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은선 경기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집권 후 일 년이 지났다면 정책 방향은 진작에 드러났어야 한다. 하지만 일 년이 지나 돌아보니 이재명 정부가 어떤 복지를 지향하는지, 어떤 길을 가려 하는지 모호하기 짝이 없다. 물론 그사이 슬로건은 나왔다. ‘기본이 튼튼한 사회’, ‘모두의 복지’. 윤석열 정부의 약자복지에 비해 슬로건으로 보면 이재명 정부는 복지에 대한 시민의 보편적 권리를 강조하며, 이전과는 다른 복지국가로의 전환을 도모할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구체적인 정책은 나오지 않았거나, 나왔어도 내세우는 바와 엇박자이다. 가끔은 정부가 복지에 관한 정책 메시지를 뚜렷이 하기보다는 스스로 이를 모호하게 보이고 싶은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이재명 정부 1년 복지정책을 평가한 기획주제 필자들의 글은 보건의료, 소득보장, 사회서비스 등 영역은 다르지만 공통되게 이 엇박자를 짚어주고 있다. 우선 이재명 정부는 사회적 돌봄을 강조하고, 공공의 책임성, 기본권으로서의 사회서비스를 언급하지만, 공공이 사회서비스의 상당 부분을 직접 생산하고 제공하는 돌봄인프라 확대까지는 언급하지 않는다. 통합돌봄에 대한 자원 투입도 미비하다. 이재명 정부의 돌봄정책은 필자들이 강조하는 공공이 직접 제공하는 돌봄서비스 생산, 질 좋은 돌봄노동이 중심이 된 돌봄경제와는 거리가 있다. 그래서 슬로건과는 달리 공공이 책임성을 갖는 사회서비스 기본권을 실현할 방법론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재명 정부의 보건의료/사회서비스 정책에서 또렷한 것은 AI 등 첨단기술과 결합된 서비스산업 육성정책이다. 국가의 책임은, 응급실과 분만실 없는 지역을 아우르는 공공의료인프라 구축보다는 돈이 되는 의료산업 육성에서 더 또렷해진다. 이것은 김진환 선생님이 글에서 말하는, 좌우를 아우르는 지난 정부들로부터의 ‘계승’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사회서비스산업 육성이란 기조는 정권을 불문하고 달라진 적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김진환 선생님의 언급처럼 ‘전환은 없었다’.
소득보장 영역에서 이재명 정부는 보건의료/사회서비스 정책에서와 달리 공공의 책임성을 명시적으로 강조하고 있지는 않다. 국정과제에서도 공적인 노후소득보장 강화에 대한 목표나 기준, 이를 위한 큰 틀의 사회적 책임 실현을 위한 방안을 찾아볼 수 없었으므로 이는 예상된 바이기도 하다. 반면에 개인연금, 퇴직연금 시장을 통한 다층노후보장체계의 강화, 하후상박의 기초연금 재편 등은 꽤 강력하게 추진되고 있다. 김성욱 선생님은 글에서 이재명 정부도 역대 정부와 마찬가지로 소득보장 목표나 기준이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국가의 보장책임이 누군가에게는 삶과 죽음의 문제라 하였다. 국가의 소득보장 책임에 대한 원칙의 모호함이 ‘실용’으로부터 비롯된 것인지 보수 정부의 그것과 다를 바 없음을 가리기 위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찌되었든 결과는 소득보장정책 대안이 결국 재정논리에 지배되는 것이다. 그래서 ‘모두를 위한 복지’라는 슬로건과 구체적인 소득보장정책의 모습은 서로 달라진다.
물론 정부의 소득보장정책 방향을 지금 체계 안에서 구체화하는 것은 단순하지 않다. 기여에 의해 수급권이 확보되는 사회보험 방식 국민연금 급여도 평균 70만 원 선인데 기여하지 않고 받는 기초연금을 두텁게 보장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하위계층에게 후한 연금을 주어야 한다는 대통령의 말을 실제 정책으로 구현하기 쉽지 않다. 기초연금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합리적 관계를 갖고 작동하게 만드는 일은 단순하지 않다.
김성욱 선생님은 이재명 정부의 소득보장정책이 기존 재정논리의 제약 속에서 ‘존엄의 약속’에 어긋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오랫동안 꽁꽁 묶여 있던 기준중위소득의 정상화, 국민취업지원제도나 생계급여의 보장수준 상향, 국제기준으로 볼 때 지나치게 낮은 국민연금의 급여수준 인상 등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이끌지 못하는 것은 소득보장에 대한 기본 철학 부재와 무관하지 않다. 앞으로 획기적인 기본소득 제안을 기대하기 어렵다.
여러 필자는 복지정책이 생산의 변화에 대한 대응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산을 재편하는 열쇠가 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이주하 선생님은 이재명 정부가 선성장 후복지의 논리를 반복하고 있다며 이를 재구성할 것을 주장한다. 남기철 선생님 역시 돌봄 대응 및 사회서비스가 경제성장 체제와 깊숙이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필자들은 성장과 복지의 관계 재구성의 중심에는 돌봄경제, 돌봄복지국가가 있다고 한다. 김진환 선생님도 공공의료 생산 확대를 과제로 제시하고 있으니 세 필자가 내놓은 핵심 과제는 사회서비스 제공자로서 공공의 역할 강화가 있다. 필자들은 그 첫 단추로 통합돌봄에 충분한 재정과 인력을 배정하고 시스템을 제대로 만드는 것, 나아가 지역 격차 해소를 위한 사회서비스 기반을 조성하는 것 등을 꼽는다. 첨단기술과 결합된 의료산업, 사회서비스산업 육성만으로 돌봄노동자와 돌봄받는 사람에게 가장 좋은 정책 대안이 나올 수 없다.
지금은 AI로 대표되는 기술혁신으로 인해 생산과 노동의 전환기이다. 하지만 이미 불평등한 구조 위에서 이루어지는 더 많은 기술 혁신과 성장은 그 자체로 우리를 구하지 못한다. 근본적인 것은 분배/재분배의 질서를 바꾸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복지정책은 한국 사회복지의 장기 방향을 가르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모든 필자들이 비판에 그치지 않고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지를 제시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비판과 기대 사이에는 무엇이 있어야 할까? 기대를 현실로 바꿔내기 위한 한층 넓고 깊은 참여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복지정책에 대한 시민의 관심과 참여의 조직화가 있어야 한다. 복지정치의 변화 없이 정책 전환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복지동향의 독자들이 ‘이 모든 한계에도 불구하고’, 정부 복지정책의 감시자이자 재구성의 참여자가 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월간<복지동향> 2026년 7월호(제3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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