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5 2025-11-01   66245

[편집인의 글] 2026년도 보건복지 예산안, 진보의 미래를 위한 점진주의 벗어나기

이주하ㅣ동국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이거 하나는 내가 좀 잘못했어요. 내가 잘못했던 거는 오히려 예산을 가져오면 색연필 들고 ‘사회정책 지출 끌어올려’ 하고 위로 쫙 그어 버리고, ‘여기에 숫자 맞춰서 갖고 와’ 이 정도로 나갔어야 하는데……. 사회 복지 지출 몇 프로 올라가고, 앞으로 10년 뒤에는 어떻고 20년 뒤에는 어떻고 이러니까 가만 보고, ‘야 그것만 해도 많이 올랐네’ 이리 간 거거든. (중략) 지금 생각하 면 그래요. 그래 무식하게 했어야 되는데 바보같이 해서…….” 

예산(안)을 분석할 때면 곱씹어보게 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고집인 <진보의 미래>(부제는 ‘다음 세대를 위한 민주주의 교과서’임!)에 나오는 글귀이다. 사실 이재명 대통령도 경기도지사 시절 이 구절을 온라인상에서 언급하면서 ‘균형재정’ 신화에 갇혀있는 정부 관료를 비판한 적이 있다. 2025년도 보건복지 예산안을 다룬 작년 11월호 편집인의 글의 제목이 “재정건전성의 신화 속에서 ‘약한’ 복지로 둔갑한 약자복지”이었는데, 과연 ‘시민혁명’과 탄핵 이후 등장한 새 정부의 예산안은 어느 정도 달라졌으며, 시민들과 사회적 약자들의 실질적 삶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먼저 최혜지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장이 작성한 총론 에 따르면 2026년 이재명 정부의 첫 예산안은 총지출 728조 원으로 전년 본 예산 대비 8.1% 증가(2025년 동 수치의 약 2.5배)하였는데, 이전 정권의 긴축재정 기조를 벗어나 경기 회복을 목표로 하는 적극재정을 지향하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총지출 예산 중 가장 큰 규모에 해당하는 보건·복지·고용 분야 예산은 269.1조 원으로 전년 대비 8.2% 증가(다섯 번째 로 높은 증가율)하였고, 보건복지부 소관 예산은 정부 총지출 예산의 20.4%를 차지하며 전년 대비 9.7% 증가 (전년도 증가율 7.4%)하였다. 사회복지 예산의 규모는 공적연금(46.8%), 노인(24.7%), 기초생활보장(17.3%) 순이며, 전년 대비 증가율은 아동·보육(16.9%), 공적 연금(12.5%), 사회복지 일반(12.3%) 순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보건복지 분야의 예산 증액은 법령에 의해 강제되거나 정책 대상 규모의 변화로 인한 자연증가분이 주도하였기에 핵심 국정과제 실천 의지와의 괴리가 크고, AI 기술 도입과 산업화라는 명분 아래 보건복지 서비스의 시장화 확대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며, 공공성 강화 및 사회복지 전반의 질적 개선으로 도약하지 못한 미완의 예산안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이어서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들이 각각 기초생활 보장, 보육, 아동·청소년, 노인복지, 장애인복지, 사회 서비스 전달체계, 보건의료 등 7개 분야 예산안에 대해 분석하였는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26년 기초생활보장 예산(23조 9,868억 원)은 전년 대비 9.7% 증가하며 생계급여 기준중위소득 인상 및 의료급여 간주 부양비 폐지 등 일부 긍정적인 제도 개선을 포함하였으나, 복지 사각지대의 주요 원인인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와 기준중위소득 현실화가 예산안에 반영되지 못하여 사회안전망 강화를 표방한 정부의 정책 의지를 충분히 실현하지 못한 소극적인 수준에 머물렀다는 한계가 있다.

아동보육 예산(9조 2,546억 원)의 경우 단계적 무상교육·보육실현 사업 신설, 영유아 보육료 지원 증액, 시간제 보육지원 확대 등 유보통합의 취지를 일부 반영하여 전년 대비 9.2% 증가하였다. 그러나 서비스 공공성 확보에 필수적인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예산은 지속적으로 삭감되었고, 대부분의 보육 관련 사업들이 지방정부의 과도한 재정적 책임을 요구하는 국고보조 사업 형태로 남아있어 공보육·교육에 기반한 균등한 교육·돌봄 기회 제공이라는 정책적 목적 달성은 힘들어 보인다. 

2026년 아동·청소년 복지 분야 전체 예산(4조 7,016억 원) 증가율은 전년 대비 19.6%, 보건복지부의 아동·청소년 예산(3조 3,094억 원) 증가율은 22.7%로 (2025년 예산이 2024년 대비 오히려 감소했던 것에 비하면) 큰 폭의 증가이며, 아동수당 지급 연령 확대, 신규 시설 확충, 종사자 처우 개선 등에 투입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적극적 예산편성에도 불구하고, 양질의 서비스 제공을 위한 종사자 처우는 여전히 부족한 수준이고, 서비스 접근성 향상을 위한 인프라 확대는 보다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현 정부의 지역사회 돌봄 기조에 따른 아동의 탈시설화 예산도 확충되어야 한다. 

노인복지 예산(29조 3,161억 원)의 경우 기초연금 증가분(7.1%)이 대부분을 차지하여 전년 대비 6.8% 증액하였으나, 이는 노인인구 증가에 따른 자연증가분 수준에 불과하며, 2020년 이후 노인복지 부문 예산 증가율은 매년 감소하여 이번에 최저 수준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더욱이 새 정부의 첫 예산은 심각한 노인 빈곤을 해결하기 위한 보장성 강화, 재정적 위기가 닥쳐 오는 노인장기요양보험에 대한 국가 책임, 노년층으로 진입한 베이붐 세대의 일자리 등의 문제는 외면한 채, 노인복지 부문 예산안을 일반회계에서 지역균형발전 특별회계로 이전하면서 중앙정부 책임을 지방으로 전가하려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보건복지부 소관 장애인 정책 예산(5조 9,288억 원)은 전년 대비 9.0% 증액으로 보건복지부 전체 예산 증가율에는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며, 과거 소득지원 중심에서 바우처 중심의 서비스 예산으로 전환되는 추세 아래 2026년 예산안에서는 장애인활동지원예산이 총 지출의 47.4%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장애수당과 장애인연금 예산은 물가 상승률을 고려할 때 사실상 삭감된 것으로 볼 수 있고, 서비스 관련 예산 증가분 역시 급여량 확대보다는 지원단가 조정 및 자연증가분에 가까워 새 정부의 장애인 빈곤 완화 및 탈시설화 등 정책 목표를 실현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보건복지부 서비스 전달체계 관련 예산(3,285억 원)은 전년 대비 38.7% 증가했으나, 의료·요양·돌봄 통합지원 사업의 전국 확대라는 단일 요인에 기인한 착시 효과에 가까우며, 개별 지자체당 지원액은 오히려 시범 사업의 절반 수준으로 급감하였다. 이로 인해 현 정부 복지분야 핵심 국정과제인 돌봄통합지원 정책은 실효성 없이 절차만 복잡해진 ‘좀비’ 정책으로 전락할 위기 문제는 여전하고, 사회서비스의 공공 인프라를 확대하려는 적극적 의지 또한 예산안에 표출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보건의료 부문 예산(18조 9,868억 원)은 전년 대비 3.7% 증액에 그쳐 보건복지부 전체 예산 증가율 및 사회복지 부문 증가율에 크게 못 미쳤다. 공공의료와 건강보험 예산은 제한적으로 확대되거나 실질적 으로 감액되었고, 건강보험 국고 지원은 여전히 법정 기준에 미달하였으며,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은 오히려 축소되는 반면, 바이오헬스·디지털헬스 R&D 예산이 32.8%라는 압도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데, 결국 정부가 표방한 공공성 강화보다 ‘산업·기술’ 중심의 ‘성장 논리’에 우선순위가 치우친 결과라 할 수 있겠다.

일찍이 정치·행정 분야의 석학인 린드블롬은 (정부의 정책결정 포함) 의사결정이란 완벽한 계획과 판단에 근거하여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제한된 정보와 정치적 제약 속에서 점진적으로 조정·타협하는 과정이라 역설하며, 이를 우왕좌왕하며 헤쳐 나가 는 ‘Muddling Through’ 같다고 비유하였다. 정부 예산 이 바로 이처럼 기존 정책을 조금씩 수정·보완하는 점진/점증주의의 대표적인 예로, 전년도 예산을 기준으로 조금씩 증감하며 정치적 합의를 반영해 나가는 과정인 것이다.

이번 예산안 분석에서 명징하게 드러나듯이 새 정부의 첫 보건복지 예산안은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미완의 예산안, 소극적 수준, 착시 효과, AI/성장 논리 등으로도 표현될 수 있다. 즉 이전 정부와 달리 적극재정 기조를 수용하고 보건복지 분야 예산 증가율도 높아졌지만, 주요 국정과제 실현을 위한 실질적인 예산 반영은 미흡하고 자연증가분을 넘어서는 적극적인 복지 확충의 의지가 취약할 뿐 아니라 시장화 확대 우려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진보의 미래’를 위해서는 (OECD 평균에 한참 못 미치는) 복지 예산이 보다 도전적으로 때론 ‘무식하게’ 점진주의를 벗어나 확대될 필요가 있다. 그래야지만 20여 년 전 TV 토론에서 등장한 (민주노동당의 존재를 각인시켰던) 촌철살인인 “국민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에 대한 답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월간<복지동향> 2025년 11월호(제3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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