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4 2024-03-01   3776

[기획1] 선거제도와 복지국가: 합의제 민주주의를 향하여

김윤태 고려대 공공정책대학 교수·사회학 박사

한국 정치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선거제도의 한계이다. 한국은 민주공화국이지만, 선거제도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반영하지 못한다. 한국의 대통령제와 단순다수대표제 선거제도(가장 많이 득표한 1명만 선출)는 1등이 모든 권력을 독점하는 승자 독식 정치를 강화한다. 야당과 소수 정당은 권력에서 철저하게 배제된다. 결과적으로 국회에서 격렬한 적대 정치가 발생하고 정치 양극화는 심각해진다. 한국의 시민사회에서는 오랫동안 한국 정치개혁의 과제로 독일식 선거제도의 도입을 주장했다. 선거의 사표 방지 또는 완화, 비례성 원칙, 비례대표의 민주적 선출을 강조했다. 특히 정당의 득표 비율에 맞게 국회 의석 점유 비율을 결정하는 원칙의 실현이 필수적이다.

많은 논란 끝에 2020년 총선 직전 국회는 과거의 병립식 비례대표제 대신 소수 정당을 배려하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법안을 제정했지만, 독일식 선거제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민생당 등 소수 정당은 합의를 이루었지만, 미래통합당(국민의힘)은 강하게 반대하고 황교안 대표는 위성정당 창당을 강행했다. 선거법 개악에 책임이 큰 더불어민주당의 이인영 원내대표 등은 무책임하게 ‘떴다방’ 식 위성정당을 만들었다. 결국 열린시민당에서 비례후보 양정숙을 재산 축소 신고 혐의로 고발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열린민주당에서는 부동산 투기로 지탄받은 김의겸 등 비례후보의 당선으로 민주주의 원칙이 왜곡되었다. 

결국 2023년 대선에서 여론의 비판에 밀려 더불어민주당은 준연동형 선거제도와 위성정당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기로 했다. 2024년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은 병립형 비례대표제 복귀를 주장했다. 병립형은 위성정당 문제를 해소할 수 있지만, 거대 양당이 비례대표를 독식해 기득권을 강화하고, 소수 정당의 진입 장벽은 높아진다. 더불어민주당은 병립형 회귀를 고민하다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총선에도 다시 비민주적인 선거제도로 거대 양당이 ‘떴다방’ 식 위성정당을 만들 전망이다. 최악의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이는 한국 정치의 문제점을 더욱 심화시킬 것으로 예측된다. 왜 우리는 이런 선거제도를 가져야 하는가?

선거제도의 역사

민주주의의 초기 역사에서 영국과 미국의 국회의원은 토지를 기반으로 한 선거구에서 선출되었다. 최다 득표를 한 1위 후보가 대표로 선출된다. 그러나 산업사회에서 노동의 분업이 발생하여 직업별, 계층별 조직이 결성되면서 선거제도의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비례대표는 원래 유럽에서 산업사회의 다양한 요소, 특히 소수집단을 포용하기 위해서 도입되었다. 1883년 덴마크가 쉴레지히의 독일 출신 이민자들을 위해 처음으로 비례대표제를 시행하였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많은 산업 국가들에서 노동조합 등 직능을 대표하는 비례대표제가 도입되었다. 하지만 비례대표제의 도입은 자연적 진화가 아니라 노동조합 등 정치에서 소외된 집단들의 집회, 시위, 폭력적 저항이 커져 불가피하게 도입된 경우가 많았다. 지배계급이 노동자계급의 도전에 직면하자 선거 개혁을 통해 계급 타협을 추구한 것이다.

대표적인 비례대표제의 사례로 독일의 정당명부식이 있다. 독일은 전체 의원 수의 절반을 차지하는 지역구 의원과 함께 지지 정당에 따라 절반의 의석수를 할당받는 비례대표가 있다. 총선에서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국회 의석을 배분한다. 비례대표는 정당의 지지도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정당 정치가 발전한다. 정당명부식 투표제도 덕분에 지역구에서 모두 낙선한 독일의 녹색당은 의회에 진출할 수 있었다. 

스웨덴의 경우 100퍼센트 비례대표제로 운영하고 국회의원은 대선거구제로 선출한다. 한국과 달리 민주적 절차를 중시한다. 정당 내부 공천도 지도부의 하향식 결정 대신 당원 경선을 거치는데, 총선에서 비례대표 후보를 복수로 추천해 유권자의 선택 기회도 제공한다. 현재 영국과 프랑스를 제외하고 유럽 대부분의 민주 국가들은 비례대표제를 시행하고 있다. 

1980년대 초반 한국에서도 전두환 군사정부가 전국구라는 이름으로 비례대표제를 도입했지만, 당 총재가 낙점을 찍는 방식이라 비례대표의 구실을 하지 못했다. 지금도 비례대표가 지도부의 사천에 불과하고, 계층의 대표성도 없고, 전문성도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독일식 정당 명부 비례대표제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정치권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지역구 국회의원의 이해관계로 선거 개혁이 지지부진하다. 한편 비례대표는 유권자가 직접 선출하지 않는다고 보는 유권자의 여론으로 광범한 지지를 받지 못한다. 

선거제도와 정치

정치학자와 사회학자들은 선거제도와 정당 체계의 관계에 오랫동안 주목했다. 1964년 프랑스 사회학자 모리스 뒤베르제는 1950년대와 1960년대 동안 정당 체계에 다양한 연구를 발표했다. 뒤베르제는 소선거구제는 양당제를 만들고, 대통령선거의 결선투표제와 국회의원선거의 비례대표제는 다당제를 만든다는 가설을 제안했다. 이 가설은 많은 경험적 연구를 통해 뒤베르제의 법칙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첫 번째 법칙의 경우, 소선거구제는 정당별 득표율과 의석 비율의 왜곡이 커지는 경향이 있고, 각 정당과 후보자가 2개의 거대 양당 구조로 재편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대표적 사례로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의 양당 구조를 지적할 수 있으며, 한국 역시 양당제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두 번째 법칙의 경우, 비례대표제는 정당의 의석 비율과 그 정당의 득표 비율을 반영하여 군소 정당의 설립 가능성이 높아지고 다당제가 유지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유럽 국가에서는 다당제가 보편적 특성이며, 제1당이 과반수 의석을 획득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 정치 성향이 비슷한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독일처럼 이념 성향이 완전히 다른 기독교민주당과 사회민주당이 대연정을 구성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소선거구제가 반드시 양당제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뒤베르제의 법칙에는 예외가 존재한다. 지역별로 정치적 편향이 강한 연방제 국가의 경우가 그렇다. 캐나다는 소선거구제를 운영하며 전국적으로 보았을 때 양당제의 경향이 나타나지만, 캐나다 서부에서 제1당 또는 제2당의 위치를 차지하는 신민주당이 전국적으로 제3당의 정치적 기반을 가진다. 종족, 종교, 계층 등 다양성의 수준이 높은 사회에서는 선거제도 이외에도 여러 가지 사회적, 종교적, 계층별 요인이 작동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뒤베르제의 법칙처럼 장기간 소선거구제가 유지되면서 1948년 제헌의회를 제외하고 대부분 총선에서 양당제의 특성이 나타났다. 하지만 1987년 민주화 이후 1988년 총선에서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평화민주당, 신민주공화당 등 4개의 정당이 각 지역을 분할한 지역주의 정당 체제가 등장했다. 한편 1992년 정주영의 통일국민당, 1996년 김종필의 자민련, 2012년 총선에서는 친박연대, 2016년 안철수의 국민의당과 같은 특정 정치인을 중심으로 결성된 정치세력이 제3당의 지위를 차지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개별 선거구에서는 양대 정당이 경쟁하는 경우가 많고, 전국적 차원에서도 점차 양당제 체제로 변화했다.

선거제도의 사회정치적 효과

선거제도의 사회정치적 효과에 관한 문제도 중요한 쟁점이다. 선거제도가 집권당의 이념적, 정치적 성향에도 영향을 주며 조세정책과 사회정책을 통해 복지 체제의 상이한 성과를 만든다. 20세기 초반까지 유럽이 미국보다 불평등했지만, 최근에는 유럽보다 미국의 불평등 수준이 훨씬 높다. 이런 사회적 변화는 선거제도와 관련이 크다.

유럽에서는 주로 비례대표제와 의회제 정부를 구성하지만, 미국에서는 단순다수대표제와 대통령제를 운용한다. 네덜란드 정치학자 아렌트 레이프하트는 1999년 출간한 <민주주의의 유형>에서 다수제 민주주의보다 연립정부를 통해 권력을 공유하는 합의제 민주주의의 제도적 성과가 우월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대부분의 비례대표제의 선택은 일반적으로 재분배 정치를 강화했다. 

그러면 유럽의 우파 정부는 왜 비례대표제를 선택했을까? 비례대표제는 단순하게 강력한 좌파 정당의 등장이나 분열된 우파 정부가 만든 어쩔 수 없는 결과가 아니라 좌우 정당 타협의 산물이다. 이러한 정치적 타협은 국가의 제도적 상호 보완성과 관련이 크다. 

미국 정치학자 피터 홀과 영국 정치학자 데이비드 사스키스가 2001년 출간한 <자본주의의 다양성>에서는 자유시장경제보다 조정시장경제에서 비례대표제를 채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본다. 미국과 같은 자유시장 경제는 주주자본주의, 단기 고용, 탈집중적 노사관계, 노동자의 참여 제한을 통해 자유 경쟁을 강조한다. 반면에 독일과 같은 조정시장경제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장기 고용, 중앙 집중적 노사관계, 노사 협력, 고품질 생산체제, 산업 특화적 숙련 형성을 통해 조정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다. 

미국 정치학자 토마스 쿠삭, 토빈 아이버센, 그리고 영국 정치학자 데이비드 사스키스는 2007년 <미국정치학회보>에서 노동시장과 기업 특수적 기술의 중요성이 큰 국가의 우파 정부가 비례대표제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국내 경제가 긴밀하게 조직화 된 경우에 주로 발생한다. 반면에 적대적 노사관계, 노조와 사용자 간 조정이 취약한 국가에서 다수제 민주주의는 좌파 정당을 체계적으로 봉쇄한다. 결국 조정시장경제는 합의제 민주주의와 상호보완적 효과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은 한국에서 합의제 민주주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재벌 대기업 체제와 기업별 노조 체제의 개혁도 필요하다는 시사점을 제공한다. 

유럽식 합의제 민주주의

독일, 오스트리아, 스웨덴, 덴마크, 네덜란드 등 주요 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의회제 정부를 채택하며 비례대표제, 중대선거구제, 다당제의 특성을 가진다. 한 정당이 과반수 집권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진보와 보수 정당이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경우가 많다. 정치인들은 대화를 중시하고, 부드럽고, 상대를 배려하고, 타협을 강조하는 정치문화가 발전한다. 이런 유럽 국가의 정치제도는 ‘합의제 민주주의’라고 불린다. 

합의제 민주주의에서는 국가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결정 과정에서 모든 주요 정당과 지배적 정치세력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경제적 소수집단들이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한다. 정부 외부에서도 사회적 합의 장치가 작동한다. 노사정 3자 간 사회적 대화, 사회적 협의주의, 사회적 동반자 관계가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 결과적으로 시장 경쟁에서 뒤처진 사회적 약자들을 지원하는 복지제도가 도입되고 빈곤과 실업의 위험을 줄이는 정책이 실행된다. 비례대표제를 통한 연립정부와 사회적 대화 기구의 발전은 민주적 정치 체제의 핵심이 되고 포용의 정치로 확장된다. 이를 통해 유럽 국가들은 일반적으로 불평등을 완화하는 증세와 복지 확대 정책을 선택하는 경향이 크다. 이런 점에서 비례대표제와 합의제 민주주의는 선택적 친화성을 넘어 일정한 복합 인과성을 가지는 것으로 보인다.

독일의 사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2005년 선거에서 기독교민주당/기독교사회당 연합과 사회민주당은 대연정을 구성했다. 2009년 총선에서 기민당/기사당 연합은 자유민주당(FDP)과 새로운 연정을 구성했지만, 급격한 정책 변화는 추구하지 않았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 메르켈 총리가 채택한 정책의 초점은 확장적 재정정책을 통한 사회보험과 고용의 안정화였다. 주요 정책으로 고용 안정을 추구하는 전통적인 고용 보호와 인적자본을 강화하는 사회투자라는 두 가지 차원의 전략을 추진했다. 메르켈 정부는 세계 금융위기 이후 급증하는 실업과 빈곤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자유시장에 의존하는 영미식 신자유주의적 패러다임 대신 적극적인 국가 개입을 지지했다. 메르켈 총리는 4차례 집권하면서 사회민주당과 2번이나 대연정을 시도했다. 메르켈 총리는 말이 적고 신중하며 상대방을 자극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이런 행보로 인해 총리 퇴임 당시 지지율이 80%에 달했다.

미국식 다수제 민주주의

미국과 영국의 선거제도는 1위만 당선되는 단순다수대표제이며 양당제가 발전했다.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이 정부를 장악하고 권력을 독점한다. 반면 선거에서 패한 정당과 지지자들은 정치 과정에서 배제된다. 정권 교체의 시기마다 정당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정당 양극화가 발생한다. 양당제는 승자 독식 정치를 만들고 패자를 철저하게 소외시키는 배제의 정치를 유지한다. 따라서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대표하는 정당이 정책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은 적다. 이러한 경향은 세금 인상을 반대하고 복지 지출을 제한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미국은 다수제 민주주의 국가의 대표적 사례이다. 결과적으로 미국과 같은 양당제 국가에서 재분배 정치가 발전할 가능성은 낮으며, 정부가 재분배에 관심을 가질 가능성도 적다. 결과적으로 재분배 정치는 선거제도와 상당한 친화력을 가지고 있으며, 선거제도에 따라 상이한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명제가 제기된다.

미국 벤더빌트대 정치학과 레리 바텔스 교수는 2008년 출간한 <불평등 민주주의>에서 미국에서 막대한 자금력을 가진 기업이 공화당뿐 아니라 민주당의 정책을 바꾸는 과정을 분석했다. 1990년대 후반 클린턴 대통령과 민주당은 전통적인 누진세와 재정 확대 정책을 포기하고 대기업이 요구하는 부자 감세와 재정 균형을 선택했다. 월스트리트의 요구에 따라 금융 규제를 철폐하고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는 정책을 도입했다. 오바마 행정부도 거의 유사한 정책을 따랐다.미국 예일대학 정치학과 제이콥 해커 교수와 버클리대학 정치학과 폴 피어슨 교수는 2010년 <승자 독식 정치>를 출간했는데, 미국의 다수제 민주주의에서 사회적 약자를 대표하는 정당이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은 낮다고 지적했다. 승자 독식 정치에서 노동자, 빈곤층, 사회적 약자가 체계적으로 배제되면서 정부는 점차 대기업과 부유층에 편향된 정책에 기울기 시작했다. 

미국의 부유층과 대기업은 자신들이 쌓아 올린 막대한 부가 정당하다고 믿으며 사회의 모든 사람을 설득할 강력한 수단을 확보하고 있다. 대기업과 은행은 거액의 돈을 언론, 대학, 연구소에 기부하고, 고위 공직자를 영입하며, 선거 자금을 통해 정당과 의회에 영향을 미친다.

중산층의 캐스팅 보트그러면 왜 선거제도에 따라 정부의 정책이 달라진 것일까? 2006년 토빈 아이버센 교수와 데이비드 사스키스 교수는 <미국정치학회보>에 기고한 논문에서 1945년에서 1998년 사이 17개 선진 민주주의의 정부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단순다수대표제에서는 복지 공약을 내건 중도좌파 정당이 집권하기 어렵고, 집권하더라도 정권을 유지하기 힘들기 때문에 미국, 영국 등 단순다수대표제를 선택한 국가에서는 중도우파 정부가 집권한 시기가 75%를 차지했다고 분석했다. 중도우파 정부가 집권하면서 세금 감면으로 부유층의 소득은 늘어난 반면, 중간계급과 노동자계급의 소득은 별로 늘어나지 않았다. 반면 비례대표제 국가에선 약 74%가 중도좌파 정부였다. 복지국가의 수준은 당연히 비례대표제를 선거제도로 선택하고 중도좌파 정당이 오랫동안 정권을 유지한 국가에서 월등히 높았다. 결과적으로 합의제 민주주의 국가 중 대다수가 복지국가를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다수제 민주주의 국가에서 복지국가가 발전하지 못한 이유로는 중산층의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 토빈 아이버센과 데이비드 사스키스는 단순다수대표제 선거제도를 선택한 국가에서 중도우파 정부가 주로 등장하는 이유로 중위 투표자들이 중도좌파 정당의 집권 후 좌경화를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중간계급은 중도좌파 정부가 들어서면 복지국가를 급격히 강화하여 지나친 조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중간계급이 반드시 복지국가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간계급의 대다수는 복지국가를 지지한다. 중간계급은 복지국가의 확대가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우선 대기업과 고소득층에 대한 증세가 먼저 실행한 다음, 중간계급에 대한 과세가 점차 증대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념이 양극화된 양당제에서 중간계급은 자신들의 선호가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중도좌파 정부는 조세 부담을 급격히 늘릴 가능성이 크고, 중도우파 정부는 복지국가에 관심갖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중위 투표자들은 당장 조세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보수 정당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단순다수대표제 선거제도에서는 복지 공약을 내건 중도좌파 정당이 집권하기 어렵고, 집권하더라도 권력을 오랫동안 유지하기 힘든 것이다. 

한국의 다수제 민주주의

한국에서도 오랫동안 단순 다수대표 선거제도와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면서 보수 정당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지역주의 정당 체제에서 노동자와 약자를 대변하는 정당은 없었다. 한국 정치는 반공주의와 지역주의의 지배를 받으면서 사실상 계층 이슈와 복지 정책을 주도할 정당이 없었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거대 여당이 만들어지면서 한국 정치는 보수 우세 구도가 계속 유지되었는데, 1997년 보수 정당의 분열과 DJP 연합(김대중과 김종필의 공동정부)을 통해 극적인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선거에서 지역 개발 공약이 주요 정치적 쟁점이 되었고 조세와 복지는 의제로 부각되지 못했다. 지금도 한국 국회의 협상에서는 복지 예산보다 지역 예산의 확보가 최대 관심사이다. 국회의원들은 지역구를 위한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지만, 전국적 차원의 조세와 복지 이슈에는 소극적 태도를 보인다. 국회에서 노동자, 빈곤층, 청년, 여성, 노인 등 사회적 약자의 대표가 거의 없어 국회의 입법과 예산 과정에서 저소득층과 취약 계층의 목소리가 반영되기는 매우 어렵다. 국회의 가장 중요한 의제인 재분배는 뒤로 밀려난다. 국회에서 포용의 정치가 발전할 가능성이 매우 낮으며, 노동자와 빈곤층을 무시하는 배제의 정치가 강화된다. 결과적으로 노동자와 빈곤층의 정치적 효능감이 낮아지면서 투표율도 낮아졌다.

한편 특정한 계층과 직능 이익을 대변하지 않는 국회의원들은 기업의 로비에 취약하다. 막후 거래를 통해 공기업을 매각하거나 교육, 의료, 돌봄 등 공공 서비스를 시장화하는 정책을 너무 쉽게 결정한다. 국회는 대기업과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정책을 통해 그들의 막대한 수익을 보장한다. 이렇게 한국 정치의 입법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원칙이 사라진다. 국회는 국민의 보편적 이익보다는 경제 엘리트의 특수한 이익을 정당화하는 메커니즘으로 왜곡된다. 이를 통해 민주주의의 본질적 의미와 목표가 사라진다.

새로운 선거제도 개혁을 위하여

현재 한국은 세계 10위 경제 대국과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이루었지만, 선진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의 빈곤과 불평등 등 많은 사회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살률과 세계 최저 출생률, 그리고 선진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의 사회적 신뢰와 불행감이라는 비참한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봉준호의 <기생충>과 황동혁의 <오징어 게임>은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현실이 되고 있다.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복지국가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실현하는 선거제도의 개혁이 필수적이다. 직능 대표를 기반으로 한 비례대표제를 확대해야 선거 경쟁에서 지역 개발 이슈보다 조세와 복지의 이슈가 부각될 수 있다. 연립정부와 사회적 대화가 발전하면서 빈곤과 복지를 줄이는 포용의 정치를 강화할 수 있다.

2023년 5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는 <한국방송>(KBS)과 함께 시민참여단 숙의 토론 뒤 실시한 공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에서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원의 구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에 ‘비례대표 의원을 더 늘려야 한다’는 의견은 70%로 숙의 토론 전 진행한 조사 결과(27%)보다 43%포인트 증가했다. 한국의 선거제도 개혁에서도 여론의 지지가 필수적이고, 다양한 공론장의 활성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의 선거 개혁을 위해 뉴질랜드의 사례는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1993년 뉴질랜드는 국민투표를 통해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를 개혁했다. 그 후 뉴질랜드는 정당 득표율과 의석 점유율 간의 비례성과 정치적 대표성이 높아졌고, 군소 정당의 의석수는 증가하였으며, 다당제로 바뀌었다. 그러면 뉴질랜드는 어떻게 선거제도 개혁에 성공했을까? 1984년부터 1996년까지 뉴질랜드의 국민당과 노동당 양대 정당은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고 공기업 사유화 등 과격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했다. 국민 여론을 무시한 정책 결정이 승자 독식 정치라고 판단한 뉴질랜드 유권자들은 정치권을 통째로 바꾸어야 한다고 판단했고, 독일식 비례대표 선거제도 개혁을 요구했다. 

최태욱 전 한림국제대학원대학 교수는 2012년 <한국정치연구>의 논문에서 뉴질랜드 선거 개혁의 과정에서 ‘선거개혁연합(ERC)’이라는 시민단체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 단체의 목표는 단 한 가지뿐이었는데, 바로 독일식 비례대표제의 도입이었다. 선거개혁연합의 구호는 “당신의 표를 계산하게 만들라!(Make your vote count!)”였다. 이는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에서 발생하는 대량의 사표 발생과 투표와 의석 사이의 비례성이 지켜지지 않는 문제를 비판했다.

뉴질랜드 선거개혁연합이 승리하는 과정에서 노동조합과 언론의 역할도 중요했다. 보수 언론과 진보 언론 모두 비례대표제 도입이 공정하고 합리적인 선거 개혁이라고 국민을 설득했다. 소수정당들도 득표 비율만큼 국회 의석을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비례대표제 확대를 요구했다. 결국 여론의 변화와 정치적 압력을 받은 국민당과 노동당도 독일식 비례대표제 도입을 지지했다. 물론 선거제도 개혁이 곧 뉴질랜드를 스웨덴과 같은 복지국가로 만든 것은 아니었다. 복지국가의 발전을 위해서는 경제구조와 노사관계의 개혁도 필요하다. 하지만 과거의 승자 독식 정치와 신자유주의 정책 대신 연립정부를 통해 합의제 민주주의와 포용의 정치가 어느 정도 발전한 것은 사실이다. 2011년에 실시된 뉴질랜드 국민투표에서 투표자의 57.8%가 현행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 지지를 보냈으며, 현재까지 선거제도가 유지되고 있다. 

선거제도가 중요하다! 한국 사회에서 선거제도 개혁이 없다면 민주주의와 복지국가가 제대로 발전하기 어렵다. 선거제도 개혁을 통해 반드시 사표 방지, 득표와 의석의 비례성, 비례대표의 민주적 선출의 원칙이 실행되어야 한다. 정당, 시민단체, 노동조합, 언론이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 이를 통해 현행 준연동형 대신 완전 연동형 비례대표제, 위성정당을 금지하는 선거법, 비례대표제를 민주적 절차로 선출하는 정당법을 도입해야 한다. 이러한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우리가 노력하지 않는다면 한국 정치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월간<복지동향> 2024년 03월호(제3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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