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하 ㅣ 동국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낡은 것이 죽어가는데 새로운 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때 위기는 생겨난다.” – 안토니오 그람시 <옥중수고>
“뭐가 나왔다고 거기서. 겁나 험한 게” – 영화 <파묘>
3대에 걸쳐 모두 계엄을 경험한, 그리고 OECD 국가 중 최초의 계엄을 시행한 우리나라는 더이상 극우 포퓰리즘의 무풍지대가 아니다. 탄핵 반대와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는 극우 시위대, 극우 청년들의 서울서부지법 난입 사태, 집권여당의 극우화 등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의 보수는 극우 포퓰리즘이라는 외피를 쓰고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이는 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최근 ‘민주주의 지수 2024’(Democracy Index 2024)에서 우리나라는 윤석열 계엄 여파로 전년도 보다 10계단 떨어진 32위를 기록하며 ‘결함 있는 민주주의’로 하락하였다.1 그렇다면 한국에서의 극우 포퓰리즘의 대두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며, 이러한 ‘험한 것’으로부터 민주주의를 복원하기 위한 묘안은 무엇이 있을까?
포퓰리즘 등장의 필요충분조건과 극우 포퓰리즘의 주류화
『The Oxford Handbook of Populism』(2018)에 의하면 포퓰리즘은 단일한 정의로 규정되기보다는 다양한 학문적 계보를 통해 개념의 복잡성을 근거로 이해될 수 있다. 즉 포퓰리즘은 특정한 정치체제나 정책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좌파·우파를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다.2 또한, 反엘리트주의에 입각하여 기존의 정당 체제를 우회하고 국민과 직접적 소통을 우선시함으로 국민의 ‘일반의지’를 실현시킬 수 있는 반면, 민주적인 규범을 약화시킬 위험이 있는 개인주의 정치 전략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Kaltwasser et al., 2018).
<표 1>은 포퓰리즘의 등장배경과 주요 특징, 그리고 좌파와 우파와 각각 결합하여 어떻게 변주되는지 보여주고 있다. 사실 2000년대 이전까지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자유주의·사회주의 같은 이데올로기, 전쟁·혁명·쿠데타 같은 전환기적 사건, 독재·전체주의 같은 억압적 정치체제 등에 비해 중요하지 않은 담론이었다(이관후, 2024). 그렇다면 포퓰리즘은 왜 21세기 들어 부상하게 되었는가? 이는 먼저 지속된 민주주의 위기의 징후들과 깊은 연관이 있으며, 세계화로 인한 양극화, 경제위기, 이민자 증가 등은 포퓰리즘 확산에 도화선이 되고 있다. 즉 정당과 정치인들로 대변되는 민주주의 ‘대표성’의 위기에 더해 정치 엘리트들의 위선적·독선적 행태가 가져온 민주주의 ‘신뢰’의 위기는 포퓰리즘의 등장을 가져왔고, 글로벌화가 가져온 경제적 양극화와 디지털화에 따른 정치적 양극화와 정치적 동원 가능성의 증가로 인해 포퓰리즘은 본격적으로 득세하기 시작하였다(한준, 2024).

사회과학의 많은 중범위(middle-range) 접근법이 강조하듯이 거시적 차원에서 세계화 및 디지털화와 같은 사회경제적 및 기술적 구조의 변동은 포퓰리즘과 같은 현상의 출현에 필요조건이라 하더라도 충분조건은 아니며, 맥락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는 포퓰리즘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포퓰리즘은 탈이데올로기 시대에 민족주의와 애국주의의 새로운 발흥, 정당 정치와 대표 체제의 위기, 디지털 기술과 결합된 정치·언론 환경의 변화 등이 만들어낸 정치적 변화의 결과인데, 정당이 선거를 치르기 위한 도구에 불과해지면서 선동적인 정치적 대표자와 전문가가 열성지지자들을 동원하는 기제로 정당을 이용하게 된 것이다(이관후 2024). 결국 정치적 상황, 제도 및 주체들의 역할이 포퓰리즘이 발현되는 정도와 시공간적 차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이다.
비록 라틴아메리카 및 유럽 일부의 좌파 포퓰리즘 등장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아직 포퓰리즘의 대세는 극우파가 주도하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독일을위한대안당(AfD), 스웨덴 민주당(SD), 프랑스 국민연합(RN), 영국 독립당(UKIP) 등에서 알 수 있듯이 극우 포퓰리즘은 정당 정치의 변수가 아닌 상수로서 점점 더 많은 득표를 얻고 있을 뿐 아니라 집권하거나 연정을 통해 국정에 참여하는 실정이다. 극우 포퓰리즘은 경제적 불안정, 실업 확대, 난민/이민 증가에 따른 저소득계층 내지 하층 계급의 불만을 자극하고, 여성, 성소수자, 소수인종, 이주민, 무슬림 등 특정 사회 집단을 적대시하면서 자민족중심주의와 차별 담론을 확산시킨다. 어찌 보면 박권일(2025)의 지적처럼 극우 포퓰리즘이 호응을 받고 있는 것은 주류 자유주의 정치세력과 진보엘리트들이 제대로 답하지 못한 현실에 대해 특정 집단의 탓으로 돌리는 ‘서사의 단순성’과 함께 사람들의 상처와 고통에 똬리를 튼 ‘감성서사’를 효과적으로 공략하기 때문이다.
30년 가까이 극우와 포퓰리즘에 천착한 카스 무데(Cas Mudde)는 <혐오와 차별은 어떻게 정치가 되는가>(원제: The Far Right Today)에서 현대 극우 정치의 부상과 특징을 포퓰리즘, 권위주의, 민족주의/이민배척주의라는 세 가지 요소로 설명한다. 극우 포퓰리즘은 ‘순수한 국민(the pure people)’과 ‘부패한 엘리트(the corrupt elite)’의 대립 속에서 자신들이 국민의 유일한 대표라고 주장하면서, 주류 정당과 전통적 언론에 반대하고 대중과 직접 소통하며 세력을 확장하는 것이다.
특히 극우 포퓰리즘은 온라인과 소셜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혐오와 차별적 담론을 확산시키며 지지층을 결집한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호주 등 총 26개국 의원들이 2017~22년 작성한 약 3,200만 개의 SNS(트위터) 글을 분석한 결과, 미국과 유럽의 극우 포퓰리즘 정치인들이 좌파보다 잘못된 정보 확산 경향이 높으며, 민주주의 규범이나 사회문화적 문제에 집중하는 우파 포퓰리즘이 가짜뉴스로 보다 성과를 거둬왔다.3 무데(Mudde, 2019)는 극우 포퓰리즘을 서구 주류 정당과 미디어가 수용하면서 한때 고립되었던 극우가 공식 정치의 주류로 진입하였고, 기존 보수주의와의 경계도 모호해졌다고 지적하였다.
좌·우파의 역사적 연원과 K-극우 포퓰리즘의 도래
주지하듯이 식민지배와 독재정권의 역사 및 남북분단의 현실로 인해 한국에서 좌·우파 담론/정치는 제대로 정착하기 어려웠다. 사실 좌·우파의 역사적 연원은 18세기 프랑스 혁명 시기에 구체제를 지지하고 혁명 등 변화에 소극적인 기득권 세력인 왕당파가 오른쪽 자리에, 상대적으로 급진적이고 봉건 군주에 저항하는 시민대표가 왼쪽 자리에 앉게 된 공간적 메타포에서 비롯되었다. 서구적 맥락에서 볼 때 좌파는 시장자유주의와 거리를 두며 국가의 개입을 통해 평등과 분배를 지향한 반면, 우파는 전통 및 현상 유지를 지향하는 보수세력이며 시장에서의 자유와 경쟁을 중시하고 민족주의와 친화성을 가지고 있다.4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국가의 주도적 역할은 우파에 의한 산업화 전략의 일환이었고, ‘종북좌파’라는 용어가 상징하듯이 좌파 본연의 가치는 색깔론에 잠식되어왔으며, 민족주의는 줄곧 진보세력의 한 축을 차지하였다. 나아가 서구에서는 신우파의 강력한 지지 속에서 신자유주의가 발전해온 반면, 1987년 민주화와 세계화, 그리고 1997년 IMF 경제 위기를 거치면서 진보적 색채를 띤(그러나 서구식 정치스펙트럼에서는 중도정권인)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시장친화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수용하였다(이주하, 2023).5 이처럼 왜곡된 좌·우파 담론 및 이념 좌표는 최근 들어 ‘원조’격인 서구와 유사한 양상을 띠고 있는데, 윤석열 정부는 보수우파의 레퍼토리인 감세와 작은 정부를 국정 기조로 내세웠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의 극우 세력 부상에도 불구하고, 계엄 사태 이전까지 한국에서 극우 포퓰리즘은 주변부 현상이었다. 황인정(2024)이 지적하였듯이, 서구와 달리 인종적·민족적 동질성으로 인해 사회문화적으로 극우의 타겟이 될 만한 소수자 집단이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으며, 아직 이민과 난민이 사회의 주요 이슈로 떠오르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등장한 태극기집회 참여자, 일베 등 온라인 극우 커뮤니티, 근본주의적 개신교 중심의 극우 기독교 집단 등 극우 사회집단이 등장하였으나, 극우 정당은 서구만큼 부상되지 않았다.
일례로 탄핵정국에서 광폭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전광훈 목사와 사랑제일교회가 주축이 된 자유통일당은 2004년부터 존재해왔지만 2016년, 2020년, 2024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3%의 득표를 넘지 못했다(황인정, 2024). 이는 우리나라의 정치제도적 특징에 상당 부분 기인하는데, ‘승자독식’ 소선거구제, 양당체제, 지역주의의 결합은 좌파나 우파를 불문하고 소수정당의 등장에 유리하지 않았다.6 또한, 태극기 부대나 일부 극우 기독교 집단에서 극우 포퓰리즘에 해당하는 정치적 담론을 설파하였으나, 이러한 움직임에 동조하는 세력은 제한적이었고 보수 정당 내에서도 이들과의 연결을 공식적으로는 자제하고 있었다(정동준, 2023). 따라서 기존 주류 정당이 아닌 포퓰리즘에 기반한 새로운 정치세력의 국회 진입이 용이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계엄 사태 이후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K-극우 포퓰리즘의 도래는 어떻게 가능하였는가? 신진욱(2023, 2025)이 명징하게 보여주듯이, 극우세력의 부상은 민주화 이후 시작되어 지금까지 진행 중인 백래시(backlash)를 토대로 이해되어야 하며, 12.3 쿠데타 역시 단순히 윤석열 대통령 개인 성향이 아닌 그를 정점으로 한 거대한 극우 세력, 즉 당, 정, 군, 검, 경, 국정원의 수많은 권력자들, 그리고 그들과 연계된 사회 내 극우 조직들에 의해 가능한 것이었다.7 비슷한 맥락에서 보수 여당의 극우 포퓰리즘으로의 경도 역시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장석준(2025)에 따르면 김대중-노무현 정부 이후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선거정치가 기존 우파 공간을 넘어서는 연합을 형성하는 데 성공하였으나, 이를 바탕으로 집권한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실패로 귀결되면서 새누리당 계승 세력들은 양당 구도에서 지분을 보장받는 ‘지대추구 정당’으로서 태극기부대를 비롯한 강경 지지층에 매달리게 되었다. 보수 엘리트들은 극우 포퓰리즘을 간혹 우려하고 때론 거리를 유지하지만, 결국은 용인하고 엄호하는 실정인데, 오늘날 한국의 보수는 극단주의를 억제할 만한 세련된 이념과 활동적 세력을 만들지 못했고, 진보세력이 힘을 갖게 되는 것을 무엇보다 원치 않기 때문이다(신진욱, 2025).
더욱이 윤석열 대통령은 지지율이 하락하고 보수매체들까지 비판적으로 돌아서면서 강성 극우 유튜버와 밀접하게 교감하였는데, 특히 김건희 리스크를 우려하는 목소리에 귀를 닫으면서 보수 언론은 물론 비교적 온건한 유튜버와의 관계도 끊어졌고 자신을 지지하는 극렬 유튜브에 깊숙이 빠져들게 되었다.8 시사IN이 극우 유튜브 알고리즘을 한 달 동안 관찰한 결과, 극우 채널 외에 ‘레거시 미디어’는 거의 뜨지 않았는데, 윤석열 탄핵에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다는 이유로 극우 유튜버로부터 ‘배신자’ 취급을 받는 보수 언론 ‘조·중·동’ 채널도 보이지 않았다. 주로 진행자 1인이 홀로 진행하며 특정 이슈를 판박이처럼 되풀이하는 극우 유튜브 채널은 ‘자발적 후원 계좌번호’를 띄워 놓는 방송이 대다수였으며, 공론장을 오염시키는 댓글 조작이 난무하였다.9
이러한 극우 유튜버가 생산한 가짜뉴스 및 여론조작은 SNS 메신저를 통해 재확산된다. 경향신문은 약 한 달간 극우 성향 카카오톡 오픈채팅 대화방 5곳을 잠입 취재하였는데, 사실 검증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 허위 정보와 혐오 발언이 만연함을 지적하였다. 극우 카톡방에서도 ‘조·중·동’ 포함 ‘레거시 미디어’가 공유되는 경우는 드물었고, 유튜브에 넘쳐나는 허위 정보가 ‘대안 사실’로 구축되었으며, 직접 행동으로 이어질 조짐도 곳곳에서 보였다.10 결국, 서구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극우 포퓰리즘도 전통적인 미디어를 우회하여 온라인을 통해 지지층을 결집하고, 가짜뉴스로 정치적 이득을 보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 복원을 위한 진보적 포퓰리즘
비록 현실에서는 아직 극우 포퓰리즘에 비해 영향력이 약하지만, 좌파, 진보적 혹은 포용적 포퓰리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일부 유럽에서 약진하는 좌파 포퓰리즘 정당들은 사회경제적 약자와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포용적 성격이 강하고, 이는 민주주의가 기반하는 자유주의적·다원주의적 사상과 배치되지 않는다(정병기, 2023). 더욱이 정동준(2023)은 설문조사를 통해 한국 시민의 포퓰리즘 성향을 비교한 결과, 우파 포퓰리즘보다는 좌파 포퓰리즘이 보다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하였는데, 이는 대의 민주주의가 갖는 대표성의 한계를 아래로부터의 정치적 권한 강화를 통해 해결하고, 사회적 약자를 포용하는 다원적 가치를 추구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성숙하게 만들려는 긍정적 현상으로 읽을 수 있다.11 아래에서는 현대 정치철학 및 사회이론의 두 (여성) 거장이 제시한 좌파 포퓰리즘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포스트 마르크시즘의 출현에 크게 기여한 샹탈 무페(Chantal Mouffe)는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Mouffe, 2018)를 통해 민주주의의 위기와 신자유주의의 패권 속에서 좌파 포퓰리즘을 대안으로 주창하고 있다. 일찍이 기념비적인 저작인 <헤게모니와 사회주의적 전략>(Laclau & Mouffe, 1985)에서 전통적 좌파의 한계, 특히 계급 중심의 본질주의 관점(class essentialism)을 극복하기 위해 포스트 구조주의와 그람시의 헤게모니 사상을 접목하여 급진적 민주주의(radical democracy) 기획을 제안한 무페는 서로 다른 다양한 지배형태들에 대항하는 수많은 민주적 투쟁들이 서로 ‘접합’되는 다원성을 중요시하였다. 즉 좌파가 더 이상 전통적인 계급 정치에만 의존해서는 안 되며, 노동자 계급뿐 아니라 젠더, 환경, 인종 등 다양한 정체성과 운동을 포괄하는 헤게모니 구축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그녀는 정치의 본질을 서로를 파괴하는 ‘적대(antagonism)’가 아닌 차이를 존중하는 생산적 대결 관계인 ‘경합(agonism)’으로 파악하며, 갈등과 대립이 바로 민주주의를 활성화하는 동력이라고 지적하였다(Mouffe, 2020). 따라서 이러한 급진적 민주주의의 연장선에서 대항 헤게모니의 형성의 일환으로 좌파 포퓰리즘 전략을 옹호하는 것이다.
무페(Mouffe, 2018, 2020)에 따르면,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경제적 자유주의만 강조하고 민주주의라는 정치 영역을 의도적으로 배격하였고, 정치적 갈등을 회피하거나 무시하는 엘리트 중심의 합의 정치가 민주주의를 약화시켰다. 비록 정치적 대표성의 붕괴와 대중의 소외가 우파 포퓰리즘의 부상을 가져왔지만, 무페는 포퓰리즘을 단순히 부정적 현상이 아니라 기존 체제에 대한 대중의 저항이며 좌파의 새로운 정치 공간이 될 수 있다고 파악하였다. 좌파 포퓰리즘이 구성하려고 하는 새로운 집합적 의지로서의 대중은 담론적인 정치 구성물이며, 오늘날 진보적인 헤게모니 구축의 성공은 다양한 요구들을 어떻게 ‘등가적으로’ 접합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진태원, 2019). 결국, 배타적 민족/인종주의에 근거해 대중의 분노를 혐오와 배제로 변질시키는 우파 포퓰리즘과 달리, 좌파 포퓰리즘은 이를 진보적 방향으로 치환하고, 사회정의, 평등 및 민주주의 확대를 목표로 진보적 대중동원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급진 철학자이자 비판이론가인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는 그녀의 연구를 집대성한 <좌파의 길: 식인 자본주의에 반대한다>(2023, 장석준 옮김)에서 오늘날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자본주의의 자기 파괴적 특성을 동족포식이라는 의미의 ‘식인 자본주의(cannibal capitalism)’로 명명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좌파적 대안을 제시하였다. 그녀는 자본주의를 단순히 경제적 착취 시스템이 아니라 스스로 존속하기 위해 의존할 수밖에 없는 ‘비(非)-경제적’ 영역을 약탈하는 (경제 시스템보다 더 큰) ‘제도화된 사회질서(institutionalized social order)’로 보았다. 이는 전통적 맑스주의 관점이 밝혀낸 자본주의 생산의 ‘감춰진 장소’인 노동 착취가 벌어지는 경제 영역뿐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를 지탱하는 비(非)경제적 배경조건을 ‘감춰진 장소 이면에 감춰진 또 다른 장소’로 주목하는 총체적 차원의 ‘확장된 자본주의관’이다. 여기서 자본주의의 존립 조건이면서 스스로 갉아먹는 비경제적 영역은 인종적 주변부, 사회적 재생산, 자연환경, 공적 권력/정치의 네 가지이며, 각각에서 인종적·제국주의적, 사회적, 생태적, 정치적 억압/모순/위기가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비경제적 배경조건들에서 ‘제 살 깎아 먹기(cannibalizing)’의 구체적인 작동 방식은 분할(division), 의존(dependency), 책임 회피(disavowal), 그리고 불안정화(destabilization)이다. 일례로 자본주의의 공식 경제는 돌봄이라는 사회적 재생산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면서도 이를 경제적 생산과 ‘분할’하고, 부불노동으로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며 ‘책임 회피’하는데, 무한히 축적하려는 자본주의의 충동이 결국 사회적 재생산을 주기적으로 ‘불안정화’시킨다는 것이다(Fraser, 2022).12
따라서 프레이저는 자본주의가 지니는 계급 모순뿐 아니라 인종, 젠더, 생태적 착취를 통해 유지되는 총체적이고 다층적 억압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서 노동운동, 흑인운동, 여성운동, 환경운동 등 다양한 진보적 운동이 통합된 대안적 정치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사실 극우 포퓰리즘의 도래는 기존 정치세력, 특히 ‘진보적 신자유주의자’의 실패와 연관이 있다(Fraser, 2019). 미국 빌 클린턴의 신민주당, 영국 토니 블레어의 신노동당과 제3의 길, 독일 사민당 슈뢰더의 새로운 중도와 같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수용한 중도 좌파노선을 의미하는 진보적 신자유주의는 정치적 중도좌파/문화적 진보주의라는 측면에서 좌파라 할 수 있지만, 경제적 자유주의자/우파와 ‘위험한 동맹’의 결과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불평등을 타파하지 못하였다. 이는 세계적인 스타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Piketty, 2019)의 분석과도 맞닿아 있는데, 진보적인 성향이지만 학력과 인적 자본의 축적을 지향하는 교육 엘리트인 ‘브라만 좌파’가 평등을 설파하면서도 실제로 불평등을 방치하였는데, 금융자본 축적을 지향하는 자산 엘리트인 ‘상인 우파’와 공생 내지 담합한 결과 하층계급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였고, 그들이 극우 포퓰리즘에 경도하게 만들었다. 결국, 프레이저가 주창한 좌파의 ‘진보적 포퓰리즘’은 (진보적 신자유주의와 달리) 식인자본주의의 다차원적으로 구조화된 불평등과 억압을 적극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표 2>에서 정리되었듯이 무페와 프레이저는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도 이론적 토대와 접근방식에서 차이점을 지니고 있다.1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사상은 신자유주의 체제 하 기존 정치문법의 한계 및 극우 포퓰리즘의 폐해를 극복하기위한 진보적 형태의 포퓰리즘의 필요성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무페가 언급하였듯이 좌파 포퓰리즘은 엘리트 정치의 한계를 비판하고 대중과 직접적 소통을 강조하지만, 대의민주주의를 해체하지 않으면서도 더 급진적이고 참여적인 민주주의로 확장할 수 있다.

무페가 사회주의적 기획을 급진적 민주주의로 재정식화하였다면, 프레이저는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사회주의 역시 ‘제도화된 사회질서’로 재인식될 필요가 있고, 계급 착취‘만’이 아니라 인종적·제국주의적, 사회적, 생태적, 정치적 모순과 억압까지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하지만 사회주의라는 용어를 쓰지 않더라도 사회적 잉여의 할당이 민주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기본적 욕구의 충족이 시장원리에 의해 재단되지 않아야 한다는 방향, 그리고 그 중간영역에서 협동조합이나 자주적 결사체 등이 시장과 결합하는 다양한 대안이 필요하다는 프레이저의 제안은 대안적 사회정책에 관한 우리의 새로운 상상을 자극한다(남찬섭, 2023).
어찌 보면 새로운 사회주의는 ‘복지사회주의’일 수 있으며, 방법은 ‘돌봄의 사회적 재생산을 넘어서 모든 비경제적인 영역을 횡단하는 반자본주의 대항헤게모니 블록’의 건설이 될 수 있는 것이다(김기덕, 2023). 두 거장의 좌파/진보적 포퓰리즘이 한국의 양극화된 적대적 정치 속에서 대중의 분노와 열망을 진보적 연대로 전환하고, 다양한 사회운동을 포괄하는 새로운 좌파적 헤게모니를 구축하기 위한 단초가 되길 바라본다
| 미주 |
- 한겨레, 2025.2.28. 한국‘ 완전한 민주주의→결함 있는 국가’… 영국 이코노미스트 분석 ↩︎
- 아래에서 소개될 포퓰리즘의 대표 학자인 카스 무데(Cas Mudde)는 이러한 측면에서 포퓰리즘을 ‘중심이 얇은 이념(thin-centered ideology)’이라 정의하였다. ↩︎
- 뉴시스, 2025.2.11. “서구‘ 극우 포퓰리즘’, 좌파보다 가짜뉴스 더 많이 확산시킨다” ↩︎
- 좌파와 우파는 존재론적 개념이 아니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유럽 정치사에서 좌파의 중심은 자유주의 운동에서 민주주의 운동을 거쳐 사회주의 운동으로 이동하였다. 즉 절대왕정을 무너뜨리는 부르주아 혁명 이후, 좌파 내지 진보세력이 추구하는 가치는 시민의 자유와 권리에서 출발하여 보통선거권의 확립을 거쳐 자본주의 체제가 내포한 모순과 불평등 해소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민족주의는 억압받는 민족의 독립에 기여하는 사상이지만,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우파의 이데올로기로 탈바꿈하였다. ↩︎
- 한편, 이재명 대표에 의한 민주당의 중도보수 발언은 탄핵 사태 이후 국민의 힘을 극우로 호명하며 온건 보수를 끌어안을 수 있는 정치공학적 계산의 발로일 수 있지만, 한국 사회의 왜곡된 좌·우파 지형 역시 반영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집권기에‘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이라는 민주당 강령의 기틀을 만들고 참여정부 인수위원장을 지낸 임채정 전 국회의장은“ 한국적 특수성이 있어 중도파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해도 우리의 전통은 진보성에 있다”라고 강조하였다(한겨레, 2025.2.20. 민주당 원로 임채정 전 국회의장 ”우리의 전통은 진보성”). 반면 양경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은 “민주당은 스스로 진보정당이라 이야기했지만, 정책, 강령, 활동을 되짚어보면 중도보수 스탠스를 갖고 있었다”라고 지적하였다(프레시안, 2025. 2. 27. 민주노총 위원장, 이재명 ‘중도보수 선언’에 “정확한 진단”). ↩︎
-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데 대표적인 정치제도적 특징인 대통령제의 경우 포퓰리즘과 친화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관후(2024)가 강조하였듯이, 특정 정치인 개인에 대한 감정적 선호, 기득권 엘리트에 대한 공격, 대규모의 지지자 동원과 결집, 권력의 독점 등 많은 속성이 포퓰리즘과 대통령제의 연결고리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제가 본질적으로 포퓰리즘의 등장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설정하기보다는 다양한 요인들과 어떻게 결합하여 영향력을 발휘하는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 민주화 이후 1차 백래시는 개발독재 시대의 반공단체에 뿌리가 있는 한국자유총연맹, 바르게살기운동본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등 우익단체가 창립되어 조직을 확장시켜 온 것이다. 2차 백래시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에 햇볕정책, 국가보안법 폐지 정책 등에 반발하여 많은 반공반북 단체가 생겨났고, 냉전반공주의, 신자유주의, 기독교근본주의 세력의 조직화와 집단행동, 이념적 체계화가 대대적으로 이뤄진 것인데,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에 이들이 권력의 중심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들 보수 정권은 국민의 75% 지지한 촛불혁명과 탄핵으로 막을 내렸지만, 곧이어 3차 백래시로 이어졌는데, 반공냉전 극우가 대중화되고 인터넷으로 연결되며 제도정치에서까지 진입하게 된 것이다(신진욱, 2023, 2025). ↩︎
- 중앙일보, 2025.2.12. “마리 앙투아네트에 격분한 尹, 극렬 유튜버 용산 불러 술자리” ↩︎
- 시사IN, 905호, 2025.1.21. ‘극우 유튜브 알고리즘 한 달 동안 빠져보니’ ↩︎
- 경향신문, 2025.2.18. ‘극우 카톡방’ 5곳 잠입 취재해보니… “명찰 없는 경찰, 중국인” “탄핵 죽음으로 막자” 선동 만연. ↩︎
- 정동준(2023)에 따르면 한국인에게 나타나는 강한 좌파 포퓰리즘은 아직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들이 이민, 동성애와 같은 사회문화적·우파적 의제이기보다는 재분배, 재벌규제 같은 경제적·좌파적 의제라는 점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 좌파 포퓰리즘은 우파와 달리 경제적 약자를 끌어안으려는 포용적 포퓰리즘의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 다원주의적 가치의 확산을 통해 오히려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
- 또 다른 프레이저의 대표적인 업적은 사회정의론, 사회주의적 페미니즘, 돌봄윤리 등을 통합하여 돌봄정의를 3가지 차원, 즉 경제적 차원의 재분배(redistribution), 문화적 차원의 인정(recognition), 정치적 차원의 대표(representation)로 재구성한 것이다(Fraser, 2008). 여기서 재분배는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배제의 해소, 인정은 돌봄의‘ 관계적’ 특성에 입각한 돌봄윤리, 대표는 정치적 참여의 동등성과 돌봄정치를 통해 돌봄을 핵심의제로 만드는 돌봄의 주류화와 관련되어 있다. ↩︎
- 이론적 토대의 차이점에 대해 부연설명을 하자면, 무페는 탈구조주의 관점에서 본질주의와 계몽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는 만큼 보편성 및 합리성에 근거한 합의 보다는 갈등, 대립, 차이를 부각시키는데, 이는 비판이론가로서 프레이저와는 대척점에 있는 것이다. 즉 갈등과 대립을 중요시하는 급진적 민주주의 모델은 존 롤스(John Rawls) 혹은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로 대변되는‘ 이성 중심적 메타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는 합의지향형 민주주의 이론에 비판적인 것이다(김만권, 2020). 이에 반해 비판이론의 전통 위에서 프레이저는 총체성(totality)과 관계성(relativeness)을 통합적으로 균형 있게 자본주의 분석에 적용하였다(김기덕, 2023). ↩︎
| 참고 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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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복지동향> 2025년 4월호(제3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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