 요구하여 탈락시키고 있다. 또한 상담 중에 집안의 내밀한 치부를 드러낼 수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공개된 자리에서 상담을 진행하는데 좀 항의하기라도 하면 옆자리의 직원들까지 가세하여 공격을 가하는 예도 있고, 의료보호환자가 약국에서 거지 취급을 받고 조제거부를 당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다. 또한 실제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이더라도 면적과 승용차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탈락시키고 있다. 밥을 굶고 과외비를 지출하든, 교통비를 지출하든 가계자원 배분은 가구구성원의 자유인데, 빈민이라고 정부에서 특정 비목의 지출을 규제하는 것은 명백한 자유의 침해이다. 이러한 처사들은 기본적으로 빈민은 2등 국민이기 때문에 약간의 인권침해는 부정수급자의 방지를 위하여 불가피하다는 사고방식에 기인하는데, 한 명의 부정수급자 방지를 위하여 열 명의 수급권자를 일단 도둑으로 간주하고 수사하듯이 취조하고, 조금만 의심이 가는 상황이면 탈락시키는 것은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은 인권선진국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소득공제제도는 유명무실하고 자활사업은 실시되고 있지 않다.
사회보장 수준의 상향조정은 복지병을 유발시킬 수 있는데, 이 문제점에 대한 대응책으로 소득공제제도가 도입되었으나 워낙 유명무실하여 근로의욕을 고취시킬 수 있는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으며, 조건부수급자를 위한 자활사업이 실시되고 있지 않다. 자활사업 미시행이 정부의 준비 부족에 원인이 있으나 자활특례자들에게 급여를 지급하지 않고 있어서 많은 민원이 제기되고 있다. 복지병의 방지는 약간만 의심이 가는 상황이면 부정수급자로 간주하여 탈락시키거나 급여를 줄이는 반인권적 정책이 아니라 소득공제제도의 확대 시행과 자활사업의 활성화를 통하여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공적부조제도의 시행에 나타난 적격자의 탈락, 낮은 보장수준, 수급권자의 인권침해 등의 문제점은 모두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명시되어 있는 "최저생계 보장의 국가의 의무" 및 "국민의 청구권적 기본권"으로서 보장해 주어야 할 필수적 지출이라는 데에 대한 인식의 부족과 법정신에 투철한 정책의 수행의지의 부족에서 비롯된다. 또한 빈민은 일반 국민과 다른 하등국민으로서 몇명의 부정수급자를 가려내기 위하여 무리하게 조사를 하고 인권을 침해해도 된다는 의식에서 비롯된다. 빈민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 없이는 이 법이 제대로 시행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월간 <복지동향> 2000년 11월호(제26호)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