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모성보호법이 만들어졌지?"
어느날 신문을 들여다보다 문득 생긴 의문이다.
모성보호 관련 법 개정이 사회적인 이슈로 부각되면서 언론에서 모성보호법이란 듣지도 보지도 못한 법을 뚝딱 만들고 말았다. 실제로 모성보호법이 현실에 존재하고 있다는 걸 전제로 한 질문을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땐 "모성보호법은 없구요, 지금 여성노동계에서 개정운동을 하고 있는 법은 남녀고용평등법, 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입니다. 이런 관련 법이 개정되어야 출산휴가기간도 길어지고 육아휴직 동안 임금도 나올 수 있거든요. 그리고 모성보호와 육아지원은 다른 차원의 문제죠…."라고 구구절절 설명을 덧붙일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과 여성단체로 구성된 '여성노동법 개정 연대회의'는 6월 임시국회에서는 반드시 개정법을 통과시키겠다는 일념으로 연일 여의도로 모이고 있다. 애당초 예정대로 갔었다면 지금쯤 남녀고용평등법과 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시행령 검토를 마쳤을 것이다. 정부 여당이 7월부터의 시행을 수 차례 공언해왔고, 올해 예산으로 이미 3백억원이 책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대체법률(안)까지 만들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개정법은 아직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이 이처럼 법 개정을 표류하게 만들었는가?
지난 4월 경제5단체가 모성보호와 육아지원을 확대하면 8천5백억원이 소요된다는 터무니없이 과장된 발표를 하자마자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듯이 각 정당은 법 개정에 반대를 하고 나섰다. 자민련은 기업 부담을 이유로 법 개정을 공식적으로 반대하고 나섰고 집권당인 민주당도 여권 공조를 이유로 법 시행 2년 유예를 발표하더니 여성노동계가 강하게 반대하고 나오자 출산휴가만 90일로 연장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나라당이 적극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7월부터 시행하겠다는 각 정당의 당론은 소신도 대책도 없이 당리당략에 따라 수시로 바뀌고 있다. 이 과정에서 주무부처인 노동부는 2003년이면 고용보험 재정이 바닥난다는 발표를 해 법개정 반대여론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법 개정의 표류 속에서 여성노동계가 모든 것을 얻겠다고 하기보다는 한발 양보해서 일부라도 확보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압력도 만만치 않으나 환경노동위의 대안을 보면 이미 여성노동계가 상당히 많이 양보한 수준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8월 여성노동법 개정 연대회의는 '출산휴가 100일 확대 및 사회부담화/ 월 1일의 태아검진휴가/ 유급유·사산휴가/ 임신중 여성에 대한 야간근로 및 휴일근로 금지/ 현행법상 무급인 육아휴직기간의 소득보장/ 가족간호휴직제/ 간접차별금지 규정의 구체화/ 고객, 거래처 직원 등에 의한 성희롱 규제/ 직장내 폭언·폭행에 대한 예방 및 처벌조항 신설'을 내용으로 하여 국회에 청원을 하였다. 하지만 환경노동위 대안은 여성노동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고객, 거래처 직원 등에 의한 성희롱, 폭언·폭행에 대한 예방 및 처벌조항은 아예 빠져 있고, 여성의 시간외근로·야업·휴일근로 제한조항을 삭제하여 개악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고 산전후 휴가기간도 90일에 불과할 뿐이다.
그럼 무엇이 문제인가?
논란의 핵심이 되고 있는 법 개정 요구(안)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면, 현재 근로기준법에 보장되어 있는 산전후 휴가기간은 60일로, 우리가 후진국이라고 치부하는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파키스탄, 터키보다도 짧은 기간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1952년 조약103호(모성보호협약)에서 산전후 휴가기간 12주를 보장하였고, 작년 6월 제88회 총회에서는 14주로 확대함과 동시에 산후휴가를 최소한 6주 이상 부여토록 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나라에서는 출산휴가를 14주 이상 실시하고 있다.
현행 60일의 산전후 휴가는 출산으로 인해 소모된 육체적, 정신적 상태를 회복하기에는 매우 짧은 기간으로, 출산 이후 충분한 쉬지 못한 상태에서 업무에 복귀하게 되면 여성노동자의 건강에 많은 무리가 간다는 점에서 그 기간의 연장은 필수적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대안에는 출산휴가기간을 90일로 연장하고 30일 연장에 따른 임금을 고용보험에서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여성노동계가 지속적으로 모성보호 비용의 사회부담화를 요구해왔던 것은 출산휴가기간 중 임금의 전액을 기업이 지불함으로써 여성고용의 기피와 차별을 합리화하는 기제로 작용해왔을 뿐 아니라 사회구성원의 재생산이라는 측면에서 사회부담화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출산휴가기간의 연장과 사회부담화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필요성이 인정되고 있으나 현재 재계와 정계가 적극 반대하고 있는 조항은 월 1일의 태아검진휴가, 유급유·사산휴가, 육아휴직의 유급화, 가족간호휴직제이다.
우리나라처럼 장시간 노동과 짧은 휴일·휴가로는 임신시 태아검진을 위해 마음놓고 병원에 가기가 쉽지 않다. 태아와 임산부의 건강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임신중의 여성에 대한 태아검진휴가가 법적으로 보장되어야 하고, 유·사산휴가도 신설되어야 한다. 열악한 노동조건과 환경오염으로 유산률이 날로 증가하고 있으나, 현행의 노동부 행정지침만으로는 실질적인 사용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 근로기준법상 출산의 개념이 정상분만 이외에 유산, 사산, 조산도 포함하고 있어 행정지침으로 유사산휴가를 사용하도록 하고 있으나 그 실효성은 매우 미흡하다. 재계에서는 유·사산휴가가 ILO 권고안에 없다는 것을 이유로 법제화를 반대하고 있으나, ILO는 임신과 분만으로 인한 질병에 대해서 추가의 휴가를 인정하고 있고, 유산 또는 산전산후 합병증 등의 경우 출산휴가의 기간 연장이 가능하도록 관계당국이 결정권을 가질 수 있다고 권고하고 있다.
여성노동자의 평생평등노동권 확보와 남녀노동자의 성평등한 역할분담의 현실화를 위해서는 직장과 가정생활의 양립지원조치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행법의 수준은 극히 미흡하다. 현행 남녀고용평등법에는 자녀가 1세 미만인 경우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으나 임금이 보장되지 않음으로 인해 육아휴직의 실제 이용률은 매우 낮은 실정이다. 육아휴직 사용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휴직 기간 동안의 임금이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고, 고용보험을 통해 일정부분의 임금(시행령 사항)이 지급되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사회복지수준이 낮은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오래 동안 요양이 필요한 가족이 있으면 여성이 직장을 그만두는 것으로 그 해결책을 찾을 수밖에 없다. 가족의 간호를 이유로 직장생활을 중단하거나 업무에 전념하지 못하는 문제를 예방하여 직장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을 위해서 가족간호휴가제의 신설도 필수적이다.
모성보호와 가정과 직장의 양립지원조치는 그 어떤 경제논리와 정치논리와도 맞바꿀 수 없는, 사회적으로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여성의 임신과 출산 없이는 사회의 유지, 존속 자체가 불가능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애를 낳고 키우는 문제는 결코 한 개인이나 가정, 기업의 책임만으로 돌릴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그에 대한 의무와 책임은 여성에게 전담지워져 있다는 데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우리나라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남성과 달리 25세에서 34세 사이에 현격히 떨어지는 M자형이라는 것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이 시기 여성들이 임신과 육아로 노동시장과 단절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성취업 장애요인으로 '육아부담'이 31%로 가장 높게 나왔다는 것(98년 통계청의 사회통계조사보고서)은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더 이상 출산과 육아, 가족에 대한 책임이 여성의 지속적인 노동권과 평등권 실현에 족쇄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법 제도의 개선, 사회적인 의식의 변화가 시급하다.
월간 <복지동향> 2001년 06월호(제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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