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복지논쟁 2라운드 : 무상복지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태수 l 꽃동네대학교 교수
들어가는 말 : 보편적 복지 논쟁 1 라운드의 의미와 경과
2010년 6.2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한국사회에 몰아닥친 보편주의 논쟁은 한국 사회에 여러 가지 의미를 던졌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무상급식을 내세운 당시 민주당의 공약은 이내 보편적 복지 주장으로 이어지고 이는 당시 새누리당의 정치적 반대에 힘입어 선거를 앞두고 커다란 쟁점이 된 뒤, 선거 이후에도 상당기간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또는 잔여적 복지)의 논쟁으로 이어졌다.
최근 다시 등장한 무상급식, 무상보육과 관련된 논란을 보편적 복지 논쟁의 2라운드라고 하면, 2010년 전후의 논쟁을 1라운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2라운드의 성격과 의미를 논하기 이전에 먼저 1라운드가 어떤 족적과 한계를 남겼는지를 정리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먼저 1라운드의 의미를 몇 가지로 정리해 보자면, 첫째, 한국의 복지국가의 성격과 모형을 둘러싸고 역사상 처음으로 대중적인 차원에서 폭넓은 관심과 논란이 제기되었다. 한국의 복지국가의 형성사가 비교적 짧고 정부 주도의 방식을 택한 관계로 대중적인 논쟁과정이 지극히 억제되어왔으나(이태수, 2013), 주로 2010년부터 2011년에 걸쳐 일어났던 보편주의 논쟁은 한국사회로부터 거의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키며 진행되었다. 이러한 논쟁의 주된 논점이 일부 왜곡되었다고는 하나 복지 또는 복지국가에 대한 일반대중의 학습효과 면에서 볼 때 결코 경시할 수 없는 의의를 지녔다고 할 수 있다.
둘째로는 정당정치사에서 복지와 관련한 정당의 이념과 노선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이를 둘러싼 정당간의 치열한 정책경쟁이 벌어짐으로써 복지정치의 중요한 축이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논쟁이 본격화된 것이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의 선거공약이 발표되는 시점에서 민주당의 선거구호로 채택되고 여기에 한나라당이 거세게 비난을 가함으로써 논쟁이 더욱 증폭된 감이 없지 않지만, 어쨌든 이것은 지금까지 한국 정당이 사회정책을 둘러싸고 별로 첨예한 대립점을 가지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매우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 복지국가의 발전은 복지정치를 전제조건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정당 간의 정책차별화와 대립은 복지국가 발전과정에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었다.
셋째로는 실제 이러한 논쟁이 복지정책의 확대와 복지국가운동의 활성화로 연결되었다는 점이다. 앞에서 말한 대로 이 논쟁이 복지정치의 장과 함께 함으로써, 선거결과에 의해 정책의 실천으로 이어지면서 실제 보편적 복지로 분류될 만한 정책이 현실화되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된 지방자치단체에서 실시된 무상급식, 보호자없는 병원, 박원순 서울시장이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뒤 펼친 보육정책 등을 거론할 수 있다.
넷째로는 이러한 논쟁이 복지국가운동의 활성화를 불러일으킨 측면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동안 복지국가운동단체를 자처한 곳은 참여연대(1994년 창립), 복지국가소사이어티(2007년 창립) 등에 머물렀으나, 2011년 복지국가와 민주주의를 위한 네트워크, 복지국가시민연석회의, 복지국가사회복지연대, 2012년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세상을바꾸는 사회복지사,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등이 창립되고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들이 실제 활동내용과 그 성과를 정확히 따지기는 아직 쉽지 않고 그 단체들의 내부 기반이나 단체의 사회적 위상이 과연 공고한가는 별도의 논의로 돌린다 해도 어쨌든 이러한 복지국가운동지향단체의 양적 팽배 현상은 그 자체로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의의를 지닌 보편적 복지논쟁은 여러 가지 한계를 동시에 노정시켜다. 학술적으로도 결코 간단치 않은 이런 주요의제에 대해 심도있는 사회적 논의를 거칠만큼의 성숙한 정치 환경이나 언론환경이 제공되지 못한 점은 그렇다해도, 보편적 복지에 대한 개념 자체가 명확히 정립되지 못한 가운데 정치공세와 여론주도의 목적으로 혼란스럽거나 왜곡된 개념이 범람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컨대, ‘보편적 복지 = 무상복지’라는 등식이 버젓이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다거나 ‘보편주의 복지국가’와 ‘보편적 복지’가 혼재한 점 등이 그 예이다.
또한 논쟁은 2010년 후반 재원조달 가능여부라는 이슈로 급속히 이동하면서 ‘논증 불가한 논쟁’ 안으로 함몰되는 성격을 띄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한국사회가 보지한 심각한 사회적 위기 앞에서 복지국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쉽게 잦아들지 않았고 2012년 말 대통령선거까지 사회적, 정치적 담론의 형태로 이어졌으나 대선에서 박근혜후보진영이 ‘위장적 수용 전략(?)’을 택하여 복지국가라는 의제를 적극적으로 끌어안음으로써 뚜렷한 쟁점을 만들어가지 못한 채 대선 이후 급속히 소멸해 가는 양상을 보이게 되었다.
최근 박근혜정부가 무상보육과 무상급식 사이의 정부간 재정부담의 문제를 야기함으로써 무상보육과 무상급식 상의 우선순위 문제와 양자 사이의 대체 가능 여부 등으로 논란이 번짐으로써 무상복지 또는 보편적 복지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논의가 재발되었다. 이를 보편적 복지 논쟁 2라운드라 할 때, 이는 1라운드의 성과와 한계, 그리고 유제(遺題)에 연관되어 진행될 수밖에 없다. 특히 1라운드의 유제란, 과연 보편적 복지가 무엇인지, 무상복지는 보편적 복지와 어떤 관계에 있는 지에 대해 명쾌하게 정리되지 않았다는 사실로 수렴된다고 하면 차제에 이에 대해 좀 더 명확한 답을 구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 글은 보편적 복지 논쟁이 갖는 사회적 함의를 이 논쟁의 원조인 영국의 보편적 복지 논쟁을 통해 이끌어내어 보고, 2라운드 논쟁에서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무상복지의 이슈에 담긴 오해와 진실을 보편적 복지라는 관점에서 정리해 보고자 한다.
영국 보편적 복지 논쟁과 시사점
한국사회에서의 보편적 복지 논쟁이 좀 더 성숙한 기반 위에서 생산적이고 합리적으로 이루어짐으로써 복지국가의 발전에 더욱 중요한 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이론적 고찰과 객관적 접근을 통해 현재 한국 복지국가 수준에 걸맞는 성과물을 도출해내는 일이라 보겠다.
물론 지금까지 한국의 학계에서 이와 같은 시도가 전혀 없었다고 볼 수는 없다.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의 논쟁이 한참 진행중인 시점에서 이상이(2010), 윤홍식(2011), 이태수(2011), 김연명(2012), 권혁주(2012) 등의 연구는 나름대로 의의를 지닌 성과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서구에서 복지국가의 발전과정에 겪은 다양한 논쟁사를 볼 때 이러한 연구 성과물은 매우 부족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더군다나 다른 복지국가에서 이러한 논쟁이 어떤 논리적 흐름과 주창으로 전개되었고 그것이 현실 정책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가를 살펴볼 수만 있다면, 우리 사회의 논쟁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와 향후 전망까지도 가능케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영국에서 1960년대를 전후하여 일어난 보편주의(universalism) 대 선별주의(selectivism) 논쟁은 일정한 의의를 지닌다하겠다. 당시의 영국도 우리나라처럼 2차세계대전 직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복지국가의 구축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일어난 논쟁이란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지하다시피, 영국은 서구 복지국가의 원형을 제시한 국가라 할 수 있다. 비록 1880년대 독일의 비스마르크가 사회보험방식의 복지프로그램을 창안하였다고는 하지만, 일국의 시스템으로서의 복지국가에 대한 청사진과 그것에 대한 구현은 영국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 핵심은 1942년 발표된 W. Beveridge의 The Social Insurance and allied social service, 일명 베버리지보고서이며, 그 보고서의 핵심은 보편주의(universalism)에 있다. 베버리지 보고서의 보편주의에 입각한 정책들, 특히 사회보험, NHS, 그리고 가족수당 등은 1945년 총선에서 최초로 단독 집권에 성공한 노동당의 실천정책 목록 최상단에 기록된 것이었다. 노동당 정부는 1946년에 국민공공부조법(the National Assistance Act)와 국민보험법(the National Insurance Act)를 정하였고 1948sus 7월 4일 NHS를 시행하여 역사적인 날로 만들어나갔다. 그러나 2차대전 종전 후 영국의 경제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고, 특히 부족한 정부재정을 위해서는 미국으로부터 재원을 조달받는 상황이었기에 NHS 시행에 있어 치과에 대한 유료화 등을 시행하여 정부 내외의 반발에 직면하는 등 시련을 맞기도 했다.
그러나 1951년 임시 총선거에서 의외로 노동당이 보수당에게 정권을 내준 뒤 1964년까지 보수당이 집권하면서 영국 복지국가의 토대가 스웨덴과 같은 보편적 복지국가와는 전혀 다른 경로를 밟게 된다. 그런 가운데 1965년부터 1970년까지 다시 노동당이, 그리고 1970년에서 1974년까지 보수당, 그리고 1974-1979년까지 노동당 등으로 계속 집권정당이 바뀌는 이른바 swing 현상이 일어난다.
영국에서의 보편주의 대 선별주의 논쟁은 이러한 swing 현상과 무관하지 않았다. 즉, 양당체제에서 서로 집권 기회를 나누게 되는 상황이 정책에 대한 차별성과 선명성에 있어 경쟁을 격화시키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복지정책에 대한 노선이 핵심 이슈로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 노동당과 보수당 사이에 복지국가에 대한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되었다고 평가되었던 1950년대를 지나 1960년대에 이르러 각 진영 내의 근본주의자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내면서 보편주의와 선별주의논쟁이 본격화되었던 것이다.
사실 당시의 논쟁이 단지 학술적인 차원만이 아닌, 매우 격렬한 선정적 용어까지 등장하며 전개되었다. 이 논쟁이 1830년대 신빈곤법을 둘러싼 논쟁과 1906-11년 인민예산과 실업보험 도입을 둘러싼 자유당 논쟁의 계보를 잇는 것으로 판단한 레딘(Mike Reddin)의 다음과 같은 묘사에서 이를 알 수 있다.
보편주의와 선별주의 간의 좀 더 특별한 논쟁이 재개된 것은 국가나 공적 지출의 역할에 대하여 특수한 배경과 관련되어있다. 이 논쟁의 참여자들은 각자를 철딱서니없는 감상주의(jejune sentimentality)와 비열한 자유시장파들(mean-minded free-marketeers)라고 각기 상대를 공격하였다…. 이 주제에 대한 어떤 저술자들도 스스로 노여운 얼굴의 말다툼 이상으로, 그리고 관여된 주제에 대해 깨끗이 정돈된 마음 상태로 선언하고 있으며, …. 최대한 지적인 거만함으로 천명하고 있다(Reddin, 1969, p.12).”
당시 논쟁의 구도는 대개 세가지 진영으로 짜여져 있었다. 첫 번째 진영은 보편주의에 선 입장으로서 페이비안소사이어티(The Fabian Society)와 런던정경대학(The London School of Economics) 그룹에 연계된 자들로서 대표적인 논객은 티트무스(R. Titmuss), 아벨-스미스(B. Abel-Smith), 타운젠드(P. Townsend) 등이 있었다. 두 번째 진영은 경제문제연구소(The Institute of Economic Affairs)와 보수당 산하연구소인 보수주의정치센터(The Conservative Political Centre)에 관련된 인사들로 경제문제연구소를 만든 장본인인 셀던(A. Seldon), 발리엘경(Lord Balniel), 레딘 등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진영으로는 정치적인 연계없이 그들 스스로를 칭하는 명칭도 없이 정책비용이나 행정의 관점에서 의견을 피력해 나간 일병 ‘시민화된 선별주의자들(civilized selectivisits)로서 젠키스(R. Jenkins)가 대표적인 예이다(Hoshino, 1969, 246).
이 논쟁의 가장 기본적인 쟁점으로서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의 정의와 관련된 것을 보면, 우선 티트무스는 보편적 복지를 다양한 부작용을 유발하는 자산조사를 행하는 모든 제도로 보았지만, 아울러 개인별로 그들의 욕구에 대한 조사를 병행하는 제도까지 보편적 복지로 보았다. 그는 특히 자산에 기반하지 않고 욕구에 기반하는 선별적 복지가 많이 생기는 것을 개탄하기도 하였다.
개인의 자산(means)에 기반하지 않고 어떤 범주들, 집단이나 지역 등의 욕구(needs)에 기반하여 사회적 권리의 형태로 주어지는 선별적 서비스와 급여가 더욱 많아짐에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Titmuss, 1976, 114).”
특히 Titmuss 저서에 서문을 담당한 아벨-스미스에 의하면 아주 단정적이고 명쾌하게 언급되고 있다.
티트무스가 이러한[괄목할만한 자유재량의] 능력 하에 정책을 구성하는 데에 참여하고 선택적 서비스를 수행하는 데에 있어 부딪히는 수많은 실제적인 문제들에 관여한 것은 현금이 어디까지 (욕구에 대한 조사없이) 보편적으로 주어져야하는 지, 그리고 (소득, 재산 또는 욕구 등에 종속되어) 선별적으로 어디까지 주어져야 하는 지에 대한 전세계의 논란에 대한 그의 관점을 날카롭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Abel-Smith, 1976, 6).”(괄호는 원저자, 밑줄은 인용자)
티트무스의 연구조교였던 레딘은 “원칙적으로 말하면 보편적 급여는 없다”(Reddin, 1969, p. 13)고 단정적으로 말하면서 어떤 급여도 기여정도, 가입기간, 성별, 주거조건 등등을 따지게 되어있다고 이유를 들고 있다. 심지어 1파운드를 누구에게나 나누어주어도 그 가치에게는 다르므로 협의의 개념에 입각한 보편적 복지는 없다고 말하면서 한발 더 나아가 그는 “어떤 급여체계에서 한편으론 선택적 급여가 확장되느냐 줄어드느냐, 또 다른 한편으론 보편적 급여가 확장되느냐 줄어드느냐”(Reddin, 1969, p. 14)하는 두 개의 전제가 가능하고 결국 절대적으로 정의되기 보다는 상대적으로 정의된다는 입장까지 보이고 있다.
그러나 타운젠드는 이들과는 다른 정의를 선보이고 있다. 즉, 그에 의하면
“사회정책에 있어 보편주의란 소득(income)에 상관없이 전체 인구에게 또는 그중 어느 한 집단에 서비스나 급여를 할당하는 원칙이다(Townsend, 1972, 3).”
라고 명쾌하게 자산조사방식 유무를 그 기준으로 제시한다. 또한 이러한 보편주의가 적용된 시기는 1905-1911년 자유당(the Liberal Party) 시절의 행정부 개혁, 1942-48년 2차대전의 경험 시기, 그리고 1966-1972년 노동당 집권시절로 보고 있으며, 반면 1960년대 초와 1970년대 초 보수당의 집권 시절 1950년대 경제침체를 계기로 급격히 선별주의로 기울었다고 판단하고 있다(Townsend, 1972, 4).
이렇게 볼 때 보편적 복지의 초기 주창자들이 모두 각기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매우 놀라운 발견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현상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티트무스 스스로 보편적 복지서비스의 전형으로 은퇴연금, NHS, 실업보험, 그리고 학교급식서비스 등의 4가지를 직접 거론하는 것에서(Titmuss, 1976, 130), 실질적으로는 인구집단별, 욕구별 판단에 따른 급여보다는 자산조사 유무가 핵심적인 기준인 것을 내비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당시 논쟁의 가장 핵심 중 하나가 소득조사에서 오는 낙인감 유무였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하겠다. 또 다른 하나는 선별적 복지의 주창자들은 분명하게 소득 등 자산조사 방식을 기준으로 하는 측면이 역력하다. Seldon(1967)은 빈곤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산조사가 가계를 파괴한다는 반대진영의 주장에 반박하면서
“선별주의 원칙은 소득이 오르고 각종 영감이 증진될 때 작동하는 유일한 것이다….. 그것은 1930년대에 자행되어 가족을 해체시켰던 ‘가구자산조사(Household Means Test)’ 방식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자산은 비개별적인 주기적 소득 기록으로 식별할 수 있다(Seldon, 1967, 58).”
라고 밝히고 있다.
Seldon은 이어서 논쟁의 핵심 가운데 하나인 급여의 무상여부에 대한 비판을 서슴치 않는다. 그는 보편적 복지의 핵심을 한편으론 ‘모두에게 무상으로(free-for-all)’라고 언명하는가 하면(Seldon & Gray, 1967, 68), 다른 한편으론 복지국가의 무상성(無償性)(“free”-dom of welfare state)이란 조어를 선보이며 이런 무상급여가 얼마나 많은 문제점을 유발하는지를 장황히 나열하고 있다. 특히 교육과 건강, 주택, 연금 등에 대해 “무상이거나 무상일 수 있다는 신념(Seldon, 1967, p.56)”에 기초하였다고 비판하고 이러한 신화의 악마적인 영향력은 경제학 1학년에 공통교과에 나올 법한 이야기로서 무상공급은 수요를 폭발적으로 늘리고 공급은 중단시키면서 공급부족과 긴 줄, 공무원들의 거만함과 재량, 선거에 민감한 의료부문에 대한 집중 등 수많은 문제점으로 나타난다고 언급하였다(Seldon, 1967, 57).
그러나 무상서비스의 경우, 당시 보편적 복지의 옹호자들에겐 매우 중요한 원칙으로 삼아질 수밖에 없었다. 1948년 NHS의 시행을 앞두고 이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완전무상이 되지 못하고 치과서비스와 조제 두가지 부분에 대해 요금을 부과(charge)하는 것으로 결론지어지자 당시의 보건부장관이자 전후 보편적 복지정책을 이끌어온 베번(A. Bevan)이 사퇴하는 등의 뼈아픈 역사가 이후 오랫동안 ‘무상’의 개념을 버리지 못하게 했다. 그 증거는 논쟁이 진행 중인 1967년, 당시 노동당 집권 시절 무임소장관(minister without portfolio)였던 휴톤(Douglas Houghton)이 경제문제연구소(IEA)에서 행한 연설에서 요금부과를 주창하여 파란을 일으킨 것에서도 입증되고 있다. Houghton(1967)은 소득세 부과방식의 자산조사를 여러 가지 사회적 목적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병원치료에 대한 것은 물론 학교급식, 사회서비스, 집세 등에 폭넓게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60, 70년대에 걸친 논쟁은 대처정부의 등장으로 급속히 복지국가의 동력이 떨어진 영국 복지국가의 후퇴 국면과 맞물려 양 진영 간의 승패를 가리기는 어렵게 끝났지만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에 대한 논쟁의 기원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적지 않다.
영국의 보편적 복지논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런 보편적 복지 논쟁이 복지국가의 초기 단계에서 거칠 수 있는 매우 당연한 과정이라는 점이다. 물론 모든 국가가 이런 논쟁의 지점을 통과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보수당과 진보당의 양 진영이 팽팽한 긴장관계 속에 정권획득 기회를 양분하고 있는 지점에서는 이 논쟁만큼 극명하게 자신들의 입장을 밝힐 수 있는 소재는 없기에 이 논쟁이 발발이 필연적인 측면이 있다. 이는 유사한 정치적 조건과 복지국가 단계를 보이고 있는 현재의 한국에서 이런 논쟁의 단계를 거치는 것이 필연적임을 시사한다.
둘째, 보편적 복지에서 무상성에 대한 논쟁 역시 초기 복지국가의 담대한 진전을 위해 무상급여를 주창하는 단계에서 제기된다는 점이다. 영국의 경우 신구빈법 이후 공공부조에서 오는 심각한 낙인감을 떨치기 위해, 그리고 노동당의 최초 집권에 따른 획기적인 복지국가로의 도약 의도에 의해 NHS와 같은 무상급여를 실현하게 되었고 그에 대한 반동으로 보편적 복지 논쟁에 휩쌓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역시 한국의 저급한 복지수준과 복지인식에 대하여 국민적 체감도를 단기간에 제고하기 위해 ‘무상’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은 나름대로의 의의가 있고 영국의 경우에도 이같은 현상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셋째, 그러나 영국의 경우 이 논쟁의 시기가 지난 뒤 대처시대가 개막되고 신자유주의 또는 잔여주의의 기조에 입각한 복지정책이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보편적 복지 논쟁에서 적어도 현실정치는 패퇴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보편적 복지는 이념이나 철학면에서 대중들이 이해하고 설득되기엔 어려운 측면이 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 아닌가 냉정히 인정할 필요가 있다. 결국 보편적 복지는 현실에서 대중이 그 정책의 효과를 얼마나 인식하고 인정하느냐하는 ‘체감의 시기’가 오지 않는 한 이론적, 이념적 논쟁의 장에서 갖는 한계가 크다는 것이며, 특히 한국과 같이 오랜 기간 성장지상주의와 효율성이란 가치기준에 탐닉(?)되어온 사회에선 논쟁을 통한 설득과 승리감을 맞보긴 어렵다고 볼 수 있다.
한국 보편적 복지 논쟁의 검토 지점
보편적 복지 대 선별주의의 개념 재정립
안토넨과 스필라는 보편주의를 둘러싼 수많은 과학적인 접근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개념에 대한 정의나 결론에 대해 폭넓게 받아들여지는 것을 정립하지는 못했다(Anttonen & Spilἂ, 2009)고 단언할 정도로 보편적 복지에 대한 개념 정의는 쉽지 않다. 이들에 의하면 원래 보편주의란 제도주의(institutionalism) 안의 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티트무스와 에스핑-안델슨을 거치면서 그 요소만이 부각되고 현재엔 제도주의보다 보편주의가 더 폭넓게 쓰여진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그들에 의하면, 보편주의는 첫째, 정부의 관심사로서의 보편주의, 둘쨰, 경제적 평등과 국민통합을 위한 정책으로서의 보편주의, 셋째, 복지국가체제와 관련한 보편주의, 넷째, 사회적 급여의 본성과 관련한 보편주의 등 네가지의 차원이 혼용되고 있다고 간파하고도 있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한국의 보편주의 논쟁을 위해 적어도 개념적 혼란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면 우린 보편적 복지의 개념에 대해 몇가지 원칙을 세울 필요가 있다. 이제까지 서구에서 그리고 한국사회에서 주창한 논자들의 주장을 참고로 할 때 필자가 주장하고픈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일반적으로 정책으로서의 보편적 복지는 길버트가 말하는 정책의 4가지 차원, 즉 할당, 급여, 전달체계, 재원에서 할당과 관련된 용어라는 점이다. 따라서 특히 소득수준에 따라 급여의 자격을 박탈하느냐, 아니면 관계없이 폭넓게 그 자격이 주어지느냐는 점이 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의 구분을 낳는 매우 중요한 기준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급여의 수준, 즉 무상이냐 아니냐, 높으냐 낮으냐, 균등이냐 차등이냐 등은 이들을 가르는 핵심 기준이 아니라는 점이다. 심지어 기여 유무, 기여정도에 따른 차등급여 유무 등도 중요한 기준이 아님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아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자격부여, 급여수준, 비용 지불방식이란 세가지 요소를 놓고 현재의 복지급여를 위치지어 볼 때, 보편적 복지의 범주에는 매우 많은 것들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정책으로서의 보편적 복지와 복지체제의 특성으로서의 보편주의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앞에서 안토넨과 스필라가 주장한 것처럼 현재 제도주의와 보편주의가 거의 동일하게 사용됨에 따라 보편적 복지정책과 선별적 복지정책의 혼합물로서 구성된 보편주의적 복지국가와의 차이를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는 오류가 발생한다. 즉 보편주의적 복지국가 또는 제도주의적 복지국가 안에 보편적 복지정책들이 주를 이루고 부분적으로 선별적 복지정책들이 활용되는 상황이 얼마든지 가능함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두 번째 원칙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지만 보편적 복지의 핵심은 형태적으로 어떤 자격기준을 부여하느냐하는 것을 넘어, 그 정책이나 체제의 근본원리가 복지의 시민권적 속성을 인정하고 사회적 연대나 평등의 이념을 얼마나 그 근간으로 삼느냐가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현상적인 차이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철학과 가치, 이념에 얼마나 기초하느냐에 초점을 맞추는 접근도 매우 의미있을 것이다.
무상복지에 대한 개념적 이해
앞의 표에서 보았던 바와 같이 무상복지는 많은 보편적 복지정책 중 하나의 정책영역에 해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무상복지가 보편적 복지의 유일한 또는 실행방식이라는 집단적 착각을 시정하는 것이 우선 매우 긴요하다.
물론 무상복지만이 보편적 복지가 아니라는 사실이 논쟁의 혼란스런 지점을 모두 해소시켜 주는 것은 아니다. 무상복지는 공짜복지라는 주장이나 무상복지는 인간의 의존성 저하와 근로의욕 감퇴를 가져오고 재원의 한계에 곧 봉착한다는 지적은 그것대로 대응해야만 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러한 명확한 이해는 보편적 복지의 원리적 타당성과 정책적 우월성을 담보하기 위해 무상복지를 향한 수많은 공격과 의구심까지 떠맡아야하는 ‘과중한 방어력’의 요구에서부터 일정정도 벗어날 수는 있게 해준다는 잇점이 존재한다.
보편적 복지 논쟁 2라운드의 전략적 선택
이제까지의 논의를 돌이켜 보면, 저복지의 한국사회에서 복지체감도와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선 무상복지를 전면에 내세운 복지담론은 부분적으로 긍정적 역할을 지니고 있었다(예, 2002년 대선에서 민노당의 권영길후보가 내세운 ‘무상시리즈’가 그로부터 불과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복지국가 논쟁에서 당당히 주요 의제로 내세워지고 부분적으로 현실화되었다는 점은 무상복지가 지닌 파괴력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우리사회의 경제적, 사회적 위기가 심화될수록 반대로 그의 해결에 대한 대중의 욕구가 팽배함에 따라 부담없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무상복지의 수용력이 상당히 컸음이 사실이다.
그러나 일정정도 무상복지를 통한 학습효과가 진행된 상태에서 ‘보편복지 = 무상복지 = 공짜복지’라는 등식이 계속될 경우 무상복지가 숙명처럼 지니고 있는 재원조달의 부담감 및 과잉 급여의 가능성 등에 대한 논리적 방어에서 대중들의 동의를 얻어내기 매우 어려운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이러한 수세적 입장에서 서면 보편적 복지가 희화화되고 그 실현가능성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커지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제 복지국가논쟁의 2라운드에서는 비록 사회적으로 매우 시급하고 대중의 지출이 부담요인으로 작용하는 한정분야에서 무상복지를 활용하더라도, 주장의 주안점은 무상복지 대신 비용의 차등적 부담이 동반되는 보편적 복지가 되는 단계로 접어들어야 할 것이다.
보편적 복지는 할당의 원칙이지 비용부담이나 급여수준의 원칙이 아님에 대한 대중적 이해 도모하고, 보편적 복지는 시민권과 집단주의(collectivism)라는 성숙한 이념에 기초하여 더 좋은 사회를 지향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전달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가 사회적으로 더 큰 효과를 가져온다는 결과를 중심으로 사회적 논의를 유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런 과정에 서구에선 무상급식에 해당하는 free meal이나 무상의료인 NHS정도에만 사용되는 ‘무상(free)’이란 용어 대신 의무, 국가책임, 보편이란 용어 등을 활용하여 대중들의 오해를 더는 쪽의 전략적 용어선택도 고민해 보아야 할 때이다.
월간 <복지동향> 2015년 01월호(제1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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