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先)조세정의, 후(後) 보편증세라는 단계적 전략이 필요하다
이태수 ㅣ 꽃동네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
증세 논쟁 국면에 응하는 진보진영의 자세
최근 ‘증세없이 복지없다’는 당연한 명제가 정치권과 언론을 통해 회자되면서 복지국가를 구축함에 있어 재원 확보를 위한 전략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이러한 국면에서 이에 반응하는 우리 사회 내의 양태도 다양하다.
복지혜택을 더 받으려면, 그것도 중산층까지 포함된 보편적 복지를 원하면 세금을 더 내야하는데 그럴 자신이나 맘이 있느냐는 식으로 국민을 겁박하는 보수 정객 및 보수 정권을 굳이 여기서 거론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진보진영에서의 반응 또는 주창하는 전략이 다양하지 않을 수 없다. 차제에 정면으로 국민들에게 보편적 증세를 주장하자는 견해부터 증세를 정면으로 주장하는 데에 대한 부담감을 우회하기 위해 ‘중부담-중복지’와 같은 견해를 주장하기도 한다.
다시 확인컨대, 분명한 것은 복지국가로 가기 위해 증세는 필연적이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 증세의 내용과 정도를 어디까지 내세울 것인가는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이미 확인하고 있지만 한국인에게, 특히 봉급생활자에게 각인된 일종의 조세저항은 여타 국가의 국민들이 갖는 그것과는 결코 같지 않다. 오랜 기간 독재정부에 대해 가졌던 불신, 여전히 지금도 공무원에 대해 느끼고 있는 ‘철밥그릇 지킴이’라는 인식, 세금은 내지만 그에 상응하여 느껴지지 않는 직접적 혜택, 그리고 무엇보다 조세형평성의 파탄에 대한 절절한 인식,,,,, 등등이 한국인이 갖는 조세저항의 역사적 연원이다.
증세는 계몽에 의해 돌파할 수 있지 않다. 증세는 그 당사자인 국민들의 생각과 정서, 반응과 교감하며 지혜롭게 돌파해야 하는 난제이며, 현재 국면에 대한 냉정한 판단과 전략적 선택지에 대한 분석을 동반해야 하는 숙제이다. 그렇다고 마냥 증세에 대해 수세적이이고 위축된 모습으로 일관하자는 것은 아니다. 증세를 위한 역사적 모멘텀은 오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그 모멘텀은 막연한 낙관주의나 계몽주의로 오지 않는다. 대중을 믿지만, 대중의 정서를 주관에 의해 오판하지 않는 냉철한 판단력이 있을 때 그 모멘텀은 결정적 기회로 다가올 수 있다. 현재가 그 모멘텀인가? 우리는 이것에 대해 먼저 판단할 필요가 있다.
현재는 진보진영이 집권한 국면이 아니다. 진보진영은 현 집권세력이 증세를 하지 않고도 복지를 하겠다던 대선의 약속을 위배한 것을 고발하고, 그러면서도 담배세 인상과 연말정산파동에서 보듯 은근슬쩍 증세를 행하는 이중성을 질타할 수 있다. 그렇다고 여기서 더 나아가 적극적 증세만이 복지국가를 만드는 것이기에 전국민에게 증세를 요구하는 카드를 불쑥 내놓을 수는 없다. 대중은 복지에 대해 갈급함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낼 만큼의 상황이라 인식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 국면에서는 한발짝만 대중의 정서를 앞선다는 심정으로 지금 할 수도 있는 각종 조세정의를 확립하는 방안 정도를 제시하는 것이 옳다. 그 이상을 넘어서는 주장은 대중을 돌려세우는 모험주의의 산물일 수 있다.
그렇다면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인의 복지와 증세에 대한 인식을 기초로 할 때 부자증세를 통한 조세정의를 확립하는 것이 1차 전략이 되어야 하며, 소위 ‘보편적 증세’를 통한 전면적인 증세는 적절한 조건과 상황이 도래한 시점에서 선택할 2차 전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단중기적인 시점에서 우리가 실현하고자하는 핵심 복지정책을 추진하는 데에 필요한 재원 마련은 과세기반을 확충하고 재정지출구조를 바꾸며 무엇보다 부자증세를 실현함으로써도 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기에, 보편적 증세까지 진보진영이 목소리를 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연간 40조 확보의 가능성이 있다면?
단기적으로 한해 40조원을 확보할 수 있다면?
아마도 차기 정권이 진보진영에 의해 운영된다고 해도 복지분야에 40조원 정도가 투여된다면 단중기적으로 할 수 있는 복지급여의 상당부분이 충족될 수 있으며 이를 토대로 또 다른 과감한 비전을 제시하고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40조원의 확보가 가능한가?
과세기반을 확충하고 재정지출구조를 바꾸며 부자증세를 행함으로써 조세정의를 확보하는 과정에 이것이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구체적으로 이를 세분화하면
– 조세정의를 제고하기 위한 과세기반 확대
– 경제민주화의 일환으로 초대기업에 대한 ‘상생세’ 도입
– 토건지출과 재정낭비에 대한 엄격한 통제
– 조세정의의 일환으로 부자 증세
– 사회보험 강화를 위한 보험재정 확충
등이 그 방법이다.
이 국면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국민들의 조세정의와 복지확대에 대한 체감도에 따라 소득세율 및 부가가치세율 등 보편적 증세 전략으로 전환하는 중장기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그러나 단중기전략을 거치지 않는 중장기전략은 전략적 성공가능성이 낮다.
그렇다면 연간 40조원의 확보 방안은 무엇인가?
일련의 계산에 따르면, 감세정책의 부분 철회 및 추가적인 부자증세, 조세기반의 확충으로 조세부담율을 1.5%포인트만 상승시키면 20조원의 추가재원이 확보되며, 토건지출 상한제 및 건강보험 지출절감 등을 통해 정부재정지출의 5% 포인트만 줄여도 다시 20조원이 확보될 수 있다. 이상을 간단히 정리하면 아래 표와 같다.
조세감면제도의 정비(조세감면액 GDP 비중 2.9% → 2%)
2009년 조세지출예산서에 따르면 조세지출액은 31조 6천억원으로서 참여정부 시기인 ’07년의 21조원에 비해 10조원이 증가하였다. 조세지출 규모는 GDP의 2.9%에 해당하므로 이를 2%로 낮출 수 있다. 특히 조세감면액 중 취약계층을 위한 것은 5.3%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역진적이어서 재분배효과는 무엇보다 크다. 법정 사항인 직전 3개년도 조세지출 평균 증가율 5% 준수를 최소한 엄수하도록 하고, 적극적으로는 일몰제 시행하는 것이 구체적인 실현수단이 되겠다.
또한 대기업에 대한 비과세, 소득공제 등의 축소 내지 폐지도 하나의 방안이다. 과세표준 1,000억 원을 초과하는 대기업에 대해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제도」의 적용을 제외하며, 과세표준 1000억 원 이하의 기업에 대해서는 기본공제를 축소하고 고용증대에 따른 공제혜택을 확대한다. 이로써 10조원의 세수 증대 가능하다.
고소득 자영자 소득파악
임대소득 등 고소득층의 탈루소득에 대한 집중적인 발굴도 국민들이 조세정의에 대한 의구심을 해소하는 데에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이다. 지하경제 양성화 대책을 통해 현재 GDP의 17%에서 이를 10%대로 축소하는 것이야말로 ‘소득있는 곳에 과세있다’는 재정의 제1원리를 구현하는 일이면서 증세효과를 주는 관건이 되는 작업이다.
대기업 특혜 조정
법인세 조정를 조정하여 100억 이상 세율 3%포인트 인상, 1000억 이상 세율 5%포인트를 인상할 수 있다. 물론 과세표준 2억원 이하의 기업은 10%, 100억원 이하의 기업은 22% 그대로 유지하여도 좋다.
과세표준 100억 원 초과 1,000억 원 이하까지의 기업은 2009년 기준 1,393개사였고, 전체 법인의 0.33%에 불과하지만 이로부터 확보하는 재원규모는 적지않다. 이들에 대해 이명박 정부 들어 이루어진 감세를 철회하여 2008년 당시의 세율인 25%를 적용할 수 있다. 또한 과세표준 1,000억 원을 초과하는 대기업(2009년 기준 190개로 전체 법인의 0.045%)에 대해서는 27% 세율의 최고구간을 신설할 수 있다. 이 방법이 제대로 정착되면 연간 17조원의 증세효과가 있다.
부유층에 대한 증세
전체 근로소득자의 0.28%, 전체 자영업자의 1.5%에 해당하는 과세표준 1억 2천만 원 이상의 고소득자에 대해 3억원을 중심으로 구간을 나누어 각기 40%, 45%세율을 부과하며, 연간 8800만원-1억2천까지는 현행 35%를 유지하는 등의 방안을 도입할 수 있다. 이는 연간 7천억정도의 증세효과가 있다.
상장주식/파생금융상품 양도소득세 부과
현재 대주주(회사 지분율 3%이상)인 경우만 양도소득세를 내고 일반 소액주주는 거래세만을 부과하며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게 되어있으나 주식 등과 파생상품에 대한 양도소득기본공제를 연 3000만원으로 하고 이를 초과할 경우 양도소득세를 부과해 보자. 주식 등과 파생상품에 대한 세율은 종합소득양도세율과 동일하게 하고, 다만 대주주(중소기업대주주포함)가 1년 미만 보유 주식을 양도하는 경우에는 40%의 세율을 적용하는 방안이 도입 가능하다.
파생금융상품에 대한 거래세 부과
우리나라의 파생상품규모는 2010년 세계 6위에 해당하고, 옵션시장규모는 세계 1위이지만 파생상품에는 거래세조차 부과되고 있지 않다. 파생상품에 대해 10,000분의 1로 하고 선물인 경우는 약정금액, 옵션일 경우는 거래금액으로 할 수 있다.
사회보험지출 통제
건강보험지출의 강력한 통제가 대표적인 예이다. 현재 30조원에 이르는 건보재정 중 약가 및 진료비 중 과다한 재정지출의 요인이 되는 것을 통제하기 위해 약가계약제, 포괄수가제 등을 적극 도입하고 국공립병원의 비중을 30%까지 끌어올린다. 고용보험 상의 직업훈련 비효율적 지출 등 여타 사회보험의 지출 절감도 시행가능하다.
토건지출 통제를 위한 납세자소송제 도입
우리나라의 현행 국가재정법 제100조(예산, 기금의 불법지출에 대한 국민감시) 조항의 현실화를 통해 예산 절감이 가능한 부분이 있다. 특히 적극적으로 납세자소송법(국민소송법)을 제정하여 사기성정책이나 낭비성재정지출(예, 4대강 담합)에 대한 납세자 소송이 가능하도록 한다.
토건지출 총량규제
정부예산분류방식을 ‘부처 사업볍 × 예산성격별’로 재분류하는 소위 ‘매트릭스제’를 추가로 도입하여 토건지출에 대한 총투여분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한다. 매트릭스방식에 의한 정부예산 유형을 구분할 수 있음을 전제로 토건성 총지출의 정부 지출 내 비중을 6-7%로 규제하고 지자체에 대한 토건예산의 지출통제도 필요하므로 지자체에 대한 페널티와 사람예산 인센티브제를 강구하도록 한다.
예비타당성조사의 개선
예비타당성센터를 현재 KDI 부설기관으로 하기 보다는 독립하고 복수화하여 토건성지출에 대한 엄밀한 타당성과 예산효율성을 엄격히 조사토록 한다.
국민의 정서에 한 발짝만 앞서가는 증세전략의 유효성
이 전략은 보수정권 하에서 국민을 우군으로 세워 압박하는 수단으로서 의의를 지닌다. 만일 진보진영이 전면적 증세를 내걸고 부가가치세 인상, 직접세율 인상의 카드를 꺼내는 순간 진보진영은 보수정권을 몰아부칠 수는 있으나 국민의 대다수를 잃게 된다. 그러나 국민이 납득하고 동의하는 전략으로 국민과 함께 정부를 압박할 수 있다면 그 전략을 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조세기반을 늘리고, 재정지출을 바꾸며 부유층과 기업에게 더 걷는 세가지 전략을 통해 조세정의를 확립하자는 주장은 국민도 얻고 정부도 압박하여 현 단계에서 거둘 수 있는 최대한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사회복지목적세를 결합하여 새로이 증가되는 세원은 분명히 복지를 위해 쓰자는 전략 또한 가능하다.
결론적으로, “증세는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국면은 조세정의를 통한 증세를 택할 시점이다.”
월간 <복지동향> 2015년 03월호(제1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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