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6 2026-09-10   688

[편집인의 글] 우리 모두 아동이었다 : 아동 참여권의 의미와 제도적 보장

이해님 l 동국대학교 사회복지상담학과 교수

우리는 모두 아동기를 지나왔다. 그러나 정말 그 시절을 온전히 다 지나온 것일까. 성인이 된 뒤에도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과 우울, 관계에서 반복되는 두려움의 근원을 따라가다 보면 어린 시절의 어느 순간과 다시 마주할 때가 있다. 부모의 이혼으로 삶의 터전이 달라졌지만 앞으로 누구와 살게 되는지 묻지 못했던 순간, 갑자기 익숙한 집을 떠나야 했지만 아무도 그 이유를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던 순간, 싫고 무서웠지만 어른의 결정에 반대할 수 없었던 순간이다. 가정이나 학교, 때로는 믿었던 사람에게 폭력을 겪고도 그것이 폭력인지, 잘못된 일인지조차 알지 못했던 순간도 있다. 몸과 마음이 아팠지만 아프다고 말해도 되는지, 누구에게 이야기해야 하는지조차 몰랐을 수 있다. 그래서 말 대신 울거나 침묵하고, 거부하거나 분노하며 마음을 드러낸다. 어쩌면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설명해달라고, 내 마음을 알아주고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간절하게 누군가에게 보내는 신호였는지도 모른다.

기억 속 어린 시절의 우리 역시 어른의 보호와 결정에 일방적으로 따라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 삶에 관해 목소리를 낼 권리를 지닌 독립적인 주체였다. 비록 이를 권리의 언어로 표현하지 못했고 그러한 권리가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더라도, 어린 시절의 우리에게 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폭력과 방임으로부터 보호받고, 제 생각과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며, 자기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일에 목소리를 낼 권리가 있었다. 그 목소리는 삶에 관한 결정에서 마땅히 존중되어야 했다. 그러나 아이였던 우리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겠는가.

아동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지금의 아이를 존중하는 일이면서, 그 아이가 훗날 자신의 어린 시절과 삶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지금 아동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것은 언젠가 어른이 될 그 아동이 불안과 상처의 뿌리를 찾아 홀로 과거를 헤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그런 결정이 내려졌는지, 자신의 마음이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를 설명받은 아동은 적어도 삶의 중요한 순간에 자신이 지워지지는 않았다는 기억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아동의 목소리를 듣는 일은 어른의 선의에만 맡겨둘 수 없다. 아동과 어른 사이에는 이미 권력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권력은 누군가를 억누르는 노골적인 힘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권력은 일상적인 관계와 제도 속에서 어른의 판단을 아동의 목소리보다 앞세우는 방식으로도 작동한다. 어른은 나이와 경험, 지위와 전문성을 근거로 아동의 상황과 필요를 자신이 더 잘 이해한다고 믿기 쉽다. 이러한 믿음은 아동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기도 전에 아동의 삶에 관한 판단과 결정을 대신 내리게 한다. 그러한 확신 속에서 아동의 침묵은 동의로, 분노와 거부는 문제 행동으로 해석되고, 어렵게 들려진 아동의 목소리가 결정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수 있다. 그래서 아동의 참여권은 법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이번 호는 ‘아동의 참여권’을 주제로 네 편의 기획 글을 소개한다. 본 기획은 아동 참여권의 의미를 밝히는 데서 출발해, 그 권리가 실제 삶의 결정에서 어떻게 다뤄지고 있으며 이를 보장하려면 어떤 제도가 필요한지를 차례로 살펴본다. 먼저 김희진 변호사는 유엔아동권리협약 제12조를 바탕으로 아동 참여권이 정보 제공부터 언어적·비언어적 견해의 표현과 고려, 결정 결과의 설명까지 아우르는 과정임을 밝히고, 이를 충분히 보장하지 못하는 「아동복지법」 등 국내 법제의 한계를 짚는다. 이러한 한계는 아동의 삶이 바뀌는 구체적인 절차에서 드러난다. 조소연 교수는 학대 이후의 분리와 보호조치, 시설·위탁가정 배치, 원가정 복귀와 입양 과정에서 아동이 여전히 참여자가 아닌 조사와 보호의 대상으로 머물고 있음을 지적하며, 의견 청취와 자기결정, 이의제기와 권리구제 절차를 갖춘 보호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어 임수희 부장판사는 부모의 이혼 이후 아동의 거주와 양육 관계, 면접 교섭이 결정되는 과정에서 부모의 권리가 아니라 비동거 부모의 양육 시간을 보장받을 아동의 권리로 바라보아야 하며, 나이와 관계없이 아동의 목소리를 듣고 반영할 수 있는 가사 절차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소라미 변호사는 공적 개입의 사유가 무엇이든 그 근저에 있는 돌봄의 결핍에 주목하여, 아동의 행위가 아니라 필요를 중심으로 보호조치를 결정하는 스코틀랜드 아동청문위원회 제도를 소개한다. 아동의 피청취권을 법률에 명시하고 권리옹호와 법률조력 등 다층적인 지원체계를 마련한 이 사례는 아동의 의견이 형성되고 표현되어 실제 결정에 반영되기까지 필요한 제도적 조건을 보여준다.

네 편의 글이 가리키는 방향은 분명하다. 아동을 보호한다는 것은 아동을 위해 개입하고 필요한 결정을 내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아동이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고, 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며, 앞으로의 삶을 선택해 가도록 곁에서 함께하는 일이다. 또한 아동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의견을 묻는 데 머무르지 않고, 그 목소리에 비추어 아동의 삶에 관한 판단과 결정을 다시 살피고 바꿀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 귀를 기울이듯, 지금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말하는 아이들에게 그 목소리가 삶의 결정에 닿을 때까지 다정한 경청을 건네야 한다.


월간<복지동향>2026년 9월호(제3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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