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4 2024-03-01   2884

[동향1] 22대 국회는 성소수자 인권 실현하라

박한희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집행위원

2024년 2월 1일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하 ‘무지개행동’)은 국회 앞에서 <2024 국회의원 선거 10대 성소수자 인권과제 발표 기자회견 “22대 국회에 요구한다. 성소수자 인권 실현하라!”>를 진행하였다. 두 달 여 앞으로 다가온 4월 10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국회가 실현해야 할 주요 성소수자 인권 과제를 발표하고 촉구하는 자리였다.

‘역대 최악의 국회’, 매번 국회 임기가 종료될 때면 언론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곤 한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시민들은 다음 국회는 다르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이제 임기가 세 달 여 남은 21대 국회 역시 여러모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21대 국회 임기 시작 직후인 2020년 6월 29일에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7년 만에 발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는 4년 동안 이를 끝내 제정하지 못하였다.

그렇기에 22대 국회는 정말로 성소수자를 비롯한 모든 이들이 차별받지 않으며, 모두의 존엄과 인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법률과 정책을 마련하는 역할을 다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무지개행동이 선정한 10대 성소수자 인권 과제를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누구나 성적지향·성별정체성으로 차별받지 않게

국회의 역할은 무엇보다도 법률을 제정하는 것이다. 헌법에 규정된 인간의 존엄, 행복추구권, 평등권, 자기결정권 등 기본적 권리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법률 제정은 국회의 당연한 책무이다. 성소수자 인권운동에서도 오랫동안 제정을 요구해 왔던 법률들이 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혼인평등법/생활동반자법, 성별인정법이 그것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그다지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누구나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을 비롯하여 어떠한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아야 함을 분명히 하고, 차별 피해에 대한 구제와 국가의 평등 보장 책무를 규정한 차별금지법은 2007년부터 17년째 요구되고 있다. 그럼에도 자신들의 책무를 방기한 국회로 인하여 여전히 제정되지 못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가로막힌 이유로 차별금지 사유에 포함된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즉,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문제라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러나 모든 차별을 방지하고 예방하는 차별금지법의 원칙상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역시 금지하는 것이 당연하다. 무엇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시민들은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을 포함한 차별금지법 제정에 80% 이상의 압도적인 찬성률을 보이고 있다. 결국 법이 제정되지 못한 이유는 국회의 태만 뿐이다.

성소수자가 겪는 대표적인 차별이 있다. 바로 동성혼이 법제화되지 못함에 따라 함께 가족으로 살고 있음에도 어떠한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는, 동성부부가 경험하는 차별이다. 오직 이성 간 법률혼만이 법적인 권리를 보장받는 사회 속에서 동성부부는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거나 또는 그를 떠나보내야 할 때조차 배우자로서 어떠한 권리도 보장받지 못한다. 유족연금, 건강보험 등 사회보장에 있어서도 차별은 이어진다.

물론 변화도 일부 있었다. 2023년 2월 21일 서울고등법원이 동성부부의 국민건강보험법상 피부양자 지위를 인정하는 최초의 판결을 내린 것이다. 나아가 2023년 5월 31일 헌정 사상 최초로 민법상 혼인을 동성 간에도 할 수 있도록 하는 ‘혼인평등법’이 발의되었다. 또한 혼인 외에 다양한 돌봄 관계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생활동반자법’도 두 차례 발의되었다. 22대 국회 역시 이러한 진전들을 이어나가야 할 것이다.

성소수자를 비롯한 누구든 자신답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보장받고 동등하게 대우받으며 살아가는 것은 헌법상 당연히 누려야 할 기본권이다. 그럼에도 트랜스젠더들은 자신의 성별정체성대로 법적 성별을 변경하기 위해 외과적 수술을 비롯한 신체 침해를 강요받는다. 혼인 중인 트랜스젠더는 배우자와 원치 않게 이혼해야만 성별을 변경할 수 있다. 현재 법적 성별 변경은 법률이 아닌 대법원의 판결과 내부 규칙인 예규에 대해 이루어지는데, 대법원에서는 위와 같이 엄격한 요건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외과적 수술과 같은 강제적 요건 없이 누구나 자신의 성별정체성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법적 성별 변경의 절차와 기준을 규정한 법률을 무지개행동에서는 꾸준히 요구해 왔다. 그리고 2023년 11월 20일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을 맞아 정의당 장혜영 의원 대표발의로 ‘성별의 법적 인정에 관한 법률’이 입법예고되었다. “저는 트랜스 여성입니다. 저는 다만 제 모습으로 살고 싶습니다” 무지개행동의 10대 과제에 연명한 한 성소수자의 외침을 국회는 진지하게 들어야 할 것이다.

성소수자, HIV 감염인 처벌법은 위헌이다

2023년 10월 26일 헌법재판소에서 두 건의 합헌 결정이 있었다. 군형법 제92조의6 추행죄와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제19조 전파매개행위금지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모두 합헌 결정을 내렸다. 두 법은 성소수자와 HIV 감염인을 범죄화하고 처벌하기 위해 유일하게 존재하는 법으로서 혐오와 차별을 확산시키는 악법이었기에,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몹시 실망스러웠다. 이번 결정에도 불구하고 두 법이 악법으로서 위헌이라는 점은 변함없다. 군형법 제92조의6 추행죄는 동성 군인 간의 항문 성교 기타 추행을 처벌하고 있다. 1962년 군형법이 제정되었을 당시부터 있던 이 법의 원래 명칭은 ‘계간죄’였다. 계간(鷄姦)이라는 용어 자체가 동성 간의 성행위를 비하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즉, 이 법은 처음부터 동성애에 대한 혐오와 낙인에 기반하여 동성애자 군인을 범죄자로 낙인찍는 법률이었다.

이 법률로 인하여 서로 간에 합의된 성관계를 처벌하고 심지어 동성 간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 역시 처벌되는 사례도 있었다. 국방부는 이 법이 군기유지를 위해 필요하다고 하나 오히려 이 법의 존재로 인하여 군대 내 권력 관계로 인해 발생하는 성폭력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도 수차례 폐지를 권고한 군형법추행죄, 이제는 정말 폐지되어야 한다.

1980년대 HIV/AIDS가 발견된 지 약 40년이 지났다. 그동안 의학의 발전으로 HIV 감염인은 하루에 약 한 알만 먹으면 바이러스 활성을 억제할 수 있고, HIV 감염인의 기대 수명도 비감염인과 차이가 없다. 이렇게 HIV가 ‘만성질환’이 되었음에도, HIV/AIDS에 대한 비과학적인 공포로 인하여 만들어진 낡은 법은 그대로이다.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제19조 전파매개행위금지조항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 법은 HIV 감염인이 전파매개행위를 하는 것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시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고 있다. 실무적으로는 이미 약을 꾸준히 복용하여 감염 위험이 없는 HIV 감염인이 콘돔 없이 성관계를 한 경우, 이 법에 의해 처벌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감염인을 범죄화하고 처벌하는 법률은 감염인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강화하고 치료와 예방을 어렵게 만든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에서도 위와 같이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9명 중 과반수인 5명의 재판관이 위헌이라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이러한 판단을 이어나가는 것이 22대 국회의 과제라 할 것이다.

평등한 학교, 광장, 국회를 요구한다.

법률의 제정 못지않게 국회에 요구되는 역할은 인권침해와 차별을 하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위법을 감시하고 규탄하며, 평등한 사회를 실현해나가는 것이다. 특히 현재 성소수자들이 마주하는 차별과 혐오의 현실 앞에서 국회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친화적인 교육 환경 및 초중고 교육과정 마련’을 무지개행동이 10대 과제 중 하나로 선정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많은 청소년 성소수자가 학교 안에서 있는 그대로 존중받지 못하고 교사나 다른 학생들로부터 폭력과 학대를 겪곤 한다. 학교의 교육과정에는 성소수자에 대한 내용이 거의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미래를 그리기조차 쉽지 않다. 그럼에도 학교 현장에서의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차별을 막기 위해 제정된 학생인권조례는 계속해서 위협받고 있다. 충남 학생인권조례가 한 차례 폐지되었다가 교육감의 재의 요구로 인하여 간신히 부활하였으나, 여전히 다른 지역에서의 학생인권조례도 폐지 위기에 몰려 있다. 그렇기에 누구나 평등하고 존중받으며 다닐 수 있는 학교 환경을 만들기 위한 국회의 역할이 요구된다.

광장 역시 성소수자에게 닫혀 있다. 2023년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서울광장이 아닌 인근 도로에서 개최되었다. 2015년부터 매해 서울광장에서 개최된 서울퀴어문화축제에 대해 서울시가 광장 사용승인을 불허했기 때문이다. 또한 2023년 6월 17일 대구퀴어문화축제에서는 홍준표 대구시장이 공무원들을 동원하여 개최를 가로막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렇게 성소수자의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로막고 평등한 광장 이용을 가로막는 지자체에 경종을 울리는 것, 이 역시 22대 국회의원들에게 요구되는 과제이다.

마지막으로 국회 자체의 자성을 촉구하고자 한다. 21대 국회에서도 그러했지만 일부 보수 국회의원들이 극우 개신교 단체와 함께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선동하는 토론회 등을 개최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특히 이들은 소위 ‘전환치료(conversion therapy)’, 즉 성소수자의 성적지향·성별정체성을 강제로 변경하려는 비과학적이고 인권침해적인시도를 정당화하는 이야기를 국회 건물 안에서 공공연히 하곤 한다. 이에 대해 2015년 유엔 자유권위원회에서도 개선을 권고하기도 했다.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는 헌법 제20조의 정교분리원칙을 제22대 국회는 명심하여 잘못된 종교적 신념에 기반한 혐오가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성소수자는 우리 곁에 함께 하고 있다.

무지개행동은 2월 1일 기자회견을 앞두고 성소수자와 지지자들의 10대 과제에 대한 연명을 받았다.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1,023명이라는 수많은 이들이 연대와 응원의 메시지를 남겨 주었다. 무지개행동은 이러한 메시지들과 함께 각 정당에 10대 과제의 실현을 촉구하는 질의를 하고 이후 정책간담회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국회가 더 이상 인권의 가치를 외면하고 혐오를 확산하는 공간이 아닌, 정말로 시민들을 대표하는 헌법기관으로서 모든 사람들의 인권을 보장하고, 혐오와 차별을 넘어 존엄을 실현하는 역할을 다하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무지개행동은 지속적으로 이 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성소수자의 존재를 드러내고, 성소수자의 인권을 요구하며 투쟁해나갈 것이다.

월간<복지동향> 2024년 03월호(제3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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