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1 2001-03-10   5516

본인 일부 부담제도의 이해와 오해

본인일부부담제도의 종류

제3자 지불방식의 의료보험제도하에서는 의료이용자가 의료비용에 대해 덜 의식하게 되므로 의료서비스를 남용할 가능성이 존재하게 된다. 이러한 의료이용자의 과잉수진을 억제하기 위해 제안되고 있는 것이 본인일부부담제도이다.

본인부담의 종류는 크게 일정금액공제제(deductible), 정률부담제(coinsurance), 급여상한제(limit), 정액부담제(copayment), 정액수혜제(indemnity) 등으로 구분된다.

일정금액공제제는 소액진료비 전액 본인부담과 같이 일정 한도까지의 의료비는 무조건 의료이용자 본인이 부담하고 그 이상의 의료비에 대해서만 의료보험의 혜택을 주는 방식이다. 반면 정률부담제는 일정 비율만큼 본인이 부담하고 나머지는 보험자가 부담하는 제도이다. 예를 들어 입원진료비의 20%, 의원급 외래진료비의 30-55%를 본인이 부담하는 현행 제도가 정률제에 해당한다. 급여상한제는 일정한도까지만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고, 그 이상부터는 본인이 부담하는 제도이다. 예를 들어 급여상한으로 100만원이 정해졌다면 그 이하까지만 보험자가 급여를 제공해주고 그 이상에 대해서는 본인이 부담하게 된다. 정액부담제는 진료비의 증가와 무관하게 본인의 부담액을 일정액으로 정해놓는 본인부담 방식을 말한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러한 방식이 사용되고 있는데 외래 진료비 총액이 15000원 이하인 경우에는 진료비의 크기와 무관하게 일정액만 납부하도록 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정액수혜제는 정액부담제와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진료 건당 일정액만을 보험자가 급여로서 제공하고 나머지는 본인이 전액 부담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은 단독으로 사용되지 않고 보통 정액부담제와 함께 사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도덕적 위해'에 대한 두려움

본인일부부담제도는 보험재정에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본인에게 비용부담을 지움으로써 보험재정의 안정화를 꾀하고 의료서비스 배분에 균형을 회복할 수 있다는 데에 긍정성이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 제도가 성립하게 된 배경에는 의료이용자의 '도덕적 위해(moral hazard)' 라는 개념이 자리잡고 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전액 자부담에 비해 의료수요가 늘어나게 되는데,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 원인은 소비자부담 가격이 해당 재화의 한계생산비용보다 낮게 됨으로서 의료서비스를 과소비하도록 유인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의료이용자가 의료서비스에 의존성이 높아져서 건강증진을 게을리 하게 됨으로서 장기적으로 도덕적 위해가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고가의 새로운 의료기술을 선호하게 되고, 의료제공자를 견제하는 기능이 약화되며, 더 싼 가격의 의료서비스를 찾고자 하는 유인이 없어지기 때문에 도덕적 위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전말이 전도된 제도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결정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데, 바로 소비자부담 가격이 줄어들게 되어 확대된 수요를 과소비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전말이 전도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오히려 시장기제에 의해 억압된 필수적인 의료서비스에 대한 욕구가 현실적인 수요로 등장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결국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의료에 대한 가치로서의 효용이 줄어들고 과소비로 현상화 된다는 해석이 아니라, 기본적인 권리가 확장되고 건강이라는 새로운 가치가 창출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또한 의료보험의 적용 이전의 의료서비스에 대한 가격이 정상적인 시장가격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의료제공자의 독점적 지위에 따라 정해진 가격에 의해 서비스에 대한 욕구가 억제된 것이기 때문에 의료보험의 적용에 따른 급속한 서비스의 확대를 가격과 수요의 탄력성으로 해석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만약 도덕적 위해라는 개념이 현실적 설명력을 갖는 것이라면 본인일부부담제도를 통해 의료이용자를 억제하려는 전략이 성공을 거두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을 포함한 상당수의 국가에서 본인일부담제도를 수행하고 있으나,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지 못했다는 보고가 지배적이다. 오히려 본인일부부담제도가 없는 국가, 즉 거의 무상의료에 가까운 국가에서의 의료비 규모가 더 크지 않을 뿐 아니라 증가 경향도 크지 않다는 사실은 상식에 속한 이야기가 되고 있다.

결국 도덕적 위해를 강조하고 의료이용자의 의료이용을 억제하려는 접근은 실질적인 의료비 억제에는 효과적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병원자본과 의료제공자가 자신들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서비스 제공량을 급속하게 늘리고 있는 현 민간의료체계의 모순을 은폐하는 도구로 활용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일정금액공제제의 도입과 사회보험의 위기

그런데 한 발 더 나아가 정액부담제와 정률부담제는 일정금액공제제나 급여상한제 등에 비해 의료이용에 대한 억제 효과가 크지 않기 때문에 본인부담 방식을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 대안으로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 일정금액공제제라 할 수 있는 소액진료비 전액본인부담제도이다. 예를 들어 총진료비가 2만원 미만인 경우에는 모두 본인이 부담하게 한다거나, 아니면 진찰료와 처방료는 모두 본인이 부담하게 하는 등의 방법이 이에 해당한다. 1999년 건강보험 통계자료를 이용하여 이 방법이 재정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면, 총 외래진료비에서 진료건당 2만원 이하의 진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46%에 이를 정도로 엄청난 규모라는 사실을 쉽게 할 수 있다. 단순 계산만으로도 왜 그렇게 정부가 시민사회단체와 국민 대다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소액진료비 전액본인부담을 실행에 옮기려 하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보험재정 측면만을 본다면 소액진료비 전액본인부담 만큼 단기적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제도는 몇 가지 이유에서 근본적인 결함을 갖고 있다. 먼저 소액진료비를 전액본인 부담하게 될 경우 일부의 불필요한 의료이용에 대한 억제 뿐 아니라 대다수의 필수적인 의료의 이용까지 억제하게 될 것이다. 특히 기존 방식보다 계급계층별 의료이용의 접근성에 큰 차이를 발생시켜 민중의 건강권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제도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외국의 사례에서도 소액진료비의 본인부담이 확대되면서 폐렴 등 합병증 발생이 증가하였다는 보고가 있는 것을 볼 때 소액진료비의 전액부담은 보건학적 측면에서도 국민 건강상의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두 번째로 이러한 본인부담의 확대 정책이 현 건강보험의 보장성의 수준을 볼 때 결코 정당성을 획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비급여 등을 포함한 본인부담비율이 이미 총진료비의 50%를 넘기고 있고, 진료비 할인제도라는 내외적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소액진료비 전액부담제도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더욱 악화시키게 되고 건강보험의 존재의의를 상실케 만드는 일등공신이 될 가능성이 크다. 결과적으로 국민들에게 민간보험을 구입하도록 유도함으로서 사회보험을 근본적으로 약화시키는 결과를 파생시킬 것이다. 혹자는 소액진료비를 전액 본인부담하고 대신에 절감된 재정으로 고액진료비의 보장성을 높이자는 의견이 제출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교환관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의료이용에 있어서 경제적 장벽이 크지 않을 정도로 본인부담 수준이 낮아져야 하고 전체적인 의료보험의 보장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또한 이러한 본인부담 방식에 대한 사회적 합의 또는 국민적 동의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 소액진료비 전액본인부담은 말의 수사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다급해진 재정위기를 국민의 호주머니를 털어 모면해보고자 하는 얄팍한 수단 이상이 아니라고 하겠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제도가 현 재정위기가 의료이용자의 무분별한 의료이용에 기인한 것이라는 기본 가정에 기초해 있기 때문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의료이용자에 대한 억제 정책의 필요성을 일부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소액진료비를 전액 본인 부담시키겠다는 발상이 가능하려면 현 재정위기의 상당수가 의료이용자의 의료남용에 기인한 것이라는 객관적 자료에 근거해야 한다. 그러나 어디에도 그러한 자료는 없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사회보험 방식의 의료보험이 제도화되어 있는 국가의 경우를 보더라도 재정절감의 방법으로서 수요 측면의 접근전략을 사용할 경우 실 효과는 크지 않고 의료에 대한 접근성만을 악화시킬 뿐이다.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의료제공자 측에 대한 제한 전략이 재정절감 효과가 더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현 행위별수가제도 하에서 의료제공자가 진료량을 지속적으로 늘리고 있고, 작년 수가 인상과 함께 의료비 증가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는 조건에서 병원자본과 제공자에 대한 접근전략은 마련하지 않고 의료이용자만을 통제하려는 것은 여전히 현 정부가 일부 기득권 세력의 눈치만을 살핀 채 국민을 우롱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하겠다.

재정위기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약화시키고 민간보험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또한 자본의 또 다른 축인 병원자본과 의료제공자들의 공세 또한 의료제공체계의 변화를 통한 보장성 강화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더욱이 2002년 재정통합의 문제까지 결합되어 사회운동세력과 민중진영의 강력한 대응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작년 통합의료보험으로 첫 출범한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은 다른 누구의 과제가 아닌 사회운동세력과 민중진영이 받아 안아야 할 핵심적 과제가 되고 있다. 강고한 연대만이 흔들림 없는 투쟁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임준 / 건강연대 간사

월간 <복지동향> 2001년 03월호(제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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