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5 2025-04-01   9129

[기획4] 극우는 어떻게 복지국가를 위협하는가? 타자화하는 복지정치

윤홍식 ㅣ 인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들어가며1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국 사회는 전에 없던 혼란에 빠졌다. 민주화 이후 보수정당의 대통령과 여당이 권위주의 통치를 강화하려고 시도했지만, 그 누구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넘어서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달랐다. 그에게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울타리가 없었다. 대통령은 국정을 함께 운영해야 할 야당에 대한 적개심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것을 넘어, 반체제 세력으로 낙인찍었다. 민주주의의 핵심 주체인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은 뭔가 미심쩍은 경제적 이익을 얻으려는 사상이 의심스러운 카르텔로 낙인찍었다. 점점 더 심각해지는 기후위기에 대응해 추진된 재생에너지 사업도 거대한 이권 카르텔로 불렸다.

한국 사회가 암묵적으로 합의했던 보편적 복지는 ‘복지 포퓰리즘’, (개념조차 생소한) ‘정치 복지’라는 오명을 뒤집어씌우고, ‘약자복지’라는 이름으로 재편을 시도했다.2 오랜 시간 국회와 시민사회가 논의하고 시민의 숙의를 거친 국민연금 공론화위원회의 결과는 대통령에 의해 일방적으로 폐기되었다. 의료 개혁은 민주적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되면서 수많은 국민을 고통 속에 몰아넣었다. 일본이 저지른 전쟁범죄는 하루아침에 없던 일이 되었고, 한반도 긴장은 끝도 없이 높아졌다. 대통령은 국회를 통과한 25개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3 12.3 내란은 이런 이상한 일들의 결정판이다.

1987년 민주화와 1997년 민주적 선거를 통한 수평적 정권교체, 그리고 윤석열 정부까지 이어진 정권교체는 민주적 선거가 유일한 경쟁의 규칙이 되고, 패배자도 그 민주주의 제도 내에서 다시 경쟁해야 한다는 원칙이 받아들여진 것이라고 믿었다.4 쉐보르스키의 말처럼 한국의 민주주의가 공고화된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했을까? 윤석열 대통령이 “권위주의적 퍼스낼리티(authoritarian personality)”를5 갖고 있었기 때문일까? 단순히 윤석열 대통령의 개인적 일탈이라고 보기에는 윤석열 대통령을 둘러싼 저변의 흐름이 간단하지 않다. 극우가 무서운 기세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패했지만, 12.3 비상계엄은 민주적 선거로 선출된 극우세력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고 권위주의 체제를 수립하려는 전형적인 형태였다.6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진 것일까?

민주공화국 헌법에 반하는 내란 행위이고, 그 수괴가 윤석열 대통령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재론의 여지도, 이론(異論)의 여지도 없다. 그런데도 국민의 상당수는 비상계엄의 불법성을 부정하고 이를 지지하며,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에 반대하고 있다. 불과 8년 전에 있었던 2016~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다. 2025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반헌법적이고 불법적인 비상계엄을 선포 이후 국민의 절대다수인 75%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했다. 반대는 (상당한 규모였지만) 21%에 그쳤다.7 그러나 탄핵 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12월 14일 이후 윤석열 탄핵에 찬성하는 여론은 감소하고, 반대하는 여론이 높아졌다. 2025년 3월 20일 현재 탄핵에 찬성하는 비율은 58%, 반대하는 비율은 36%에 이른다. 찬성과 반대의 차이가 불과 두 달여 만에 54%P에서 22%P로 급감한 것이다. 자신을 보수라고 규정하는 유권자 중 탄핵에 반대하는 비율은 무려 71%에 달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 탄핵 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부터 탄핵이 인용될 때까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하는 유권자의 비율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국회에서 탄핵 소추안이 통과되기 직전, 탄핵에 찬성하는 유권자의 비율은 81%에 달했고, 반대는 14%에 불과했다. 새누리당(당시 여당, 현 국민의힘의 전신)을 지지하는 유권자 중 61%가 탄핵에 반대했지만, 보수 유권자의 66%가 탄핵에 찬성했다.8 정당 지지율도 더불어민주당은 35%를 기록한 반면, 새누리당의 지지율은 13%로 낮아졌다.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대통령의 탄핵을 인용하기 직전인 2017년 3월 초 조사에서도 탄핵에 찬성하는 비율은 81%, 반대는 14%였다. 정당 지지율은 더불어민주당이 44%로 9%P 높아졌고, 당명을 바꾼 자유한국당은 12%로 2%P 낮아졌다.9 더 심각한 상황은 집권 여당이자 한국의 대표적인 보수정당인 국민의힘 국회의원의 절대다수가 탄핵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논란이 간단하지 않은 이유이다. 국민의힘과 보수 주류는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를 폭력적으로 유린한 윤석열을 탄핵하는 것에 반대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극우’(극단적 극우)로 나아가고 있다. 포퓰리즘과 극우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극우’ 집단은 자유민주주의를 거부하며, 권위주의 또는 독재 체제를 선호하는 특징을 갖는다.10 카스 무데(Cas Mudde)는 『혐오와 차별은 어떻게 정치가 되는가(원제: The Far Right Today)』에서 극우(Far Right)를 ‘반민주주의(anti-democratic)와 반평등주의(anti-egalitarianism)를 핵심 특성으로 가진 정치적 이념과 운동’이라고 정의했다.11 그는 극우를 급진적 우파(radical right)와 극단적 우파(extreme right)로 구분했는데, 이중 ‘극단적 우파’는 민주주의 체제를 거부하고 권위주의·전체주의를 옹호하는 세력으로 정의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주류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한 윤석열의 반란 행위를 옹호함으로써, 국민의힘과 보수 주류는 급진적 우파를 넘어, 극단적 우파로 나아갔다고 볼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도, ‘극단적 우파’의 중요한 특성이다. 서부지방법원 난입사태와 헌법재판관에 대한 위협을 소수의 일회적 일탈이라고 볼 수 없는 이유이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것이다.


위기에 처한 것이 민주주의뿐일까?

헌법재판소가 민주적 헌정질서를 파괴하려고 마음먹지 않는 한, 만장일치로 탄핵을 인용해야 한다(이 글이 출간되었을 때면 윤석열 탄핵이 인용되었을 것이다).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이 인용되더라도 반헌법적인 비상계엄을 옹호하고 탄핵에 반대했던, 여론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보다 더 결집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언행을 더 적극적으로 개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위협받는 것이 민주주의만은 아니다.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하면, 민주화 이후 시작된 복지국가로의 이행 또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특히 지난 2010년 무상급식 논쟁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암묵적으로 합의했던 ‘보편적 복지국가’의 실현은 극우의 확산과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유럽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극우의 부상이 어떻게 복지국가를 위협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유럽에서 극우 정당의 급부상으로 ‘복지 쇼비니즘(Welfare Chauvinism)’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복지 쇼비니즘은 복지국가의 혜택이 오직 자국민에게만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으며, 민족적, 문화적 경계를 명확히 긋는 방식으로 이민자를 배제하는 태도를 강화한다. 특히 극우 정당들은 이 주장을 통해 자국민을 결속시키고, 이주민을 배척하는 정치적 동력을 형성하고 있다.12 경제적 불확실성이 높아질수록 자국민이 이민자에게 느끼는 위협 인식이 강해지고, 이로 인해 복지 쇼비니즘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13

여기에 민족주의가 결합하면서 복지 쇼비니즘이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북유럽과 같은 보편적 복지국가에서도 극우 포퓰리즘이 부상하면서 복지 쇼비니즘도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북유럽에서 포퓰리스트 극우 정당들은 ‘우리를 위한 복지’라는 구호 아래 이민자와 소수자를 배제하려고 한다.14 이는 공적 복지의 급여를 자국민(자민족)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으며, 타자와 민족적, 문화적 경계를 분명하게 설정하는 방식으로 이민자를 배제하는 행위를 확산시키고 있다. 극우 정당들은 이러한 ‘복지 쇼비니즘’을 통해 정체성 정치에서 소외된 육체노동자와 취약계층 등을 결속시키며, 정치적 동력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복지 쇼비니즘의 한국적 특수성

이렇게 보면, 공적 복지가 충분히 확대되지 않았고, 이민자 문제도 핵심적 정치 의제가 아닌 한국 사회에서 극우의 부상은 유럽과 달리 ‘복지 쇼비니즘’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극우의 본질은 단순히 이민자와 외국인을 배제하는 것에 있지 않다. 극우의 본질은 우리와 타자를 구분하는 것에 있다. 이슬람 이민자가 거의 없는 폴란드에선 이슬람 이민자에 대한 극우의 공격이 일회적으로 끝나고, 그 대상이 성소수자로 전환되었다.15 사회적·역사적 맥락에 따라 극우가 배제하는 타자의 정의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자국민 또한 예외가 아니다. ‘복지 쇼비니즘’도 마찬가지이다. 얼마든지 다양한 형태로 자국민을 자격 없는 자로 간주해 공적 복지의 대상에서 배제할 수 있다.

유럽에서 극우 정당과 그 지지자들은 시민권에 기반한 복지보다 노동연계복지 등 조건부 복지를 더 선호한다.16 이는 ‘복지 쇼비니즘’이 언제든 국민의 특정집단을 배제하는 것으로 확대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복지 쇼비니즘’이 자국민 우선의 원칙에 따라 외국인을 배제하는 ‘복지 배타주의’이자, 특정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사회적 약자나 소수집단을 배제하는 ‘복지 배제주의’의 성격을 동시에 갖는 이유이다.17 ‘극우’가 보수의 주류로 부상하면 복지급여의 대상을 자산·소득조사 등과 같은 엄격한 조건을 충족한 ‘자격 있는 빈자’로 제한함으로써 복지 제도의 보편성을 위협할 가능성이 높다.

복지가 경제성장을 방해하고 도덕적 해이를 유발한다는 인식이 여전히 강력한 한국 사회에서 극우의 확산은 한국 복지국가를 엄격한 선별주의로 재편해, 사회적 갈등과 불평등을 더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극우의 복지 쇼비니즘의 본질은 외국인과 이민자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역사적 맥락에 따라 특정 집단을 자신과 다른 집단으로 구분해 자격이 없는 타자화하는 것이다. 이민이 주요한 정치적 의제로 부각할 때까지 한국의 극우는 끊임없이, 시민 속에서 타자화할 대상을 찾을 것이다. 극우의 부상은 극우의 이념과 지향에 반대하는 모든 집단이 언제든지 ‘복지 쇼비니즘’의 재물인 타자가 될 위험에 놓여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안은 있나

대안을 찾기 어렵다. 카스 무데는 극우를 무력화시키려는 거의 모든 시도가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진단했다.18 지금이 우경화의 시대이고, 극우의 시대라면, 극우의 확산은 일회적 일탈이 아니다. 윤석열이 탄핵된다고 끝날 일은 더더욱 아니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극우가 지배적인 이념으로 부상하고 있는 지금, 한국 복지국가가 지금과 같이 가던 길을 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징후가 분명하게 보이고 있다. 집권이 유력한 민주당이 서민과 중산층의 정당이며 자유주의 정당이라는 정체성을 벗어 던지고 스스로 중도 보수정당이라고 선언했다. 국민의힘은 극우에 포획되어 점점 더 극우화되어 가고 있다. 5년만 기다려 집권할 수 있다면, 아니 그 이전에도 집권할 수 있다면, 지금의 포지션을 버릴 이유가 없다.

우경화하고 극우화된 두 거대 정당이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금투세를 폐지한 것을 넘어 상속세는 물론 소득세까지 대규모 감세를 추진하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 복지국가는 존립 기반 자체를 잃을 위기에 처해 있다. 복지국가를 향한 시민적 연대를 확대하는 정치적 전략이 절실하다. 다른 대안이 없다. 가능한 모든 곳에서 시민적 연대를 강화하는 정치적 전략을 실천해야 한다. 우경화의 대세를 막을 순 없을 것 같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스웨덴과 미국 모두 신자유주의라는 대세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신자유주의 시대에도 평범한 사람들의 관점에 서면 스웨덴과 미국의 차이는 분명했다. 시민적 연대를 강화하는 정치전략이 무엇인지 지금으로선 분명하진 않다. 그러나 우리가 그 길을 찾는다면, 극우의 시대, 우경화의 시대에 ‘의미 있는 차이’를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 미주 |

  1. 이 글의 일부는 2025년 3월 24일자 한겨레에 “극우·우경화 시대 ‘복지국가’의 길”에 게재된 글이다. ↩︎
  2. 이 글의 일부는 2025년 3월 24일자 한겨레에 “극우·우경화 시대 ‘복지국가’의 길”에 게재된 글이다. ↩︎
  3. 매일일보, 2025. 3. 21. “김건희 의혹 상설특검으로…‘거부권 남발’ 최상목 임명이 관건. ↩︎
  4. Przeworski, A., 1993[1991], 『민주주의와 시장』 임혁백·윤성화 옮김(Democracy and the market), 서울: 한울아카데미. ↩︎
  5. Adorno, Frenkel-Brunswik, Levinson, and Sanford, 2019[1950], Adorno, T., Frenkel-Brunswik, E., Levinson, D., and Sanford, R., 2019[1950], The authoritarian personality, Brooklyn, NY: Verso. ↩︎
  6. Mudde, C. 2021[2019], 『혐오와 차별은 어떻게 정치가 되는가』 권은하 옮김(The far right today). 서울: 위스덤하우스. ↩︎
  7. 한국갤럽, 2025, 「데일리 오피니언 제616호(2025년 3월 3주)」 ↩︎
  8. 한국갤럽, 2016, 「데일리 오피니언 제239호(2016년 12월 3주)」 ↩︎
  9. 그 사이에 보수계열의 정당인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창당되었다. 두 정당의 지지율은 각각 9%와 5%였다. ↩︎
  10. Mudde, 『혐오와 차별은 어떻게 정치가 되는가』. Stanley, J., 2022[2018] 『우리와 그들의 정치: 파시즘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김정훈 옮김(How fascism works). 서울: 솔출판사. ↩︎
  11. Mudde, 『혐오와 차별은 어떻게 정치가 되는가』. ↩︎
  12. Bambra, C., & Lynch, J., 2021, Welfare chauvinism, populist radical right parties and health inequalities: Comment on “A scoping review of populist radical right parties’ influence on welfare policy and its implications for population health in Europe”. International Journal of Health Policy and Management, 10(9), 581–584. ↩︎
  13. Kros, M., & Coenders, M., 2019, Explaining differences in welfare chauvinism between and within individuals over time: The role of subjective and objective economic risk, economic egalitarianism, and ethnic threat. European Sociological Review, 35(6), 860–873. ↩︎
  14. Keskinen, S., 2016, From welfare nationalism to welfare chauvinism: Economic rhetoric, welfare state and the changing policies of asylum in Finland. Critical Social Policy, 36(3), 352–370. ↩︎
  15. Applebaum, A., 2021[2020] 『꺼져가는 민주주의, 유혹하는 권위주의』, 이혜경 옮김(Twilight of democracy: The seductive lure of authoritarianism). 서울: 빛소굴. ↩︎
  16. Careja, R. and Harris, E., 2022, “Thirty years of welfare chauvinism research: Findings and challenges.” Journal of European Social Policy, 32(2): 212-224. ↩︎
  17. Keskinen, S., 2016, “From welfare nationalism to welfare chauvinism: Economic rhetoric, welfare state and the changing policies of asylum in Finland,” Critical Social Polity, 36(3): 1-19. ↩︎
  18. Mudde, 『혐오와 차별은 어떻게 정치가 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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