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8일, 「국민건강보험법」시행령 제18조(재정운영위원회의 운영)에 의거하여 처음으로 재정운영위원회가 개최되어 24일, 31일 등 연속적으로 3차까지 회의가 진행되었다. 이번 회의가 소집된 주된 이유이면서 동시에 가장 주목을 끄는 부분은 의료보험료의 인상율 결정에 관한 것으로서 이는 통합의료보험체제의 성패와도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지역가입자의 경우 99년 5월 이후 보험료가 동결되어있으므로 재정수지가 악화일로에 있으며, 직장가입자의 경우 2001년 1월부터 일반직장가입자와 공·교가입자의 재정이 통합됨으로써 보험료의 일원화가 필요한 상태이므로 보험료에 대한 합리적 인상폭을 결정해야 하는 당위성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의료보험료율을 결정함에 있어 참여민주주의를 통한 사회적 합의정신을 바탕에 깔고 있는 현재의 국민건강법에 의할 때 그 첫단추를 꿰어야 하는 현시점에서 볼 때 보험료율 인상건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님에 틀림없다.
그간 우리나라에서는 의료보험료를 책정함에 있어 때론 물가통제의 수단으로, 때론 의사 등 이익집단 달래기의 수단으로, 또한 때론 정부부담금을 보전하는 수단으로 정부의 일방적인 개입과 결정이 관행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건강보험법에 의하여 보험료결정에 가입자의 참여가 보장됨으로써, 보험자와 피보험자간에, 궁극적으로는 정부와 의료계 및 국민들 간에 사회적 합의를 거치도록 명시된 상태이고, 이를 기초로 합리적이며 과학적인 근거하에 적정 보험료 수준을 도출하고 이를 통해 의료보험제도 전반의 왜곡을 풀어나가야 하는 계기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보험료율 결정의 최종 의결기구인 재정운영위원회의 역할과 사명은 매우 큰 것이 아닐 수 없다.
우선, 지난 7월 1일자로 발효된 국민건강보험법에 의하면 재정운영위원회의 역할은 단순히 의료보험료를 결정하는 데에만 국한되어있지 않다. 법령상에 규정된 바에 의하면 재정운영위원회는 보험료의 조정 및 기타 보험재정에 관한 주요사항을 심의·의결하기 위하여 공단내에 설치하는 기구로서, 그 구체적인 기능을 보면,
▷ 직장 가입자의 보험료율 결정
▷ 의약계를 대표하는 자와의 요양급여비용 계약 체결
▷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등급 조정
▷ 직장가입자의 표준보수월액 결정의 특례사항
▷ 심사평가원 부담금 결정에 관한 사항
등 폭넓은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기구이다.
이를 위하여 재정운영위원회의 위원은 다음과 같은 분야의 단체대표로 구성된다.
▷ 직장가입자 대표 10인 : 노동조합 5인, 사용자단체 5인
▷ 지역가입자 대표 10인 : 농어업인단체 3인, 도시자영업단체 3인, 시민단체 4인
▷ 공익대표 10인 : 관계공무원 및 건강보험 전문가
이로써 한노총, 민노총, 전경련 등 직장대표 10인과 소비자연맹, YWCA, 경실련, 참여연대 등 지역대표 10인, 기획예산처, 재경부, 복지부 등 공무원 3인, 그리고 공익대표 7인 등 총 30명의 재정운영위가 실제로 구성되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러한 재정운영위원회가 10월말까지 이미 3차례의 회합을 거쳤고 그 중 제2차회에서 국민건강관리공단은 지역가입자 및 직장가입자에 대한 보험료 인상에 대한 구체적인 안을 정식으로 회의에 상정하여 이를 심의·의결할 것을 요청하였다.
재정운영위원회에 제출된 공단측 자료에 의하면 올해와 내년에 걸친 지역의료보험의 재정수지는 <표 1>과 같다. 이에 의하면 보험료 인상이 되지 않는다면 금년과 내년에 걸쳐 지역재정은 1조 9,106억원 적자가 예상되며, 적립금을 고려하였을 때 최종적으로 1조 5,111억원의 적자를 시현한다는 것이다.
<표 1> 지역재정 수지전망(2000∼2001년)
이와같이 심각한 재정수지의 적자를 가져오는 원인으로서 공단에서는
▷ 수진율의 증가(지역의 경우 95년 4.275, 99년 5.529로 29.3% 증가)
▷ 보험급여범위의 지속적 확대(2000년 65세 이상 본인부담금 경감)
▷ 건당 진료비의 상승(지역의 경우 95년 31,523원, 99년 42,624원으로 35.2% 증가)
▷ 적용인구 중 노인인구와 노인진료비의 비중 증대
▷ 의료보험수가 인상 조정(2000년 4월 6%, 7월 9.2%, 9월 6.5% 인상)
▷ 직장 및 공교로부터의 재정이전 폐지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사실 금번 의료보험료율 인상의 핵심은 두가지 측면으로 집약된다.
첫째, 의약분업을 둘러싼 의사들의 파업과정에서 건강보험법이 발효된 이후인 7월과 9월 두차례에 걸쳐 보건복지부 장관의 고시에 의해서 각기 9.2%와 6.5%씩 의료수가를 인상하였다는 사실과 그로인한 국민부담이 명백히 추가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국민건강보험법 상 심의조정위원회의를 거쳐 공단과 의료계 대표사이의 계약을 통해 결정되는 것이며 더군다나 이 과정에서 재정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한 절차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복지부장관의 고시절차는 명백하게 위법적인 절차였던 것이다. 이러한 위법적 절차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정부가 당시 의료계의 파업을 달래는 수단으로서 현행 의료수가가 원가의 80%정도밖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일방적인 정부의 판단에 따라 의료수가를 조정하는 수단을 택했기 때문이다.
현행 국민건강보험법이 의료보험 재정에 관한 결정을 재정운영위원회에 일임하면서 이 위원회의 구조를 정부와 가입자간의 사회적 합의 도출 구조를 띠게끔 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의료보험료 부과체계의 왜곡된 관행을 끊기 위한 것이었으며, 그렇다면 올 7월 이후의 의료수가로 인한 의료보험료 인상분에 대해 가입자들이 사후 승인을 하면서 그 부담을 고스란히 떠 안을 수는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의료수가의 일방적인 인상으로 인하여 초래될 의료보험 재정의 증가분은 <표 2>에 정리된 바와 같이 지역가입자의 경우만 2000년에 3,405억원, 2001년 1조 706억원이 되며 전체적으로는 각기 6,850억원과 2조 1,539억원에 이른다. 따라서 올해와 내년 의료보험 재정수지 적자의 상당부분이 이러한 의료수가 인상에 의하여 초래되어졌다는 점은 결코 쉽게 인정하고 넘어갈 수 없는 점이다.
<표 2> 의약분업 관련 추가 소요 급여비
둘째, 현재 초래되는 재정적자의 대부분이 사실은 그간 미흡하게 존재해온 국고부담분에 기인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현재 재정수지 상황을 그대로 두고 단순히 보험료를 인상한다면 이는 이러한 국가 의무의 방기(放棄)를 가입자의 부담으로 해결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는 '96년이후 보험급여비 증가는 연평균 18.0%씩 증가하였고, 이에 비하여 보험료는 18.4%, 국고지원은 11.5%에 그침으로써, 계속되는 재정수지의 악화현상은 국고지원의 상대적인 미비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표 3>에서는 보험급여비는 95년과 99년 사이에 100에서 194로 증가한 반면, 국고지원 수준은 동기간 중에 154정도만을 기록하였다는 점에서 그간 의료보험 재정수지 악화의 상당부분이 정부의 소극적인 국고지원에 있었음을 단적으로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부분의 시정도 요구된다.
<표 3> 보험급여비 및 보험료 증가지수
이외에도 현재 올해와 내년에 걸친 의료비지출부분의 추계과정에서 의약분업 이후 고가약품 등의 처리로 약제비용이 상승된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99년 약가 인하조치를 취한 이후 9,000억원이 절감되었고, 이 중 7,600억은 의료수가인상요인을 상쇄하는 용도로, 나머지 1,600억은 급여범위를 확대하는 용도로 사용된 바 있음은 알려진 바와 같다. 이렇게 의약품 실거래가(實去來價) 상환제도로 말미암아 2000년 상반기 중 건당 급여비가 현저히 감소하는 효과가 확인되었으나, 불행하게도 7월 1일 의약분업 이후, 의료기관의 고가약처방과 약품가격의 급격한 상승으로 건당진료비가 다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고 이러한 의료비지출요인을 시정하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은 의료비지출의 추정작업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복지부가 약가 및 일부 재료대에 대한 원가조사를 일제히 실시하여 가격절감을 계획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에 대한 시정은 즉각 이루어져야 하고, 이런 의미에서 현재의 부정확한 의료보험재정 통계를 바탕으로 보험료율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
결국 이러한 여러 가지 측면을 생각하였을 때 의료보험료 인상에 대한 논의의 방향이 어떠해야 하는 지 그 윤곽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재정운영위원회 안건으로 공단은 지역가입자에 대하여 올 11월과 내년 7월에 39%, 25%, 아니면 20% 등 세가지 각각의 안을 제시하고 있다. 모든 인상요인을 고려하자면 당연히 39%를, 의료수가 인상에 의한 보험료 인상분을 제외하고 다른 자연적 요인들에 의한 인상분을 고려하면 25%, 예년의 인상수준을 답습하면 20%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위에서 우리가 본바와 같이 의료수가의 부당인상으로 인한 국민부담의 증가에 대한 명확한 시정과 국고지원 부족에 대한 명백한 시정노력이 전제되지 않은 한 의료보험료를 둘러싼 사회적 합의 정신을 발휘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직장가입자에 대하여 공·교 가입자 수준으로의 의료보험료율 인상이 요구된다면 현재 소득의 2.8%에서 3.9%로 1.1%p 인상하려는 공단의 안건 또한 같은 맥락에서 원천적인 논의를 행할 수 밖에 없다.
근본적으로는 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에 있어서 적정부담 – 적정급여 체계로 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 정부와 사용자, 국민 간 대타협이 요구된다지만, 당장 현재 의료보험제도에 깃들어 있는 왜곡된 요소들을 제거하지 않는 한 사회적 합의정신하에 의료보험료율이 결정되기는 요원한 일이 될 것같다.
월간 <복지동향> 2000년 11월호(제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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