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3 2023-06-01   6875

[복지칼럼] 혼합진료라는 괴물

정형준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부위원장

‘혼합진료’ 라고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아마도 진료중에 무슨 약이나 기계를 혼합하는 건지 질문하고 싶은 분들이 많을 것이다. 실제 이 단어의 생소함과는 별개로 우리는 이미 ‘혼합진료’에 노출되어 있다. 보건의료제도영역에서 말하는 ‘혼합진료’란 건강보험진료(요양급여진료)와 그렇지 않은 진료(비급여)를 섞어서 제공하는 것을 뜻한다.

혼합진료란 단어는 일본에서 유래했다. 일본은 건강보험 내 진료와 그 외 진료를 동시에 제공하는 걸 엄격하게 금지해 이를 ‘혼합진료금지’ 조항으로 가지고 있다. 혼합진료금지 때문에 일본에서는 급여진료에 비급여진료가 하나라도 포함이 되면, 진료비 전액을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일은 실제로 일본에서 자주 벌어지지 않는다. 애초에 급여범위가 넓고, 비용효과가 떨어지는 비급여는 분리시켜야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기 때문이다. 즉, 일본의 필수적 의료서비스는 대부분 전액 건강보험제도 내에서 수행하고, 한국의 피부미용공급 같은 선택적인 치료는 모두 건강보험제도 밖에서 시행한다. 덕분에 일본은 OECD 국가 중에서도 매우 높은 건강보험보장성을 유지한다. 2019년 기준으로 한국은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총 61% 수준으로, 입원 67%, 외래 57%, 치과 39%, 약제 58% 이지만, 일본은 비슷한 지불 제도와 의료 제도의 경로를 가졌음에도 총 84%, 입원 92%, 외래 85%, 치과 79%, 약제 72%로 보장성이 매우 높다. (OECD 평균은 입원 87%)

일본을 제외한 주요 선진국에서도 사회보험제도를 운영하는 국가들은 요양급여범위를 벗어나는 비용을 받는다던가, 요양급여 외의 시술이나 약품을 쓰고 비용을 환자에게 받아선 안된다. 추가로 받을 수 있는 내용은 잔액청구(ballance billing)로 규정되고 프랑스나 캐나다 일부 지역에서만 일부 허용된다. 대다수 선진국들에서는 보험이 규정하는 진료를 하거나 약품을 쓸 때 그 범위 외의 것들은 할 수가 없거나 비용을 받지 못하게 못하게 한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보건의료공급의 정보불균등성 때문이다.

보건의료 부분에서는 공급자가 압도적으로 우세한 정보력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진료실에서 의사가 하라는 검사와 처치를 판단해 선택할 수 있는 환자들은 거의 없다. 의사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니면 전문과목의 의사들이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의료전문가들 만큼 공부하고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가 의료 공급자의 면허를 발급하고 이들의 수준을 관리한다.

추가로 근거가 미약하고, 비용효과가 떨어지는 행위나 치료 재료, 약재 등을 사용하는지 판단해줄 공공 기준도 필요하다. 이것이 주요국가들에서는 신의료기술평가와 건강보험의 요양급여범위로 규정된다. 따라서 대부분의 국가에서 요양보험의 범위를 정하는 것은 환자와 국민들의 선의의 대리인으로써 보편적 건강보장을 위한 범위를 설정하는 것과 같다. 이 범위 밖의 의료 행위나 약재 사용은 선택적으로 할 수 있으나, 당국의 상황에서 비추어 개인이 전액 선택하는 식으로 ‘선택’영역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선택의 영역(비급여)과 건강보장의 영역(급여)이 섞인다면 어떻게 될까? 우선 의료공급의 보편성이 크게 훼손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보편성’이란 우리가 내는 보험료로 운영되는 건강보험제도에서 경제적부담능력에 상관없이 동등한 치료를 받아야 된다는 개념이다. 비급여진료를 섞을 수 있다면, 누군가는 재정여력이 있어 이를 선택하고, 누군가는 재정여력이 없어 이를 선택할 수 없는 차별이 가중된다. 특히 비급여를 필수적인 의료서비스에 섞는다면 그 차별과 불평등성이 가중되고 보편적 건강보장 원리에는 심각한 타격을 준다.

더하여 개인이 부담하는 의료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의료공급자들이 비급여로 더 많은 수입을 얻으려고 하는 만큼, 환자 개개인은 이를 거절하거나 선택할 여력이 없어 따라갈 수 밖에 없다. 이는 부당하게 환자들의 부담이 늘어나는 걸 제도적으로 막지 못하게 한다. 최근 실손민영보험시장의 확대는 이런 부당한 선택 영역의 확대에 기인했다. 이는 국민의료비를 광폭으로 늘리고, 급여진료의 내실화는 가로막는다.
마지막으로 이런 식의 비급여와 급여 혼용은 의료공급자들이 유효성이 확인되지 않은 진료를 선호하게 만든다. 이 부분이 어찌 보면 진정한 문제라 할 수 있는데, 보편적 의료 보장과 관련되어 환자들의 부담을 고려하고, 근거가 명확한 진료를 선호하지 못하는 것은 의료공급자들의 도덕적 타락을 부추기게 된다.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에서 의사들은 근거가 있는 새로운 의료기술의 빠른 급여화를 요구하지만, 한국은 수익성이 높은 비급여에 명확한 근거가 있어도 의료공급자들이 급여화를 선호하지 않는다. 이를 단순히 비급여로 수익을 창출해 온 경제적 이유 때문이라고 합리화 해선 곤란하다. 제도로 경제적 문제의 합리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한국에서도 애초에 혼합 진료가 금지되어 급여 진료로 필수적 의료서비스를 공급하는 의사들이 대다수였다면 상황은 지금과 같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혼합진료는 보상 수준이 낮은 급여와 보상 수준이 높은 비급여의 혼용으로 비급여가 많은 진료과목의 성행까지 방조했다. 그 결과 현재 비급여진료가 적은 소아청소년과의 상대적 취약성으로 진료체계 붕괴까지 촉발되었다. 만약 혼합진료가 불허 된다면, 급여 법위의 적정 보상이 제대로 논의될 수 있다. 그리고 급여진료를 중심으로 하는 의료공급자와 영리적 선택적 진료를 중심으로 하는 의료공급자도 분리될 수 있다. 의료공급자의 분리는 결국 환자와 국민들의 진정한 선택권을 보장하는 길이기도 하다. 때문에 혼합진료를 계속 허용하는 것은 한국의 건강보장제도 속에 괴물을 방치하는 것과 같다. 실손민영보험의 확대와 비급여 진료를 중심에 둔 의료공급자들의 확대도 이 혼합진료 허용에서 시작했다.
더구나 한국 건강보험제도의 핵심 개혁과제였던 건강보험상한제 도입의 실효성이 없는 이유도 비급여 혼용 때문이다. 혼합진료가 허용되어 실효성 있는 상한제가 작동하지 못한다. 지불 제도 개편의 효과가 상쇄되는 것도 비급여혼용때문이다. 포괄수가제에도 비급여 재료 등이 추가될 수 있어 포괄수가제 도입의 효과는 매우 떨어진다. 때문에 가장 우선되는 개혁과제도 비급여를 섞을 수 있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마땅하다.

이제 한국도 선진국이라고 한다면 OECD 평균 수준의 건강보험 보장성을 달성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제일 먼저 비급여와 급여를 섞어서 진료할 수 있는 혼합진료부터 손봐야 한다. 1978년 직장건강보험 당시 협소한 재정 규모로 가입 대상도 제한하고, 나라가 돈이 없어 약품이나 의료 행위도 모두 요양급여 대상으로 하지 못한 결과 수많은 비급여가 방치됐다. 이 비급여는 보험이 통제하지 못했고, 혼합해서 진료를 하는 것도 일상처럼 방조할 수 밖에 없었다. 건강보험제도 도입 시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결과는 매우 크다. 하지만 이제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 먹고살만한 나라가 되었다면 보편적 건강 보장을 위한 첫 번째 개혁 과제는 혼합진료를 금지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월간 <복지동향> 2023년 6월호(제2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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