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6 2026-09-10   3088

[기획2]「삐삐 롱스타킹」작가 린드그렌이 묻는, 아동보호 절차 속 아동의 목소리

조소연ㅣ 숭실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겸임교수

“우리가 이토록 작고 외롭지 않다면”1

‘울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배워 버린 아이

스웨덴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세상에 내놓은 소녀 「삐삐 롱스타킹」은, 어른의 눈으로 보면 가여운 아이였다.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바다에서 실종되었으며, 곁에는 말 한 마리와 원숭이뿐이었다. 그러나 삐삐는 누구보다 씩씩하고 자유로웠으며, 어른의 허락도 규칙도 필요로 하지 않은 채 제 삶을 스스로 꾸리는 아이였다. 삐삐는 발에 솔을 매달고 미끄러지듯 자기 방식대로 바닥을 닦았고, 학교에 찾아가서는 구구단이 대체 무슨 소용이냐고 천진하게 되물어 교사의 권위를 유쾌하게 흔들었으며, 격식을 잔뜩 차린 어른들의 다과 모임에서는 그 허세를 아이의 눈높이에서 가볍게 뒤집어 놓았다. 경찰관이 ‘너를 위해서’라며 삐삐를 보육원(barnhem)으로 데려가려 하자, 삐삐는 ‘나는 아이이고 여기가 내 집이니 이곳이야말로 아이들의 집(barn hem)’이라고2 능청스레 받아치고는 지붕 위로 올라가 술래잡기를 벌이며 그들을 돌려보냈다. 무엇이 자신에게 좋은지를 어른이 멋대로 정하는 세상을, 삐삐는 웃음으로 되받은 것이다. 1945년 삐삐가 처음 등장했을 때, 어른들은 이 아이가 ‘무례하고 비교육적’이라며 불편해했다. 린드그렌은 이렇게 응수했다.

“어른들이 ‘어린이도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기 바랍니다.” 3

린드그렌은 평생, 아동을 수동적인 보호나 도덕적 훈육의 대상이 아닌 고유한 인격과 권리를 지닌 주체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Pippi Långstrump)」을 비롯해 「지붕 위의 칼손(Karlsson på taket)」, 「산적의 딸 로냐 (Ronja Rövardotter)」, 「에밀은 사고뭉치(Emil i Lönneberga)」 에 이르기까지, 그의 수많은 작품에는 호기심 많고 독립적이며 자유로운 아이들이 산다. 그중 「라스무스와 방랑자」의 주인공 라스무스는, 입양하러 온 부부들이 늘 곱슬머리의 얌전한 여자아이만 골라 데려가는 시설에서 번번이 선택받지 못하는 소년이다. ‘곱슬머리가 아니라서 아무도 데려가지 않는 고아는 죽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되뇌던 그는, 규칙으로 가득한 시설과 사나운 원장을 뒤로하고 ‘나를 원하는 누군가가 있는 세상’을 찾아 길을 떠난다. 삐삐처럼 어른이 골라 주기를 기다리는 대신, 스스로 자기를 원하는 자리를 찾아 나선 것이다.

린드그렌이 평생토록 이렇게 아이의 편에 설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단지 관념이 아니라 자기 삶에서 길어 올린 뼈아픈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젊은 미혼모였던 그는 세상의 눈을 피해 낯선 나라의 병원에서, 아버지의 이름을 지운 ‘비밀 출산’으로 아들 라세를 낳았다. 당장 아이를 키울 형편이 못 되어 코펜하겐의 한 위탁가정에 맡겨야 했고, 이후 어린 라세는 이 집 저 집을 전전했다. 훗날 린드그렌은 아들이 마침내 자신의 품으로 돌아온 날의 한 장면을 잊지 못했다고 적었다.

“그 집에 도착해서 모든 것이 자기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라세는 의자에 배를 깔고 엎드려 소리 없이 울었다. 어차피 어른들 마음대로 할 테니까 울어 봤자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을 알아챈 듯 전혀 소리 내지 않고 울다니! 그 눈물은 지금까지도 내 가슴에 흐르고 있다. 아마 내 생의 마지막 날까지 계속 흐르겠지. 어쩌면 내가 어떤 상황에서든 어린이 편을 드는 것도, 옹졸하고 젠체하는 공무원들이 어린이를 별생각 없이 이리저리 보내는 모습에 분노를 참지 못하는 것도 그 눈물 때문일지 모른다. 그들은 어린이가 어디서나 금세 적응한다고 생각하지! 그렇게 보일지 몰라도 어린이는 새로운 환경에 쉽사리 적응할 수 없다.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힘에 떠밀려 그저 체념할 따름이다.” 4

아동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보호의 시작이다

린드그렌은 언젠가 아들과 나란히 앉아 글을 쓰다가 “어린이로 사는 것은 쉽지 않다”라는 제목을 떠올렸다. 아동은 자고 먹고 씻는 사소한 일조차 자신이 원할 때가 아니라 어른이 편한 때에 맞춰야 하고, 제 외모나 건강, 장래에 관해 어른들이 무심코 내뱉는 지극히 사적인 평가를 군말 없이 견뎌야 한다. 아동의 ‘참여권’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바로 그 하루하루 속에서 아이의 ‘싫어요’ 또는 ‘이렇게 하고 싶어요’를 한 번쯤 진지하게 다루는 일이다.

흔히 아동의 의사를 묻는 것이 ‘아동의 안전한 보호’와 충돌하는 것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아동의 말을 다 들어주다가는 정작 아동을 위험에서 지킬 수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유엔아동권리협약 제12조가 규정하는 참여권은 아동에게 결정권을 통째로 넘기라는 뜻이 아니다.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사안에서 아동이 의견을 표명하고, 그 의견이 연령과 성숙도에 따라 정당하게 존중받을 권리를 뜻한다. 특히 제12조 제2항은 학대피해아동의 시설 보호와 입양 같은 사법·행정 절차에서 아동 의견이 청취될 권리를 분명히 못 박는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 역시 ‘아동 최선의 이익’과 ‘청취될 권리’가 분리될 수 없음을 거듭 확인해 왔다. 아동의 견해를 듣지 않은 채 내리는 판단은 결국 어른들의 자의적인 추측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참여권은 단지 말할 기회를 주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말에 정당한 비중을 두고 응답할 때 비로소 실현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글은 학대·분리·입양이라는 보호 절차에서 아동의 의사가 실제로 어떻게 존중되는지, 그 현실과 대안을 살핀다.

학대받은 아동의 사라진 목소리

아동학대 신고가 접수되면 조사와 분리 판단, 보호조치, 원가정 복귀 결정이 이어진다. 현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피해아동에 대한 응급조치(제12조)나 임시 후견인 선임(제23조), 보호명령 청구(제47조), 명령의 취소나 변경의 신청(제50조), 명령의 기간연장 청구(제51조) 등에서 아동의 의사를 존중하고 의견진술권을 보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결정의 중심에 아동이 있음에도, 정작 아동은 조사와 사정의 ‘대상’으로만 존재할 뿐 절차의 ‘참여자’로 충분히 대우받지 못한다.5 어디에서 누구와 살지, 원래의 집으로 돌아갈지 인생을 좌우하는 물음 앞에서 아이의 의견은 형식적으로만 다뤄진다.

이는 학대 행위자의 대다수가 부모라는 맹점에서 비롯된다. 아동은 독자적으로 소송하거나 변호사를 선임하기 어려워, 법정대리인인 부모와 이해가 충돌하는 순간 목소리를 낼 통로를 잃는다. 그 결과 아동의 의사에 반해 부모의 뜻대로 합의나 배상이 이루어지는 사례가 종종 보고되기도 했다.

물론 조력 장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아동에 대한 조사와 재판 시 진술 녹화가 가능한 상담실을 설치하였고, 신뢰관계인으로 상담원을 동석하여 아동의 심리안정 및 의사소통을 돕고 있다. 또한, 아동학대전담검사나 피해아동변호사, 진술조력인6, 증인지원관 등을 두어 아동 의견 청취를 지원한다. 피해아동의 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한 절차 개선도 이어졌다.7 이는 노르웨이의 ‘바르나후스(Barnahaus, 아동의 집)’ 모델처럼 아동친화적인 환경에서 조사와 치료를 통합적으로 제공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8 그러나 이러한 제도는 여전히 전문인력의 편차가 크고, 무엇보다 아동 측의 ‘신청’을 전제로 작동한다는 치명적 한계가 있다. 조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조차 인지하기 어렵고, 어떻게 도움을 청하는지 모르는 아동이 스스로 권리를 청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9 결국 아이를 위한 중대한 결정의 자리에, 아동의 목소리는 온전히 닿지 못할 때가 많다.

분리·대안양육 시 아동 권리의 부재

「유엔아동권리협약」 제9조는 아동과 부모의 의사에 반하여 아동을 부모로부터 분리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으며, 이러한 원칙은 아동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기본 정신에 기초한다. 이에 따라 「아동복지법」은 보호조치 시 아동의 의견을 존중하도록 규정하고, 아동보호 업무매뉴얼도 보호계획의 수립과 종결 과정에서 아동의 욕구와 의견을 청취하도록 안내한다. 하지만 실제 보호 분리 절차를 살펴보면, 아동의 권리가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명백한 한계가 존재한다.

가장 두드러진 문제는 법률상 아동과 성인(보호자) 간의 참여 보장 수준이 다르다는 점이다. 「아동복지법」은 보호조치를 결정할 때 보호자의 의견은 “들어야 한다”라고 의무화한 반면, 아동에 대해서는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고 다소 약하게 규정하고 있다. 게다가 이조차도 가정위탁, 시설 입소, 입양 등 특정 조치(제15조 1항 3~6호)에만 적용될 뿐, 친족 가정 보호나 보호자 상담·지도(1~2호) 등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이는 보호대상아동이 자신의 배치와 일상에 대해 정당하게 의견을 표명하고 이의를 제기할 권리를 요구하는 국제적 기준과 크게 대조되는 지점이다. 「유엔 아동의 대안양육에 관한 지침(UN Guidelines for the Alternative Care of Children)」 제6조는 대안양육과 관련된 모든 결정은 아동의 안전과 최선의 이익을 바탕으로 해야 하며, 아동의 발달 정도에 따라 자신의 의견을 말할 권리와 그 의견이 정당하게 고려될 권리를 전적으로 존중해야 한다고 포괄적으로 명시한다. 또한, 대안양육 배치가 결정된 아동에게, 자신의 배치 결정 과정(placement decision)에 대해 직접 의견을 진술하고 참여할 기회를 보장해야 하고(제67조), 보호 체계 내에 있는 아동이 자신의 처우나 양육 환경(일상)에 대한 불만이나 우려 사항을 신고하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투명하고 공정하며 효과적인 고충 처리 메커니즘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함(제98조)을 강조한다.

아동의 분리 조치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지방자치단체 산하 사례결정위원회의 운영 방식도 문제다. 분리 조치에 대한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심의 기준이나 매뉴얼이 부재하여, 심의 위원의 성향이나 상황에 따라 판단 편차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 더욱이 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당사자인 아동이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절차적 권리조차 명문화되어 있지 않다. 그 결과 아동은 자신의 권리를 옹호할 주체가 아닌, 행정적 ‘처분’을 수용해야 하는 대상으로 남게 된다.10 

한편, 다수의 시설이 퇴소나 전원을 아동에 대한 통제 수단으로 삼고 있는 현실은 뼈아프다. 대표적인 것이 「소년법」상의 ‘통고’ 제도다. 시설장이 수사기관을 거치지 않고 직접 법원에 아동의 보호처분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이 제도는(제4조, 제32조), 아동의 트라우마나 문제 행동을 치료적으로 지원하기보다는 시설 내에서 갈등을 표출하거나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아동을 소년원 등 타 시설로 손쉽게 밀어내는 징벌적 수단으로 악용되곤 한다.11 특히 통고로 시설 보호 아동의 소년 재판이 개시될 경우, 법정 후견인이 동석하지 않은 채 재판이 진행되는 사례도 빈번하다. 이 과정에서 아동은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거나 상황을 소명할 최소한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시설 밖으로 내몰리게 된다.12 보호의 주체여야 할 시설이 도리어 처벌의 주체로 돌변하는 모순 속에서, 아동은 결국 저항을 포기하고 침묵을 학습하게 된다.

따라서 현행 보호 체계는 아동 ‘참여’와 ‘권리 보장’의 관점에서 전면적으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아동의 배치와 전원 결정에 앞서 당사자의 의견을 필수적으로 청취하고 일상에서의 자기 결정권을 보장해야 하며, 나아가 아동이 실질적으로 인지하고 접근할 수 있는 투명한 이의제기 및 권리구제 절차를 반드시 제도화해야 한다.

입양, 뿌리를 지우는 결정에 당사자는 말이 없다

입양은 한 사람의 정체성과 생애 전반을 좌우하는 가장 영구적인 결정이다. 2025년 7월부터 시행 중인 「국내입양에 관한 특별법」은 입양 체계를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으로 공공화하며 진일보한 변화를 보여주었다. 동법은 13세 이상 아동의 서면 승낙 의무화 및 13세 미만 아동에 대한 법정대리인의 갈음 규정을 명시하고(제15조), 입양 전 과정에서 아동의 연령과 성숙도를 고려한 의견 청취를 의무화했다(제4조). 또한, 지자체장의 ‘아동 최선의 이익’ 결정(제13조)과 더불어, 대법원규칙을 통해 가사조사관이나 상담위원 등을 활용하여 아동의 언어적·비언어적 표현을 종합적으로 청취하도록 세부 절차를 마련한 점(제3조)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여전히 높다. 입양이 주로 영아기에 이루어지다 보니 당사자의 참여권은 종종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된다. 무엇보다 입양 동의 절차에 남아있는 ‘13세’라는 기계적인 연령 문턱은 치명적인 한계다. 13세 미만 아동은 법정대리인의 대리 승낙에 의존할 뿐 자신의 의사를 표명할 공식적 권한이 미비하다. 법률이 명시한 ‘연령과 성숙도를 고려한 의견 청취’ 역시 구체적인 실무 지침이 부족하여, 결국 담당자의 역량과 상담 기술에 따라 그 질적 편차가 크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특히 유념해야 할 점은 진정한 참여권이란 단순히 현재의 의사를 묻는 것을 넘어, 당사자가 자신의 상황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알 권리(정보 접근권)’가 필수적으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기원과 배경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정체성 형성의 기반이자, 삶의 방향을 주체적으로 결정하기 위한 핵심 전제 조건이다.

그러나 현행 입양 체계에서 아동의 정보 접근권 제약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입양정보공개 청구 시 미성년 입양인은 반드시 양부모의 동의를 얻어야 하며, 친생부모의 정보는 그들의 명시적 동의 없이는 접근이 차단된다. 심지어 친생부모가 사망하여 개인정보 보호의 법익이 소멸한 경우에도, 중대한 의료적 사유 등 극히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공개를 허용하고 있어 실질적인 정보 접근을 가로막고 있다. 그 결과 실제 정보 공개율은 전체 신청의 20%를 밑도는 실정이다.

여기에 최근 도입된 ‘보호출산제’까지 맞물리면서, 아동의 출생 배경과 기원이 원천적으로 봉인될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입양은 아동을 단순히 새로운 가정에 배치하는 행위로 끝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 아이의 목소리를 듣는 것’과 ‘훗날 아이가 자신의 뿌리와 진실을 대면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결합할 때, 비로소 입양은 아동 권리의 온전한 실현으로 완성될 수 있다.

‘있는 권리’와 ‘실행되는 권리’

취약함이 겹겹이 쌓인 자리일수록 아이의 목소리는 가장 적게 청취되고, 분리와 이동의 결정은 너무도 손쉽게 내려진다. 국가가 정한 일방적인 기준에 순응해야만 보호받을 수 있는 체계 안에서, 아동의 참여권은 늘 조용히 지워져 왔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표현처럼 “우리가 이토록 작고 외롭지 않다면” 과연 상황은 달라졌을까.

아동의 참여권은 어른의 선의나 시혜적인 태도만으로는 결코 지켜질 수 없다. 단단한 절차적 보장이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 다음의 실천적 변화가 시급하다.

첫째, 명목뿐인 ‘존중’을 ‘실질적 청취’로 격상시키고, ‘응답하는 청취’로 나아가야 한다. 시설 보호, 원가정 복귀, 입양 등 아동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모든 절차에서 당사자의 의견 청취를 법적으로 의무화해야 한다. 또한 아동의 의견이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하고, 정기적인 점검과 투명한 이의제기 절차를 보장해야 한다.

둘째, 아동의 목소리를 증폭시켜 줄 조력자가 필요하다. 아동의 신청을 기다리는 수동적 지원을 넘어, 아동에게 먼저 다가가 최선의 이익을 전적으로 대변할 수 있는 ‘아동옹호인’ 및 아동의 발달단계와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는 ‘아동 특화 국선변호사’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

셋째, 참여를 가로막는 나이의 문턱을 걷어내야 한다. 사법 및 행정 절차 전반에 걸쳐 기계적인 연령 제한을 폐지하고, 언어적 표현이 서툰 아동의 비언어적 의사표시까지 개별적 발달 상태와 성숙도에 맞게 세심히 포착하고 반영해야 한다.

넷째, 실효성 있는 권리구제 창구를 마련하고 어른들의 자의적 통제를 제한해야 한다. 아동이 주양육자를 신고하더라도 어떠한 위해나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촘촘한 보호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시설장에 의한 자의적인 통고나 강제 전원 등의 징벌적 제재를 엄격히 제한하며, 아동 친화적인 권리구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다섯째, 아동이 자신의 뿌리와 기원을 알 권리를 지켜야 한다. 입양정보 공개청구 제도를 실효성 있게 개선하고, 보호출산 및 입양 과정에서 아동의 출생 기록이 훼손 없이 온전히 보존되고 이관되도록 법적 강제력을 부여해야 한다. 나아가 이 모든 변화를 떠받치는 토대로서, 아동과 만나는 모든 종사자에게 아동 인권에 기반한 교육과 훈련이 상시로 제공되어야 한다.

1978년 독일 서적상 평화상 수상 연설에서 린드그렌은 한 노부인의 일화를 소개했다. 젊은 시절, 아이를 매로 다스려야 한다고 굳게 믿었던 어머니는 어느 날 말썽을 피운 어린 아들에게 “네가 맞을 회초리를 직접 꺾어 오라”고 시켰다. 한참 뒤 울면서 돌아온 아이는 회초리 대신 작은 돌멩이 하나를 내밀며 말했다. “회초리를 못 찾았어요. 대신 이 돌을 저에게 던지세요.” 그 순간 아이의 시선에서 폭력의 끔찍한 공포를 마주한 어머니는, 그 돌을 부엌 선반에 올려두고 ‘결코 폭력은 안 된다’라는 평생의 신조로 삼았다.

돌멩이를 들고 돌아온 아이의 상처받은 마음을 마주하는 것. 아동을 수동적인 보호의 대상이기 이전에 온전한 한 사람으로 대우하고,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어른의 태도를 성찰하고 바꾸어 내는 것. 오늘 우리가 논하는 ‘참여권’의 진정한 뿌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

린드그렌은 아이가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홀로 남겨지는 것이며, 모든 아이에게는 자신과 깊이 이어진 어른이 적어도 한 명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었다. 아동의 참여권은 결국 그 ‘이어짐’을 지키려는 우리 사회의 절박한 안간힘이다. 부득이하게 아이를 원래의 가정에서 분리해야 하는 뼈아픈 순간일지라도, 그 결정이 어른들의 치열한 숙고의 결과였으며 무엇보다 그 과정의 중심에 자신의 목소리가 놓여 있었음을 느낄 수 있다면 아이는 분명 덜 외로울 것이다. 이 세상 어떤 아이도 제 삶을 짓누르는 거대한 무게 앞에서 “이토록 작고 외롭지 않도록”, 우리는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묻고 또 들어야만 한다. 


| 미주 |

  1. 안데르센 옌스가 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전기의 제목이다. Andersen, J., 2020, 우리가 이토록 작고 외롭지 않다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전기(김경희 역), 창비. ↩︎
  2. 스웨덴어로 barn은 아동, hem은 집을 뜻하며, barnhem은 보육원을 가리킨다. ↩︎
  3. Andersen, 2020, 247쪽. 1947년 여름, 린드그렌이 잡지 「비(Vi)」에서 인터뷰한 내용이다. ↩︎
  4. Andersen, 2020, 117쪽. ↩︎
  5. 노충래, 정선욱, 임선영, 2021, 아동권리 보장을 위한 아동 청문권, 굿네이버스 ↩︎
  6. 진술조력인이란 성폭력범죄 피해자, 아동학대범죄 피해자·참고인·증인이 13세 미만의 아동이거나 신체·정신적인 장애로 의사표현에 어려움이 있는 범죄 피해자인 경우 수사 및 재판 과정 등의 형사사법절차에 참여하여 의사소통을 중개하거나 보조하는 전문인력으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및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장애인복지법」에 근거한 제도로서, 법무부장관이 정한 교육을 이수한 사람 중에서 진술조력인 자격을 부여할 수 있다. ↩︎
  7. 다만 그 길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과거에는 19세 미만 피해자의 진술 영상 녹화물을 반대신문 없이도 증거로 쓸 수 있었으나, 2021년 헌법재판소가 이를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으로 결정하면서(헌법재판소 2021.12.23. 선고 2018헌바524 결정), 오히려 어린 피해자가 법정에 나와 다시 진술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이후 2023년 7월에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개정하여, 피고인의 반대신문 기회를 보장하는 것을 전제로 영상녹화 진술을 증거로 인정하되 증거보전을 통한 사전 증인신문이나 중계장치·전문조사관을 통한 신문 등으로 아동이 법정에서 가해자와 직접 대면하지 않도록 하는 특례가 마련되었다. ↩︎
  8. 바르나후스 모델은 성적·신체적 학대 피해아동에게 필요한 형사 조사, 신체·심리 치료, 아동복지서비스 등을 아동친화적인 한 장소에서 통합 제공하는 제도로, 피해 진술을 사건 초기에 훈련된 전문가가 진행해 아동이 수사·재판 과정에서 피해를 반복 진술할 위험을 줄인다. 임현경. (2022.3.18.).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 보호를 위해 ‘바르나후스’ 모델 도입해야”. 법률신문. ↩︎
  9. 김진, 강정은, 김상원, 김희진, 엄문설, 정선욱, 조소연, 홍혜인, 2024, 아동·청소년 국제인권기준의 국내이행 현황조사, 국가인권위원회. ↩︎
  10. 정선욱, 김형태, 김미숙, 공영숙, 이수천, 2023, 아동보호체계 관계자의 사례결정위원회 참여 경험 연구,  보건사회연구, 43(2), 215-232. ↩︎
  11. 2025년 10월 ‘아동청소년탈시설공동행동’과 ‘한국아동복지학회’가 전국 아동양육시설 235곳 중 197곳의 생활규칙을 입수·분석한 결과, 다수 시설이 퇴소·전원·통고를 제재 수단으로 명시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
  12. 이승현, 박선영, 이정주, 2018, 소년분류심사원 인권조사, 국가인권위원회; 이승현, 2021, 소년법에서의 우범소년 규정에 관한 비판적 고찰, 소년보호연구, 34(1), 283-306. ↩︎

월간<복지동향>2026년 9월호(제3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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