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은선ㅣ경기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들어가며
전임 대통령의 계엄이란 헛발질 때문에 2025년에 집권하게 된 이재명 정부, 민주당 정권은 어떤 사회를 지향하고 있을까? 사회정책에 대해 어떤 밑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우선 연금, 특히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연금은 은퇴라는 광범위한 위험에 대응하여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이므로 다른 사회보장제도에 비해 지출 규모가 크다. 또한 기여와 급여의 시차가 길기 때문에 연금정책 방향에 따라 대규모 연기금을 형성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기도 한다. 실제 한국 국민연금과 퇴직연금 기금 모두 그 규모가 매우 크다. 마지막으로 공적연금의 역할 수준은 퇴직연금이나 개인연금과 같은 사연금 시장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연금정책의 본질은 노후보장에 있지만 연금제도 설계와 구성에 따라 연금제도는 시장, 특히 금융시장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따라서 연금정책에 대한 이재명 정부의 태도는 사회보장을 둘러싼 국가와 시장 사이의 역동에 대한 이들의 입장을 반영한다. 사회보장에 대한 국가 책임은 어느 정도여야 하는가, 복지를 위해 시장은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는가, 혹은 시장을 위해 복지를 활용해야 할 것인가. 21세기 한국 사회 운영과 복지의 작동에서 국가와 시장 사이의 역동이 기본 쟁점이라면, 연금정책에 대한 이재명 정부의 입장을 살펴보는 것은 이재명 정부가 지향하는 사회가 무엇인지, 국가와 시장의 바람직한 관계는 무엇인지 짐작케 할 수 있다.
2025년 9월 16일 이재명 정부가 국무회의에서 본격 추진하기로 한 123대 국정과제는 이를 추정할 수 있게 해주는 핵심 자료이다. 정부가 이를 국정 운영의 핵심 로드맵이라 하였으니 말이다. 다만 언론은 정당의 온갖 내부 갈등과 말싸움까지 세세히 보도하면서도, 새 정부가 내놓은 국정과제에 대해서는 어떤 분석도 하지 않으니 이는 놀라울 정도이다.
정부가 내놓은 123대 국정과제에도 연금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 글에서는 국정과제 내용에 기초해 이재명 정부가 내놓은 연금정책을 살펴보고자 한다. 시작 단계에 있는 정권이므로 정책 실행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한계이다. 또한 국회 연금개혁특위가 다시 구성되었으므로 이재명 정부 연금정책은 국정과제 그대로 진행될 것인지도 불투명하다. 여야의 논쟁과 합의, 그 과정에서 금융자본과 노동조합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국정과제에서 드러난 이재명 정부 연금정책의 주요 내용 몇 가지를 대략 먼저 얘기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재명 정부는 다층노후소득보장체계 구축을 연금정책의 전면에 내세웠다. 다층체계라 했지만, 내용을 보면 사실 다층 중 퇴직연금, 주택연금과 같은 사연금의 역할 강화가 핵심이다. 둘째, 노후보장의 중심은 공적연금임에도 다층 중 공적연금 강화에 대해서는 소극적이다. 이재명 정부는 공적연금의 보장 기능을 전체적으로 끌어올리는 접근은 포기하되 군복무 크레딧 강화와 같이 빈틈을 부분적으로 메우는 접근을 주로 하고 있다.
셋째, 이재명 정부는 공적연금정책에서 노후보장 자체보다는 국민연금기금과 같은 연기금 활용 방안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국정과제에서는 국민연금기금 수익률 제고, 국민성장펀드 조성에 대한 연기금의 역할을 살짝 언급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모호한 내용을 어떻게 채우느냐에 따라 연기금 운용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새 정부가 금융시장 덩치 키우기에 진심이라는 것 역시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제 이 세 가지 내용을 하나씩 살펴보자.
다층연금체계라는 알리바이
이재명 정부 국정과제에서 내세운 연금정책 기조는 “개선된 다층 연금체계 구축으로 모든 세대에게 노후소득보장”이다. 말은 다층이지만 국민연금이나 기초연금과 같은 공적연금보다는 사연금인 퇴직연금에 대해 훨씬 큰 전면적인 개혁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즉, 다층 중에서도 퇴직연금이 개혁의 초점이다. 정부는 국정과제로 퇴직연금 의무화를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의 가입대상이 되는 사업장과 종사자를 확대할 것을 제시하였다.
이것은 다음 몇 가지를 의미한다. 우선 2025년 국민연금이 개혁된 이후에도, 즉 국민연금의 기준 소득대체율(40년 동안 보험료를 낸 평균소득자가 65세에 받는 연금이 평균소득의 몇 %인지를 나타내는 수치)이 40%로 떨어지고 있던 것을 43%로 약간 올리기도 했음에도 불구하고, 누가 보아도 국민연금이 노후소득을 제대로 보장해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3%p에 불과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으로는 미래 노인빈곤을 완화하고 대부분 일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노후보장을 해내기에 불충분하다. 국민연금연구원에서 한때 영구 비공개 처리를 해서 논란이 되었던 한신실 외(2024)의 연구에 따르면 노인빈곤 해소에 기초연금보다 국민연금이 갖는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지만,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이 40%로 그대로 유지된다면 2025년 37.4%인 노인빈곤율이 2050년에 42.3%로 더 올라갈 것으로 추정된 바 있다. 새로 노인이 된 집단도 고령노인이 되면서 빈곤 위험이 높아지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의 소폭 인상으로는 미래 노인빈곤율을 낮추기에 역부족이며 적정한 노후소득보장을 위한 공백은 매우 크다.
둘째, 이재명 정부는 이러한 노후보장의 부족분에 대하여 사연금을 정착시킴으로써, 특히 퇴직연금을 받는 수급자를 늘리고 주택연금과 같은 사연금의 역할 확대를 통해 이를 채우겠다는 방향을 제시하였다. 우선 이는 퇴직연금이 체계적인 공적연금 강화정책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인데, 달리 말하면 퇴직연금 강화를 통한 다층연금체계 구축은 정부가 공적연금의 적극적인 보장성 확대를 주장하지 않아도 되는 알리바이이기도 하다. 이 점만큼은 이재명 정부의 연금정책은 이전 윤석열 정부의 연금정책 기조와 다르지 않다. 다만 윤석열 정부의 사연금정책과 차이 여부를 가르는 것은 퇴직연금 정책의 내용이 될 것이다.
셋째, 이재명 정부의 퇴직연금 개선 정책은 퇴직연금 가입자 확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퇴직연금 의무화의 단계적 추진이나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의 가입대상 확대 모두 가입자 범위를 늘리기 위한 것이다. 퇴직연금 가입 단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퇴직연금은 주로 피용자를 위한 것으로 가입자는 가입대상 노동자의 절반이 약간 넘는 사람이 가입하고 있다고 하지만 전체 경제활동인구로 보면 이는 40%를 넘기 어렵다. 특히 저소득층일수록, 소기업 종사자일수록 가입률은 떨어지며 불안정한 고용 상태에 있는 경우에는 퇴직연금의 역할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퇴직금을 점차 폐지하고 퇴직연금을 의무화한다고 해서, 불안정한 고용지위에 있는 노동자들이 퇴직연금을 갖게 될 리는 없다. 물론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의 가입대상과 지원을 늘리면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가입률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현재 퇴직연금의 노후보장 역할 확대는 가입자 범위를 늘리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퇴직연금에 대한 국정과제 내용은 아직 미흡하다. 현 퇴직연금이 공적연금의 역할 공백을 채울 만큼 역할을 하게 하려면 가입단계에서뿐만 아니라 운용과 지급 등의 측면에서도 퇴직연금제도에 수많은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국민연금이 65세 이후부터 종신으로 지급되어 은퇴 후 노후보장 역할을 하는 데 비해 한국의 퇴직연금은 사실상 종신의 노후보장보다는 주로 장년기 혹은 노년기에 한시적으로만 소득보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퇴직연금은 본격적인 노후보장제도라기보다는 중년기에서 노년기로 넘어가는 시기의 다리 역할을 하는 정도이다. 이에 가교연금이라 불리기도 한다. 그나마 아직 퇴직연금은 연금으로 지급되는 비율이 극히 낮고 대부분은 일시금으로 지급되고 있다. 최근 만 55세 요건을 충족하여 퇴직연금 수급을 개시한 계좌 중 약 90% 이상은 일시금으로 지급되고 있다. 퇴직연금 시장은 크고 혼란스럽지만 이에 대한 감독 및 연금수급권 보호제도 역시 미흡하다.
국정과제에서는 퇴직연금 이외에 주택연금에 대해 연금수령액 산정방식을 바꾸고, 가입률을 높이는 등의 제도 개선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인 연금산정방식의 변화가 무엇인지, 이를 통해 누가 얼마만큼 더 보장받을 것인가에 대한 제대로 된 추정이 이루어지지 않아 이러한 정책 변화를 뒷받침하고 있지는 못하다. 퇴직연금 의무화를 넘어서는 퇴직연금제도 개혁 방향과 내용에 관한 구체적인 논의는 일단 국회 연금개혁특위에 맡겨진 것으로 보인다.
소극적이고 파편적인 공적연금 강화
‘기본이 튼튼한 사회’, 혹은 기본사회를 실현하겠다고 내세우는 만큼 이재명 정부가 노후보장에 대한 관심이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국정과제를 통해서는 이재명 정부는 한국에서 적정 노후보장의 기준과 노후보장 강화를 위한 적극적인 사회적 책임을 제시하는 데에는 소극적인 것으로 보인다. 연금에 대한 몇 가지 국정과제는 제시했지만 제시된 과제들만 보면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공적연금을 강화하여 노후 빈곤과 싸우겠다는 의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정부가 내세운 주요 과제들은 세부적이고 부분적인 개선을 통해 현 연금제도의 빈틈을 좀 채워보겠다는 의도에서 제시한 것들이다. 즉, 국민연금에 대해서는 몇몇 집단을 가입자로 끌어들이거나 수급권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사각지대를 축소하는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국정과제에서 나열하는 내용 중 이에 해당되는 것은, 우선 군복무 크레딧 인정 기간을 12개월에서 복무기간 전체로 확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출산 크레딧은 자녀 1인당 12개월에서 이를 더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크레딧 인정 시기를 연금 받을 때가 아닌 출산할 때로 앞당기는 것이다. 저소득 지역가입자에 대한 보험료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것 또한 유사한 범주의 정책이다. 이 중 군복무 크레딧 인정기간을 복무기간 전체로 늘리는 것은 사실 이미 진작에 이루어졌어야 하는 당연한 정책이다. 기본에 충실하다는 관점에서는 필수적이다. 같은 이유에서 획기적이지는 않다. 정책이 실행될 경우 대체로 2006~7년 경 군복무자부터 6개월의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늘어나는 것인데 이로 인한 보장성 강화 효과는 2070년 이후에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출산 크레딧 인정 시기 변화는 실제로 사각지대 해소나 수급권 강화와는 무관하다. 다만 이 중에서 국민연금 최초 가입 시 첫 번째 보험료를 지원하는 정책은 청년층의 국민연금 가입에 대한 국가 책임을 나타내는 정책으로 상징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특수형태노동자의 국민연금 가입 문제를 거론하며 이들이 지역가입자인 경우에는 보험료 지원을 일부 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인데, 그 문턱을 어떻게 얼마나 낮출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특수형태노동자의 경우 국민연금 가입 문제의 상당 부분은 보험료 납부에 대한 사용자 책임 부재로 인한 것이지만 사용자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해법은 없다. 특수형태노동자의 상당수는 사용자를 특정하는 것이 어렵지 않고, 이를 위한 자료 확보가 불가능하지 않음에도 말이다.
국민연금 사각지대를 축소하는 것, 특히 특수형태노동자의 가입 확대는 사실 이러한 핀셋 방식보다는 더욱 근본적으로 가입의 질서와 방식을 바꿔내고 보험료 부담에 대한 사용자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재명 정부는 국정과제에서 법적 정년의 단계적 연장 입법, 연금 사각지대 해소로 인구위기를 극복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것으로 인구위기 극복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소극적인 방안이다. 이러한 소극성을 차치하더라도 사각지대 해소라는 과제 안에서도 국정과제는 부분적이고 파편적이라는 특성이 있다.
그밖에 이재명 정부는 국민연금의 재직자 노령연금의 감액기준을 관대하게 하는 정책과 부부가 모두 기초연금 수급자인 경우 기초연금액을 20%씩 감액하는 부부감액 폭을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전자는 근로소득이 비교적 높은 노인이, 후자는 저소득 노인이 약간의 이익을 볼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또한 국회 연금개혁특위의 논의를 전제하고 있다.
이 중 기초연금 부부감액률을 낮추는 것은 비교적 많은 저소득층 부부가구 노인에게 급여액을 인상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한국 노인빈곤 문제의 광범위함으로 볼 때 일정소득 이하의 부부가구 노인에게만 기초연금액을 일부 올려주는 것이 갖는 효과는 제한적이다. 더욱이 노인빈곤 문제는 홀로 사는 노인가구에게 더욱 심각한 양상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기초연금의 역할을 종합하여 체계적으로 노인빈곤 문제에 대응하는 방안이 우선될 필요가 있다. 노인에 대한 최저생활보장의 기준과 이를 위한 공적연금의 역할에 대한 정책 방향을 세우는 것이 기본이라는 것이다. 부부가구 등 가구 형태의 특수성을 고려한 대안은 노인빈곤 문제에 대한 이러한 바탕 위에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제시된 국정과제로 보면 이재명 정부는 획기적인 노후소득보장 강화나 미래 노인빈곤의 극적인 하락을 목표로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이에 관한 적극적인 방안도 없다. 연금 사각지대 해소가 인구위기의 핵심 대응책이라고 하였지만 실제 그렇게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재명 정부는 노후보장성 강화 면에서는 눈에 띄게 도드라지는 몇 가지 문제를 완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을 수도 있겠다. 실용이란 것이 그런 뜻인가?
제사보다는 잿밥 : 노후보장 강화보다는 ‘연기금’으로 금융시장 성장
이재명 정부는 국정과제에서 국민연금기금 수익률 제고, 국민성장펀드 조성에 대한 연기금의 역할을 살짝 언급해 놓았다. 그러나 이런 한 줄짜리 언급도 2025년 6월 말 기준 1,200조 원을 훌쩍 넘어선 국민연금기금의 운용에 큰 변화를 가져올 만한 함의를 갖는다.
국민연금 기금수익률 제고는 주식과 파생상품과 같은 위험자산 투자 비중을 예정된 것보다 더 늘려나가는 것을 전제로 한다. 국정과제에서 기금수익률 제고는 국민연금이 재정적 지속가능성 확보하여 국민신뢰를 제고한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는 당연히 국민연금이 감수해야 할 손실 위험을 높이는 것이기도 하다. 수익성, 안정성, 공공성이라는 국민연금기금운용 원칙들은 일부 서로 상충적이며 긴장 관계에 있다. 이때 국민연금기금운용 원칙의 무게중심을 수익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옮긴다는 것은 국민신뢰를 떨어뜨릴 위험도 그만큼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재명 정부가 추구하는 국내 주식시장 활성화 및 금융시장 발전과 이러한 국민연금기금수익률 제고 전략이 만나는 지점은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시장 투자 확대이다. 이는 국민연금이란 사회보장기금이 더욱더 금융시장 활성화를 위한 ‘수단’으로 명확히 자리잡는 것을 의미한다. 국내 주식시장 성장과 국민연금기금 수익률의 제고가 동시에 이루어지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국민연금기금을 금융시장 팽창의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은 국민연금기금의 끊임없는 팽창을 전제로 하며, 금융위기 없는 자본주의라는 역사상 유례없는 것이 장기간 계속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뻔한 얘기지만 이 두 가지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불확실성은 더욱 커진다. 우리 사회가 이런 불확실성의 증가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연기금 정책 결정 과정이 더욱 민주적이어야 함을 의미한다.
한편, 연기금이 국민성장펀드 조성에 역할을 한다는 것은 그 의미가 분명하지는 않다. 다만 공적연금기금의 일부가 생산 부문에 투입되어 기술혁신을 돕는다면 이는 미래 공적연금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국민성장펀드 조성에 연기금이 ‘역할을 한다’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어떤 방식으로 역할을 한다는 것인지도, 어떤 연기금인지조차도 불분명하다. 기금형 퇴직연금이 마련된다면 이 또한 크게 성장할 여력이 있다.
큰 돈은 권력을 의미하며, 큰 돈의 이동에는 이권이 걸려있다. 그런 의미에서 연기금과 국민성장펀드의 관계, 혹은 그 참여 과정과 방식, 내용 모든 것이 불분명하며 투명하지 않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우려스럽다. 이 모든 것이 불분명하고 불투명하게 이루어진다면 누가 이것을 통해 수익을 볼 것이며, 이 수익이 어떻게 사회보장기금과 우리 사회에 돌아올 것인지 이에 관한 국민 신뢰를 확보하기 불가능할 것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문제는 공적연금기금 운용에 관한 내용을 결정하는 방식과 과정의 민주주의와 투명성이 얼마나 잘 지켜질 것인가 하는 것이다. 예컨대 이러한 격동의 시기일수록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를 정점에 둔 국민연금기금운용 거버넌스가 시장 권력과 국가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독립성과 민주주의 원칙에 부합하게 작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 이재명 정부의 연기금 정책에는 긍정적인 측면도 존재한다. 기금에서 국가책임강화의 일환으로 국민연금에 대한 국가재정 역할 강화, 기금의 사회적 책임 강화를 위한 법·제도의 개선 등이 그러한 내용이다. 그러나 기금의 사회적 책임 강화가 무엇인지는 모호하다. 금융투자에서 ESG 요소를 강조하자는 것인지, 적극적인 공공사회서비스 인프라투자 등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국민성장펀드에 참여하는 것이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를 전략적 모호성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
결론
국정과제라는 단편적인 정보에 기초한 연금정책에 관한 스케치를 살펴본 것뿐이다. 그러나 스케치와는 딴판인 과감한 그림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정부는 실용, 국내 증시 부양을 매일 외쳐대고 있기 때문이다.
국정과제로 이재명 정부는 퇴직연금이나 국민연금에 대해서는 논쟁적이지 않은 이슈를 주로 제시하였다. 논쟁을 피하고 몇 가지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적당히 노력하는 것이 목표일 수도 있겠다. 집권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국민의 힘과 소극적인 연금 인상과 큰 폭의 보험료 인상 개혁에 합의한 것도 집권 중 연금개혁을 쟁점으로 만들지 않으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국정과제에서 노후소득보장 강화에 대한 목표나 이를 위한 큰 틀의 사회적 책임 실현 방안, 이를 위한 공적연금의 체계적 강화 정책을 내놓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이 정부를 획기적인 노후보장 강화와 미래 노인빈곤의 극적인 하락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정부로 오해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남는 질문은 두 가지이다. 이러한 파편적인 접근으로 고령화 국면에서 커지는 미래 노인빈곤 위험은 이대로 괜찮을까? 이재명 정부가 국정목표 4번으로 제시한 “기본이 튼튼한 사회”라는 것에서 노후소득보장과 공적연금의 역할은 무엇일까?
또한, 사연금 확대를 통한 다층체계의 강조와 연기금 수익성 제고 강조 등은 사실 윤석열 정부의 연금정책 기조와 다르지 않다. 오히려 연기금 정책에서는 이전 정부보다 연기금의 수익성 제고 전략, 국내 주식시장 활성화, 국민성장펀드 참여 등 더욱 뚜렷한 방향과 방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사회보장을 위한 시장의 적극적인 활용은 물론, 금융시장 확대 및 자본주의 번영의 수단으로 연기금의 활용 가치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시장을 위한 복지 활용도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 정부 연금정책과의 강한 연속성, 특히 사연금 활성화와 연기금과 시장의 강력한 결합을 계속 추구하는 것은 지난 정부 연금정책을 설계한 복지부와 지금의 복지부가 다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관료 조직은 연속성을 갖는다. 물론 지금 이재명 정부 집권세력의 연금정책에 대한 의지도 시민의 노후, 삶을 중심에 둔 것인지 의문스럽다. 기본사회를 말하면서도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에게 노후보장을 위해 어느 정도의 소득이 필요한지에 대한 기준과 공적연금 및 국가의 책임에 대한 상을 제시하고 있지 못한 것은 매우 아쉽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의 대표자들이 모인 입법 기관인 국회에서의 연금정책 논의가 갖는 중요성이 매우 크다. 최종적인 그림은 스케치와 같을 수도, 달라질 수도 있다.
| 참고문헌 |
대한민국 정부, 2025, 이재명 정부 123대 국정과제, 2025.9.
한신실·유희원·홍정민·박주혜, 2024, 공적연금 미시모의실험 개발연구, 국민연금연구원
월간 <복지동향> 2025년 10월호(제3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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