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4 2024-11-01   10328

[복지칼럼] 채식주의자와 고립·은둔 청년들

이해님ㅣ동국대학교 사회복지상담학과 교수

한강의 노벨상 수상 소식에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서점에서 한강의 소설을 구하는 일이 당분간 쉽지 않을 듯하고, YouTube에는 20년 전 대학을 갓 졸업한 그녀의 인터뷰 영상이 복원되어 올라왔다. 참여연대 앞길에는 “630년 종로의 자랑, 한강 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라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다.

한강의 소설이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은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성찰이다. 그녀의 소설은 우리가 정상적이라고 믿는 일상에 얼마나 많은 폭력이 내재하여 있는지, 그리고 그 폭력을 우리는 어떻게 안고 혹은 거부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묻는다. 이 질문은 ‘N포 세대’라 지칭되는 요즘 청년의 삶을 연구하며, 녹록지않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떠오르는 나의 고민과도 맞닿아 있다. 한강의 소설 중 해외에서 가장 먼저 주목받은 《채식주의자》의 주인공 영혜를 통해, 고립과 은둔의 삶을 살아가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다시금 짚어보고자 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3년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19~39세 청년 중 약 54만 명(전체의 5%)이 고립·은둔 상태의 청년으로 추정된다. 고립은 가족 외 타인과 의미 있는 교류가 없으며, 어려운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정서적 지지체계가 부재인 상태를 나타내며, 은둔은 스스로 제한된 거주 공간에만 머무는 상태를 말한다.

청년들은 왜 고립·은둔을 선택하는가?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의 주인공 영혜는 어느 날 기괴한 꿈을 꾼 후 육식을 거부한다. 그런 그녀를 남편과 가족은 외면하고, 영혜는 점점 몸과 마음이 병들고 자해를 시도하다 결국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다. 언니의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영혜는 모든 음식을 거부하며 인간의 존재에서 벗어나 나무가 되고자 욕망한다. 나무가 되려는 영혜의 욕망은 세상과 인간의 폭력성에서 벗어나려는 극단적인 저항이자 더 이상 인간으로서 그 폭력의 일부가 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다.

고립·은둔 청년의 문제를 깊이 이해하려면 그들의 아동기 학대·폭력의 중복적 경험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동기 부정적 경험(Adverse Childhood Experiences, ACEs) 연구는 생애주기 관점에서 어린 시절부터 경험한 축적된 폭력이 청년기의 고립·은둔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설명한다. 아동기 부정적 경험(ACEs)이란 만 18세 미만 아동의 건강한 발달과 안녕을 저해할 수 있는 트라우마적 경험을 의미한다. 주로 학대, 방임, 가족 문제라는 세 가지 영역에서 10개의 경험으로 누적 측정되며, 이 경험에는 정서적·신체적 학대, 성적 학대, 신체적·정서적 방임, 가정폭력 피해, 가족 내 약물 중독, 가족 구성원의 정신질환, 부모의 이혼 또는 별거, 그리고 수감된 가족 구성원이 포함되어 있다. 아동기 부정적 경험(ACEs) 연구는 고립·은둔 청년의 배경을 이해하고, 아동기부터 누적된 경험이 청년기의 고립·은둔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동기 부정적 경험(ACEs)은 아동기의 신경 발달을 저해하고, 정서적·사회적 발달에 심각한 손상을 초래한다. 따라서 건강에 해로운 행동을 선택할 가능성이 커지고, 음주 문제, 불안, 폭력 피해 등 사회적·심리적 문제를 더 자주 경험하게 만든다고 보고된다. 또한, 아동기 부정적 경험(ACEs)은 성인기의 사회적 및 경제적 불평등과 대인관계의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신뢰 문제와 친밀감에 대한 두려움을 증폭시키고, 성인이 되어 타인과 관계를 형성하는데 어려움을 경험하게 된다. 이와 같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아동기 부정적 경험을 한 청년들은 은둔과 고립을 경험할 가능성이 크다.

<2023년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23.8%가 10대에 고립·은둔을 시작했으며, 60.5%는 20대에 시작되었다고 답했다. 10대에 고립·은둔을 시작한 응답자들은 주된 원인으로 대인관계 문제(27.1%), 가족관계 문제(18.4%), 그리고 폭력이나 괴롭힘 경험(15.4%)을 꼽았다. 서울시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립·은둔 청년들의 57.2%가 성인기 이전의 학교에서 괴롭힘이나 따돌림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으며, 51.2%는 부모로부터 심한 체벌, 꾸지람 혹은 모욕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한다.

중복적 폭력의 경험에서 벗어나기 위한 선택, 고립과 은둔

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고립·은둔 속에서 홀로 싸우며 지우지 못한 어린 시절 다양한 폭력의 기억을 듣게 된다. 이러한 폭력은 단순히 물리적인 것에만 국한되지 않고, 심리적·정서적 폭력에서부터 사회적 압박에 이르기까지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사회적 성공과 성취에 대한 과도한 기대도 청년들이 은둔·고립을 선택하게 되는 요인이다. 경쟁이 치열한 사회 속에서 실패를 경험한 청년들은 자신이 사회의 요구를 감당하지 못한다고 느끼며, 세상과의 연결을 차단한다. 이들의 고립은 자신을 향한 내면적 폭력으로 이어지며, 스스로를 비난하고 자책하며 세상에 나아갈 자신감과 자존감을 상실하게 된다. 이는 우울증, 불안장애 등 심리적 문제로 이어지며, 청년들을 고립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만든다.

반복적이고 다차원적인 폭력 노출은 아동기에서부터 이어져 성인기까기 서로 얽혀 있고, 그 충격은 단일한 경험보다 훨씬 더 강렬하며, 청년들은 이 중복된 경험 속에서 더욱 심각한 정서적·심리적 어려움을 겪게 된다. 가정폭력의 피해자는 많은 경우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되며, 그렇게 형성된 사회적 관계의 불안감과 외로움은 성인이 된 후에도 사회적 연결에 대한 두려움을 키우고, 직장 내 갈등으로 이어져 은둔과 고립의 상태로 귀결되기 쉽다.

《채식주의자》의 주인공 영혜의 선택이 일상의 모든 폭력성을 거부하려는 몸부림이었다면, 청년들의 은둔과 고립 역시 그들의 삶에서 마주한 다양한 폭력으로 깊이 새겨진 내면의 상처와 불안감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존주의 시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오직 강자만이 살아남는 생존 논리에 길든 청년들이 있다면, 그 대척점에서 어떤 청년들은 폭력성에 물들지 않고,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존재로 살아가고자 자신을 스스로 가두고 고립시키며 은둔하는 탈존주의적 삶을 선택했는지 모른다.

2023년 9월, 정부는 청년복지 5대 과제 중 하나로 고립·은둔 청년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오직 사회적 고립·은둔 청년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가 차원의 첫 지원방안이다. 고립·은둔 청년들이 겪고 있는 문제는 다면적이고 복잡한 구조로 얽혀 있다. 이들의 복지적 요구를 충분히 반영하기 위해서는 고립과 은둔이라는 표면적 상태의 개념으로 설명하기 힘든 그들의 깊은 취약성과 중복적 폭력의 흔적을 유심히 살펴야 한다. 그렇다면, “고립”과 “은둔”의 개념을 청년 복지 정책의 지원 대상 선별기준으로 삼는 것에 한계가 있지는 않은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청년들이 고립과 은둔 상태에 빠지기 전에, 그들이 겪고 있는 심리적 상처, 사회적 배제, 경제적 어려움 등을 조기에 발견하고 개입할 수 있는 예방적 차원의 복지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건강한 아동기를 지나 청년들이 자립하고, 연대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청년복지가 지향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일 것이다.

월간<복지동향> 2024년 11월호(제3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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