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숙랑 중앙대학교 적십자간호대학 교수, 학장
들어가며
졸업한 지 2년 된 졸업생에게서 상담 요청이 왔다. 약속한 시각에 찾아온 졸업생은 2명이었다. 그들은 본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같은 학번 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몇 번의 유급으로 아직 학교에 다니고 있는 친구 한 명을 오랜만에 만났는데, 피해망상 증상을 보였고 자살 예고를 했다며 본인들이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상의하고 싶어 했다.
스스로 고립했던 학생은 친구들의 관심으로 이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지도교수와 학장, 학과장, 주임교수, 교학 지원팀 직원들과 졸업생 친구들이 수차례 회의하고, 학부모 연락처를 수소문하고, 여러 군데 자문받으며 많은 애를 썼다.
어느 날 회의 중에 누군가 물었다. “우리가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요?”. 나는 “네, 물론입니다. 이렇게까지라도 해서 한 명의 자살을 예방할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그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자살을 시도할지 안 할지 모르는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나는 다시 대답했다. “네, 물론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고, 그것보다 조금 더 합시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이 원고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젠더와 무관하지 않은 자살 문제
1993년부터 꾸준히 늘어난 자살률은 2011년을 정점으로 줄어드는 추세에 있다. 1993년부터 2005년까지 인구는 10% 늘어났지만, 자살률은 3배가 되었다. 지난 10년간 꾸준히 줄어드는 추세 속에서 자살률이 증가하는 집단이 있다. 바로 청년들이다. 특히 20~24세 청년 여성은 2017년 인구 10만 명당 9.5명이었던 자살률이, 2022년에는 인구 10만 명당 17.1명으로 약 2배 증가하였다((KOSTAT), 2022a). 한국 청년의 심각성은 국가 간 비교에서 명확하게 드러나는데, OECD 국가 중에서 한국의 20~30대 자살률이 가장 높다((MOHW, 2023).
2023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 20대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1.7명으로 OECD 평균인 10.6명보다 높다. 30대 자살률 역시 인구 10만 명당 27.1명으로 OECD 평균 11.4명을 크게 웃돈다.
거의 모든 사회에서 대부분의 시대에 공통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2배 정도 높은 자살률을 보인다. 그러나 자살 시도율과 자살 생각은 여성이 훨씬 높다. 이 현상을 ‘젠더 파라독스’라 칭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남성은 자살 수단이 더 폭력적, 치명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이 많다(Beautrais, 2003; Anne E. Rhodes et al., 2014). 자살 수단의 차이는 여성의 자살 시도율이 남성보다 높은 현상을 설명해 준다. 그러나 음독과 같이 여성이 주로 선택하는 수단을 제한했을 때도 여성 자살률 변동이 없는 점을 감안한다면 젠더 패러독스를 수단의 차이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여성의 자살 시도는 자신의 어려움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 또는 관심을 끌기 위한 행동으로서 행해진다는 설명도 있다(Beautrais, 2002). 그러나 이것은 자칫 여성 자살에 대해 배타적 과소 보고의 위험이 있는 해석이기도 하다(Beautrais, 2002). 결론적으로 자살에 관해서는 젠더 패러독스와 더불어 자살 행위에 대한 성편견도 존재한다(Callanan & Davis, 2012). 그런데, 한국 청년에게는 젠더 파라독스가 사라지고 있다. 20대 초반 청년들의 자살률 남녀 차이는 점차 줄어들어 10만 명당 0.9명 정도로 좁혀졌다. ‘남성과 자살률이 비슷한 수준이 되었다고 그게 문제냐’, ‘여전히 남성 자살률이 높은데 왜 여성 청년 자살률에만 관심을 가지냐?’, ‘그동안 높은 자살률을 보인 남성들에게는 왜 관심이 없었냐?’, 등의 댓글을 접한 적도 있다. 남녀의 차이가 줄어든 것에 대해 좋다 나쁘다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자살률은 우리가 처한 사회환경이 어떤지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표식이다. 어떤 수치이든지 간에 현상을 바로 알고, 왜 그런지 예리하게 판단하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다 함께 논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부여하는 성역할 차이가 다양한 사회적 결정요인의 차이를 만드는데 기여하지만, 자살 현상의 젠더 차이를 전통적 성규범에 따른 특성으로만 단정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청년의 고단한 삶을 부추기는 편협한 시각
얼마 전, 모 서울시의원이 한강 투신 남성이 증가하는 현상을 두고 ‘여성 사회참여가 증가하는 여초 사회 탓’이라고 발언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기자의 질문을 받았다. “과거 한국은 가부장제와 남존여비 사상이 만연하던 시대였음과 달리, 여초사회로 변화되면서 남성 노동력의 부족, 결혼 상대를 구하기 어려운 남성의 증가, 여성의 사회 참여로 인한 남녀역할 변화 등 다양한 요인으로 남성 자살 시도가 증가했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이어서 여초 현상 확대를 ‘극복’하기 위한 장단기적 대책에 관한 소신도 이야기했다. 청년의 정신건강과 자살 문제는 현상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도, 원인과 관련 요인을 종합하는 논리적, 과학적 접근도 중요하다. 구성원 모두의 세심한 관심도 중요하다. 여러 언론에서 문제를 지적하자 본인의 주관적 의견이라며 해명하였지만 이런 비슷한 논리와 해석을 내어놓는 사람을 우리는 주변에서 심심찮게 마주하곤 한다. 보다 정확한 지식과 정보를 자주 발표하고, 예리한 문제진단을 내어놓고, 다양한 시각으로 토론하지 못한다면 청년 자살 문제는 해결되지 못할 것이다. 편협한 시각으로 문제의 원인을 잘못 해석하고,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솔루션을 두루 나열하는 것은 이 시대 청년의 고단하고 우울한 삶을 부추길 뿐이다.
성역할 고정관념이 가져온 폐해
성별 사회환경, 성 규범, 성역할은 자살과 자살 생각에 차이를 만든다. 성 불평등 지수가 높은 사회일수록 여성 자살률이 높다(Chang et al.,2019). 남아 선호 사상으로 출생 시 남녀 성비가 컸던 중국이 남녀 자살률이 거의 동일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Chang et al.,2019). 전통적 성역할에 의하면, 남자는 위험 환경의 불안, 문제, 부담 등을 인지하지 않거나, 받아들이지 않으며 고통과 감정에 대해 무시하도록 학습된다(Möller-Leimkühler, 2003). 이는 위기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회피전략을 선택하게 하여 결국 효과적인 대처를 어렵게 한다(A. Miranda-Mendizabal et al., 2019; A. E. Rhodes et al.,2014). 여성의 정체성은 사회적 관계와 의사소통 맥락에서 정의되며 네트워크에 소속되어 있으나(Schrijvers et al.,2012), 남성은 외부적 문제 중심으로 상호작용하고 경쟁과 정서적 고립이 특징적(MöllerLeimkühler, 2003)이기 때문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약점으로 인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오히려 정신건강 서비스 접근이 어려울 수 있다(Schrijvers et al.,2012). 전통적 성역할과 성 규범을 강조하는 것은 남성 청년과 여성 청년 모두의 정신건강에 악역향을 미친다는 의미이다.
청년 자살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사회적 요인
현 20~30대 청년들은 1997년 IMF 외환위기, 2003년 신용카드 대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어린 시절에 겪은 세대이다. 한국의 경제위기 시기는 실업률과 자살률이 치솟던 시기와 일치한다(문다슬·정혜주, 2018). 아동기 사회경제적 결핍과 여러 생활환경의 부정적인 경험들이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청년이 되고 보니 이제 세대 갈등이 키워드가 되어있다. 같은 세대 사이에서도 젠더 대결 구도를 포함한 흙수저, 금수저 등 집단별 갈등과 박탈감의 양상도 짙어져 있다. 사회적 문화적 환경이 자살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여러 이론을 감안할 때(김효창, 2010), 청년 자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어떤 영향을 얼마나 미쳤을지는 더 많은 관심과 연구가 필요하다. 같은 사회문화적 환경과 상황 속에서도 성별에 따라 받는 영향은 다를 수 있고, 성별에 따라 처하는 사회경제적 상황과 환경 또한 다를 수 있다. 경제위기에 따른 자살률(문다슬·정혜주, 2018) 연구에 따르면, 남성 자살률은 실업률 증가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여성 자살률은 노동 빈곤층 증가에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노동시장 위축, 고용불안, 저임금으로 인해 청년층이 빈곤화되고(안홍순, 2016) 있으며, 경제적 격차가 심화함에 따라 청년층의 사회적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임윤서·안윤정, 2022). 소득 불평등은 우울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상대적 박탈감을 매개로 자살 위험을 높인다(김진현, 2021; 이수비 et al.,2022). 2022년 20~30대 남성 근로자 중 26.4%, 여성 중 33.7%는 비정규직 근로자였다(KOSTAT, 2022b). 정규직 위주의 복지 정책은 경제 위기에서 비정규직에 보호 효과를 주지 못한다(문다슬·정혜주, 2018) 일본의 경우, 2001년 출생 코호트는 1951년 고성장기(베이비붐) 출생 코호트와 비교하여 상대적 빈곤 코호트로 경제 침체로 인한 고용 불안정을 겪었기 때문에 베이비붐 세대보다 자살 사망 위험이 더 크게 나타났다(Kino et al., 2019). 한국 청년이 경험하는 고용불안정과 경제 침체는 한국 청년 코호트의 자살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청소년 및 초기 성인의 자살 행동에 대한 성별 차이에 관한 체계적 문헌 고찰 연구(A. MirandaMendizabal et al., 2019)에 따르면, 여성의 자살 시도 위험 요인은 식이 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양극성 장애, 데이트 폭력 피해, 낙태 경험, 대인관계의 어려움이며 남성 특이적인 자살 시도 위험 요인은 파탄 행동(disruptive behavior), 품행장애, 절망감, 자살 수단 접근, 부모의 별거 및 이혼, 친구의 자살 행위, 절망, 이전의 자살 행동 등이었다. 대학생(18~24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여성은 부모 사이 폭력에 대한 노출, 불안장애, 알코올·약물 장애가 남성은 신체적 아동학대, 부모의 사망, 절망이 자살 생각의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가족 지원 및 동료·기타 지원은 여성에게만 보호 요인으로 작용하였다(MirandaMendizabal et al.,2019). 같은 요인도 성별로 효과가 다르게 나타나는데 은퇴, 사별, 성적 학대는 여성보다 남성에게 더 크게 작동하였다(Schrijvers et al.,2012). 사회적 노력을 결집하고 모두가 관심을 가지려면 청년 남녀의 삶과 정신건강 현황, 관련 요인을 아는 만큼 반영한 국가 단위의 계획과 전략이 있어야 한다.
한국의 자살 예방 정책에 대한 제언
우리나라 자살예방기본계획은 자살 수단 관리나 응급실 기반 자살 시도자 사후 관리 사업(보건복지부, 2023)과 같이 대부분 자살 행위에 아주 근접한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근위적 예방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전체 인구를 대상으로는 생명지킴이 양성 사업이 있다. 제5차 자살예방기본계획에서 생명 안전망 구축이라는 환경개선 차원의 추진 전략을 표방하였고, 기존 생명존중문화 확산 정책을 포함하여 정신건강검진체계 확대 개편 및 지역맞춤형 자살예방 내용을 포함했다(보건복지부, 2023). 선제적 예방에 대한 관점과 생애주기 및 성별의 교차하는 특성을 반영하는 것이 앞으로는 더 필요하다. 근본적인 자살 예방을 위해서는 고위험군에 대한 선별적인 접근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자살 예방 정책 수행을 위해 부처 간 협업의 구체적 체계와 그 속에서 개별 특성을 어떻게 반영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공적 의료보장 체계를 갖추고 일차의료기관에서 고위험군 발굴과 서비스 연계도 원활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더하여 중앙정부에서 자살 예방계획을 수립하고 보건복지부, 기획재정부, 지방정부 간 공공서비스 협약을 맺어 성과 및 예산을 연계하여 긴밀하게 관리해야 한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22). 보건, 복지, 노동, 장애, 노인, 아동, 여성 등 관련 부서들의 협력을 통해 자살 예방정책의 유기적 연계를 이루고, 관련 종사자들을 위한 교육 및 전문가 양성프로그램도 더 활발하였으면 좋겠다. 자살 예방을 위한 지역사회 현장 실무자에게 꼭 필요한 협조체계, 세밀한 업무 지침도 적절한지 점검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자살예방 정책과 계획을 넘어서 청년 자살 예방을 위한 보호 요인도 강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주거 안정성, 경제적 지원, 사회적 인식, 가족 건강성 등을 청년 남녀 각각이 특성에 맞게 갖추어 나가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야 하고,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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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복지동향> 2024년 8월호(제3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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