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3 2023-06-01   3606

[동향2] 우리의 마지막은 존엄할 수 있을까?

김민석 나눔과나눔 팀장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무연고 사망자’

‘무연고 사망자’의 증가 추세가 심상치 않다. 서울시의 경우 2020년 665명, 2021년 856명, 2022년 1,072명으로 매년 200명 가량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전국의 통계도 별반 다를 바 없는 상황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무연고 사망자’통계는 한 해에 4천명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추정되는 원인에 대해 언급하기 전에 ‘무연고 사망자’의 정의가 무엇인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심지어 언론까지도 ‘무연고 사망자’와 고독사를 혼용해서 사용하기 때문이다.

‘무연고 사망자’와 고독사는 어떻게 다른가?

사망자의 앞에 ‘무연고’라는 단서가 붙는 이유는 세가지다. 연고자가 없는 경우, 연고자를 알 수 없는 경우, 연고자가 있으나 시신 인수를 거부 또는 기피하는 경우. 차근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연고자가 없는 경우는 말 그대로 가족관계증명서, 혼인관계증명서, 제적등본 상 확인되는 연고자가 없는 경우다. 고인은 가정을 꾸리지 않은 고아일 수도 있고, 북한이탈주민일 수도 있다. 최근에는 오래 살았기 때문에 ‘무연고 사망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손주들 보다 오래 산 백세 노인이 있었다. 가족 중 마지막까지 생존해있던 노인은 사망과 동시에 결국 ‘무연고 사망자’가 되고 말았다.

연고자를 알 수 없는 경우는 백골로 발견되었거나, 시신의 부패상태가 너무 심하거나, 주민등록번호가 조회되지 않아서 등, 여러 이유로 고인의 신원을 특정짓지 못했다는 뜻이다. 고인의 신원을 특정짓지 못한다면 당연히 연고자 조회도 불가능하다.연고자가 있으나 시신 인수를 거부 또는 기피하는 경우는 말 그대로다. 고인의 연고자를 조회해 시신 인수 여부를 묻는 공문을 보냈으나 경제적 어려움, 관계 단절 등의 이유로 위임서를 쓰거나 회신을 하지 않는 경우다. 이는 전체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사실상 거의 대부분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처럼 ‘무연고 사망자’의 정의가 사망 이후 시신을 인수할 연고자의 존재 여부에 방점이 있다면, 고독사는 고인의 임종의 순간과 생전의 고립에 방점이 찍혀 있다.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고독사 예방법’)에 따르면 ‘고독사’란 가족, 친척 등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홀로 사는 사람이 자살ㆍ병사 등으로 혼자 임종을 맞고, 시신이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 발견되는 죽음(고독사 예방법 제2조)을 말한다. 쉽게 말해 고립된 채 홀로 사는 사람이 홀로 임종을 맞이하고, 일정 시간이 흘러 시신이 부패 했다면 고독사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연고자가 나타나 시신을 인수해 직접 장례를 치른다면 ‘무연고 사망자’는 아닌 것이다. 즉, ‘무연고 사망자’와 고독사는 교집합을 지니긴 했으나 개념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등식부호가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상식과 다른 ‘장례를 치를 수 있는 가족의 범위’, 혈연이 아니어도 장례를 치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앞서 계속 언급되고 있는 연고자에는 누가 해당될까?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사법) 제2조16호>에 언급된 연고자의 범위는 다음과 같다.

장사법에 따르면 장례를 치를 권리와 의무가 있는 이 중 첫번째는 배우자다. 그 뒤로 자녀와 부모, 손주, 조부모, 형제·자매 순으로 혈연의 범위가 정해져 있다. 여기에 따르면 이모, 삼촌, 조카 등은 서로의 장례를 치를 수 없다. 며느리나 사위 등도 마찬가지다. 장사법이 이야기 하는 혈연의 연고자 범위에는 해당하지 않는 것이다.

혈연의 범위 이후는 행정기관이나 치료·보호기관의 장이 등장한다. 여기에는 단서가 하나 붙는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이 그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치료·보호기관의 장으로 원장을 연상하곤 한다. 하지만 병원장은 사목에 해당하는 연고자가 아니다. 조금 거칠게 이야기 하자면 사목이 이야기하는 연고자는 시설장을 뜻한다.

가장 마지막인 아목이 가장 골치 아픈 조문이기도 하다. ‘가목부터 사목까지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자로서 시신이나 유골을 사실상 관리하는 자’란 도대체 무엇일까? 확실하게 이해하려면 이번에는 법 조문을 벗어나 보건복지부의 장사업무안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표2-1>을 살펴보면, 아목의 범위가 매우 넓어서 혈연의 연고자가 아니더라도 장례를 치르는 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현장의 상황도 그러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혈연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이가 장례를 치르려면 자신의 앞에 놓인 수많은 난관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

그중 첫 번째 난관은 기나긴 안치기간이다. 장사법에 따르면 연고자의 권리와 의무는 각 목의 순서대로 행사한다고 되어 있다. 순서가 있다는 뜻은 자신의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업무를 진행할 때 담당 주무관은 모든 연고자에게 일괄 발송 후 회신을 기다리겠지만, 어쨌든 인수 여부 의사를 확인하는 기간이 소요되는 것이다. 모두에게 회신이 바로 온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회신이 오지 않는다면 14일을 기다리도록 되어 있다. 여기에 더해 만약 고인이 병원 이외의 장소에서 사망했다면 변사로 확정되어 경찰 수사가 선행된다. 이렇게 소요되는 시간의 평균값은 대략 한달이다. 아목의 연고자는 무력하게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다.

기나긴 안치기간을 지나쳤다면 이후는 소명의 시간이다. 자신이 표에 언급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확인을 받아야 한다. 여기에 공적 서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혈연 이외의 관계를 증명하는 서류가 없기 때문에 함께 찍은 사진, 생활비나 병원비 등을 대납했다면 관련한 영수증, 주변 사람들의 증언 등 구청이 요구하는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만약 주무관이 자료를 받아보고 적절치 않다 판단해 연고자로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그걸로 끝이다. 즉,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인과 사별자의 의사보다 지자체의 판단이다. 유언장을 비롯한 다른 방법을 동원해도 생전에 장례를 약속하고 법적으로 보장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만약 이 모든 과정을 무사히 지나쳤다면 그 다음은 돈을 해결해야 한다. 앞서 아목의 순서가 오기까지 평균 한달의 시간이 소요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장례식장의 평균 안치비는 하루 평균 10만원 내외로, 한달이면 300만원이 넘게 발생한다. 여기에 더해 만약 병원 이외의 곳에서 사망했다면 검안서 비용이 최대 30만원까지 청구될 수 있다. 시작도 전에 발생한 수백만원과 이후의 장례비용을 모두 부담할 경제적인 여력이 없다면 당연히 장례를 치를 수 없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럴 경우 아목에 따른 연고자가 아니더라도 장례를 치를 방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얼마전 장사법 개정안에 포함된 ‘장례주관자’가 그것이다. 기나긴 안치기간과 관계 소명 등의 절차는 그대로 밟아야 하지만, 연고자로서가 아니라 ‘장례주관자’로서 장례를 치르기 때문에 법률상 고인은 여전히 ‘무연고 사망자’다. 그렇다면 지자체의 ‘무연고 사망자’ 화장 절차를 그대로 따라가다 마지막 단에 유골만 인수받을 수도 있다. 유골의 거취에 대해서는 본인이 책임지고 비용을 부담해야겠지만, 그 밖의 과정은 지자체가 조례 등에 따라 진행하기 때문에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꽤 많은 사람들이 이 지점에서 우려를 표하곤 했다. 하나는 부담할 비용이 있고, 하나는 없다면 도대체 누가 연고자로 인정받아 장례를 하겠냐는 우려다. 나눔과나눔도 처음에는 그 말에 적극적으로 반박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사례가 쌓이자 오히려 ‘장례주관자’보다 연고자 인정 사례가 많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설령 ‘장례주관자’로 장례를 치르더라도 본인들이 모든 비용을 부담하는 경우도 많았다. 내가 알던, 나와 가까운 사람이 죽었다. 어쩌면 혈연이 아닐 뿐, 가족이라 여긴 사람일 수도 있다. 그 장례를 직접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여기에 다른 방법에 대한 고민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아마 없을 것이다.

‘무연고 사망자’라는 낙인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를 지원하다 보면 사별자들을 통해 고인의 삶과 죽음의 궤적에 대한 증언을 듣게 된다. 그 산발적인 증언은 대체로 커다란 두어개의 줄기에서 만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 커다란 장례 비용 때문에, 혹은 혈연이 아니라는 이유로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고 이야기한다.

한국소비자원이 2015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평균 장례 비용은 1,380만원 가량이다. 장례라는 영역은 오랫동안 오롯이 시장 논리에 맡겨져 왔고, 공공의 개입은 장제급여 대상자에게 지급되는 80만원이 전부다. 이것만으로 장례를 치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게다가 장제급여 지급은 사망자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만약 고인이 수급자가 아니라면 이마저도 없다. 사별자가 수급자여도 지급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장례를 치를 수 있는 혈연의 범위와 그 밖의 사람들, 평균 장례 비용, 그리고 그들이 장례를 치를 방법에 대한 이야기까지 하고 나면 많은 사람들이 탄식을 뱉는다. ‘이러면 저도 무연고로 갈텐데요?’ 그 탄식은 나라고 다르지 않다. 만약 제도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나는 십중팔구 ‘무연고 사망자’가 될 것이다. 아무래도 어머니, 아버지보다는 오래 살 테고 동생 혼자서 장례를 치르기엔 부담해야 할 비용이 너무 크다. 운이 나빠 오래 산다면 나뿐 아니라 동생도 고령일 것이다. 노인 혼자서 다른 노인의 장례를 치르는 것은 아주 힘겨운 일이다. 결국 내가 ‘무연고 사망자’가 되지 않을 방법은 하나다. 어머니, 아버지보다 먼저 죽는 것.

장례라는 영역은 해를 거듭할수록 개인이 감당 가능한 범위를 벗어나고 있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혹은 장사법이 정의한 협소한 범위의 연고자가 없다는 이유로 우리 사회는 고인에게 ‘당신에겐 연고가 없었다’며 무심히 낙인을 찍는다. ‘무연고 사망자’를 작은 따옴표로 감싸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사망자 앞에 붙은 ‘무연고’라는 낙인이 고인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지만, 대체할 용어가 마땅치 않아 어쩔 수 없이 사용한다는 의미다.

법이 허용하는 연고자의 범위 확대와 장례의 공공성을 담보하지 않는다면 이 낙인은 전염병처럼 사람들에게 퍼져나갈 것이다.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무연고 사망자’의 통계가 이를 방증한다. 증가할 수 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줄어들길 바라봐야 소용 없다. 너무 늦기 전에 손을 써야 한다.

공영장례가 보편적인 사회보장제도가 된다면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장사법과 관련 법을 개정해서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연고자의 범위를 확대하거나 생전에 가능하도록 바꾼다고 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천만원이 넘는 장례 비용 앞에서 좌절할 것이다.

지금의 공영장례 제도는 ‘무연고 사망자’와 제한적인 범위의 저소득시민(기초생활수급자)을 대상자로 포함하고 있다. 지자체의 조례마다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이보다 범위가 협소한 경우도 많고, 조례가 아예 없다면 공공의 장례지원은 전무한 셈이다.

나눔과나눔은 여기에 대한 대안으로 ‘보편적 사회보장제도로서의 공영장례’를 제안하고 있다. 이는 대상자를 한정 짓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차별없이 장례를 지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적어도 지금 서울시에서 하고 있는 만큼의 절차를 국가 차원에서 지원한다면 우리 사회는 고인에게 ‘무연고’라는 낙인을 찍지 않아도 된다. 이것이 과연 무리한 제안일까?

한국 사회는 이미 ‘무연고 사망자’의 시신을 보건 위생의 이유로 처리해왔다. 입관과 운구, 화장, 이후의 산골과 봉안 등 기본적인 절차는 이미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고인을 애도할 시간과 공간, 즉 장례식을 제공한다고 해서 예산이 과하게 늘어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장례식의 형태에 대해서는 차후 여러 논의를 거쳐야 하겠지만 당장 서울시의 모델을 기준으로 하자면 이미 형성되어 있는 시장을 파괴할 것 같지도 않다. 서울시가 제공하는 애도의 시간과 공간은 고인에게 식사를 올리고 술을 올리는 3시간 가량의 절차다. 만약 지금의 일반적인 장례 형태인 3일장으로 장례를 치르길 원한다면 이미 마련되어 있는 시장의 제반을 추가로 이용하면 된다.

얼마전 보건복지부는 제3차 장사시설 수급계획을 발표하며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복지 슬로건을 ‘무덤 이후까지’로 확대했다. 한국 사회가 삶 뿐만 아니라 죽음, 그리고 죽음 이후까지 보듬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나눔과나눔이 제안하는 것처럼 보편적인 사회보장제도로 공영장례를 확장하는 것에 당장 동의 한다는 뜻은 아니겠지만, 거기에 도달할 논의를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으로 여길 수는 있을 것 같다.

장례라는 영역에서 공공성을 담보하는 것은 이전에 논의된 적 없는 새로운 사회 이슈다. 하지만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는 점에서 이 이슈는 언제나 현안으로 우리 곁에 존재했다. 이 지면을 빌려 이 아이러니한 사회 이슈가 이제는 우리의 일상 지척까지 다가왔다고, 이제는 대응의 구체적인 형태와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월간 <복지동향> 2023년 6월호(제2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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