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진ㅣ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아동청소년인권위원회 변호사
우리나라의 아동 참여권 보장 정도에 대한 평가
2019년 9월,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대한민국의 아동권리협약 이행 제5~6차 국가보고서 심의에 따른 최종 견해에서, “이전에 권고했듯이,1 「아동복지법」이 아동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사안과 관련하여 자신의 견해를 자유롭게 표현할 아동의 권리를 규정하도록 보장할 것”을 권고하였다.2 3~4차 최종견해에서 이전 권고를 상기하는 언급은 없었지만, 2003년 1월 채택된 제2차 최종견해에도 같은 내용의 권고가 있었다.3
아동권리에 기반을 둔 아동의 기본법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아동복지법」은 아동권리협약의 일반원칙을 기본이념에 명시하게 된 2000년 전부개정으로 아동권리 관점을 반영한 이후로, 아동정책조정위원회(정책의 조정), 아동정책기본계획(국가행동계획), 아동종합실태조사(자료 수집)의 근거를 마련하는 등4 사실상 국내 아동정책의 기본 틀, 혹은 아동권리협약 이행의 기본법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해 왔다. 「아동복지법」에 따른 업무는 기본적으로 보건복지부가 소관하는 아동복지서비스 중심의 정책이기는 하지만, 아동권리협약 이행의 주무 부처가 보건복지부이면서,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아동정책조정위원회를 통해 18세 미만 아동·청소년과 관련된 부처 간 협조에 관한 사항을 조정하는 메커니즘이 구성된 것이다. 다만, 아동권리 관점이 본격적으로 반영되기 시작한 2000년 전부개정 시점부터 현재까지, 여전히 「아동복지법」은 비차별(협약 제2조), 발달권(협약 제6조), 아동 최상의 이익(협약 제3조)을 제2조 각 항에 두었을 뿐, 일반원칙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아동의 의견청취권(협약 제12조)은 기본이념에 명시하고 있지 않다. 그 역사 속에, 유엔 아동권리위원회가 같은 권고를 세 번이나 제시한 것이다.
일반원칙은 각각이 독립된 권리인 한편, 개별 아동권리의 온전한 실현을 가늠하는 지표에 해당한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일반원칙이란 협약 전체를 해석하는 데 도움을 주고, 일반원칙을 통해 각국의 이행 프로그램 방향성을 안내한다고 설명하였다.5 즉, 아동의 의견청취권, 궁극적으로 참여권으로 해석되는 협약 제12조는 아동권리접근법에 필수적 요소이며, 아동과 관련된 모든 사안에서 계획과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다른 일반원칙과 달리 협약 제12조의 원칙만 「아동복지법」의 기본이념에서 누락되어 있는 것은, 여전히 아동의 권리주체성을 제한적인 측면에서만 인식하는 한계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좀 더 비약하자면, 아동의 권리 보장을 아동에 대한 서비스 제공, 보호의 개념으로만 볼 뿐, 당사자의 참여와 그들의 역량 강화에 따른 권리 주장의 맥락으로 이해하는 시각이 부족하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다.
아동 참여권의 의미와 중요성
아동권리협약 제12조는 참여(Participation)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협약 제12조는 아동이 자신의 견해를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right to express those views freely), 그 견해에 아동의 연령과 성숙도에 따른 정당한 비중을 부여할 당사국의 의무(given due weight in accordance with the age and maturity of the child), 직접 또는 대리인 등을 통한 의견 청취의 기회 보장(be provided the opportunity to be heard)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아동이 적절한 정보와 안내를 제공받고, 언어적·비언어적 방식으로 자유롭게 자신의 견해를 표현하며, 그 견해가 상대방(의무이행자)에게 전달되고 진지하게 고려되어 결정에 정당한 비중을 부여받는 것, 또한 그 결과에 대해 아동이 알고 지속적으로 견해를 형성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소통하는 전 단계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위원회는 협약 제12조를 이행하는 각 당사국의 다양한 시도와 움직임이 전개되면서, 협약 제12조가 넓게 ‘참여’라는 용어로 개념화되었다고 해설하였다.6
이처럼 참여의 관점에서 협약 제12조를 이해한다면, 기본적으로 아동의 일상에 관계된 모든 이들이 아동 참여를 위한 각자의 역할을 분담해야 하고, 나아가 아동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국가 정책, 법령이나 행정 조치 전반에 아동의 견해를 직간접적으로 듣고, 그 견해에 따른 당사자의 요구(needs)를7 반영하는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참여의 개념은 단순히 듣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따라서 일시적인 이벤트일 수 없으며, 아동의 삶과 관련된 모든 맥락에서 각종 선택과 실천을 위한 아동과 관계된 이들의 치열한 의견 교환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8
이때,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아동의 참여권은 언제나 표현의 행위를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협약 제12조는 협약 제2조, 제3조, 제6조와 동등한 비중으로 고려되어야 할 일반원칙의 한 요소이고, 따라서 아동의 비언어적 행위를 아동 최상의 이익 관점에서 해석하고 아동 최상의 이익을 실현하는 결정에 도달하는 것은 의무이행자의 역할이다. 즉, 침묵은 그 자체로 아동의 표현일 수도 있지만, 아동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환경 혹은 충분한 정보가 부족하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9 이 맥락에서, 아동이 자신의 견해를 형성하고 표현하기 위한 전제로서, 관련된 정보에 대한 접근(필요한 정보를 적절하게 제공할 의무)은 참여권 보장의 필수적 전제임을 알 수 있다.
한편, 협약 제12조는 ‘자신의 견해를 형성할 능력이 있는 아동’을 말하는데, 간혹 해당 문언에 대한 오해가 확인되기도 한다. 추상적 사고가 가능하다고 볼 정도로 특정 연령에 이른, 혹은 비장애아동의 참여권으로 이해하는 시각이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도 이 점을 우려했던지, 2009년 아동의 의견청취권에 관한 일반논평 제12호를 통해, “당사국은 모든 아동이 자신의 견해를 형성할 능력이 있다고 보아야 하고, 아동이 그 견해를 표현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능력을 먼저 증명할 책임은 아동에게 있지 않다. 위원회는 제12조가 아동이 자신의 견해를 표현하는 권리에 연령 제한을 두지 않는 점을 강조한다.”라고 단호하게 밝혔다.10 출생 직후의 아동도 자신의 일상에서 보장되어야 할 기본적 권리(적절한 식사, 주거, 돌봄 등)에 관한 요구가 있고, 아동들의 견해란 종합적 지식을 망라한 판단이 아닌 자신의 필요와 의견을 말하는 과정 그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의사 전달에 어려움이 있는 아동이라면(장애아동, 소수민족·이주배경아동), 원활한 의사 표현에 필요한 의사소통 지원이 있어야 한다.11 즉, 아동과 관련된 모든 의사결정은 당사자 아동과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의견을 들을 수 있는 특정 아동이라는 개념은 존재할 수 없으며, 모두 내 삶의 주체로서 그 의견이 표출될 수 있어야 하고, 그 해석과 이행에 아동 최선의 이익을 실현하는 것은 의무이행자의 몫이다.
마지막으로, 아동의 의견을 듣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듣는 과정을 통해 변화가 시도되고, 그 변화의 적절성이 검토되며, 다시금 듣고 논의하는 선순환의 과정을 도모하는 것이므로, 협약 제12조의 실천이란 국가가 아동과 상호작용하고, 아동권리에 더욱 민감해질 수 있도록 하는 핵심적인 수단이 된다.12 아동의 참여권에서 의견을 말하는 것은 권리 보장의 아주 단편적인 결과이고, 궁극적으로는 매 순간 아동이 나의 필요를 기꺼이 표출할 수 있는 사회 환경(훈련된 조력자의 존재, 안전하게 말할 공간, 사법접근권 포함), 그 목소리가 의사결정권자에게 전달될 수 있는 공적 메커니즘, 또 의견의 반영과 아동 최상의 이익이라 판단한 근거들을 아동이 알 수 있도록 전달하는 제반 여건 등 그 구조와 작동 방식이 총체적으로 구현되는 결과를 지향해야 한다.
다시, 반쪽짜리 아동 참여를 극복해야 할 의무
서두에 지적하였듯이, 우리나라는 아직 아동권리의 필수적 요소로 참여에 큰 무게를 두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이는 기본이념의 내용만이 아니라, 법령의 구조에서도 드러난다.
예를 들어, 「아동복지법」 제15조 제5항은 보호조치 및 일시보호조치를 할 때, “해당 보호대상아동의 의사를 존중하여야 하며, 보호자가 있을 때에는 그 의견을 들어야 한다.”라고 정한다. 침묵의 언어 해석을 포함해 ‘존중’한다는 의미가 적극적으로 실천될 수도 있겠지만, 조문 자체의 표현을 보건대 아동의 의사는 보호자의 의사보다 그 중요도를 낮게 평가한다고 볼 수 있다. 아동의 가정 복귀는 아동복지시설의 장, 아동을 상담·치료한 의사의 “의견을 들은 후” 결정하도록 하는 반면(제16조 제3항), 후견인 선임 및 변경이나 임시 후견인 역할에 관해서 “아동의 의견을 존중하여야” 한다고도 정하는 것(제19조 제4항, 제20조 제2항, 제20조의2)을 보아도, “듣는다”라는 필수적 과정에 대한 이해는 미비하다.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도 피해아동에 대한 조사 규정을 통해 절차상 진술권이 나타날 뿐이고, 응급조치에는 피해아동의 의사를 존중하여야 한다는 문언을 반복해 실질적 의견청취를 통해 그 의견에 정당한 비중을 부여하는 근거로 작동하기에 한계가 있다(제12조).
한편, 일부 법령은 13세 이상인 아동·청소년에 한하여 참여권을 인정하기도 한다. 양자가 될 사람이 13세 이상인 경우에만 입양허가 절차에서 당사자 아동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정하는 「가사소송법」 제45조의9가 있고, 이는 친양자 입양, 「국내입양에 관한 특별법」에 따른 입양의 경우에도 같다. 「가사소송규칙」에 의해서도, 미성년인 자의 친권자 지정, 양육과 면접교섭권에 관한 사항을 직권으로 정하는 경우 그 자녀가 13세 이상인 때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가정법원이 자녀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제18조의2). 다만, 자의 성과 본의 계속사용허가 청구 또는 변경허가 청구에서는 13세 이상인 자녀의 의견을 들을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제59조의2).
그래도 청소년 관련 법령은 상대적으로 참여에 대한 원칙이 잘 드러나는 편이다. 청소년 관련 정책에 대한 자문·심의 등의 절차에 청소년을 참여시키거나 그 의견을 수렴하여야 하고, 청소년과 관련된 정책 수립 절차와 시행 과정에 청소년의 의견을 수렴하고 참여를 촉진하는 조치를 하도록 하는 「청소년기본법」 제5조의2가 가장 대표적이다. 「아동복지법」 규정과 달리, 가정폭력·아동학대로 인하여 청소년쉼터에 입소한 경우, 가정 밖 청소년의 의사에 반하여 퇴소시켜서는 안 된다는 규정도 있다(「청소년복지 지원법」 제32조의2 제3항).13
다만, 위의 예들은 관련 법령의 아주 일부분에 한할 뿐이고, 사실 문서 속 법제보다 아동의 의견청취와 그 반영이 작동되는 현실의 실천이 더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존중’은 기본적 자유의 온전한 실현을 의도하는 것이고, 아동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은 ‘듣는 것’을 전제하는 행위로 해석할 수 있듯 말이다. 법령의 문언과 구조는 참여권 보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개인적·사회적 일상의 훈련과 경험을 통해 아동의 참여권을 보장하는 관행과 문화를 형성하는 노력이 못지않게 중요함을 말하고 싶다. 그렇게 아동의 참여권이 보장·증진되는 과정에, 더는 아동의 참여를 일부러 말하지 않아도 되는, 아동과 성인의 대등한 의사소통이 자연스럽게 실천되는 사회를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때에는 분명 「아동복지법」의 기본이념에 아동의 참여권만 빠진, 그래서 위원회도 3번이나 권고했던 그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 미주 |
- CRC/C/KOR/CO/3-4, para. 35(a) ↩︎
- CRC/C/KOR/CO-5-6, para. 21(b) ↩︎
- CRC/C/15/Add.197, para. 35(a) ↩︎
- 입법, 정책의 조정, 국가행동계획, 자료 수집 등은 유엔 아동권리위원회가 아동권리 이행에 필요한 국가의 기본적 구조로 요구한 사항들이다(일반논평 제5호 참조). ↩︎
- Fact Sheet No.10 (Rev.1), The Rights of the Child(A/CONF. 157/24 (Part 1), chap. 111). ↩︎
- CRC/C/GC/12, para. 3. ↩︎
- ‘요구(needs)’는 ‘욕구(wants)’와는 다른 개념이다. ‘요구(needs)’는 인간으로서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최소한의 조건을 말한다. 충분한 영양, 가정환경과 안전한 주거, 교육, 보건과 의료서비스, 차별받지 않을 권리 등 한 개인(아동)이 생존하고 건강하게 발달하기 위해 반드시 충족되어야 하는 필수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국가는 아동의 요구를 반드시 충족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반면, ‘욕구(wants)’는 개인이 주관적으로 원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특정한 상황이나 개인의 특성에 따라 달라지며, 욕구가 충족되지 않더라도 생존이나 기본적 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
- CRC/C/GC/12, paras. 12~13. ↩︎
- CRC/C/GC/12, para. 16. ↩︎
- CRC/C/GC/12, para. 20. ↩︎
- CRC/C/GC/12, para. 21. ↩︎
- CRC/C/GC/5, para. 12. ↩︎
- 이 글에서 시설보호의 적절성에 대한 문제는 다루지 않는다. ↩︎
월간<복지동향>2026년 9월호(제3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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