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4 2024-09-01   7795

[기획2]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활동

남기철ㅣ동덕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공공부조는 자산조사를 거쳐 대상자로 선정된 빈곤층에게 급여를 제공하는 복지정책 수단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공공부조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이다. 공공부조는 선별적 복지제도이고 가난한 사람만을 대상으로 급여를 지급한다. 그다지 각광받지 못하는 옛날 방식의 복지정책이라 여길 수도 있다. 보편적 복지국가의 실현을 표방하고 있는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의 활동에서도 핵심은 아닌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지난 30년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의 활동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또한 우리나라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발전에서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의 역할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선별적 공공부조라는 운영 방식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기본적 생활 수준을 보장받는다는 기본권의 확립을 위한 운동의 결과이고 과정이기 때문이었다.

국민생활최저선 확보 운동과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우리나라의 사회복지운동은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다른 사회운동에 비해 상당히 저조하였던 게 사실이다. 운동은 치열한 계급 정체성과 노동의 투쟁 속에서 진행되는 것이고, 그에 비해 사회복지는 일상생활의 개량이라는 주변적이거나 감내해야 하는 조건으로 인식되는 분위기가 있었다. 물론 보건의료운동, 장애인운동, 공동육아운동 등 사회복지와 관련된 운동이 부분적으로 진행되어 왔고, 국민의료보장 쟁취를 위한 운동, 사회복지예산 확보 투쟁운동 등이 간헐적으로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까지 진행된 사회복지 운동들은 단기적인 문제 제기에 머물러버리던가, 아니면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못하던가, 혹은 유사한 목적을 가진 여러 부문 운동과의 활발한 연대투쟁으로 전개되지 못하였다.

1994년 참여연대가 최초로 발족하였을 때부터 사회복지위원회는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사회복지위원회의 핵심과제로 ‘국민생활최저선 확보 운동’이 제기되었다. 국민 생활 최소한의 부분은 국가가 보장할 책임을 져야 하고, 이는 국민의 기본권이라는 것이다. 공익소송, 성명서 발표, 기자회견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이를 알려 나갔다. 30년 전 시민 운동의 테마로서는 획기적이었다. 국민생활최저선 확보 운동이 특히 부각된 것은 외환위기 상황과 관련되었다. 1998년 심각한 경제위기 상황에서 국민의 생활은 미증유의 위기에 직면하였다. 당시 생계를 위한 보험금을 타기 위해 아들의 손가락을 절단하였던 사건이 발생하여 사회에 큰 충격을 준 바도 있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는 대량 실업 사태가 가족해체와 생계형 범죄의 창궐, 통제되지 않는 사회적 소요로 이어진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사회복지위원회는 저소득 빈곤층의 생활보장 대책이 시급함을 강조하고 종합적인 체계로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입법화를 주장하였다.

물론 당시 기초생활보장 제도의 형성에는 참여연대의 노력만이 아니라 소위 IMF 경제위기 이후 사회경제적 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복지체계를 정비하고자 했던 집권 정부의 성향도 영향을 미쳤다. 그렇다고는 해도 당시 예산부처는 물론이고 노동부, 심지어 복지부까지도 기존 생활 보장법의 성격을 뛰어넘는 권리성 급여라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틀에 대해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나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는 기본권의 관점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 제도 형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사회복지위원회의 입장은 기존 생활보호제도의 한계성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 운동’을 벌여 ‘국민의 최저생활을 국가가 보장해야 함’을 법률로 규정하고자 하는 일관된 방향을 견지하는 것이었다. 기존 생활보호 제도는 빈곤 가구라도 노동 능력자가 있으면 국가는 생계비 지원을 하지 않았고, 최저생활보장이 국민의 권리 그리고 국가의 책임으로 여겨지지 않는 사실상 시혜적 구제의 성격이었다. 참여연대는 다른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1998년 7월 국회에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안을 국회에 청원하고, 이를 사회적인 쟁점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사회복지학과 교수 209명의 공동성명, 만민공동회, 국민복지 권리 선언, 집회 등 다양한 활동을 조직했다. 1999년 3월에 참여연대, 민주노총 등 전국의 64개 단체로 구성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 추진연대회의’를 결성하였다. 노동계, 종교계, 빈민단체, 여성단체 등과 함께 법 제정을 추진하고 소극적이었던 정부의 의지에 대해서 강한 압력을 행사하였다. 그 결과, 1999년 8월 12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안이 통과되었다. 2000년부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작된 것이다.

희망UP 캠페인과 최저생계비 수준 향상을 위한 공론화 활동

그러나 법의 제정과 제도 실행만으로 국민의 최저생활보장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당장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시행 첫해의 정부 예산안에서 생활보장 관련 예산은 대폭 축소되었다. 정부는 실업률 감소가 예상된다는 것을 소극적 예산의 근거로 들었다. 실업자의 감소가 빈곤율 하락으로 곧장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는 상태에서 기초생활보장의 대상자 수를 매우 제한적으로 설정한 것이다. 특히 ‘최저생계비’ 미만의 가구에 대해 모자라는 만큼의 생계를 지원한다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작동 방식을 이용해 정부는 최저생계비 수준을 비현실적으로 낮게 억제하였다. 또한 수급권을 제한하는 부양의무자 기준, 재산의 소득 환산에서 비합리적으로 소득을 높게 산정하는 방식 등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역할을 제한하는 기제가 되고 있었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의 입장에서 제도가 만들어졌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국민의 수급권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은 묵과할 수 없는 것이었다.

2000년대 초기부터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운영에서 최저생계비 수준을 결정하고 제도의 중요한 사항들을 심의하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 등 거버넌스에 시민사회 공익대표자를 추천하여 제도운영과 개선에 대한 논의에 참여하기도 하고, 시민사회 및 연대단체들과 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였다. 그 초점은 수급권을 제약하는 낮은 최저생계비 수준이나 수급권을 실질적으로 제약하는 사항들의 개선을 위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특히 소위 ‘희망UP 캠페인’으로 알려진 두 차례의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 캠페인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1차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 희망UP 캠페인 (2004년 하월곡동)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는 2004년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 캠페인을 진행하였다. 2004년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된 지 5년 만에 최저생계비 실계측이 이루어지는 해였다. 최저생계비 실계측과 차년도 최저생계비 설정에서 보다 현실적인 최저생계비로의 인상을 끌어내고자 하였다.

기존의 성명서 발표, 입법부와 행정부에 대한 압력 등을 넘어 보다 많은 시민들의 관심과 공론화를 이끌어내고자 시민들의 체험과 그 과정 및 결과의 공개라는 운동방식을 기획한 것이다. 아름다운재단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최저생계비의 주거비에 준하는 월세 비용으로 방을 구할 수 있는 드문 지역 중 하나인) 하월곡동에서 시민 11명의 직접 체험, 시민 1천여 명의 온라인 체험이 이루어졌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대학생과 시민 체험단 11명은 가구원수별로 5개의 가구를 형성하여, 한 달간 최저생계비로 생활하면서 가계부를 작성하고 매일의 일상생활과 사회적 활동 상황을 기록하여 온라인으로 공개하였다. 대학생들로 구성된 자원봉사자들은 실제 최저생계비로 생활하고 있는 주민들에 대한 가계부 조사와 프로그램 내용에 대한 지원·홍보를 수행하였다. 체험 가구 5가구는 최저생계비로 생활하면서 모두 적자를 나타내었다. 적자 폭은 최대 45.4%에 달했다. 체험 결과 발표에서 체험단은 “생존은 가능할지 몰라도 탈수급에 이르기 위한 사회적 생활은 불가능한 낮은 금액으로 최저생계비가 편성”되어 있음을 널리 알렸다. 당시 김근태 복지부 장관, 김창국 국가인권위원장, 다수의 여야 의원들이 일일 체험과 희망 UP 활동 장소를 방문하였고 언론에서도 비중 있게 다루어졌다. 캠페인 이후 결정된 2005년 최저생계비는 8%가량 상승하여 당시 몇 년 간의 3%대 인상보다 그 폭이 훨씬 컸다.

2차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 희망 UP 캠페인(‘장수마을 한달나기’, 2010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기준선이 되는 우리나라의 최저생계비는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전물량방식의 절대적 빈곤 계측 방식으로 설정되고 있었다. 필요한 품목의 가격을 모두 더하여 합산하는 방식이다. 수백 가지 이상으로 다양한 필수품목의 결정, 가격, 내구연한 등의 결정은 늘 쟁점이 되었고, 전물량방식은 그 운용이 비현실적으로 복잡하였다. 이에 따라 최저생계비의 실제 계측은 초기 5년, 이후 3년 단위로 이루어지고, 중간의 년도에는 물가 상승 등을 감안하여 일정한 비율로 상승시켜 최저생계비를 결정하였다. 1차 캠페인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시행 이후 첫 번째 실계측이 이루어진 2004년이었고 이후 2007년과 2010년이 최저생계비 실계측이 이루어지는 해였다. 처음부터 최저생계비가 낮게 설정되기도 했지만, 특히 비계측연도에 그 인상이 관성적으로 제약되면서 최저생계비의 상대적 수준이 계속 낮아진다는 점에 대해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는 크게 우려하고 있었다. 이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아울러 최저생계비 수준에 연동되는 수십 가지 복지제도의 적용 범위를 축소시키고 보장 수준을 떨어뜨리는 직접적 원인이 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사회복지위원회는 최저생계비 수준 확보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중 하나의 시도로 2010년에 두 번째의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 캠페인을 서울시 성북구 삼선동의 장수마을 일대에서 진행하였다. 오프라인으로는 참여자를 공모 및 선발하여 직접 한 달을 살아보는 ‘장수마을 한달나기’라는 명칭으로 진행하였고, 본인 집에서 최저생계비로 생활하는 ‘내집에서 한달나기(온라인 캠페인)’도 함께 이루어졌다. 국회의원 및 중앙생활보장위원회 위원 등 정책 결정자들이 일일 참여 형태로 캠페인에 직접 참여해 낮은 최저생계비 수준과 우리 사회의 빈곤 현실을 확인하기도 하였다. 

체험의 결과는 온라인상에서 여러 가지 논쟁을 가져왔다. 당시 보수 여당의 한 국회의원은 일일 체험을 통해 최저생계비의 식비 수준이 자기가 하기에 따라서는 “황제와 같은 식사”를 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이라는 억지 수기를 올려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이는 오히려 장수마을 한달나기가 최저생계비 수준에 대한 공론화를 끌어내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체험단과 사회복지위원회는 체험의 결과 ‘중앙생활보장위원에게 보내는 국민의 소리’와 릴레이 편지 등을 통해 최저생계비의 현실화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탈빈곤을 위해 본래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촉구하였다. 한편으로는 체험단의 수기와 빈곤 문제의 실상을 다룬 책자를 발간1) 하기도 했다.

2014년까지 절대빈곤선 방식에 기초해 운영되었던 최저생계비는 총 15번의 인상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높은 인상률을 기록한 것이 사회복지위원회의 최저생계비 체험 캠페인이 진행된 두 해였다. 또한 다소 난해하고 어려운 복지제도와 관련된 내용에 대해 전문가 위주의 활동에 국한되지 않은 시민 참여적 운동방식을 현장에서 구현한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한 방식의 캠페인은 이후 여러 시민운동단체들에 의해 다양하게 차용되기도 하였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개편과 사회복지위원회의 대응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시행 이후에 사회복지위원회가 최저생계비 인상과 관련된 활동만 진행한 것은 아니다. 부양의무자 기준을 비롯하여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독소조항과 관련하여 제도를 개선·보완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여 왔다. 2009년 9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대표적인 불합리한 기준으로 꼽혀온 간주 부양비 규정과 부양의무자 기준을 개선하기 위해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 청원 안을 국회에 제출하였고, 2009년 11월에는 법률적 근거 없이 운용되고 있는 간주 부양비 규정의 문제점을 공론화하기 위해 공익소송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최저생계비와 관련해서는 절대 빈곤선에 기초한 최저생계비가 가지는 열악한 수준의 문제에 대응하고 특히 그 수준이 계속 떨어지는 것을 막는다는 사회복지위원회의 입장에 따라 자연스럽게 상대빈곤선 방식의 최저생계비에 주목하게 되었다. 다양한 연대단체들과 함께 구성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을 위한 공동행동(기초법공동행동)’은 2010년 11월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상대빈곤선 도입,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하였다.

이후 박근혜 정부에서는 ‘맞춤형 개별급여’를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개편 방향으로 제시하였다. 기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수급자로 선정되면 생계급여, 의료급여, 주거급여 등 모든 급여를 다 받지만 선정되지 못하면 아무런 급여도 받지 못하는 통합급여 체계가 가지는 경직성을 맞춤형 개별급여 방식으로 해결하겠다고 표방하였다. 이에 따라 각 급여의 유형별로 별도의 기준선에 따라 급여를 제공하는 개별급여 체계를 도입하겠다는 것이 주된 골자이었고, 이 별도의 개별급여 기준선은 기존과는 달리 기준 중위소득의 일정한 비율을 통해 상대적 방식으로 결정하겠다고 했다.

기존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지나치게 소위 ‘all or nothing’ 방식의 통합급여 체계로 운영되면서 나타내는 경직성 문제는 이미 인식되고 있었다. 통합급여와 개별급여 혹은 부분 급여의 적절성에 대한 논의는 당시 여러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개편안에서는 개별급여와 아울러 시민단체가 그간 주장해 온 상대빈곤선 도입에 대한 부분도 포함하고 있어서 맞춤형 개별급여 개편안에 대해서도 다양한 입장들이 나타났다. 그러나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와 시민사회단체들은 실제 개편안의 구체적 내용을 볼 때, 상대빈곤선을 도입한다고 하지만 지나치게 낮은 기준으로 보장성이 오히려 떨어진다는 점, 개별급여로 흩어지는 각 급여가 부처별 재량성에 의존하면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가진 기본 생활의 권리성이라는 핵심 요소를 희석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우려하였다. 기존 기초보장제도의 급여체계를 뒤흔들지 않더라도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최저생계비 현실화로 선정과 급여 기준을 끌어올리는 것 등 기존의 독소조항을 제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는 여러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박근혜 정부의 ‘맞춤형 개별급여’를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해체 시도로 규정하고 반대의 입장을 취하였다.

2015년 정부의 맞춤형 개별급여 개편안은 생계급여는 기준중위소득 28%, 의료급여는 40%, 주거급여는 43%, 교육급여는 50%로 초기 기준이 설정되었다. 가장 핵심적인 생계급여의 대상자 선정과 급여 기준선이 매우 낮게 설정되었다. 일반적인 국제 통계에서 빈곤의 기준을 중위소득의 50%로 설정하고 있는 것에 비추어, 특히 생계급여 기준은 극도로 제약된 수준이었다고 할 수 있다. 상대 빈곤선이 도입되었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수급자의 인간다운 생활을 위한 권리 보장에 전혀 근접하지 못한 것이다. 개별급여의 도입이 (통합) 급여를 받지 못했던 계층에게 일부의 급여를 추가로 제공한다기보다는 오히려 (턱없이 낮은 선정기준으로 인해) 기존의 수급자들에게서 일부 급여를 박탈하는 기제가 되기도 하였다. 실제 보장가구의 수나 보장 수준의 향상은 맞춤형 개편으로 인해 특별히 나아진 바 없이 기존 절대빈곤선 방식의 최저생계비가 적용되던 시기의 추이와 유사한 경향을 나타내었다.

미완의 국민기초생활보장과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의 과제

통합급여체계에서 개별급여체계로 전환된 이후, 특히 주거급여의 경우에 소관 부처 역시 국토교통부로 전환되었다. 주거급여는 이전 생계급여 내에서 일정 비율의 현금으로만 취급되던 것에 비해, 이제는 임차료 지원과 수선유지 급여의 체계화가 기초생활보장제도와는 사실상 별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긴급복지지원 등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시작 당시에는 없었던 제도들도 만들어졌다. 국민생활최저선 확보 운동이 이루어지고 기초생활보장제도 출발이 논의되던 20세기 말과는 우리나라 사회복지의 지형도 많이 달라졌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는 이미 2010년부터 보편적 복지국가의 비전을 선언하였고, 2011년 심포지엄을 통해 이를 발표한 바 있다.

이 시기부터 본격적인 저출생·고령화와 돌봄 위기, 또 최근의 코로나19 팬데믹에 이르기까지의 상황으로 인해 빈곤 문제에 대해서도 공공부조에 대한 집중성보다는 다양한 영역과 방식의 복지국가운동이 부각되는 양상도 두드러졌다. 소위 기본소득에 대한 논란, 사회보험의 보편성 강화, 상병수당, 실업 부조 등에 대한 제기 등도 나타났다. 실업부조에 대한 부분은 공공부조의 범주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지만, 상병수당이나 소득 기반 보편적 사회보험에 대한 논의는 보편적 복지국가의 강화와 관련되는 부분이다. 기본소득이나 안심 소득(혹은 NIT 부의 소득세)은 어찌 보면 고전적인 복지국가의 정책 범주를 벗어나는 것일 수 있다. 이에 비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상당히 선별적 속성을 가지는 공공부조 방식의 빈곤 정책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논의는 새로운 것이라기보다는 이미 성립된 제도에 대한 수선유지이거나 기술적 증진과 관련되는 제한적 부분이라는 인식도 있다. 그러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소위 선별적 원리의 공공부조제도이고 새롭지 않은 주제라 해서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의 운동에서 비중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아직도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의 성명이나 입장표명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내용의 하나가 여전히 국민기초생활보장과 관련된 부분이다. 빈곤에서 벗어날 국민의 기본권을 옹호하는 현실의 운동으로 중요하게 인식하기 때문이다.

2010년대 이후 보수 성향의 정부에서 자유주의 성향의 정부로, 그리고 그 반대로의 정권교체가 나타난 바 있다. 그러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가지는 국민의 최저생활보장이라는 과제의 달성은 여전히 달성되지 못했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여전히 현대적인 기초생활보장의 완수를 옭아매고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의 공약이 나타난 바 있으나 달성되지 못했다. 현재까지도 생계급여에서는 폐지가 되었으나 의료급여에서는 남아 있다. 생계급여에서도 부양의무자의 소득과 재산의 상한선을 넘는 경우에 대해서는 사실상의 부양의무자 기준이 적용되고 있다. 최저생계비(국민기초생활보장 제도 적용 기준) 역시 기준중위소득의 일정 비율이라는 상대적 방식을 취하고 있으나 이를 낮은 수준으로 억제하기 위한 정부의 비합리적 수단이 여전히 횡행하고 있다. 통계 기준 자료의 변화에 따라 실제의 우리나라 중위소득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 라 재정 상황 등을 핑계로 기준중위소득 금액을 억지로 낮추고 있다. 이에 따라 2010년대 중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개편 이후에 사회복지위원회는 특히 부양의무자 기준 철폐, 정부의 기준중위소득에 대한 자의적 설정에 대한 비판 등에 초점을 두고 있다. 한편으로 정부는 근로 능력자에게 급여 제공을 회피하기 위해 근로 능력 평가를 엄격하게 시행하여 한국판 나 다니엘 블레이크 사건으로 불리는 (사실은 그보다 더 참혹한) 고 최인기 님 사건과 같은 비극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사회복지위원회는 연대단체들과 함께 국가배상 소송을 진행해 승소하며 조건부 수급 제도가 작동되는 방식의 비인권적 민낯을 고발하기도 하였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우리나라의 사회복지 역사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제도이기는 하지만 현대적 복지제도라 하기에는 부끄러운 전근대적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전근대적 독소조항에 맞서는 역사를 대변해 왔다. 지금 이 순간도 내년 기준중위소득에 대한 논란이 격화되고 있다. 정부의 높은 인상이라는 기만에 맞서 기초생활과 인권을 옹호해야 할 책임이 사회복지 운동에 그리고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에 있다.

| 미주 |

1)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2013), 대한민국 최저로 살아가기, 나눔의 집.

| 참고 문헌 |

참여연대·아름다운재단 공편(2005),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 희망UP캠페인 백서.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2013), 대한민국 최저로 살아가기, 나눔의 집.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 블로그(https://cafe.naver.com/hopeup), 2024. 8. 15. 인출.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홈페이지(https://www.peoplepower21.org/category/welfare), 2024. 8. 15. 인출.

월간<복지동향> 2024년 09월호(제3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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