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우ㅣ참여연대 정책팀장
들어가며1
우리 사회에서 극우나 극좌는 민주화 이후 여러 이유로 순치되면서 공식적인 영향력을 상실해왔다. 일반적인 극우와 같은 급진적인 민족주의에 기반한 제노포비아적 성향을 가진 정치세력은 제도정치에 자리 잡지 못했다. 대신 군부의 통치를 지지하거나 반공주의에 기반해 내부의 적(주로 ‘빨갱이’)을 제거하자는 이들이 주로 극우로 지칭되어왔다. 유럽에서 우파 포퓰리즘이 득세하며 극우 정당이 의회에 진입했을 때도 우리 사회는 그들의 입성을 허락하지 않았다. 정치인 몇몇이 권위주의 통치를 긍정하거나 극단의 성장주의나 국가주의를 내세울지언정 주류가 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현재 우리 정치담론에서 ‘극우’는 가장 중요한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계엄-내란 이후 ‘백골단’이 여당 국회의원의 소개로 소통관에 등장한 사건,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이 체포·구속되자 수많은 이들이 서부지방법원에 난입하여 물리적 폭력을 동원한 사건이 논의의 주요한 촉발점이 되었다. 이에 많은 이들이 우파 개신교-대중운동이라는 실체적 토대와 여당의 적극적인 관여와 동원, 반페미니즘 유튜버들과 ‘청년 남성의 보수화’를 극우의 주류화에 대한 매우 위험한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극우파의 주류화 또는 공적 무대 등장을 목전에 두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무엇을 계기로 폭발적으로 결집하고 있는 것일까? 그들을 순치할 수 있었던 어떤 기준선이 무너진 것일까? 그렇다면 확산세를 막아낼 결정적 순간이 지금일지도 모른다. 반면에 극우의 확산세를 조심스럽게 바라보는 이들은 최고조에 달한 정치적 대립이 ‘적 아니면 우리’라는 구도로 다수의 시민을 극우로 과잉규정하는 현상을 지적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소수의 극단주의자(극우화된 이들)와 단순히 정치적 대립에 동원되고 있는 시민들은 분리규정하는 것이 시급할 것이다. 그들 사이의 구별지점을 명확히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참여사회연구소는 극렬한 정치적 대립이 이어지는 가운데, 현 사태를 진단하고 전망하기 위해 좌담회를 열었다. 헌정 위기와 양극화된 정치질서가 현 사태들에 포개지면서 현재 우리 사회는 안개 속에 놓인 것만 같다. 내란세력에 대한 선명한 입장과 단호한 구호가 절실하지만, 동시에 멀리 보고 나아가기 위해선 냉철한 논의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극우는 누구인가?
좌담회의 첫 번째 논의주제는 현재 ‘극우’로 규정되는 이들이 공유하는 특징은 무엇이냐 즉, ‘극우는 누구인가?’에 대한 것이다. 권김현영은 카스 무데(Cas Mudde)를 인용하며 극우가 갖는 주요 특징으로 ‘민주적 절차에 대한 부정’, ‘헌법과 국민주권 개념에 대한 부인’, ‘힘에 의한 지배를 숭배’, ‘폭력·차별·혐오를 정치적 정당화의 수단으로 삼는 것’을 꼽았다. 한상원은 극우화라는 것이 급속도로 진행 중이며 그들이 공유하는 핵심적인 내용으로 내란을 정당화하기 위한 ‘음모론’, ‘여성과 중국인 혐오’에 주목했다. 이에 송경호는 극우에 대한 규정이 용례적 차원에서 역사적으로 혼재되어온 지점을 지적했다. 그간 극우는 ‘군사독재 옹호’, ‘반공주의자’, ‘권위주의자’를 지칭해왔지만, 극우에 대한 개념적 정의와 합의는 부재하다는 것이다. 특히 서부지법 폭동 사건에 가담한 이들 간 차이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폭력에 가담한 이들 모두가 투철한 극우 이데올로기를 따르는 확신범은 아닐 수 있으며 행태적으로는 극우적 행위에 동조하지만, 그들 간 차이도 상당 부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다양한 극우적 논리(여성혐오, 중국혐오, 부정선거 음모론 신뢰, 폭력 정당화 등)에 교집합적으로 엮여 있을 뿐, 극우의 코어라 할만한 극우적 이데올로기에 충실히 따르고 있는지, 그들이 공유하는 코어이념이 무엇인지는 불명확하며 그렇기 때문에 유보적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권김현영은 서부지법 폭동 이후 지금이 우리 사회에서 처음으로 극우가 누구인지 합의할 수 있는 공간이 열린 것으로 봐야 한다며 그 중심엔 무엇보다 ‘힘에 의한 지배’라는 특징이 관찰된다고 진단했다. 유럽에서 극우가 규정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나치 독일이라는 정치적·사회적으로 수용될 수 없는 경험이 있었다며 지금 우리도 서부지법 폭동이 유사한 사건적 위상에 놓여있다는 설명이다. 폭력 사태는 정치적 다양성으로 포섭될 수 없으며 결코 용인할 수 없는 사건이다. 이런 점에서 폭력은 극우가 누구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하는데 핵심적인 레퍼런스가 될 것이다.
극우세력은 확장하고 있는가?
분명한 것은 온라인을 중심으로만 활동하며 조직화에 실패해오던 극우가 점차 실체화된 존재로 정치 무대에 출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권김현영은 현재 반페미니즘 유튜버들에게서 목격되는 ‘국가를 위한’, ‘애국’을 키워드로 한 질적 변화에 주목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폭력과 혐오, 조롱을 일삼던 이들이 12.3 계엄 이후 극우적 논리를 학습하여 자신들의 행위에 권위를 부여하고 정당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배경에 대해 한상원과 권김현영은 유럽이나 미국 등에서 실현된 극우의 ‘성공’을 들었다. 그동안 유럽의 우파 포퓰리스트들은 ‘빼앗긴 인민주권의 회복’을 말하는 등 민주주의 자장 안에 있었지만, 점차 반이민, 반유대주의가 강화되는 식으로 극단화되고 있다. 이들 사회에서 마이너리티로만 존재하던 극우는 실제로 권력을 장악하거나 의회에 큰 지분을 획득했다. 그러면서 차별과 혐오적 언동이 자유롭게 유포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그들의 정치적인 성공이 한국의 극우들에게 큰 자신감을 주고 있다는 설명이다. 더군다나 트럼프가 재집권에 성공하고 의회 폭동의 주동자와 가담자들이 사면되면서 그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보았다. 현재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미국이나 트럼프가 윤석열을 도울 것’이라는 주장도 이런 현상과 동조된 결과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미국의 의회 폭동 가담자들에 대한 사면과 같은 일은 벌어져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반면 송경호는 극우세력이 커졌다는 것과 극우라 지칭되는 이들이 늘어난 것 간 구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극우라 지칭되는 이들이 스스로를 ‘애국자’라 규정하고 자신들의 행위를 ‘자유민주주의 수호’라고 정당화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면, 이들은 분명 절대적 기준의 극우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보통 극우는 ‘민주주의의 실패’를 말하면서 권위주의나 군부독재, 힘의 통치를 옹호하기 때문이다. 오히려려 우리가 극우의 특징 중 일부분이라도 공유하는 이들을 모두 극우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확장하고 있다고 오인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들을 이루는 코어(절대적 기준의 극우)는 그대로인데 일부분을 공유하는 이들이 연결되면서 극우가 확장되는 것처럼 보인다는 지적이다. 그렇다고 이를 가만히 놔둘 수는 없는데, 일부분의 교집합으로만 연결되던 이들이 점차 공유지점을 넓히며 극우적 세계관 총체를 받아드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송경호는 이러한 극우의 가속화를 막기 위해 그들을 극우로 규정하기에 앞서 우리 사회에서 허용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합의해야 하며, 전면적인 극우화 단계로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완충지대 설정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설령 극우들이 모여있는 공간에서 극우적 행태에 동조하고 있더라도 뒷걸음칠 수 있는 지점을 제공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사법적인 엄단은 필요하지만, 개심에 효과적이지는 못할 것이며 오히려려 트럼프의 재집권과 의회 폭동 가담자들의 사면 사례와 같이 집권이라는 더 큰 힘을 통해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시도로 귀결될 수 있다는 우려를 덧붙였다.
극우적이라 일컬어지는 조직적 행태가 점차 확산세라는 것은 모두가 동의하는 지점이다. 이러한 상황이 더 심각하게 다가오는 것은 제도정치(주로 여당)와 극우 광장정치간 밀접한 관계인데, 송경호와 한상원은 이런 접촉을 매우 심각한 위기의 신호라고 지적했다. 반면에 권김현영은 파면 이후 대선 국면으로 넘어가면 와해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 국민의힘-극우대중운동이 단단히 결속되어있는 듯 보이지만 그렇지 않으며 국민의힘이 실제 선거절차에 들어서면 결합을 가능케 한 구심력이 줄어들 것이라는 지적이다.
내란 이후 상실한 준거점을 다시 세워야!
우리 사회가 극우화라는 위기를 딛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권김현영과 한상원은 돌봄을 이야기했다. 극우 확산의 토양이 되는 사회경제적 조건에 주목하며 개인화된 ‘외로움’을 공적인 돌봄으로 해소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신자유주의 이후 출생한 이들이 ‘사회나 국가는 우리를 돌봐주지 않는다’라고 했을 때, 그 토양은 극우의 주요한 자양분이 된다는 것이다. 수평적 돌봄을 통한 공동체의 재건이 곧 정념적인 차원에서 극우화를 막아낼 수 있는 핵심적 조치라고 설명한다.
다만, 공동체나 사회적인 것의 재건은 시대적 과제에 준하는 것이기 때문에 간단할 리 없다. 더군다나 그것은 정치의 실패와 사법화, 규범과 제도들의 퇴행, 공동체의 해체, 원자화된 개인들의 고립, 반민주적인 미디어 환경 등 다방면에 걸쳐 얽혀있기도 하다. 송경호는 그러한 공동체 내 구성원들 간 충돌과 조정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가령 일반적으로 차별과 혐오적 사고에 해당하는 의사(예컨대 한국 내 조선족이 너무 많고, 이들이 우리 경제와 사회를 위협하기 때문에 이들의 입국 심사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대체로 터부시될 텐데, 마냥 혐오주의라고 외피를 씌우면 이들은 그 생각이 옳든 그르든 풀어놓을 공간을 점차 잃고, 동일한 생각을 지닌 폐쇄적인 커뮤니티에서만 교류하며 더 편견과 혐오를 강화해간다는 것이다. 즉, 생각이 다른 사람들 간 의견교환이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데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다른 한편,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상실한 준거점을 다시 세우는 일이다. 그동안 정치는 협의와 타협, 대화를 포기하고 모든 결정을 법에 맡겨왔다. 그것의 결과가 현재의 사태라고 송경호는 따갑게 지적했다. 이제는 법조차 준거점의 역할을 잃고 있다. 헌법을 부정하거나 헌법재판소나 사법기관을 부정하는 발언들이 넘쳐나는 데서 그렇다. 진영을 막론하고 법원의 판결조차 재판관의 성향을 두고 따지며 자신들에게 유리한 판결만 인정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더 위험한 사태는 넘어선 안 될 선을 넘으며 스스로 극우임을 자임하거나 자랑스럽게 여기는 자들이 늘어나는 상황이다. 더욱이 외부의 권위나 인정에 기반하여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은 명확히 부정되어야 한다. 그 선을 명확히 긋는 것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권김현영은 그것에 대해 다시 민주주의를 중심에 두는 것이라 말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내란 이후 벌어지는 전방위적인 민주주의 퇴행과 극우의 가시화에 주목하여 좌담회를 개최했다. 사실 민주주의 퇴행이나 권위주의로의 회귀는 세계적 현상으로 지적되어왔다. 실제로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일이 빈번하다. 윤석열 또한, 자유민주주의를 반복해서 언급해왔지만 ‘국가의 적’과의 투쟁을 내세우며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했다. 12.3 계엄-내란은 그러한 결단주의적 논리의 집약체로서 벌어진 사건이다. 그로부터 우리 공동체는 준거점을 상실한 듯 보인다. 기준이 사라져 모든 것이 가능해진 세계는 사실 야만에 가까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불가능의 세계일 뿐이다. 시민사회는 좌담회가 던진 과제들에 적극적으로 응답해야 한다.
윤석열이 파면되더라도 낙관하기 힘든 정세다. 불평등의 심화와 사회의 해체는 시민들을 불안과 공포에 빠트렸고 모든 이들을 모래알처럼 만들고 있다. 이번 좌담회의 주제였던 ‘극우’는 고립된 개인들의 불안을 파고들며 민주주의와 공동체를 아래서부터 파괴하는 이들이다. 시민사회는 민주주의자의 위치에서 그들에 맞서는 동시에 시민들 간 연대를 복원해야 한다. 나아가 서로를 연결 짓고 돌보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파면 이후 마주할 세상은 파면 이전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 미주 |
- 이 글은 지난 2025년 3월 21일에 참여사회연구소가 진행한 <내란과 극우 앞에 선 사회운동의 고민들> 좌담회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좌담회는 참여연대 유튜브 채널에서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
[좌담회] 내란과 극우 앞에 선 사회운동의 고민들
- 일시: 2025년 3월 21일(금) 오후 4시
- 장소: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
- 주최: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
- 패널
- 김주호 (경상국립대 사회학과 교수, 진행)
- 권김현영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기획위원)
- 송경호 (연세대 정치학과 BK21교육연구단 박사후연구원)
- 한상원 (충북대 철학과 교수)
월간 <복지동향> 2025년 4월호(제3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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